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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2대 세습, ‘인생 성공’이지요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4.06.01 09:52:49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엄마, 나한테 감사한 줄 알아요! 내 친구들이 엄마는 다른 엄마들이랑 다르다고 하지? 왜 그런 줄 알아? 내가 애들 앞에서 엄마를 안 씹었거든.”

 

이처럼 솔직담백한 김율은 2001년에 태어났다. 박정찬과 김민혁도 같은 해에 태어났다. 셋은 군산 남중학교 1학년생들이다. 지금도 내복 입고서 같이 논다.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친구라서 그런다. 태아 시절을 기억하는 초능력 청소년이냐고? 이 아이들의 엄마인 문지영님, 김지정님, 전혜윤님은 ‘절친’이다.

 

지정과 혜윤은 영광여중을 같이 다니고 군산여고에서 또 만났다. 거기에는 키 크고 예쁜 지영이 있었다. 키 차이가 나는 혜윤과 지영은 교실 중간쯤에 같이 앉았다. 만날 같이 어울렸다. 서로 떨어져 앉을 때는 수업하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쪽지를 쉴 새 없이 돌리며 우정을 도모했다. 플루트를 하는 지영이 레슨 받으러 가면, 혜윤은 그 자리를 크게 느꼈다.

 

“지영이는 자체가 멋있었어요. 음악실에 갔는데 피아노를 치고 있었어요. 그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저는 옥산 시골에 살았어요. 형제가 다섯 명이라 피아노 치는 것을 못해봤잖아요. 그러니까 ‘아, 멋있다’ 했죠. 지영이 손을 잡았는데 손가락이 진짜 길었어요. ‘아, 이런 게 예술가 손이구나’ 했죠.”

 

 

 

일찌감치 지영의 진로는 정해져 있었다. 지정과 혜윤은 ‘옆집 언니들’처럼, 취업이 잘 되는 유아교육이나 간호대학 중에서 고민했다. 둘은 “도저히 피는 못 볼 것 같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그랬어요” 하며 유아교육학과를 갔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다정한 성격이라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영은 전주에서, 지정과 혜윤은 군산에서 대학을 다녔다. 휴대폰이 없을 때라서 서로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전화기를 든 팔이 아플 때까지 통화를 하고서는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고 끊었다. 대학생이 됐으면서도 셋은 ‘고딩’ 때처럼 이성당에서 빵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김지정님은 말했다.

 

“우리 집에서 혜윤이 별명이 ‘금메달’이에요. 전화를 제일 많이 했어요. 애인(지금의 남편)보다 더 많이 했거든요. 저하고 혜윤이는 학교 졸업하고 놀이방(지금의 가정 어린이집)을 했거든요. 애들 낮잠 재우고서는 보육사례 발표하듯이 전화를 했어요. 날마다요. 그래서 애기들 특성을 안 보고도 다 알았어요. 서로의 놀이방 가서 애기들을 보잖아요. 그러면, 처음 보는데도 이 애가 누군지를 알았어요.”

 

주 5일 근무가 정착되기 전, 매달 셋째 주 토요일만 놀이방을 쉴 수 있었다. 그 때마다 지정은 부모님한테 공식적인 외박 허락을 받았다. 혜윤이 혼자 독립해서 하는 놀이방에 왔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불금’, 그녀들은 밥해 먹으면서 놀았다. 비디오 빌려서 보면서 뒹굴뒹굴 했다. 할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 때 지영이는 전주에서 대학교 다니고 있었어요. 저희는 전문대 나와서 사업을 한 거고요.”

 

지영님은 전주에 신혼집을 꾸렸다. 그녀는 군산시향(시립 교향악단)으로 출퇴근하면서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로 일했다. 그녀의 남편은 전주에서 광주시향으로 출퇴근했다. 아기를 낳았을 때도 삶의 방식은 그대로, “여기서 둘째를 낳으면, 내 인생은 망가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기 봐주시던 아주머니마저 갑자기 아프다고 해서 아득했다.

 

 


 

“율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고민하니까 혜윤이가 ‘그러면, 나한테 맡기고 군산시향을 가’라고 했어요. 제가 자는 애기를 그대로 싸서 새벽 6시 반에 전주에서 출발 했어요. 7시 반에 혜윤이한테 아기를 주고, 구암초등학교로 방과후수업을 하러 갔어요. 전주에서도 방과후수업을 하고 있어서 전주도 가야 했고요.”

