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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복근 있는 사람이 있나요?”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6.01.01 18:29:1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그런 호시절이 있었다. 공부를 잘 해서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 포항제철(포스코) 입사로 이어지던 때. 현우는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해서 그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2 때까지는 태권도 선수생활을 했다. 선·후배 사이에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기합도 많았다. 돈도 많이 들었다. 아버지는 “오래 할 것 아니면 빨리 그만둬. 공부해라. 먹고 살아야지”라고 했다.  

“중학생인데 아버지 말이 와 닿았어요. 그 당시에도 운동은 부모님의 지원이 절대적이었어요. 경쟁도 치열하고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재밌더라고요. (웃음) 그 전에는 수업 시간에 자기 바쁜 학생이었어요.”  

 

현우는 의외로 학교 공부가 잘 맞았다. 1학년 때 ‘전자기기 기능사 2급’ 자격증 시험에도 합격했다. 고등학교 2학년, 기능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IMF가 왔다. 기업도, 가정도 함께 어려워졌다. 학교 졸업하면 보장된 취업의 길이 꽉꽉 막혔다. 현우는 물거품이 된 자신의 미래를 받아들이지 못 했다. 열여덟 살 소년은 방황했다.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현우는 집 근처 전문대학에 갔다. 마음이 가지 않았다. 비전이 없어 보이니까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만 들었다. 1학기도 못 다니고 중퇴했다. 현우와 동문 친구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울분이 쌓여 있었다. 차라리 군대부터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그는 경남 사천에 있는 공군 부대에 입대했다. 

 

“연극, 체육대회, 경연대회를 하면서 인정을 많이 받았어요. 군가 경연대회에서 1등도 하고, 체육대회 때 응원단장도 했고요. 그러면서 자신감을 찾았어요. 제가 리더 역할을 잘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2002년 11월, 제대한 현우씨는 평생의 스승인 박인성씨를 만났다. 그는 박인성씨의 헬스클럽이 있는 대구로 갔다. 헬스클럽은 주로 체력 단련장. 목욕탕 꼭대기 층에 있었다. 인식도 좋지 않고, 시설도 낙후되어 있었다. 박인성씨는 현우씨에게 견문을 넓혀야 한다며 서울에 있는 운동 센터도 자주 데려갔다. 현우씨는 피트니스에 눈을 떠갔다.

그는 에어로빅, 요가, 스텝박스, 스피닝 등을 하는 그룹운동(GX)을 배웠다. 사이클 스피닝 종목의 시범 팀장이 되어서 여러 행사에 초청도 받았다. 현우씨는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 라는 회의에 빠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2년간 박인성씨에게 일을 배우고는 울산으로 갔다. 그룹운동이 특화된 피트니스 센터의 ‘월급 관장’이 됐다.

스물여섯 살, 장래가 촉망되는 이 젊은이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울산 KBS와 MBC의 건강 강좌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보디빌딩에 필요한 십여 개의 자격증을 땄다. 가장 힘들게 딴 자격증은 재활헬스 2급. 마라톤 대회가 열리면 부상 입은 사람들에게 테이핑 봉사를 했다. 어르신들을 찾아가 마사지 봉사를 하면서 매주 이론과 실기 테스트를 받았다.

“2009년 11월에 군산으로 왔어요. 박인성 스승님과 함께 하려고요. 군산 나운동의 현대코아 건물에서 ‘시드니 휘트니스’를 하고 계셨거든요. 6개월간 일을 했어요. 저는 안착하는 것보다는 뭔가 새롭게 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2010년 여름에 ‘시드니 여성전용 줄리엣 짐’을 열었어요. 스승님이 기본 틀은 같이 잡아주셨고요.”

 

헬스클럽은 350평. 현우씨는 박인성씨의 도움도 받고, 신용보증기금에서 청년자금대출도 받았다. 사람들은 “전국에도 여성 전용이 몇 곳 없는데 군산같이 작은 데서 되겠냐?”라고 했다. 그는 회원들에게 “운동 하세요” 혼자 두지 않고, 체계적인 관리를 했다. 그룹 엑서사이즈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짰다. 평균 회원 수 600명, 많을 때는 800명까지도 됐다.

현우씨는 열정을 쏟아 부었다. 3년이 지나면서는 ‘나도 뭔가를 이뤄가는구나’ 실감이 났다. 그런데 건물주가 부도를 냈다. 은행에서 압류를 당했다. 세입자인 현우씨네에게 나가라고 했다. 그는 분통이 터졌지만 회원들에게 돈을 환불해 주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문을 닫아요”라고 말했다. 직원들 월급도 다 챙겨줬다. 2013년 9월이었다.

“그때 인생이 딱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빚도 많이 지고 열었거든요. 스승님이랑 직원들이랑 고생도 많이 했는데 다 날아간 거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었어요. 두 달 동안 집안에 박혀서 술만 먹었어요. 어느 날, 거울 속의 저를 보니까 노숙자처럼 돼 있는 거예요. ‘내가 다시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면서 잘 하는 걸 적어봤어요. 운동하고 재활밖에 없는 거예요.”

