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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했다고 뺨 맞은 학생, 지금 이렇게 됐다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4.06.01 18:09:4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친구들이 ‘네가 교사 된 게 우리한테는 가장 대박사건이야’하면서 웃었어요. 제가 조용히 학교를 못 다녔으니까요. 수업도 지루해서 딴 짓 많이 하고, 꾸미고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문제도 일으키고. 중학교 때는 선생님들한테 진짜 많이 맞았어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계속 인상을 쓰고 있죠. 안 웃었어요. 선생님이 싫었거든요. 그런데 공부는 좀 잘 했어요.” 

 

깻잎머리를 한 ‘중딩’ 심은정. 친구들에게 억울한 일이 생기면, 선생님한테 가서 대신 따져 주던 해결사. 선생님들은 은정의 기분이 팍 상하게 머리를 때렸다. 책상에 올라가서 무릎 꿇고 앉게 해서 허벅지를 때렸다. 친구들은 “봐 주세요”라고 하는데 은정은 끝까지 맞았다. 중3 때 지각했다고 ‘싸다구’를 맞은 적도 있다.  

 

은정은 3지망으로 쓴 군산 영광여고에 입학했다. 학교에 대한 불만이 더 커졌다. 1학년 때 담임 최현숙 선생님은 아이의 행동만 보고 혼내지 않는 사람, 내면 깊은 곳까지 보려고 했다. 은정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1학년 말에는 아침밥(은정네 아침은 생식)을 준다는 것에 솔깃해서 기숙사에 들어갔다. 거기 친구들이랑 친해지면서 은정의 인상은 보들보들해졌다. 

 

2학년 때 담임은 총각인 김용옥 선생님. “오~”, “와!” 환호성이 나올만한 비주얼이 아니었다. 배 나온 아저씨였다. 담임선생님은 자주 교실에 와서 애들에게 말 걸며 친해졌다. 교실에서 아이들이랑 점심도 같이 먹었다. 3월이 끝날 때는 그 달에 생일인 애들 파티를 열어주었다. 은정도, 친구들도, 김밥 한 줄씩 잡고 베어 먹으며 재밌어했다.

 

“선생님이 어떻게 이렇게 해 줄 수가 있지? 왜 해 주지?”  

 

충격 먹은 은정은 담임선생님을 의심하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용옥 선생님은 밤에는 기숙사생 제자들을 찾아와서 맛있는 것을 사주었다. 은정의 마음은 무장해제 되었다. 마침내 소리 내서 깔깔 웃는 평범한 ‘고딩’ 여학생이 되고 만 거다. 은정은 담임선생님 쪽으로 한 발짝 내딛으면서 ‘나도 갚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4월 1일 만우절, 은정과 친구들은 미혼인 담임선생님한테 ‘축 결혼’이라고 써 붙인 화분을 보냈다. 인상적인 거짓말이 사그라진 얼마 뒤, 은정은 반 친구들과 바로 스승의 날 준비를 했다.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작전이었다. 학교 전체 계단과 벽에 ‘김용옥 선생님, 사랑합니다’ 를 붙이기로 했다. 선생님이랑 같이 사진 많이 찍자고 ‘디카’도 사 드리기로 했다. 

 

“선생님이 평생 동안 간직할 수 있는 선물을 해 드리자.”

 

선생님 댁 아파트 관리실에 미리 얘기를 해 두었다. 스승의 날 새벽에 엘리베이터 가득 풍선을 매달고, ‘오빠 사랑해요’ 라고 써 붙였다. 천을 끊어다가 감사편지를 써서 선생님 자동차 본넷에 묶었다. 웨딩카처럼 꽃 장식을 했다. 김용옥 선생님은 주차장에 와서야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부럽게 생각했던 ‘사랑받는 오빠’가 자신이었음을 알았다.

김용옥 선생님은 주말마다 조를 짜서 반 아이들을 만났다. 맛 집 탐방도 다니면서 서로 많이 웃고 까불고 놀았다. 그 1년 동안 은정은, 교사가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걸 알았다. 그게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다. 따뜻한 교사가 되어서 은정 같은 애들한테 다가가 손 내밀며 믿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전북대 사범대 수학교육과를 갔다.

 

대학은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사범대 친구들은 대체로 순한 모범생들이었다. 은정은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나?’ 고민을 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끙끙 거릴수록 졸업하고 떠나온 영광여고가 그리웠다. 한 달에 두세 번씩 군산에 오면, 곧장 집으로 안 갔다. 모교에 가서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나고는 힘을 얻었다.

