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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돈 버는 20대, 진짜 있다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4.10.01 11:48:2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해 봐라. 대신, 포기하지 않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포기 안 할게요, 아버지. 믿고 지켜봐 주세요.”

 

그 때 승준은 중학교 2학년. 군산시민회관에서 열린 학교 축제에 아버지 김동현씨(색소포니스트)를 초대했다. 승준은 아버지 정장을 빌려 입고서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많이 떨었다. 이상하게도 무대에 올라서니까 안정이 되고 웃을 수가 있었다. 실수는 몇 번 했지만 학생들의 호응은 굉장했다. 박수가 쏟아지는 순간순간, 승준은 희열을 느꼈다. 

 

다음 날부터 학교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이 “쟤! 쟤, 마술!” “마술사 지나간다”라며 알아봤다. 마술을 독학한 지 4년 만에 얻은 유명세였다. 승준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명절을 기다렸다. 해외 마술사가 나오는 특집 프로그램을. 식구들과 친척들은 거실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데 승준 혼자만 안방에서 텔레비전으로 마술을 봤다.

 

“마술이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제발, 빨리 명절 와라!’ 엄청 기다렸어요.”

 

승준은 마술을 인터넷으로 배웠다. 손가락을 끊었다가 붙인다거나 동전이 사라지는 것부터 했다.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놈의 인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마술만 하는 외동아들에게 “그만하고 공부해라”하지 않았다. ‘저러다가 말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승준은 해가 갈수록 더 파고들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술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일반 고등학교에 가면 ‘야자’를 한다. 마술 연습할 시간은 주말뿐이겠지. 그래서 승준은 군산 기계공고(마이스터고) 자동차학과에 들어갔다. 기계 쪽을 전공으로 선택하면, 마술 도구들을 직접 만들 수 있겠다는 계산까지 했다. 학교에는 마술 하는 선배가 있어서 같이 동아리를 만들어 연구하고 공유했다. 

 

우리나라에서 마술을 배울 수 있는 대학은 두 곳, 목포와 부산에 있다. 2009년, 승준은 동부산대학교 매직엔터테인먼트과(마술학과)에 갔다. 대학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전국에서 온 친구들 중에는 마술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자도 있었다. 군산에서 오래도록 독학만 하고, 조그맣게 동아리 만들어서 활동하다가 간 승준은 풀이 좀 죽었다. 

 

“저는 마술을 비디오테이프, 책, 인터넷을 통해서만 했잖아요. 인터넷에는 생활 마술이 많았어요. 동전, 고무줄, 풍선, 빨대로 하는 마술이요. 도구 마술을 몰랐는데 대학에 들어가서야 보고 배우게 된 거예요. 마술의 역사나 이론도요. 마술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기부터 배웠어요. 마술사들은 그걸로 자기 콘셉트에 맞게 특기를 만들어요. 학교 시험도 공연하듯이 교수님 앞에서 마술을 해요. 스카프에서 꽃이 나오는 거 말고, 심도 있는 마술이요.”

 

승준은 군대(GOP, 38선 철책근무)를 갔다 오고, 학교도 졸업했다. 같은 과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로 갔다. 승준은 군산으로 와서 마술 전문회사 문 팩토리(대표 마술사 문태현, 29) 소속 마술사가 되었다. 여덟 명의 마술사가 오로지 마술 관련 일만 한다. 마술 공연, 마술 교육을 하며 미래를 일군다. 마술사가 봐도 혹할 만한 도구들을 만든다.  

 

 


 

작년에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옆 장미 공연장에서 ‘모던 매직쇼’ 콘서트를 했다. 옛날 스타일의 마술을 근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마술이었다. 한 달 반 동안, 주말마다 하루 두 차례씩 공연했다. 그를 ‘딴따라’라고 했던 할아버지(같이 살고 있음)도 공연을 보러 왔다. 별 말씀은 없었다. 김승준 마술사는 그게 손자를 인정한 할아버지 식 표현이라는 걸 안다. 

 

그는 학교나 문화센터에서 마술 강의도 한다. 주로 생활 마술과 도구 마술을 보여준다. 아이든, 어른이든, 김승준 마술사를 바라보는 눈빛은 반짝인다. 가르치는 기쁨이 크다. 수강생들은 마술을 배우면서 마술의 방식을 알아간다. 마술사가 오른손에 동전을 쥐고 있으면 앞서 나가기도 한다. 왼손만 보고 있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예절을 일깨운다.

 

“여러분, 마술 예의 알지요? 제 오른손을 보세요. 왼손으로는 아직 아무 것도 안 했어요.” 

 

마술은 고대부터 부르주아 계층의 문화였다. 갖추어져 있는 무대에서, 품위를 갖춘 관객들만 볼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 문화였다. 김승준 마술사도 ‘거리에 나가서 공연하는 것 자체가 마술사에 대한 격을 떨어뜨리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올 봄, 회사 스케줄에는 거리로 나가서 하는 마술이 있었다.

