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봐도 품위를 지킵니다. 저도 배우니까요!
지방소도시 청춘남녀 인터뷰㉗
연극배우 스물다섯 살 변아희
땅을 파고 만든 무덤 토광묘. 유물이 나올 확률이 높다. 역사 전공하는 학생들이 방학 때면 참여할 수 있는 유물 발굴 알바. 학생들은 전북 정읍 신태인에서 땅을 팠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호미로 살살 흙을 걷어냈다. 간간이 유물을 캤다는 환호성이 나왔다. 군산대학교 사학과 1학년생인 아희 혼자만 ‘유물 복’이 따르지 않았다. 2000년 여름이었다.
“변아희, 뭐 있는데 네가 막 파는 거 아니야?”
현장 선생님이 아희에게 말했다. 그녀는 태평할 수 없었다. 졸업하고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싶은 아희, 뙤약볕에서 땅을 팔 때도 눈은 반짝였다. 하지만 작은 토기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성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유물 알바는 일당 7만원. 숙소비하고 밥값을 떼고 나서 받는 돈은 한 달에 백여만 원. 다음 학기 생활비 걱정은 덜었다.
정읍에서 나고 자란 아희는 용인대 문화재학과에 합격했다. 입학금은 5백만 원이 넘었다. 아희는 부모님에게 “첫 학기 등록금만 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학교 가서는 무조건 성적 장학금 받을 거라면서 부모님을 설득했다. 아이 넷을 키우는 부모님은 “장학금 받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계속 대출 받으면 나중에 어떻게 할래?”라고 물었다.
“결국, 국립이라서 학비가 싼 군산대 사학과로 결정했어요. 대학 첫 학기부터 학자금 대출 180만 원을 받았거든요. 더 이상 빚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항상 장학금을 받았죠. 조기졸업 하려고 강의도 많이 들었어요. 방값은 부모님이 주셨어요. 나머지는 제가 벌어야 해서 주말마다 카페나 마트, 편의점에서 일했어요. 여름에는 유적지 발굴 알바 다니고요.”
2학년 여름 방학, 아희는 익산 농공단지에 있는 청동기 유적 발굴 현장으로 갔다. “꺄악!” 환호하는 날이 제법 됐다. 청동기시대 대표 토기인 미송리식 토기(무덤에 넣으려고 작게 만든 토기)를 몇 번이나 발굴했다. 반달돌칼도 캤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아희를 부러운 눈으로 봤다. 현장 선생님은 “너는 유물 복 있다. 이 일 계속해라”고 했다.
아희의 꿈은 한결 같았다. 3학년 1학기까지만. 아희는 자신이 가꾸어온 미래를 부수었다. 뭐라도 될 것 같던, 열정적으로 살던 선배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을 겪고 난 뒤에. 그녀는 ‘내일 죽어도 여한 없는 삶이 뭘까’를 고민했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동경하던 영화배우. 갑자기 재능이 솟아난 게 아니었다. 그냥 하고 싶어진 거다.
“아는 분이 극단 ‘사람세상’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바로 찾아갔죠. 최균 연출님이 ‘영화 하고 싶으면 서울로 가!’ 그러더라고요.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굳은 마음이 없으면 힘드니까 야박하게 말씀하신 거죠. 그 말 듣고서 저는 그냥 나왔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영화니까요. 방법을 찾아내서 서울로 가려고요. 3학년 2학기 11월이었어요.”
두 달 뒤, 극단 ‘사람세상’에서 일반인을 위한 2주짜리 워크샵을 열었다. 아희도 갔다. 연극도 보통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문화였다. 그녀는 워크샵 포스터에 조그맣게 적힌 ‘열심히 하면 배우로 캐스팅!’ 이라는 문장에 홀렸다. 그러나 극단 사람들은 그녀에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아희처럼, 워크샵에 참여했던 김성권(37, 건설업)씨는 극단에 남고 싶다고 했다.
대학 다닐 때에 연극을 했던 김성권씨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었다. 성권씨가 극단 회의에 갈 때, 아희도 그냥 따라갔다. 추미경 대표는 학교 졸업하려면 1년 남은 아희에게 “가려는 마음으로는 있지 마. 여기 있을 때는 확실히 발을 담그고 있어”라고 했다. 영화 하러 서울 갈 거지만, 군산에서 극단생활 할 동안은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었다.
“2013년 초에 두 달간 연극 연습했어요. 4월에 첫 공연 <다녀왔습니다>를 올렸죠. 최균 연출님이 다른 배우들보다 일찍 나오라고 했어요. 저는 먼저 가서 워크샵 동기 네 명이랑 신체 훈련, 발성복근 훈련을 했어요. 진짜 즐거웠죠. 1980년대 배경인 가족 드라마였는데 저는 철없는 셋째 딸이었어요. 나중에는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의 엄마로도 나와요.”
대학 4학년, 연극 무대에 선 아희씨는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까’ 고민만 생겼다. 최균 연출은 아희씨에게 지금 공연은 다음 공연을 위한 연습이라고, 다음 공연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공연을 하라고 했다. 아희씨는 “지금 하는 공연이 배우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거야”라는 말만 붙잡았다.
<다녀왔습니다>는 인기가 많아서 재공연에 들어갔다. 아희씨는 “안 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열여덟 살이었다가 갑자기 40대 후반 여자로 변신하는 게 쉽지 않아서였다. 최균 연출은 “네가 빠지면,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해”라고 했다. 아희씨는 재공연 하면서도 잘 못하는 자신만 보였다. 마무리 공연을 하는 8월에야 뭔가를 해낸 느낌이 왔다.
