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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글 : 이상훈(칼럼니스트) / dresdenlee@naver.com
2011.11.01 17:45:5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고향을 찾아온 일본 할머니

우연한 만남은 우리의 삶 가운데 항상 있어 왔으며, 그중 기억되어지는 사람들은 우리의 인생에 또 다른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 달 전 내가 운영하는 “군산 창작 문화 공간 여인숙”에 너무도 수수한 일본 할머니 한분과 그분을 모시고 온 일본 관광회사의 사장 그리고 통역을 맞은 한국 아주머니가 찾아 왔다. 통역관에 의하면 이 일본 할머니는 그녀 나이 22살 때 군산을 떠났으며, 지금은 일본 동경에 살고 있는 분이라 소개하였다. 그리고 “군산 창작 문화 공간 여인숙” 옆에 있는 낡은 일본식 건물이 그녀가 살았던 집이였는데 아직도 남아 있어 몇가지 궁금한 것이 있고 잠시 쉬어가기 위해 갤러리에 들렀다고 했다. 그녀는 이 일본식 집에서 22살 때 까지 살았었는데, 일본 패망 후 부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강제 이동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와 그녀 어머니는 옷가지 몇 벌 뿐 재산이 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었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감시자들 몰래 그들의 통장을 일본으로 가져가 그 돈으로 친척도 없는 그곳에서 살 수 있었다고 한다. 67년 만에 고향인 군산에 찾아오게 된 그녀는 허물어져 가는 그 집을 보며 옛 추억에 잠기며, 그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에 감격해 했고, 그 집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

 

그녀는 정읍에서 태어나 났다. 그녀 아버지는 전라북도에서 3년 마다 전근을 다녔다고 하는데 아마도 당시 일본관의 공무원으로 추측된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 하며, 그녀 아버지의 이름을 적어 주었다. 아마도 어딘가에 아버지의 기록이 있을 것이라며... 그녀는 22살까지 군산에서 초등학교 선생이었다. 공주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현재의 군산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중에 일본으로 추방되었는데, 당시 짐 보따리를 꾸리는 것을 도와준 소년을 생각하며, 잠시 기억을 찾아 말을 잊지 못했다. 지금 그 소년이 살아 있다면 대략 70세 정도 쯤 되었을 것이다. 군산의 역사는 이 할머니가 군산이 그녀의 고향인 것처럼 그 아픈 인연을 땔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할머니와 소년처럼 말이다. 나는 이 일본 할머니에게 그 집이 어떠한 변동이 생길 경우 꼭 알려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만남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향을 떠나온 한국 할머니

가즈꼬 할머니와의 만남 15일 후 또 다른 만남이 있었다. 거리를 배회하는 한 일본 할머니를 또 만난 것이다. 어눌한 한국어로 이것저것 물어본 할머니에게 쌀쌀해진 날씨를 피하고 따듯한 차한잔을 모시기 위해 갤러리로 모셨다. 가즈꼬 할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느낌...? 일본 스러운 느낌...? 그녀의 이름은 우에노 히로꼬!(80). 그녀의 말은 군산에 일본 사람이 많이 오니 일본 사람들에게 통역으로 봉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만남에 나는 잠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 과거 삶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무언가 잘못된 정보들이 내 머리에 있었다. 그녀가 설명해 주기 전까지 난 그녀가 가즈꼬 할머니와 같은 일본 사람으로 판단하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이해해 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 사람이었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박영희! 

 

그녀가 이화여대를 다니던 21살 때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을 피해 부산에 머물던 할머니는 아버지 회사의 사장님 눈에 들어 그의 아들과 한번 만나고 결혼을 하여야 했고 한다. 그런데 당시 그녀의 남편의 회사 “해운공사”가 일본에 지사를 두고 사업을 하였고, 그 회사의 사장이 바로 그녀의 시아버지 이였기에 일본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 일을 설명 하시던 할머니 스스로도 한국전쟁으로 생활이 너무 힘이 들어 일본으로 가기를 원했으며, 어렵게 결혼 뒤 1년 후 일본에 넘어가 살게 되었고. 한국과 일본의 무비자 입국이 풀린 이후부터는 한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일본에서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한다. 혹시나 일본 사람들 때문이에요 물어보면, 일본 사람들하고는 너무도 잘 지냈으나, 그녀의 남편이 너무 술과 친구를 좋아해 매일 매일 생활이 어렵고 외로운 나날이었다고 했다.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본 아버지는 한국에서 ‘편안하게 살자’라며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원했고, 당시 몸이 좋지 않았던 할머니는 요양을 위해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몇 살 때 오셨는지 물어보자,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과 한국이 무비자 입국으로 풀렸을 때부터 편하게 생활 할 수 있었다며,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려웠던 서울 생활을 돌려 이야기 했다. 우에노 히로꼬 할머니, 아니 박영희 할머니는 지금 군산에 살고 있다. 그녀 이모 때문에 몇 번 군산에 오게 되었는데, 일본에 있는 것 같아서 군산에 살게 되었다고 하는 박영희 할머니... 그 날 저녁 식당에 가는 길에 비닐 봉투를 들고 쓸쓸하게 걸어가시는 할머니를 보았다.  

 

만남을 위한 기다림

군산은 일본과의 역사에서 많은 아픔을 간직한 도시이며, 지금도 80이상의 노인들에게 옛 이야기를 듣고 확인 할 수 있는 100년의 도시 군산이다. 이러한 모습을 찾아 많은 관광객들은 군산을 찾고 있다. 그 가치만큼 군산은 그 역사 가운데에 있으며,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또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가즈꼬 할머니’에게 군산은 분명 고향 이상의 의미 일 것이며, ‘박영희 할머니’에게는 그녀의 남은 인생을 몸으로 살아야 하는 일본 같은 도시일 것이다. 그리고 두 할머니의 만남이 스쳐 지나가 내 기억 속에 머물러 있지만 군산에서 태어난 나에게 두 할머니의 만남은 과거 군산에서 삶을 살았던 많은 이들을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계기였다. 

두 할머니의 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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