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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화, 그 말에 꽂힌 거예요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4.03.01 16:10:1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 그럼 함께 앉아서 햇볕을 쬐어야 해. 우리처럼 홀딱 벗고서.”

 

기원전 326년, 인더스 평원에는 마케도니아에서 온 알렉산더가 서 있었다.  그는 서른 살, 거의 전 세계를 정복했다.  그런 알렉산더를 태연하게 ‘쌩 까는’ 한 무리의 성자들. 나체인 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궁금증이 인 젊은 정복자는 부하에게 그들의 정체를 알아오라고 했다.  그들은 알렉산더에게 말했다.  “남한테 시키지 말고 네가 와!” 거기는 인도였다.

 

진우는 무작정 인도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배낭여행은 꼭 해보고 싶었다.  어디로 갈 지는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두 달간 인도를 여행한 친구가 “거기는 물가가 싸서 돈이 많이 안 들어”라고 했다.  기후도 밑에는 되게 따뜻하고, 위쪽으로 가면 추우니까 각자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고.

 

“그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인도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어.  각 지역마다 다 달라’. 그 말에 꽂힌 거예요. 다양한 문화요.”

 

 


 

진우는 40일간의 인도여행 루트를 단숨에 짰다.  50리터짜리 배낭 하나에 옷, 가이드북,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는 책 한 권, 고추장, 소화제(진우는 스물여섯 살 청년)뿐이었다.  뭄바이에 도착한 다음 날, 진우는 글로만 읽었던 일을 3D 입체영상처럼 실감나게 겪었다.  인도에서 열흘 넘게 먹고 잘 수 있는 돈을 사기 당했다.

 

친절을 베풀면 보상을 받는 게 인디아 룰? 

인도 전역에서 뭄바이는 물가가 비싼 편에 속하는 도시. 그래서 진우와 같은 과 동기 태종이는 버스표 예매할 때도, 숙소를 잡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인도 전통의상을 살 때도, 핸드폰 개통을 할 때도, ‘이 정도는 하겠지’라고 짐작했다. 먼저 다가와서 은혜를 베푸는 현지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냥 하자’고 생각했다.

 

“그 사람들이 그래요. 자기네가 친절을 베풀었으니까 돈을 달래요. 10만원을요. 우리는 학생이라 돈이 없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경찰을 부르겠다는 거예요. ‘인디아 룰은 친절을 베풀면 보상을 받는 거다’ 우리는 처음 왔으니까 모르잖아요. 그게 정말인 것도 같고, 경찰한테 가기 싫어서 돈을 주고 왔죠.

 

좀 웃긴 게 사기꾼들이 다 인간적이에요.  그게 되게 좋았어요. 어쨌든 그 사람들은 저희한테 친절을 베풀 긴 한 거잖아요. 나중에 배낭여행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저희가 당한 돈은 아무 것도 아닌 거예요.  진짜 큰 사기도 많이 있더라고요. 사기 당한 무용담이 바보 같을수록, 다 안쓰럽고 웃겼어요.”

  

처음에는 미치도록 싫은 게 사기꾼들이었다. 그들은 널려있었다. 촘촘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외국 사람은 다 돈이야” 하며 공생하고 있었다. 진우와 태종이가 아무리 조심한들, 거미줄에 걸려서 허우적대는 곤충 신세였다. 그런데 진우는 인도인들이 싫지 않았다. 인질범에게 동화되고, 그들 편에 서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따로 없었다.

 

사기꾼들보다 확실히 싫었던 게 이동이었다. 오래 걸리니까 자면서 갈 수 있는 슬리퍼 버스를 탄다. 바라나시에서 암리차르 갈 때는 19시간 동안 기차를 탔다. 맥그로드간즈 가는 길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다. 의자등받이는 직각인데 창문은 꽉 안 닫힌 채 덜컹거렸다. 버스 속도는 빨랐다. 끝없는 오르막길을 9시간 동안 지그재그로 달렸다. 모두들 토를 했다.

 

 


 

티베트 망명정부, 그냥 다 좋았어요

“진짜 힘들게 맥그로드간즈에 갔어요. 거기에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데 사람들이 참 좋았어요.  사기꾼이 없죠.  6일 머물렀는데 더 있고 싶었죠. 우리랑 정서가 맞아서요. 인도는 국물 있는 음식이 없는데 거기는 국물이 있고, 칼국수 같은 게 있어요. 되게 맛있어요. 좋았어요. 그냥 다. 거기서 히말라야도 갔다 오고, 티베트인들이랑 농구도 하고요.”

 

진우는 어릴 때 프로농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평발이라서 스트레스 골절이 잦았다.  농구를 취미로 했지만 고3 때도, 유니폼을 빌려 입고 농구대회를 찾아다녔다. 공부도 끈질기게 한 덕분에 군고에서 전교 1등을 하기도 했다.  미용사가 진우 맘에 안 들게 머리를 깎아버린 날, 딱 그 하루만 공부를 작파했다.

