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아들, 야자 대신 저녁밥 합니다
학교 공부 아닌 다른 것에서 앞날을 찾는 우리 큰애 강제굴
“엄마, 그거 진짜 아니에요. 고등학교가 낙원 같다고요?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냥 참고 다니는 거라고요.”
“제규야! 너, 어디 가? 어디 가는 거야?”
“밥 하러.”
6월 1일 오후 4시 40분, 군산 동고등학교 1학년 6반 교실. 정규수업을 마친 제굴(강제규)은 교실을 나왔다. 반 친구들 27명은 남아서 보충수업 2시간을 더 받는다. 그 수업이 끝나면 9명의 친구들만 집에 간다. 18명의 친구들은 저녁밥 먹고 다시 오후 10시까지 야자를 한다. 제굴은 학교 앞에서 냉큼 시내버스를 탔다. 집에 오니까 5시 40분이었다.
중3 때, 제굴은 조리고등학교에 지원했다. 내신 성적이 별로여서겠지,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우리가 사는 군산에서 남학생이 갈 학교는 일반고 세 곳, 상고 한 곳, 공고 한 곳, 외고 한 곳, 자사고 한 곳. 제굴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일반 고등학교에 1지망으로 지원했다. 안 됐다. 가장 먼(시내버스 1시간, 카풀 30분, 자동차 20분) 학교에 배정받고는 절규했다.
“엄마, 완전 망했어요. 그 학교는 야자 한다고요. 3월 한 달은 무조건 해야 한대요.”
3월 2일, 고등학교에 입학한 제굴은 오후 5시쯤 집에 왔다. 저녁밥 먹고는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어서 정리했다. “야자 하면, 꽃차남(열 살 차이 나는 동생) 자는 모습만 볼 거야. 같이 놀지도 못할 거야” 한탄하면서. 꽃차남은 “야호! 형형 인생은 끝났다!”고 기뻐했다. 눈물 콧물을 쏟게 만드는 뜨거운 형제애를 가진 제굴, 동생을 때렸다. 새로울 것 없는 밤이었다.
3월 3일 오후 10시 30분, 야자 하고 온 제굴은 얼이 빠져 보였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면서 “내일부터 책이라도 읽어야겠어요”라고 했다. 다음 날 제굴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가져갔다. 그 다음 날에는 한 권으로 안 된다면서 <시간을 파는 상점>과 <구덩이>를 가져갔다. 일주일 지나자 여유가 생긴 걸까. 제굴은 투덜거렸다.
“엄마, 내 얼굴 좀 봐 보세요. 눈 밑에 다크 서클 생겼지요? 나는 다 크지도 않았는데, 늙게 생겼어요. 완전 억울해. 이렇게는 못 살아요. 자퇴할 거야.”
“그만 둬야지, 뭐. 근데 3개월 치 등록금 낸 건 너무 아깝다야. 엄마 돈 벌기 완전 힘든데.”
“(한숨) 5월까지만 참아볼게요. 근데 학교에서 할 것 없으니까, 이달의 독서 왕 해 볼까요?”
제굴은 3월 15일 일요일 밤에 갑자기 아팠다. 남편이 응급실에 데려갔더니 뇌수막염. 나는 큰애 어릴 때부터 진료해준 소아과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제굴이가 혼자 걸을 수 있으면, 집에 가서 자도 된다고 했다. 팔에 링거를 꽂고 집에 온 제굴의 눈동자, 반짝였다. 그래보였다. “엄마, 저 내일 야자 못 하겠지요?”라는 말이 흥겹게 들렸다.
제굴 뜻대로 됐다. 첫날은 아침에 조퇴, 이튿날은 정규수업만 하고 집에 왔다. “푸하하! 엄마, 아직 저녁 7시도 안 됐어요”라며 통쾌해 했다. 오랜만에 누리는 ‘저녁이 있는 삶’. 제굴은 유치원 갔다 온 꽃차남을 안 울리고 씻겼다. 냉장고를 훑어보고는 새송이버섯 볶음밥을 했다. 잠깐 맛 본 대자유는 독, 야자를 하게 된 제굴은 다시 자퇴하고 싶다고 졸랐다.
