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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삶, 아이들한테 “공부해라” 말 안 하게 됐지요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4.02.01 15:22:5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너랑 나랑 뭐가 다르지?>는 우리 부모님을 해치지 않았다.  나를 폭삭 망하게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책을 ‘웬수’로 여겼다.  다섯 살 꽃차남의 지시를 받아서, 아침저녁으로 수 없이 읽어야 했다.  내가 무림고수였다면, 그 책을 공중에 던져서 단칼에 가루로 만들어 버렸을 거다.  책은 표지부터 망측했다.  펼치면 원초적, 에덴동산이 따로 없었다.

 

그 애들은 홀딱 벗고 있었다.  ‘고추’는 아주 멋지고, ‘잠지’는 아주 예쁘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화장실 줄은 긴데 오줌이 마려울 땐 고추가 있는 게 부럽고, 고추에 지퍼가 낄 때나 축구공으로 고추를 한 방 맞았을 때는 잠지가 있는 게 부럽다고 했다.  그 애들이 자라면, 서로의 몸이 어떻게 달라지고, 어디어디에 털이 나는지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어른들도 홀딱 벗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면, 친절하고, 참을 줄 알고, 언제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나는 걸 얘기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몸을 알고 싶은 게 당연한 것, 그러니 서로를 어루만지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아기 낳는 씨앗과 아기를 만들 수 있는 알이 만나는 과정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책은 남편이 꽃차남을 데리고 동화 읽는 어른 모임 책읽기 행사에 갔다가 천원 주고 사왔다.  어떤 책은 연어처럼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기랑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간다고 하는데 왜 하필 우리 집에 왔을까.  오자마자 ‘굴러들어온 돌’이 된 그 책은, 선량한 엄마로 지내던 내 일상을 흔들었다.  “그만 좀 읽자고!” 라고 오만상을 쓰며 절규하게 만들었다.

 

“말해 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영화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처럼, 그 책을 준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다.  막상 그(녀)들과 대면했을 때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 아이에게 무슨 책을 줄까?” 이기적인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아이와 살아갈 동시대 애들에게도 좋은 책을 주려고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자기 삶을 찾도록 같이 걷는 현자들이다.

  

 

처음에는 내 아이만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그들은 매주 목요일, 주공 4차 작은 별 도서관에서 모인다.  이름은 어린이 도서 연구회 군산 지회(이하 어도연).  각각 정해진 그림책, 어린이 책, 청소년 책을 읽는다.  함께 책 이야기를 하고, 토론하면서 서로가 가까워졌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게 하기 위해 함께 힘을 낸다.  매주 세 곳의 초등학교와 자립원, 드림스타트에 가서 책을 읽어준다.

 

“‘동화동무 씨동무’라고 있어요.  책을 읽어주는 거예요. 애들이 3-4학년이 되면, 학습만화를 많이 접하죠.  재밌는 줄글 책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넘어가 버리잖아요.  긴 책을 계속 읽어주죠.  읽고 나서 독후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책을 읽어주는 거예요.  아이들이 그 시간을 기다리고, 저를 기다려요.  다 끝날 때 ‘선생님 너무 고마웠어요.’ 하는데 울컥했어요.”

 

회현 초등학교 14명의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조영정님은 초등생 아이가 셋이다.  집에 놀러 온 아이 친구들한테도 “여기 앉아라” 하고는 책을 읽어준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림책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가 컸다.  알고 나서 읽어주는 게 더 재미있었다.  책 읽어주는 엄마지만 아이들한테 소리 지를 때도 있긴 있단다.

 

“저는 우리 애 일곱 살 때부터 다독아 시상에 응모했어요.  많이 읽으면 좋다고 생각했죠.  6개월 동안 3백 권 이상 읽고 독후감을 쓰면, 상을 받는 거죠. 트로피까지 받았는데 아이한테 내용을 물어보면, 잘 모르더라고요.  여기 어도연에 와서 다독상 폐지를 알게 됐어요.  많은 책 보다는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한 권의 책을 만나는 게 좋다는 것을요.”

 

아이가 공부 못해도 예뻐할 수 있어요

김순애님이 다독이 준 경험을 얘기했다.  어도연은 그런 독서문화에는 분명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독서왕 선발대회는 아이들한테 바람직하지 않다.  일정한 아이들에게 동일한 책을 읽히고, 책 속의 부분들을 문제로 만들어서, 얼마만큼 외우고 있는가를 테스트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책읽기를 방해하는 독서이력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아이가 성적이 나쁘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런데 어도연의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을 하면서 공부랑 상관없이 가게 되더라고요.  그 전에는 ‘몇 학년이면 무슨 전집을 넣어줘야 한다’, 그런 게 있었거든요.  지금은 애가 좋아하는 책을 함께 찾아서 보고 있어요.  ‘아이가 공부를 못 해도 예뻐할 수 있을까?’ 물어봐도, ‘예뻐할 수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죠.”