 

혜윤님은 친구 딸 율이를 아들 민혁이처럼 돌봤다. 그런데 율이는 다른 아기들보다 훨씬 더 예민한 아기. 엄마가 제 눈앞에 보이는 시간이 많아야 안정을 찾았다. 무슨 말이든, 세 번씩 물어야 겨우 대답을 했다. 잘 먹지도 않았다. 혜윤님은 아기의 정서상 율이가 집이 있는 전주에서 자라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제가 전주에서 놀이방을 몇 군데나 가 봤어요. 눈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혜윤이네가 기준이니까. 남편이 ‘차라리 주말 부부를 하자. 애기 데리고 군산으로 가’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군산으로 이사 왔어요. 율이를 맡기려고요. 그 뒤로 육아는 혜윤이랑 지정이가 다 알아서 해 줬어요. 친구들 덕분에 진짜 편하게 살았죠. 유치원이랑 초등학교도 같이 보냈어요. 부모 상담도 대신 해 줬어요.”

 

율과 정찬, 민혁은 아기 때부터 싸우지 않았다. 놀잇감이나 먹을 것도 양보를 잘 했다. 커서는 수영이나 논술도 같이 다녔다. 중학교 갈 때도 1지망에서 12지망까지 똑같이 썼다. 모두 1지망에 붙는 행운을 잡았다. 남자애 둘에 여자애 하나, 셋은 붙어 다닌다. 친구들도 “쟤네는 뱃속 친구래. 엄마들이 어릴 때부터 친구래” 하면서 놀리지 않는다.

 

지난 해 여름부터 아이들 셋은 기타를 배우러 다닌다. 청소년 특유의 웅얼웅얼 화법, 기타 선생님은 “너희 셋은 친구 맞나 봐. 선생님은 도저히 너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겠어. 알아듣게 좀 말 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전혜윤님은 엄청 웃고 말했다. 그녀의 친정 부모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너희 부부는 민혁이가 하는 말을 알아들어? 무슨 말인지 알아?”

“우리도 다 못 알아들어요. 자꾸 물어보면 사춘기라고 짜증내니까 대충 알아들어요. 중요한 것만 알아들으면 되지요.” 

 

작년에 전혜윤님은 17년 5개월 동안 했던 가정어린이집을 정리하고 7개월 동안 백수생활을 한 적 있다. 생활은 그대로고, 애들은 키워야 하니까 나가는 돈은 똑같았다. 그래도 앞날을 준비해야 하니까 새로 차까지 사야 했다. 꼼꼼하게 고민해서 자동차를 골랐다. 그리고는 카스(카카오 스토리)에 신차 사진을 올렸다.

 

‘자랑세’ 라는 말이 있다. 자랑하는 사람이 돈을 써야 한다. “한 턱 낼게” 하면서 밥을 사고 커피를 사야 한다. 혜윤님의 새 차 사진 댓글에서 그런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다들 점찮게 ‘차를 태워주세요’ ‘안전 운전하세요’라고 했다. 그러나 오랜 절친인 지정님은 대단히 예쁜 말을 했다.  

 

“내 친구, 애마가 생기고 축하해. 돈 없으니까 당분간 나한테 빈대 붙어.”

 

그 말에 율이 엄마 지영님도 빈대 붙고 싶다고 했다. 지정님은 “너는 부자라서 안 되는데 율이 피부과 다니느라 힘드니까 붙어”라고 했다. 그게 셋이서 수십 년 동안 우정을 가꾸어 온 비결인지도 모른다. 천사 어린이집 원장인 지정님과 제이씨 어린이집 원장인 혜윤님은 공유할 게 많지만 음악 하는 지영님이 소외되지 않게 배려한다. 지영님은 말했다.  

 

“제가 단톡(단체 카톡)을 하면서 ‘율이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라고 해요. 그러면 저랑 친한 현주 언니는 ‘썩을 놈의 가시내...’ 하면서 제 감정을 읽어줘요. 근데 혜윤이랑 지정이는 보육 전문가잖아요. ‘그 때는 그렇게 행동할 시기야’라고 조언을 해줘요. 친구들 덕분에 사춘기인 딸이랑도 덜 부딪히는 게 있어요.”

 

학연, 지연, SNS로 아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친구가 없는 시대. 나는 오랜 벗인 그녀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녀들의 조건은 하나, “사진은 안 찍어요”. 모두 맨얼굴로 나왔다. 나는 “쉰 살이나 예순 살 때 보면, 오늘 찍은 얼굴은 완전 풋사과일 거예요”라고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내가 들고 간 카메라 가방이 민망하지 않게 먼저 사진 찍자고 했다. 

 

 


 

인터뷰 녹음를 푸는 내내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소리가 났다. 낮밥 먹고 만나자고 했는데도 그녀들은 혜윤님의 어린이집 텃밭에서 상추와 쑥갓을 뜯어서 한상 차려놓았다. 아들만 둘인  내게 “애들끼리는 동성이 좋아요. 딸 없어도 괜찮아요”라고 했다. 우리 꽃차남이 여섯 살 먹도록 “왜 고추를 달고 나왔니” 하는 사람들 때문에 꽁해있던 내 맘이 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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