 

 


 

은정은 7학기 만에 대학을 조기졸업하고, 서울 노량진 학원가로 가서 임고(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새벽 6시부터 밤 12까지 공부하고 밥도 10분 만에 먹어치우는, 그 세계에 빠르게 적응했다. 첫 번째 임용고시. 1차에 붙었지만 2차 논술시험에서 0.3점 차이로 떨어졌다. 그녀는 1년을 통으로 공부하는 ‘임고재수’생활이, 어쩐지 자신 있었다.  

 

“두 번째 임고를 봤는데 1차를 완전히 잘 본 거예요. 스터디를 해서 2차도 별로 걱정을 안 했어요. 합격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때가 신종플루 시기였어요. 제가 비염이 있어요. 시험 보러 갔는데 계속 기침 하는지 안 하는지 검사해요. 격리해야 한다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니까 컨디션이 엉망이 된 거예요. 결국 떨어졌어요."

 

은정은 배신감을 느꼈다. 1년을 투자해서 딱 한 번 보는 시험, 실력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운도 따라야 한다. 2차 논술 시험에서는 임의적으로 만든 수업 상황에 대해서 출제자가 원하는 답을 써야 한다고 느꼈다. 의도를 읽어내지 못하면 쓸 수가 없다. 은정은 어차피 “나는 임고 두 번까지만 볼 거야” 라고 했으니까, 끝내고 싶었다.

 

“너는 교사를 하고 싶어 했잖아. 네가 교사 되는 시험공부만 해 봤지, 교사를 진짜로 해 본 적은 없잖아. 기간제라도 한 번 해 봐. 왜 해보지도 않고 포기를 해?”

 

한 달간 진로 고민하는 은정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그녀는 흔들렸다. 남원의 한 중학교에서 6개월짜리 기간제 교사를 하고 난 뒤에 한 번 더 임고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기간제 교사 일은 날마다 힘들었다. 중학생 애들은 대들었다. 그녀는 교사들 일까지 떠맡아서 학부모 총회 자료를 만들고, 영재반 특별 보충 수업을 했다. 야근도 많이 했다.

 

한두 달 만에 그녀는 교직 생활에 질렸다. 막상 학교에 가보니까 교사들은 서로 일을 미루려고 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위해서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은정도 언젠가 결혼하면, 육아 핑계 대는 선생님이 될 것 같았다. 열정 없는 교사들이 싫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군산 집에 오면, “나, 선생님 안 할라고!”라는 말을 자동 반복했다.

 

“근데 기간제 여름방학 때 수업했던 남원 애들한테 그렇게 연락이 오는 거예요. 보고 싶다고요. 기분이 너무 묘한 거예요. 제가 누군가의 기억에 새겨진 거잖아요. 저는 개학해서 1주일만 나가면 끝나요. 근데 선생님이 너무 하고 싶어진 거예요. 열심히 안 하는 선생님들 보고 닮아갈까 봐 무서워할 게 아니라, 그냥 나는 나대로 하면 되겠구나 생각이 든 거예요.” 

 

은정은 임고 50일을 앞두고 노량진으로 갔다. 1차·2차 점수가 아주 잘 나왔다. 3차 면접 시험관은 학교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다. 시험공부만 했으면 이상적인 대답을 했겠지만, 기간제 교사를 해 본 은정은 실질적인 대답을 했다. 기적 같은 합격, 은정은 작은 기적이라도 만드는 교사가 되어보자고 결심했다.

 

첫 학교가 전북 장수의 장계공고. 전교생이 100명 조금 넘었다. 학생들이 입학할 때부터 대충 다니다 그만두게 생기면 자퇴한다는 쿨한 마음으로 오는 학교. 심은정 교사가 처음 들은 말도 “공부에 관심 없는 애들이 오는 학교입니다. 초임으로 오는 교사들이 아이들한테 뭔가를 주려고 애쓰기도 하는데 그 효과가 잘 안 나타나요”였다.  

 

심은정 선생님은 수업 시간인데도 PC방에 가고, 삐딱하게 책상에 누워 있는 애들에게 계속 말 걸었다. 초등 수학도 모르는 아이들을 붙잡고, 고등학교 수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었다. 반년이 채 안 걸려서 아이들은 “은정쌤 수학시험은 잘 보자”며 줄 서서 질문을 했다. 아이들이 바뀌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교사 2년차에 2학년 담임을 했다.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김용옥 선생님한테 받은 사랑을 장계공고 아이들에게 돌려주었다. 제 각각 사연 많은 아이들과 많은 것을 했다. 산에 가고, 요리대회를 하고, 금연을 하고, 부산 여행을 갔다. 자기 속을 안 보여주던 아이들도 “은정쌤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우리랑 하고 있구나”를 알았다.  

