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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자싸롱’, 3년 동안 알바해서 차렸어요!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4.05.01 16:52:3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사람들한테 제 이름을 말하면 본명이냐고 묻기도 해요. 저도 아직까지는 영글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가 저를 임신했을 때요, 어느 대학에서 개최한 이름 콘테스트를 봤대요. 거기서 3등한 이름이 영글이래요. 어머니가 그 이름에 ‘삘’이 꽂히셨어요. 그래서 제가 영글이가 된 거예요.”

 

 


 

‘영글다’라는 우리말은 주로 과일이나 곡식이 잘 익었을 때 쓴다. 사랑에도 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한테도 쓴다. 장영글은 이름에서부터 단단한 사람이 될 운명을 가진 사람, 그러나 평범한 아이였다. 스무 살까지는 철없었다.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했다. 뒤처지는 것을 싫어한 어머니는 남들이 하는 것은 영글이도 하게 했다. 

 

영글은 친구들이 대학 갈 때에 같이 진학했다. 성적에 맞춰서 군산대학교 공과대학 신소재학과에 들어갔다. “떠밀리듯 학교에 입학한 거예요”라고 말하는 영글은, 남들이 하는 알바도 해 보고, 남들이 하는 시험공부도 하고, 남들이 하는 동아리 활동도 했다. 다른 사람들과 발걸음을 맞추듯 살았다. 나중에 직장도 그렇게 갖게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스물한 살 때에 ‘내가 똑바른 생각을 갖고 살아야겠다’ 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그 때부터 집안 사정이 무척 어려워졌거든요.”

 

친구들이 군대에 가기 위해 휴학할 때, 영글도 휴학했다. 영글은 돈을 벌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할 수 있는 모든 알바를 했다. 그러다가 맘에 맞는 알바 자리를 구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군산 CGV였다. 일할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글의 처지에 맞게 시간도 조정해 주고, 시급도 높았다. 꼬박 3년을 일했다.

 

 


 

영글은 주로 매점 창구에서 일했다. 바쁜 속에서도 여유를 찾았다. 고객들과 틈틈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하는 것도, 같이 근무하는 아이들이랑 일 끝나고 놀러 다니는 것도 재밌었다. 영글은 친구들이 군대 간 동안 알바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군대 안 가는 게 소원인 여섯 살짜리 우리 꽃차남이 들으면 좋아할 얘기였다. 그러나 영글은 정색하며 말했다. 

 

“군대에 안 가려면 어디가 아파야 해요. 진짜 안 돼요.”

 

영글은 왼쪽 다리 대퇴부에 ‘의혈성 괴사’가 있었다. 물렁뼈가 썩어서 없어지는 병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3년 동안 보조기를 차고 다녔다. 지금은 병이 더 진전되지는 않는다. 완치된 것도 아니어서 물렁뼈가 없어지면 올바른 방향으로 재생이 안 된다. 후유증 재발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영글은 군대 면제가 된 거다.

 

영글은 학교에 복학하고 나서도 알바 일은 놓지 않았다.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2학년 겨울 방학, 집안일도 복잡하고 살아갈 일도 막막한 영글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인도에 갔다. 일해서 번 돈을 들고 혼자서 갔다.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쁠 뿐이라는 인도에서, 영글은 몹시 좋았다.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해야 하잖아요. 식당에 가도 10분 안에 음식이 안 나오면, 벌써 짜증이 나잖아요. 근데 인도는 완전 반대예요. 천천히, 여유가 있었어요. 주문 받고나서야 시장 보러 가는 식당도 있어요. 그래서 저도 인도에 있는 두 달 동안 바뀌었어요.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서 바쁘게 살아갈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행 마치고 온 영글은 그의 이름처럼 영글어 갔다. 인도에서 알게 된 여자 친구 지영과도 만났다. 지영의 집은 안양, 학교는 부산. 영글과 지영은 멀리 떨어져 지내는 처지를 장점으로  돌렸다. 데이트는 여행하듯 했다. 서울이나 부산, 경주에서 만났다. 낯선 도시에서 둘은 맥주 가게에 가곤 했다. 영글은 작은 맥주 가게를 사업 아이템으로 눈여겨봤다.

 

2014년 2월 28일, 막 대학을 졸업한 스물여섯 청년 영글은 맥주 가게 ‘말자싸롱’의 사장님이 되었다. 사람들은 실패할 지도 모르는 일에 달려드는 영글을 말렸다. “네가 하면 잘 될 거야” 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영글을 지켜보고 상담해주던 교수님뿐이었다. 외롭고 막막한 시작, 3년 동안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은행에서 대출 받으려고 해도, 20대 청년의 신용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 때 영글의 동생 미현이 큰힘이 되어줬다. 친구들이 놀려도, 어린 영글이 꼭 손잡고 다녔던 예쁜 동생 미현. 갑자기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열아홉 살 때부터 직장 생활을 한 동생 미현. 그녀는 몇 년 동안 모은 돈을 선뜻 내 주면서 말했다.

