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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는 공사 중, 주말에는 문전성시를 이루는 츄러스 가게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5.12.01 14:40:2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2006년, 케이블 티비 엠넷(Mnet)에서 방영한 패션 비즈니스 리얼리티 프로그램 <아이 엠 어 모델-맨>이 있었다. 주인공은 네 명의 남자 모델. 그들은 파리 컬렉션 탐방도 가고, 패션쇼 무대에도 섰다. 모델 지망생들이 그들을 만나서 오디션을 거치는 과정도 나왔다. 그 프로그램을 이끈 모델 중 한 명이 민우기씨. 그는 지금 군산에 산다.  

“작년 5월에 왔어요.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에요. 아버지가 이 동네 구경하러 오셨다가 이 오래된 건물(1층 가게, 2층 살림집)을 계약한 거예요. 저보고 월세 내고 살라고 하셨어요.”

 

우기씨는 여자 친구(지금은 아내) 지현씨에게 “가서 한번 해보자” 라고 했다. “그래!” 라고 지현씨가 말했다. 사람들은 군산으로 내려간다는 우기씨를 의아하게 여겼다. 서울에서 잘 돼도 모자랄 판에 구석으로 살러 가느냐고. 장인어른은 “군산은 바다도 있고, 뱃사람도 많아서 거칠고 센 동네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다. 

“저희는 둘이 같이 한 거예요. 저 혼자서는 못 했을 거예요. 지현이 없었으면 내려올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여기서 뭐 할지 정하지도 않고, ‘여흥상회’라는 이름부터 지었어요. 제가 여흥 민씨예요. 여흥은 흥이 남아있다는 뜻도 있고요. 골목이 있는 동네하고도 잘 어울리잖아요. 옛날에 저희 할아버지가 ‘여흥상회’ 라는 가게를 하신 적도 있었대요.”

둘이 살 집은 군산 구시가의 후미진 골목에 있었다. ‘히로쓰 가옥’ 맞은 편. 그 골목에 처음으로 들어선 가게가 ‘여흥상회’다. 작년 8월이었다. 조각 피자와 음료를 팔았다. 솜씨가 있는 지현씨는 밀가루 반죽을 해서 숙성시켰다. 인터넷을 보고 레시피를 연구했는데 맛있었다. 손님이 얼마나 올지, 재료를 얼마나 준비할지, 가늠할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재료가 신선해도 바로 안 쓰면 썩잖아요. 더구나 여기는 관광지라서 사람들이 빨리 보고 빨리 가요. 피자는 안 되겠더라고요. 에스프레소 머신도 처음에는 없었어요. 둘이 가진 돈으로만 하니까 많이 부족했죠. 라떼는 휴대용 가스버너에 우유를 끓여서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서도 주말에 매출이 백만 원 넘게 나온 적도 있어요. 작년 11월부터는 츄러스를 팔아요.”
 


우기씨는 고등학교 다닐 때에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이었다. 아버지가 “사진은 배워 놓으면 평생 쓸 일이 있을 거야” 라고 권유해서 서울예술대학 사진과에 입학했다. ‘대학은 멋있고 좋겠지’ 라고 생각한 우기씨. 신입생이 되고나서는 ‘내가 여기서 이걸 왜 해야 하지?’라는 회의에 빠졌다. 선배들은 후배라고 무작정 ‘굴리려고’ 했다.
 
그는 대학생활에 흥미를 못 가졌다. 그러나 사진학과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녔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모델 해보지 않을래?”라는 제의를 했다. 모델 장윤주와 홍진경의 소속사 이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스물한 살 청년 우기씨는 패션쇼의 런웨이를 걷는 모델이 됐다. 워킹도 금방 익혔다. 남자 모델은 자기 느낌을 살려서 걸으면 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민우기다!” 알아보니까 ‘자뻑’한 적도 있었다. 모델이 되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그는 스스로 운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알맞게 마른 몸매가 유지 되니까 화보 촬영을 하기 위해서 특별히 애 쓸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프로 의식을 갖고 모델 일을 하지도 않았다.

“제가 막 원해서 이룬 게 아니잖아요. 5년쯤 지나니까 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 앞에 나서서 얘기하는 게 가식적인 것 같고요. 주목받는 것도 점점 부담스러웠어요.”

그는 영국 런던으로 가서 유학 중인 친구들을 만났다. 잠깐만 있으려고 했는데 ‘여기서 살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우기씨는 차부터 팔았다. 이것저것 다 팔았다. 하던 일을 싹 정리하고는 런던으로 갔다. 장기간 체류하기 위해서 어학원에도 등록했다. 우기씨가 느낀, 먼먼 이국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외국에 나와 있으면, 저는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잖아요. 그게 좋았어요. 서울에 있으면, ‘누구 아니야?’ 알은 체 하면 인사를 받아야 하고, 제가 가서 인사해야 할 사람도 있잖아요. 크고 작은 틀 안에 매여 살면서 얘는 어떻고, 쟤는 어떻다는 평가가 따르고요. 그래서 런던이 좋았어요. 거의 1년 정도 있다가 돌아와서는 군대 갔어요.”

스물여덟 살, 그는 동사무소의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사람들은 “야! 완전 편한 데 됐네”라고 했다. 우기씨는 ‘꿀보직’은 아니라고 여겼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과 세계관이 다른 구성원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게 싫은 성격, 복잡한 서류 정리를 배웠다. 시키는 일은 모두 꼼꼼하게 해냈다.  