 

 


 

“관객을 바로 앞에서 만나는 게 의외로 재밌는 거예요. 옷차림이 꼭 정장이 아니어도 되고요. 친근하게, 가까이서 호흡 하면서 마술을 했죠. 관객들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갔어요. 제가 원래 무대에서 정중하게, 정해진 동선으로만 움직이는 마술을 했거든요. 근데 거리 공연에서는 방방 뛰기도 해요. 가끔은 검은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주고 가거나 제 마술 도구가 든 캐리어를 차는 사람도 있어요. 근데 저는 그것도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김승준 마술사는 회사 일과는 별개로 주말에 은파 물빛다리에서 공연을 한다. 한 자리에서 네다섯 타임을 한다. 마술은, 같은 마술을, 같은 사람한테, 두 번 보여주면 안 된다. 거리 공연은 봤던 사람이 또 볼 수 있다는 게 흠. 그는 머릿속에 ‘큐’ 라고 정해놓은 순서를 상황에 맞게 뒤바꿔 버린다. 다들 알고 있는 마술을 다 같이 놀면서 웃을 수 있게 노력한다. 

 

내가 김승준 마술사를 본 곳도 은파, 여름밤이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여섯 살 난 우리 꽃차남이 빨려들듯 한 곳으로 뛰어갔다. 작은 무대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궁금했다. 조명이 약해서 관객들은 최대한 무대 가까이에 있었다. 마술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나왔다.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도회지 문화’가 있었던 거다.

 

버스킹 문화, 길거리에서 연주한다는 버스크(Busk)에서 생긴 말. 더블린이나 파리 같은 이국의 사람들이 즐기던 버스킹이 군산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려 애쓰고 있다. 사람의 도리를 안다면, 버스커(버스킹 하는 사람)들이 다음 공연을 하러 올 수 있게 버스킹 박스(돈 통)에 보답을 해야 한다. 우리 꽃차남도 아는 듯 했다.

 

“엄마, 마술하는 형아(꽃차남의 사촌형 셋은 아기 아빠들. 웬만한 청년들한테는 일단 형 ‘먹고’ 본다)한테 고맙다고 준 거지이?”

 

한낮에 본 김승준 마술사는 밤에 봤을 때보다 앳된 얼굴이었다. 인터뷰 끝날 무렵, 그가 메고 온 가방 속이 궁금해졌다. 그가 “카드는 기본이에요” 하면서 보여주는데 마술 동전, 지팡이, 마술 도구들, 강의 하러 나갈 때 쓰는 수업 자료들이 나왔다. 해리포터의 스승님이 썼을 것 같은 클래식한 수첩에는 마술 아이디어들이 그림으로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술사들은 자기 아이디어 노트가 꼭 있어요. 고민을 되게 많이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니까요. 마술사가 원래 사람들이 상상한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직업이잖아요. 지금 여기서 딸기 스무디 먹다가 바나나 스무디 먹고 싶을 수가 있잖아요. 그러면 마술사는 순간에 바꿀 수도 있어요. 그래서 마술 도구들이 필요한 거예요.” 

 

나는 도구라는 말이 좋다. 어릴 때 <도라에몽>의 짝퉁 ‘동짜몽’을 좋아했고, 아들을 둘이나 키우는 지금도 만화 <도라에몽>을 좋아한다. 도라에몽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도구들에 열광한다. 이 젊은 마술사도 도라에몽처럼 마술 도구들을 가방 속의 주머니에 따로 넣어가지고 다닌다. 햐! 눈에서 하트가 나오면서 주책바가지 질문을 하고 말았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스카프에서 꽃이랑 비둘기 어떻게 나와요?”

“(웃으면서) 마술 비밀 상 알려줄 수가 없어요. 비둘기 나오는 것도요.”

 

 


 

김승준 마술사는 군산의 몇몇 중학교에 직업 특강도 나간다. 강의가 끝날 때마다 “꿈이 없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라고 묻는다. 아이들은 대부분 꿈이 없다고 한다. 그는 안타깝다.   뭐가 됐든, 무조건 꿈을 가져보라고 권한다. 뭘 좋아하는지를 모른다고 하면, 명절에 텔레비전에서 하는 마술을 기다리던 어린 날의 자신 얘기를 한다.

 

“뭔가를 했을 때 희열을 느끼는 게 꿈입니다. 지금 좋아하는 게 꿈이 됩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으세요. 대단한 게 아니어도 좋아요.”

 

그는 또 꿈을 꾼다. 즐겨하는 요리와 좋아하는 마술을 합쳐서 마술 카페를 하고 싶다.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마술로 즐겁게 해 주고 싶다. 이 세상사람 누군가는 자신을 롤 모델 삼아서 성장하면 좋겠다. 친구들이 “야, 너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돈 벌잖아. 행복하게 살잖아” 라고 말해도 안주하지 않는 이유다.

 

마술사 김승준 010 4731 6547

군산시 개복동 8-5 문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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