3월 20일 금요일, 우리 식구는 놀러갔다.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캠핑장에 가면서 고등학생인 아이를 점심만 먹고 조퇴 시켰다. 제굴은 카라반 안에 짐을 풀자마자 노트북을 꺼냈다. 인터넷 연결을 했다. 기적이었다. 자퇴하고 싶다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게임을 하느라고. 다음 날 낮까지 그러고 있었다. 내 몸에서 사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강제굴, 게임 고만 해.”
“엄마, 생각해 봤는데요. 저는 진짜 학교랑 안 맞아요. 자퇴할래요.”
“멀티 플레이어네. 게임하면서 진지한 생각까지 하고. 근데 있지, 엄마는 네 자퇴 타령 듣기 싫어. 사는 거 원래 힘들어. 다 다니는 학교야. 세 달만 다니라니깐!”
4월! 제굴은 야자 안 하고 오후 7시에 집에 오게 됐다. 일주일에 사흘은 요리학원에 갔다. 일주일에 이틀은 영어학원에 가는 나를 대신해 꽃차남을 돌봤다. 첫 모의고사 성적표도 나왔다. 한국사는 1등급, 나머지 과목은 모두 4-5등급. 학교 공부는 아예 담 쌓고 사는데도 제법 근사하게 나온 성적. 나는 제굴이가 어릴 때처럼, ‘우리 아들이 천재인가’ 생각했다.
꽃은 피고 졌지만 여전히 밤바람이 차가운 4월 24일 금요일. 제굴은 요리학원에서 충격 받은 얼굴로 돌아왔다.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1주일간 학원 쉰대요.” 한 달 학원비 45만원, 계량컵과 칼까지 따로 샀다. 그런데 아홉 번 출석해서 열여덟 가지 요리 하고 끝난 거다. 제굴은 몇 달째 요리학원 다녔다는 어떤 애가 자기랑 같은 음식 만들던 것까지 되짚어봤다.
“엄마, 당분간은 요리학원 안 다녀도 되겠어요. 체육대회도 있고, 소풍도 가고, 쉬는 날도 많고요. 학원에서 (조리자격증을 위해) 하는 건 위생만 신경 써요. 요리 순서를 잘 지키고, 규격에 맞게 무나 감자를 썰었는가만 봐요. 기술만 평가해요. 맛은 진짜 안 중요해요. 저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어요. 이제부터 책 보고 제가 해볼게요.”
평일에 제굴은 오전 6시 50분에 일어나서 밥 먹고 씻는다. 7시 25분에 카풀 차를 타러 나간다. 오후 7시에 집에 온다. 그때 이미 저녁밥은 차려져 있다. 날마다 오후 6시쯤 집에 오는 남편은 밥상을 차리고는 (저녁 약속이 많아서) 나간다. 한 발 늦을 수밖에 없는 제굴은 저녁밥 먹고 나서 요리한다. 맛있게 먹고 감격해야 할 꽃차남과 나는 이미 배부른 상태.
5월 20일 수요일. 제굴은 정규수업 종례 끝나자 담임 윤용호 선생님을 뒤따라갔다. 보충수업 빠져야겠다고, 그 돈으로 신선한 재료를 사서 저녁밥을 해야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6월부터 일찍 가라고 허락해 주었다. 다음 날 오전 6시, 제굴은 선생님 갖다 드린다고 버섯 리조또를 했다. 잠이 덜 깬 내 입에 숟가락을 밀어 넣으면서 간이 어떠냐고 물었다.
“완전 맛있어. 딱 좋아.”
“안 싱거워요? 근데 좀 불안하다.”
“너, 엄마 (요리 못한다고) 깔보는 거야?”
“그건 아닌데요. 엄마는 싱겁게 먹으니까 그러죠.”
아휴, 나는 무시를 당해도 싸다. 그날 제굴의 담임선생님은 리조또가 좀 싱겁다고 했다. 나는 학교 갔다 온 제굴에게 8만 원을 주었다. 직접 장을 보라고. 우리 아파트 정문에는 마트가 있고, 쪽문으로 나가서 2분만 걸어가면 시장이 있다. 제굴은 그때그때 필요한 채소와 해산물을 조금씩 샀다. 수입과 지출, 잔액을 수첩에 적었다.