 

“수능 점수에 맞춰서 서울시립대 기계정보공학과에 입학했는데 적성에 안 맞았어요. 공대 공부 자체가 재미없고, 나중에 이걸로 취업을 했을 때 계속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2학년 마치고, 군대 가서 계속 ‘나가서 뭐할까?’생각했죠.  전공 공부를 해서, 대기업 취직.  길이 그거 하나뿐이잖아요.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하잖아요.”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진우 부모님도 여태까지 한 게 아깝다고, 계속 하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돌아보면,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진우한테 수학을 물어본 적 많았다.  문제를 설명해주고, 친구들이 한 번에 이해할 때, 진우는 재미있었다.  제대하자마자 바로 재수학원으로 갔다. 

 

 


 

성적 장학금 받은 걸로 인도 배낭여행을

스물다섯, 빠른 친구들은 직장을 잡았을 나이에 진우는 전북대 수학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수학은 논리적인 거라서 재미있었다.  학교생활도 좋았다.  학과 공부는 어렵지만 배우는 기쁨이 컸다.  ‘올 에이뿔’을 맞아서 장학금 180만원을 받았다. 그거 들고, 인도에 간 거다.  뭄바이에서 사기 당한 뒤부터는 숙소비와 입장료 빼고 하루 6천 원 정도만 썼다.

 

여행 후반부인 바라나시부터 진우는 아팠다.  어떤 날은 모든 걸 쏟아내듯 설사를 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너무 가고 싶어서 히말라야를 올라갔다.  아파서 쉬는 건 아까웠다.  뭐라도 하나 더 보고, 뭐라도 하나 더 먹으려고 했다.  설사에 두드러기까지 심해져서 병원을 가긴 했는데 드라마틱한 차도는 없었다.  아픈 채로 그냥 다녔다.

 

 


 

진우는 한국에서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인도 전통 옷을 사서 입고 다녔다. 낙타를 타고 사막에 갔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 한 가운데서 밤을 보냈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에서는 서로가 으스대는 것을 구경했다.  할리우드 영화를 이겨버리는 인도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아침·저녁으로 씻던 습성을 버리고, 나흘이고 닷새고 그냥 지냈다.

 

여행하는 동안 부모님한테 연락은 자주 안 했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 한 달을 쓸 수 있는 3기가짜리 유심칩을 샀다. 세 배나 비싸게 주고 샀는데 그것조차도 하루 쓰니까 다 없어졌다. 그래서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만 잘 있다는 안부를 전했다. 인도 옷을 입고, 수염까지 자라서 좀 늙수그레하게 보이는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음식과 사람을 좋아해야 할 수 있는 긴 여행 

“유심칩을 다시 안 산 게 잘한 거 같아요. 여행 가서 연락하는 건 좋은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다른 거 막 찾아보고, 괜히 페이스북 하고 있고. 그게 싫어가지고요. 태종이하고 저는 사지 말자고 했어요. 불편하긴 했지만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우는 인도에 닿은 순간부터 현지인처럼 인도음식을 먹었다. 숟가락이 있어도 손으로만 먹었다. 동행한 태종이는 물갈이 하고 아파서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 했다. 진우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인도까지 와서 왜 한국음식을 고집할까? 돌아가면 실컷 먹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근데 여행 4주차에 진우도 물갈이를 하며 된통 앓았다.

 

“그 때서야 한국음식이 땡겼어요.  인도음식은 안 먹게 되고, 바나나 같은 과일만 먹었어요. 그 때 느꼈죠. ‘내가 정말 이기적이었구나.’ 한국음식이 세 배 정도 비싸기도 했어요. 세 끼 먹을 거를 한 끼에 먹는 거니까 한국음식을 자주 먹지는 않았어요. 근데 제가 아프고 나니까 태종이한테 미안했죠.”

 

진우가 인도에서 돌아온 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진우를 만났다.  내 뜻대로 착착 되지 않던 인도에 갔다 오니까, 여유를 갖고 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단다.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단단한 꿈이 있으니까 조바심도 나지 않는다.  올해 2학년이니까 두 번쯤 더 배낭여행을 갈 거라고. 사람들이 엄청 친절하고, 국물 요리가 있는 라오스와 태국에 갈 것 같다고.

 

나는 오래 전에 <인도 방랑>을 읽은 적 있다.  작가는 보잘것없는 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보잘것없는 사람과 만나지만, 높은 격의 인간을 만나는 여행도 좋은 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악인, 속인이 마구 섞인 인도가 좋다고 했다.  ‘걸을 때마다 내가 보였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작은 일에도 감수성이 확 열리는, 풋풋함을 보았다.

 

청춘이 바스라지고, 먹고 사는 일에 치이면, 여행도 나이 든다.  큰 돈 들여 멀리 갔으면서도, 보고 싶은 게 많지 않다.  군산 은파에서도 할 수 있는, 오리 배를 탄다.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야밤에 슬그머니 나가 맥주나 홀짝인다.  일상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바쁘다고 못 한 일들을, 여행가서 하고 있다.  그게 시시하지가 않고 재미있다.

 

나는 진우가 한, 젊은 인도 여행이 궁금했다.  진우는 사진을 보내왔다.  타지마할 같은 이름난 곳에서 찍은 인증사진은 별로 없었다.  진우가 먹은 음식과 만났던 사람 사진이 많았다.  햐! 진우한테는 여행자의 싹이 보였다.  사람과 음식을 좋아해야만 계속 할 수 있는 긴 여행.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가 카메라를 가졌다면, 진우 같은 사진을 찍었을랑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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