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황현정, 파란나라 임수희, 해뜨는 배경희, 숲속 가베 최두란, 햇살나무 한은경
이들은 스킨십 대가들. 아기들을 “우쭈쭈~” 하면서 안고 업는다. 하루에 몇 번씩 아기들의 똥오줌을 확인하며 어루만진다. 이렇게 정성을 쏟는 시간은 최대 4년, 때가 되면 헤어진다. 그 뒤로 6개월만 지나면, 유치원생이 된 다섯 살 아이들은 그녀들을 기억조차 못 한다. 반가워서 와락 안으면 서먹해 한다. 가정어린이집 원장들이 짝사랑 전문가인 이유다.
어떤 아기들은 태어나서 보름이나 한두 달 만에 어린이집에 온다. 아기들은 어린이집에서 먹고 잔다. 눈을 맞추고 웃는다. 뒤집기를 한다. 앉고, 기고, 선다. 잡고 걷는다. 그 때마다 환호하고 박수쳐주고 안아주는 사람은 어린이집 선생님들. 기분 좋은 생활습관, 손발 씻고 양치하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도 어린이집 교사다.
가정어린이집은 2005년부터 시스템이 체계화 되었다. 그 전에는 영아와 유아가 섞여 있는 놀이방이었다. 국가로부터 평가인증을 받으면서 주로 영아들(갓난아기부터 우리 나이 4살까지)을 전담하는 보육기관이 되었다. 아기들의 건강과 행복한 성장을 위해서 집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나는 열 살 터울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큰애는 아토피와 알러지가 있어서 덥고 갑갑하면 몸을 긁었다. 피가 나도록 긁어서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첫눈 내리는 날, 기분 내며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도,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큰애를 내복차림으로 있게 했다. 먼 곳으로 떠나는 버스나 비행기 안에서도 실내등이 꺼지면 큰애 겉옷부터 벗겼다.
올해 여섯 살인 꽃차남을 낳았을 때, 나는 ‘똥고집’을 부렸다. 아기를 보육시설에 안 보내고, 젖도 스스로 뗄 때까지 언제까지고 먹일 작정이었다. 집에서 밥벌이 하는 나는, 베이비시터와 함께 아기를 키웠다. 늘 아기랑 지내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꽃차남 24개월 때부터는 내 몸이 아파서 고집을 꺾었다. 우리 집 1층에 있는 가정어린이집에 가 봤다.
오, 가정어린이집은 신세계였다. 아기들이 모두 내복을 입고 있었다. ‘떼창’이나 ‘떼춤’ 만큼, ‘떼내복’은 감동이 있었다. 당장 꽃차남을 어린이집에 보냈다. 꽃차남은 아침마다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내 가슴을 찢어 놨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수시로 꽃차남이 잘 먹고 잘 노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냈다. 꽃차남은 어린이집 다닌 지 며칠 만에 기저귀도 뗐다.
“내복 입고 편하게 지내는 것도 교육이죠. 어린이집이 평가인증 받던 그 무렵부터 저마다 실내에서 내복을 입히게 된 것 같아요. 보육이 전문화 되면서 어린이집에 오는 연령이 낮아졌거든요. 기저귀 갈기나 대소변 가리기도 전문적인 이론을 가지고 하는 거예요.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청소년·대학생처럼 학습량이 많으면, 가르치는 사람들을 높게 보죠.
아기들이 어리고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어린이집 교사들도 그렇게 보는 시선이 있어요. 저희도 공부해서 자격증 가지고 어린이집 일을 해요. 아기들을 정서적으로 골고루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해요. 애만 돌보는 곳이 아니라 보육과 교육, 안전과 위생까지 책임지는 곳이 가정어린이집이에요.”
109곳의 군산 가정어린이집 연합회는 공통으로 표준보육과정을 따르고 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더 잘 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서, 매달 모여 함께 토론한다. 딸기, 포도, 고구마, 수확 철에는 아이들 데리고 가기 좋은 곳을 공유한다. 체험 다녀와서는 학부모에게도 체험 물품을 보낸다. 그렇게 따뜻한 곳이다.
가정어린이집의 식단은 정보공개를 하고 있다. 아기들의 성장과 발달은 먹는 것과도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신선식품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먹인다. 전문영양사가 급식관리 지원센터에서 짠 식단표를 보고 아이들 밥상을 차린다. 영아들이 하루에 먹어야 하는 음식을 세분화해서 아침·저녁 25%, 점심 30%, 오전·오후 간식 10%를 신경 써서 먹인다.