그는 가방을 꾸려서 서울로 갔다. 후배들이 일하는 퍼스널 트레이닝(피티) 센터를 찾아갔다. 대구나 부산까지 내려가서 꼼꼼하게 보고 다녔다. ‘나도 할 수 있겠다. 군산에는 아직 없는 거니까 도전해 보자’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러나 대형 운동센터를 열려면 몇 억이라는 큰돈이 필요하다. 현우씨는 콘셉트를 바꿔서 작은 피티 스튜디오를 열자고 생각했다.

창업 자금 3백만 원.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 근처 사무실에 눈길이 갔다. 40평인데 월세가 쌌다. 이전에 했던 헬스클럽의 바닥재까지 뜯어 와서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 꼭 필요한 운동기구도 가져왔다. ‘군산에서도 피티를 한다’는 현수막을 혼자서 붙이고 다녔다. 여전히  박인성씨가 가장 큰 힘을 보태주었다.

 

“2013년 12월 23일에 ‘맥팩토리’를 열었어요. 저는 재활, 테라피(치료) 개념과 운동을 같이 해요. 스포츠 마사지, 테이핑도 하고요. 소도구를 이용한 운동도 하고요. 접목을 많이 하죠. 어차피 일대 일로 운동을 하니까 제가 그동안 공부해서 얻은 것들을 가지고 하죠. 개개인이 원하는 콘셉트를 다 맞춰줄 수가 있는 거예요. 문 연 지 3개월 만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는 집에서 동영상 보고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따라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동영상에는 몸이 만들어진 사람(트레이너)이 나온다. 당연히 자세도 잘 잡혀있다. 사람들은 그걸 따라하며 ‘나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우씨는 객관적인 눈으로 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잠깐이라도 와서 정확하게 배우고 하세요”라고 했다.


현우씨는 군산시 보디빌딩협회 기획이사다. 협회에서는 생활 속의 운동을 고민하면서 ‘군산시 생활체육 보디빌딩 대회’를 열기로 했다. 봄부터 주말마다 군산, 익산, 전주에 있는 체육관을 찾아다니며 대회를 알렸다. 지난 9월 6일, 군산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1회 대회. 연령대 별로, 체급 별로 모인 아마추어 선수는 170명. 관객도 천 명 넘게 왔다.

“뿌듯했어요. 군산은 작은 도시잖아요. 생활체육이 활성화 된 도시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당연히 대회를 보면서 ‘멋있다! 나도 운동해 볼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나오죠. 내 몸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술 마시고 담배 피는 것보다는 생활체육(운동)을 하는 게 낫죠. 최고의 건강 방법이에요.”

군산에도 피티(퍼스널 트레이닝)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으로 확산되는 중. 더 이상 ‘서울 사는 부자들이나 하는 운동’이 아니다. 웨딩 촬영을 앞두거나 신년 계획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만 오지 않는다. 배 많이 나오고 운동 싫어하는 중장년도, 오랜 시간 공부하느라 몸이 틀어진 학생들도, 체계적으로 운동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찾아온다.  

그는 회원들에게 “평생 복근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몸짱’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절제와 고통이 동반한다고. 그래서 보디빌딩 선수들도 휴식할 수 있는 비시즌이 있는 거라고 말한다. 화려한 겉모습만 보지 말고,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자고 권한다. 몇 달 내내 식단 조절하면서 살 빼고, 몸매만 따진다면, 운동은 고통이 된단다.

운동 처방은 사람들의 직업, 특성, 연령 등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래서 현우씨는 지금도 여러 분야를 공부한다. 군장대 사회복지학과 졸업하고는 수원대 체육학과에 편입해서 졸업을 앞두고 있다.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크죠”라면서 대학원 진학도 할 거란다. 공부하지 않으면 회원들에게 줄 게 한정된다면서 재활 관련 워크숍을 찾아다닌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평균 10여 명에게 피티를 하는 현우씨. 내년쯤에는 지금보다 쾌적한 시설을 갖춘 피트니스 센터를 열고 싶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인생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변수가 생기는 게 인생이니까 틈나는 대로 재미를 찾는다. 현우씨가 주말 밤에 별을 보고 혼자 솔캠(솔로캠핑)을 하는 이유다.

새만금 캠핑장. 바다를 메우고 생긴 땅에 불어오는 바람은 거칠다. 불을 끄고, 가만히 있으면, 지구의 종말이라도 온 듯 텐트가 흔들릴 때도 있다.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보면 별이 반짝인다. 미치도록 아름답단다. 그때 현우씨는 생각한다. 여성전용 헬스클럽이 망하고 고향(포항)으로 내려갔으면, 지금 누리는 기쁨과 만족을 몰랐을 거라고.

“힘들었지만 그런 일들이 저한테 초석이 된 것 같아요. 제가 더 딴딴해진 거죠. 어찌 보면 비싼 수업료를 낸 거고요. 군산이 저한테 고통도 줬지요. 갚아야 할 빚도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도 군산이에요. 스승님과 회원님들도 있고요. 돌아갈 생각은 안 해요. 여기서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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