제대하고는 부산으로 갔다. 지인의 소개로 레스토랑과 갤러리를 겸하는 곳에 취직했다. 일하는 사람은 20여 명. 우기씨는 청소, 서빙, 주방, 잡일 등을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했다. 쉬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때 우기씨는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도,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계속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체득했다.

“부산에서 보낸 1년은 진짜 힘들었어요. 거기서 살았는데 어떤 곳인지 몰라요. 부산은 티비에 나오는 곳도 많잖아요. 가볼 수가 없었어요. 일해야 하니까요. 퇴직금도 1년을 채워야 준다고 하니까 오기가 생겨서 안 그만뒀어요. 예전 같으면 바로 못 한다고 나왔겠죠. 동사무소에서 공익근무를 해본 덕분에 버텨낸 거예요.”

우기씨가 온 군산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사람보다 일본인이 더 많던 도시. 지금 ‘여흥상회’가 있는 동네는 일본인들의 주거지. 군산의 다른 곳보다 아늑해서 벚꽃도 일찍 피는 곳. 세월이 흘러서 1990년대가 되자 상권이 바뀌면서 슬럼화 되었다. 동네 할머니들이 “여기는 도둑도 안 들어. 사람들 떠나고 건달들이 하도 많이 살응게”라고 할 정도로 쇠락했다.

군산시에서 일제 강점기의 근대문화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면서 월명동은 활기차졌다. 지난 해 8월, <1박 2일> 군산 편이 나가고는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일제 강점기 때, 포목상을 하고, 미두장(쌀 현물 투기장)이사를 해서 돈을 긁어모은 히로쓰. 대대손손 살려고 지은 일본식 집을 보러 여행자들이 온다. ‘여흥상회’에서 츄러스도 사먹는다. 

우기씨는 속상한 게 있다. 군산시는 히로쓰 가옥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안 출입을 금지 했다. 여행자들은 삐걱거리는 복도를 걸으며 기저귀 같은 훈도시를 찬 일본인을 떠올릴 수 없다. 길고 습한 일본의 여름에 대비하려고 깔았던 다다미도 볼 수 없다. 백성들이 살던 집 한 채 규모와 맞먹는, 조선 사람들한테 빼앗은 온갖 것들을 넣어 둔 금고도 못 본다. 

“볼 거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히로쓰 가옥을 보수해서 개방을 해야지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하루 관람객을 제한은 해야겠죠. 인터넷으로 오전 오후 예약을 받거나, 선착순으로 몇 명만 입장하거나 그러면 좀 더 들어와 보고 싶을 거 아니에요? 그래야 메리트가 더 있을 것 같아요.”

주말에는 알바생 두 명을 쓸 만큼 바쁜 가게. 옆 사람을 볼 틈도 없이 츄러스를 만든 적도 있다. 주중에는 대체로 한산하다. 그때 지현씨는 가게 위층 살림집에 있다. 서울에서 칠보공예 관련 일을 했던 그녀는 자기 그림을 그린다. 우기씨는 아래층에서 가게의 동선을 고려하면서 손본다. 지현씨가 그만 좀 하라면서 “군산에 공사하러 왔어?” 물을 때도 있다.

작은 가게지만, 우기씨 눈에는 개선하고 싶은 부분이 자꾸 들어온다. 그걸 고치다 보면 어느새 공사로 이어진다. 처음부터 갖추고 시작한 게 아니라서 한 부분 한 부분씩 늘려가고 있다. 그는 “2천 원짜리 츄러스 파는 가게 하나를 제대로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에요” 라고 했다. 우기씨의 평일 공사가 계속되는 이유다.

 

“부산에서 일할 때 주방 일에 관심을 갖고 봤어요. 음식은 변화를 줄 수가 있어요. 근데 츄러스를 해 보니까 폭이 좁아요. 지금은 믹스처럼 된 밀가루에 뜨거운 물과 몇 가지를 넣어 반죽을 해서 기계 안에 넣는 거예요. 그러면 구멍으로 가래떡처럼 나온 걸 뽑아내서 튀기는 거예요. 11월, 12월은 한가하니까 츄러스 모양이나 맛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려고요.”

군산에 온 지 1년 반, 그는 은파보다는 월명공원이 좋다고 했다. 산도 있고, 저수지가 있는  길이 마음에 들었단다. 군산에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애인, 아내인 지현씨랑 몇 번 갔다고. 우기씨가 알고 지내는 이웃은 동네 할머니들뿐이다. 모아놓은 박스를 갖다 주며 인사한다. 언젠가는 이 골목에도 가게를 꾸려가는 이웃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사실, ‘여흥상회’ 옆구리에는 비어있는 20여 평의 공간이 있다. 우기씨와 지현씨는 뭔가를 해보고 싶다. 서울에 있었다면, 도전비용 자체가 엄청나서 망설일 텐데 방법을 찾고 있다. “실패 하기는 싫죠. 그렇다 한들, 방법이 있을 거예요”라는 우기씨. 가만히만 있지 않으면, 대단하지 않아도 뭔가를 하고 있으면, 늦게라도 일의 꼴이 갖추어진다고 본다. 

“그냥 혼자 생각에는, 저를 사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군산 ‘여흥상회’예요. 저를 갈고 닦을 수 있어요. 열 평짜리 가게지만 제 손으로 다 하면서 알아가잖아요. 제 힘으로 해서 잘 되고 싶어요. 그런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어요.”

군산 여흥상회
군산시 구영1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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