“두 번째 작품을 바로 들어갔어요. 진포예술제에 출품한 <작은 할머니>였어요. 제가 맡은 배역이 제 성격이랑 안 맞아서 애를 많이 썼어요.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저랑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면, 저만 보거든요. 근데 <작은 할머니>의 배역은 저랑 완전 다르니까 배역으로만 봐주는 거예요. 그 작품 하면서 공부가 많이 됐어요. 연장 공연도 했고요.”
아희씨는 연극 하면서 학교생활도 알차게 했다. 4학년 겨울방학 때는 학교의 지원을 받아서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 한국의 르네상스 격인 조선 정조 때와 서양의 르네상스를 비교하는 여행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숙소를 못 찾아서 친구 두 명과 헤매고 다녔다. 운동화가 꽉 끼어서 발이 아팠지만 돈 드니까 참았다. 그런데 여행 이틀째에 여권과 지갑을 잃어버렸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도 잘못 알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을 독일에서 출발하는 시간으로 알고 느긋하게 있었다. 그게 아니란 건 새벽 3시에 알았다. 생난리를 치고는 30만원씩 더 추가해서 비행기 표를 끊었다. 친구들과 여행 가면 대판 싸운다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다. 실수가 많았지만 마냥 좋았다. 아희씨는 친구들한테 말했다.
“배우로 성공하면, 나는 여기 다시 올 거야. 우리 그때 같이 오자. 꼭!”
2014년 봄, 학교를 졸업한 아희씨는 서울에 갔어야 했다. 영화배우가 되는 길을 찾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가 짐을 싸서 간 곳은 정읍의 부모님 집. 유럽 여행 초반에 지갑 속에 든 돈을 몽땅 잃고 비행기까지 놓쳤다. 할 수 없이 서울 가려고 모아둔 돈을 당겨서 썼다. 극단의 추미경 대표가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일자리를 구하는 아희씨에게 전화했다.
“군산으로 와.”
“못 가요. 돈 벌어야 해요. 군산 가서 방 얻고 자취하면 돈 들어요.”
“월급 나오는 자리가 있어. 전국 연극제를 군산에서 한대. 각 극단에서 한 명씩 실무자를 보내거든. 우리 극단은 네가 가면 되지.”
한 달 월급 150만 원. 월세 28만원에 생활비 하고도 남았다. 대학 후배들이 거리 극 연습하는 것을 봐 주면서 술도 사 줄 수 있었다. 풍요는 5개월 만에 끝났다. 가을부터 아희씨는 ‘아르떼(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를 통해서 임시 연극 강사가 됐다. 토요일마다 초중등학교에서 연극수업을 해서 한 달에 24만원, 학교 두 곳에서 강의하고 48만 원쯤 받았다.
2015년 1-2월, 아희씨는 돈벌이가 없었다. “대학 나오면 뭐해? 다 쓸 데 없다. 차라리 공무원 준비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할머니는 “네 밑으로 동생이 셋이야. 막내 대학은 누가 보내냐”는 현실적인 얘기를 했다. 엄마는 연극 그만두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아희씨는 연극을 계속 하기 위해서 펑펑 울며 맞섰다. 건사 잘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올해 3월부터 ‘아르떼’ 신규강사가 됐어요. 전라북도 각 학교에서 연극 강의 신청을 해요. 아르떼에서 강사들을 배정해줘요. 1시간 강의하면 4만원이에요. 매주 월요일에는 고창에 가서 2시간, 화요일에는 순창에 가서 4시간 수업을 해요. 한 달에 백만 원쯤 벌죠. 방학 때는 쉬니까 돈을 다 쓰면 안 돼요. 따로 저축은 못 하지만 생활할 만큼은 버는 거예요.”
아희씨는 총 다섯 편의 연극에 출연한 배우이다. 공연할 때마다 ‘오늘 잘 했나?’ 돌아본다. “관객들은 돈을 내고 오는 고객이잖아요. 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고요”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관람료 15,000원, 10년 전하고 똑같은데 “연극은 너무 비싸!”라고 하면 울컥한다. 속이 상해서 한 사람 한 사람씩 붙잡고 열변을 토하고 싶다.
“영화랑은 다르죠. 현장감이 있어요. 배우들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쉬잖아요.”
영화배우 송새벽씨는 아희씨가 있는 극단 ‘사람세상’ 출신. 지난 해 공연 때도 군산에 내려왔다. 아희씨는 속으로 ‘연예인이닷!’ 신기해했다. 작년에 전국연극제 할 때는 배우 곽도원씨도 만났다. 같이 술까지 마셨지만 “인증샷 찍어요” 조르지 않았다. 극단의 추미경 대표는 배우의 품위를 강조한다. 그녀도 ‘유명한 배우’처럼 배우이기 때문이다.
아희씨는 서울 가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극단 ‘사람세상’에 온 몸을 담그고 있다. 무대와 동료들이 소중하다. 여전히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이야! 저 역할 진짜 매력 있다. 나도 해보고 싶다’고 설렌다. 그래서 스물다섯 살 배우의 앞날은 모른다. 어느 날, 배우 변아희의 연기를 영화관에서 볼 수도 있다. 현재 극단 사람세상의 ‘딸 전문’ 배우인 아희씨는 말했다.
“공연,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극단은 차병원에서 나운 초등학교 가는 길 지하에 있어요. 공연하면 <교차로>신문에도 나오고, 길거리에도 공연 포스터 붙여놓거든요. 많이 보러 오세요. 뜻 있는 연극배우들도 연락 주시고요. 항상 기다려요. 군산 연극이 발전해서 문화가 향유되는 도시였으면 좋겠어요. 연극 보러 전주나 서울 가는 일이 없게 만들고 싶어요.”
극단 사람세상
나운동 차병원 네거리에서 나운초등학교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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