 

“2학년 가을쯤에 반 아이들이랑 1박 2일을 했어요. 차비 드니까 학교 근처에 새로 지은 마을회관으로 갔어요. 나쁜 짓 한 애들도 있고, 가정이 평범하지 않은 애들도 있어요. 서로 밤새 얘기하고 나니까 제가 애들한테 담임샘이면서 누나고 엄마가 된 거예요. 첫 제자들이라 평생 못 잊죠. 군산으로 발령받고 와서도 장계공고 애들이랑 마라톤도 나갔어요.” 

 

 


 

심은정(29세) 선생님은 올해는 군산여고 2학년 7반 아이들이랑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그 전에 그녀는 ‘밑밥’을 깔았다. 교무실 컴퓨터에 마라톤 뛴 사진을 인화해서 붙여놓고, SNS에도 자주 관련 사진을 올렸다. 호기심을 느낀 반 아이들이 군산에서 열린다는 새만큼 마라톤 대회를 눈여겨본 거다. 음하핫! 아이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은정쌤, 새만금 마라톤 대회 나가실 거예요? 그럼 우리도 같이 10km 달려요.”

“좋아. 너희들이 하겠다고 하면, 다 데리고 나갈게.”

 

학급 특색 활동 시간인 금요일 5교시에 아이들과 같이 운동장 트랙을 뛰었다. 기록 재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아서 체계적으로 4주간 연습했다. 한편으로 심은정 선생님은 마라톤 주최 측에 1인 3만원인 참가비를 단체니까 깎아달라고, 티셔츠는 아빠 것처럼 큰 사이즈 주지 말라고, 고기 구워먹을 부스를 준다는 확답을 얻으려고 전화를 진짜 많이 했다. 

 


 

교장·교감 선생님은 뒤늦게 심은정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라톤 대회 나간다는 것을 알았다. 조심스럽게 “여학생들은 무리니까 5km만 달리세요”라고 하셨다. 심은정 선생님은 애들이 실망할까 봐 꿋꿋하게 밀고 나갔다. 그러나 마라톤 하는 날 새벽에 비가 철철 내렸다. 아침 7시까지 월명체육관에 가야 하는데 아이들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  

 

“일부러 전화를 안 받았어요. 그럼, 뛸 맘이 있는 애들만 오겠지 싶었어요. 근데 가보니까 빨간색 단체복을 입은 우리 애들이 다 와 있는 거예요.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애들이 고기 구워 먹는다고 버너랑 불판까지 들고 와서 깔깔 거리더라고요. 몸 풀고, 사진 찍고, 달렸어요. 사정이 있는 저희 반 세 명은 못 달리고, 다른 반 애 한 명이 오고, 저같이 뭐든지 해보려고 하는 신규 선생님(김진실, 수학교사, 28세)까지 해서 32명이 완주했어요.” 

 

마라톤 하기 전에 은정 선생님 반은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하고 있어서 다른 반 친구들이 못 들어왔다. 담임인 그녀가 들어가도 어색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마라톤 한 번 뛰었을 뿐인데 반 분위기가 달라졌다. 밖에 나가서 부대끼고 나서는 여학생 특유의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문화마저 깨졌다. 서로에게 활기를 주고 있다. 중간고사 성적까지 잘 나왔다. 

 

“제가 교사가 되고 나서야 고등학교 때 저희 담임선생님이 해주신 게 너무너무 어려웠다는 걸 알았어요. 교사 집단에서 그런 튀는 행동을 하면, ‘저 선생님은 애들을 위해서 잘 한다’고 응원도 하지만 걱정도 많이 하세요. 근데 제가 애들 데리고 마라톤까지 나갔어요. 이런 저를 따라주는 반 애들이 진짜 고맙고 예쁘죠. 요새는 학교 가는 게 너무 행복해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군산여고 2학년 7반 단체 사진. 활짝 웃는 ‘은정쌤’을 보면, 과거는 철저히 지워져 있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만큼 강렬한 표정을 유지해서 친구들도 “야, 무서워”라고 했던 학생 시절. 이제는 많은 일을 경험해서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트이게 해주고 싶은 예쁜 교사 심은정. 나는 하이타니 겐지로가 쓴 책 제목을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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