 

김종숙님이 얘기하자 “우와, 멋지네!”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우리나라 책 읽기는 성적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은 독서도 학습적인 부분에 치우쳐 버린다.  부모에게 칭찬 받기 위해 책을 읽던 아이들은, 초등 고학년쯤에 손에서 책을 놓는다.  청소년이 되면, 학습만화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유일한 독서가 스마트폰으로 보는 웹툰이다.  

  

 

아이들이 책을 사랑하는 애독자로 크는 게 중요하지요

스마트폰은 아기들까지도 단숨에 사로잡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 하나면, 아이들 입에 달린 “심심해, 심심해” 소리도 쑥 들어간다.  그래서 어른들은 절제를 하고, 아이들에게는 제약을 둔다.  그런 저항은 발버둥으로 그친다.  우리는, 우리 애들은, 어느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책은 점점 들지 못한다.  9년째 모임에 나오고 있는 김은정님이 말했다. 

 

“어도연 모임을 오래 해서 가장 뿌듯한 건 아이들이 중학생이 돼도, ‘엄마, 요즘 무슨 책이 좋아요?’하고 물어요.  ‘엄마가 뭘 알아요?’라고 하지 않고, 엄마랑 함께 하려는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 보다는 책을 사랑하는 독자, 애독자로 크는 게 중요한 것 같거든요.  사람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애독자!  뭉클해졌다.  나도 큰애를 그렇게 키우고  싶었다.  밥벌이가 고달파도, 날마다 책을 읽어주었다.  같이 책을 읽었다.  큰애는 현재 중2, 게임을 많이 한다.  그래서 열 살 터울의 꽃차남한테는 ‘책 읽어 주면 뭐하나?  결국, 아이들은 제 갈 길로 가는 거 아니가?’ 라며 회의적이다.  책 읽자고 조르면, 베이비시터랑 읽지, 왜 나를 들볶느냐고 성질 낸 적 많다. 

 

“올해 큰애가 고1이에요. 아이랑 같은 책을 읽으면 공통소재가 있죠. 아련하게 제 마음 속에는, 단 1%라도, ‘언젠가는 엄마랑 소통할 수 있겠지. 핸드폰이나 게임이 자기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겠지’ 라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죠. ‘게임하지 마라’, ‘공부해라’, 그 말 말고, 책을 통해 할 말이 있다는 게 중요해요.” 

 

“공부해라”, “게임하지 마라” 말고, 다른 할 말은?  

어린이 도서 연구회 회장인 문윤정님이 내 고민에 답을 주었다. 날마다 두 아들이 엉겨 붙어 싸우는 방학, 육아실미도에서 개고생 중인 내게 꿈같은 말이었다. 큰애가 하는 컴퓨터게임 ‘롤’의 용어를 익혀서 ‘만렙’을 축하하는 것만이 소통은 아닌 셈이다. 이제라도 꽃차남한테 상냥하게 책 읽어주는 자세도 필요하겠지.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집에서 애들한테 날마다 책을 꼭 읽어주세요?” 

그들은 모두 책을 읽어준단다. “잠자기 전에 읽어줘요”, “책 읽어달라고 갖고 올 때마다 수시로 읽어줘요”라고 했다. 안진숙님은 아이가 4학년에 올라가는데 지금도 읽어주고 있단다.  글 밥이 많으니까 숨이 차긴 하다. 그래도 엄마가 읽어주면 아이의 청취력과 이해력이 커지는 게 보이니까 그만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의 말소리는 조곤조곤했다. 저마다 속에 든 뜨거운 것들은 감춰지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부터 어도연에 나오고 싶어 했던 고현님은 결혼하고 아이 낳고 기르면서 제 집에 들듯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박은정님은 첫애 7개월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책을 읽었다. 지금은 어린이집에 안 다니고 ‘집에서 노는’, 네 살짜리 둘째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엄마를 따라 어도연의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 온 아이들도 남달랐다. “가장 상태 좋은 애들만 선발해서 데려 왔어요”라는 말이 진담으로 들렸다. 아이들은 부모와 사이를 두고서 앉거나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도 그랬다. 어떤 엄마도 아이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주며 가짜 평화를 만들지 않았다. 귀하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책은 아이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공부와 연결되는 것만도 아니에요. 삶이지요.”

남자회원인 박훈서님이 말했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생활과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도.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 사람들은 독일군이 점령했을 때 책을 읽었다. 절망밖에 없었지만, 독서를 하면서 다른 삶이 있다고 서로 일깨웠다. 어도연 회원들도 책을 읽는다. 오래 전에 태어난 사람과도, 내 몸에서 태어났지만 독립체가 되어가는 아이들과도 친구 ‘먹을’ 수 있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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