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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뛰어놀고, 감자 심고, 장미 화관을 쓰는, 매혹적인 유치원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3.09.01 11:08:1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사람들은 말을 한다.  모든 말이 상대에게 즉시 전달되지 않는다.  어떤 말은 세월이 지난 뒤에야 가 닿는다.  신라의 원효는 당나라 유학을 간다. 한 밤중에 목말라 물을 달게 마신다.  날이 밝자, 원효는 자신이 마신 해골바가지 물을 보고 구토를 하면서 생각한다.  ‘똑같은 물’인데 난 왜 생난리를 치지? 원효는 그 자리에서 득도하지만 보통 사람은 더디게 깨닫는다.

 

“아휴, 애들 금방 커.  학교 들어가면 지겹게 공부할 건데, 뭐 하러 일찍 시켜?  그냥 놀게 해.  노는 게 최고야.”

 

 


 

큰 애를 키울 때는 보석 같은 저 말들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  큰 애가 유치원생일 때, 한자와 수학 학습지를 시켰다.  아이가 규칙대로 딱딱 따라가지 못해서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영어 학원에 보냈다.  학교 끝나고 온 아이를 텅 빈 집에 혼자 둘 수 없다는 핑계거리가 있었으니까.  큰 애와 10년 터울로 꽃차남을 낳았다.  그 동안 나는 아이한테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지 정도는 깨우쳤다.  작년 가을, 곧 다섯 살이 되는 꽃차남의 유치원을 알아볼 때에 조건은 하나, 실컷 뛰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가만 살폈다.  이곳저곳 알아보러 다닐 각오까지 했는데 맨 처음 간 곳에서 내 마음은 정해졌다.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시끄럽게 놀고 있었다.  구경하는 내 얼굴이 저절로 환해졌다.  460평짜리 마당 하나만으로도 매혹을 뿜어내는 유치원이었다.  이 유치원을 운영하는 박선아 원장은 군산에 온 지 1년 8개월째, 그 전에는 광주 시민이었다.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녔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고서는 전업 주부로 살았다.

 

‘아줌마 박선아’는 고민했다.  큰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자 대학 2학년으로 편입, 3년 동안 유아교육을 공부했다.  늦공부의 위력은 장학금 받는 걸로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11년간 운영했다.  바라던 일을 하는데도 해가 갈수록 어떤 갈망이 커졌다.  아이들에게 흙의 감촉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마당 딸린 유치원을 꾸리고 싶었다.  그토록 원하던, 마당 있는 유치원은 군산에 있었다.  먼 길을 달려와 바깥에서 한 번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마음이 붙들렸다.  그리고는 흔들리지 않았다.  광주를 벗어난 삶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홀린 듯 군산에 와서 정착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군산에서, 남편과 둘이서, 벗이 되어, 동료가 되어, 뿌리를 내렸다.  

 


 

어떤 꿈은 이루고 나면 허망하다.  원래 잔디밭에서 뛰어 놀던 백 수십 명의 아이들은 빠져나가고, 무거운 침묵만 남은 유치원.  모든 것이 제로인 상태였다.  박선아 원장은 작년에 아이들 12명으로 시작했다.  그 아이들을 보며 힘을 냈다.  제기 차기, 사방치기, 비석치기 같은 전통 놀이도 곁들이다가 올해는 아예 유치원 마당에서 아이들 40명과 전통 혼례를 올렸다.  텔레비전 다큐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장면이었다.  아이들은 함진 아비가 되어 함 팔면서 실랑이를 벌이고, 꼬마 신랑은 기럭아비를 앞세워 걸어 들어왔다.  아이들은 각각 수많은 신랑 친인척을 연기하며 절을 받고, 덕담을 했다.  아이들의 예스러운 모습에 구경 온 사람들은 감격했다.  박선아 원장은 혼인날답게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푸짐하게 내놓았다.

 

새나래 원장, 박선아 님은 가끔 본능적이다.  아이들과 소풍 가서는 예산에 없던 놀이기구를 태워준다.  아이들과 갯벌을 공부하면, 학부모까지 초대해 갯벌에 간다.  아침 안 먹고 오는 아이들이 많아서 오전에는 죽을 먹이고, 이력이 추적되는 국산 쇠고기를 쓴다.  군산시민 2년차지만 시간과 돈은 유치원 일에만 썼다.  군산에 와서 새 옷을 사 입을 여유는 없었다.

 

 


 

나는 유치원 아이들이 점심 먹고 마당에서 노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박선아 원장이 선선하게 그러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안 되는데요, 날이 너무 뜨거워서 우리 애들이 지쳐요.” 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나흘 뒤, 그녀는 나보고, 아이들 등원 시간에 맞춰서 유치원에 오라고 했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다.  잠자리들도 아이들과 떼를 지어 날았다.  다섯 살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만든 신문지 공으로 축구를 했다.  진짜 축구공으로 축구하는 여섯 살 형아들이랑 금방 뒤엉켰다.  어떤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어떤 아이들은 맨발로 잔디밭을 걸었다.  모래로 소꿉놀이를 하거나, 미끄럼틀을 타거나, 줄넘기를 했다.  아이들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몰려다녔다.  나무 그늘로 가는 게 아니라 우르르 텃밭으로 가서 저마다 방울토마토를 따 먹었다.  가지와 참외가 참 맛있게 보인다고, 어서 사진을 찍으라고 권하는 아이도 있었다.  다섯 살 여자 아이들은 피망을 따고, 저 먹던 방울토마토를 더해, 텃밭 옆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토끼한테 가져다주었다.

 

유치원 마당에는 꽃과 나무가 많다.  봄에는 벚꽃이 피고, 그 아래에 모인 아이들이, 고개를 젖히고 입을 벌린 채, 흩날리는 꽃잎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본격적인 여름이 바짝 다가왔을 때는 치자꽃 향이 진했다.  아이들도 세월을 되돌아볼 만큼 나이를 먹으면, 문득, 날마다 유치원 마당에서 본 꽃과 나무가 기억날 터이다.

 

 


 

우리 꽃차남은 열 살 많은 제 형아도 해 보지 못한 무수한 일들을, 유치원 텃밭에서 해냈다.  감자를 심고, 감자 꽃을 알았다.  씨 뿌린 상추가 자라면 뜯어서 상추쌈을 먹었다.  땅콩과 고구마를 심고, 가지가 자라는 걸 지켜본다.  장미꽃이 피면, 장미화관을 쓰고서 꽃처럼 웃었다.  루페와 청진기를 들고, 유치원 마당에 핀 꽃과 나무들을 관찰했다.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새까맣다.  우리 꽃차남만 봐도 미모가 조금 바랬다.  그런데 활기차다.  특별한 장난감 없이도 흙과 잔디 위를 뒹굴며 스스로 놀 줄 안다.  이런 매력은 폭발력이 있다.  머지않아 아이들 소리는 유치원 마당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 때, 아이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박선아 원장이, ‘신상’ 원피스를 입고 있으면 좋겠다.

 

군산 새나래 유치원

전북 군산시 나운1동 812-3 (하신2길 19-5)

(063)461-7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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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8 18:57:51) rec(247) nrec(245)
ㅠㅠㅠ나도 거기 졸업생인데 ㅠㅠ 2015년? 쯤에 졸업했구...저기 장미사진에 부엉이옷 입은 아이가 나인데 ㅠㅠ 하..그립다.
ㅠㅠ 원장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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