“대박! 완전 땡 잡았네.”
2012년 3월, 꽃차남 네 살 때에 무상보육이 시행되었다. 벼락같은 축복이었다. 어린이집 보내는 연령이 더 낮아졌다. 어떤 사람들은 무상보육으로 어린이집이 한 몫 잡은 걸로 여겼다. 보육계 예산이 보육료로 지원되면서, 어린이집을 ‘돈 먹는 하마’로 보는 시선들도 생겼다. 정작 어린이집 운영에 쓰라고 직접 지원해 주는 돈은 거의 없다.
‘정부지원금 어린이집 원장 배만 불린다’, ‘말 못하는 유아 학대’ 같은 부풀어진 언론 기사는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수많은 보육교사들의 의욕을 꺾는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기들의 특성상 화장실을 가는 것도 어렵고, 밥 먹다가도 아기들 대소변을 치우면서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는,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황현정 회장은 말했다.
“노동법에는 8시간으로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그런데 영유아 보육법에는 어린이집 운영시간이 12시간이에요. 아침 7시 반에서 저녁 7시 반까지 보육하라고 나와요. 실제로 아이들이 아침 8시 반 전에 와요. 그럼 교사는 어린이집에 8시에는 출근해야 하는 거예요. 보육교사들은 하루 평균 9시간 반에서 10시간을 근무할 수밖에 없어요. 초과근무죠.
어린이집이 아기를 안 봐주겠다는 게 아니에요. 직장맘들이 맘 편하게 아기를 맡길 수 있게 조건을 만들어줘야 해요. 보육교사들에게 탄력근무를 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아기들이 일찍 오는데 교사가 오전 9시에 출근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보육교사들한테 시간외 수당을 줄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복지부가 개선해줘야 할 법이에요.”
가정어린이집은 직장맘들에게 규모는 작아도 든든한 존재다. 자는 아기들을 그대로 차에 싣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줘도 걱정이 없다. 아기를 먹이고 돌보는 고민은 덜 한다. 그러나 애가 유치원 가면, 그 때부터는 ‘미칠 것 같은 지옥육아’다. 애를 깨워서 밥 먹이고, 단정하게 옷 입히고, 준비물을 챙겨야 한다. 8시 20분까지 출근하던 내 친구 최박사는 절규했다.
“내가 늙어 있어도 좋으니까, 오십 살이 돼도 좋으니까, 한 밤 자고 일어나면 애들이 다 커 있었으면 좋겠어.”
많은 것들은 지나고 나야 그 가치를 안다. 정성을 쏟은 것들도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되돌아온다. 특히, 육아는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거라서 엄마들은 외롭다. 남의 집 아이는 잘도 크는데 내 아이만 더디게 크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난다. 집에서 아이가 막무가내로 떼쓰고 울 때에 피곤한 엄마는 늘 다정할 수 없다. 아기 돌보는 게 업인 그녀들은 말했다.
“엄마가 따뜻하고 좋기도 하지만 자기 아이한테는 평정심을 잃어요. 애들은 우는 이유가 여러 가지예요. 배고프거나 아프거나 졸리거나 옷이 답답하거나... 선생님들은 그 이유를 객관적으로 보죠. 그렇지만 엄마는 달래고 달래다 화내잖아요. 엄마 마음에는 독소가 있어요. 그래서 어린이집 교사들한테 말하죠. 엄마 마음 말고, 선생님의 마음으로 아기들을 보자고요.”
어린이집 교사들은 객관적인 자세로 아이들을 돌본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그녀들은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 운다. “똥 기저귀 갈아주는 게 정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라고 변명을 하면서. 나중에 부모들이 “원장님이랑 선생님들이 잘 키워줘서 우리 애가 이렇게 잘 컸어요”한 마디 건네면, 그 말을 두고두고 곱씹는다. 보람을 느끼면서.
“무슨 요일에 만날까요?”
사람들은 인터뷰 정할 때에 요일을 따진다. 그 다음에 시간을 정한다. 군산 가정어린이집 연합회 임원들은 시간부터 정했다. 아기들이 낮잠 자는 오후 1시부터 3시. 어린이집 안에는 보육교사가 두세 명 더 있다고, 하루 정도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그 날 인터뷰는 2시 반에 끝났다. 낮잠 자고 일어난 유아들은 원장님의 외출을 눈치 채지 못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