나는 제굴에게 박찬일 셰프의 ‘요리사 전성시대의 그림자’라는 칼럼을 읽게 했다. ‘요리사의 평균 급여는 바닥. 노동시간은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보다 길고, 신분보장도 잘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제굴도 ‘요리사의 근속 연수가 3년 미만인 이유가 창업한 식당의 생존기간이 대개 3년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도 해보고 싶단다.
미래의 요리사는 학교 공부를 어느 정도나 해야 할까. 밑바닥! 나는 제굴의 중간고사 성적표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괜찮아. 아빠는 고등학교 때 꼴등했어. 그래도 지금 직장에서 연구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꼽혀”라고 말하던 남편은 달랐다. 망연자실, 비통 그 자체. 남편은 싫다는 제굴을 붙잡고서 기말고사 목표를 정했다. 지켜보던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둘 다 바보냐? 나 웃길라고 그래? 어떻게 목표가 반 평균에도 못 미쳐?”
“엄마는 몰라서 그래요. 반 평균은 나한테 높은 점수라고요. 요리 안 하는 엄마한테 누가 밥 하라고 시켜 봐요. 힘들고 부담되잖아요.”
“안다고. 힘든 거 아니까 시험 못 봤다고 혼낸 적 없잖아.”
최초로 일어난 성적표 파문은 곧 흐지부지. 제굴은 토요일에 아빠와 함께 옛 군산역 경로식당에 갔다.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안내해주고, 식판 정리 하는 일을 했다. 제굴은 재료 다듬고, 음식 하는 것을 돕고 싶었다. 그러나 학생에게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제굴은 “내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싶으니까 어른 될 때까지 다녀야겠어요”라고 했다.
토요일, 제굴은 요리를 몇 가지씩 한다. 꽃차남 손을 잡고 둘이 시장에 가면, 장사하는 분들은 뭐든지 듬뿍듬뿍 준다. 봉골레 파스타에 면보다 바지락이 많은 이유다. 제굴은 새우를 사서 만화영화 <심슨>에 나온 파티요리를 한다. 엄마가 좋아한다고 파리 송로(프랑스식 두부요리,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박준우 셰프가 한 요리)를 한다. 수비드 조리법으로 닭 가슴살 요리도 한다. 제품을 쓰지 않고서 크림 파스타를 만든다.
“엄마, 난 대학 안 가요. 학자금 대출받아서 처참하게 살 것 같애.”
“너 학원 안 보내고 모아놓은 돈 있어. 등록금 하라고 줄 거야.”
“싫어요. 학교 공부 자체가 나랑 안 맞아. 내가 왜 <시사인>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를 관심 있게 읽은 줄 아세요? 남 얘기가 아니니까요. 내가 그렇게 살 수도 있잖아요.”
순간, 코끝이 아렸다. 오찬호의 책 <진격의 대학교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에는 ‘대학생=대기업 입사 희망자’라는 공식이 나온다. 남편과 나는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우리, 회사 안 다니길 잘 했다. 애들도 보내지 말자”는 바보들. 이런 부모를 둔 제굴은 테이블 서너 개짜리 식당을 하는 게 꿈. “돈 욕심 없어요” 라고 의젓하게 말하지만 아직도 잘 때는 이불 덮어달라고, 뽀뽀해 달라고 하는데.
제굴은 더 이상 “자퇴할래요” 조르지 않는다. ‘밥걱정의 노예’인 남편은 “아들이 밥 하니까 좋네”라면서 며칠간 출장을 갔다. 우리 집의 진짜 주방장 노릇을 하게 된 제굴은 학교 갔다 와서 밥상을 차렸다. 먹고 치우고. 좋아하는 셰프의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학교에서 내 준 과학숙제 걱정을 했다. 나는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의 한 구절을 읽어줬다.
“이 교실 외에도 지금 칠판 앞 수백 개의 등짝에 수백 종류의 미래가 걸려 있고, 그렇기에 수백 종류의 길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고등학교란 곳은 왠지 낙원 같다.”
제굴은 말했다.
“엄마, 그거 진짜 아니에요. 고등학교가 낙원 같다고요?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냥 참고 다니는 거라고요.”
사진1 제굴이 수비드 조리법으로 만든 닭가슴살 요리
사진2 생선가게 사장님이 주셔서 봉골레 파스타에 바지락이 많다. 새우요리는 만화 영화 '심슨'에 나온 파티요리라고 한다.
사진3 제굴이 학교 갔다와서 차린 저녁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