 

“오빠, 나 결혼할 때 쓸 돈이야. 그 때까지만 갚아.”

 

 


 

가게 시작하고 나서는 또 다른 두려움이 덮쳐왔다. “1년 안에 빚 다 갚고, 정상 궤도에 들어야 해. 안 그러면 위험해”라는 사람들 말은 영글의 마음을 짓눌렀다. 가게를 연 첫 달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차가 없는 영글은 안주에 쓰이는 오징어와 새우를 사러 새벽마다 해망동 어시장에 갔다. 아무 것도 모르니까 모든 것은 몸으로 부딪혀야 했다.

 

 


 

영글은 개업하고 25일만에야 알았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면서 교통비와 시간을 아끼려면, 동네 마트에서 장 봐야한다는 것을. 그래도 ‘오픈발’이랑 ‘개강발’ 덕을 본 3월이었다. 10평짜리 가게, 최대 30명 까지 앉을 수 있는 실내에 손님이 스물다섯 명씩은 들었다. 단골손님들이 생기고, 하루하루 매출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자리를 잡아간다.  

 

“지금 가게가 잘 돼도, 군산대 앞이라 방학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요. 국립대라서 타지 학생이 많거든요. 방학도 긴데 학생들이 집에 가고 없잖아요. 또 다른 건... 어느 사장님들이나 공감을 하실 거예요. 쉴 수가 없다는 것, 자기 시간이 없다는 것을요. 모든 것을 제가 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크고, 그런 마음가짐 때문에 쉴 수가 없죠.”

 

 


 

가게 열고 두 달째, 영글은 쉬는 날을 정하지 못했다. 통감자를 손질해서 세 번에 걸쳐서 튀기는 것도, 오징어를 통째로 튀기는 것도, 영글이 직접 한다. 조리는 어렵지 않지만 스물여섯 청년에게는 손이 많이 가는 메뉴다. 잘 나가는 메뉴가 1만원으로 먹을 수 있는 감자튀김과 크림 맥주. 영글의 일손은 더 빨라져야 한다. 그래야 밥 챙겨먹을 시간이 난다.  

 

“밥은 손님 없을 때 짬 내서 먹어요. 밤 12시 지나면, 붐비던 손님들이 빠지고 서너 테이블만 남거든요. 그 때, 막간을 이용해서 먹는 거예요. 밥을 사와서 먹거든요. 근데 그 시간에 여는 가게가 흔치 않아서요. 대충 먹게 될 때가 많죠. 영업은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끝나요. 집에 가서 씻고 누우면, 아침 6시예요.

 

저는 앞으로 3년 정도 이렇게 가게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말자싸롱’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여유가 있을 거고, 그 때 공부하면서 다른 일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장사하는 사람으로만 남고 싶지 않아요. 제가 운동도 좋아하고, 음악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요. 배우고 싶죠. 틈틈이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요. 더 나중에는 여행 다니면서 살고 싶어요.”

 

 


 

청년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말만 해서는 안 된다. 며칠 뒤 나는 ‘말자싸롱’에 맥주 마시러 갔다. 여섯 살짜리 애를 달고 간 아줌마지만 “여기 젊은 애들 오는 데 아니야?” 물러서지 않았다. 동생 지현과 친구 최박사가 함께 있었으니까. 카페 같은 맥주집 안에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고, 서로 맞대고 얘기하고 있었다.

 

‘말자싸롱’에서 돌아오는 밤, 우리는 차창으로 벚꽃을 보았다. 밥벌이 끝나자마자 바로 애들 밥 먹이며 뒤치다꺼리하는 일상, 밤에 하는 외출은 드문 일이다. 그러니 지현은 “자매, 우리 여행 온 것 같지 않아? 밤 벚꽃을 다 보네. 좋다, 좋아”라고 했다. 언젠가는 여행하며 살고 싶다는 영글을 만난 덕분에 우리는 멀리로 온 듯한 비일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새벽 1시 54분, 영글은 ‘말자싸롱’의 야경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저녁밥 먹고 한숨 돌리고 났을 때겠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시간대를 사는 영글이 짠하기보다는 대견했다. 영글은 몇 년 동안 자기 맘속의 말을 들으면서 공부하고 일했다. 자기 길을 찾아내고는 주저하지 않고 성큼성큼 걷고 있다. 그의 이름처럼 단단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말자싸롱 군산대점

군산시 미룡동 869-1

063)465-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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