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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농장주들 입맛에 맞게 그어진 호남선과 군산선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4.11.01 14:13:5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길(道).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고 했다. 그처럼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길에는 황토 냄새 그윽한 황톳길을 비롯해 숲 속의 오솔길, 돌담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마을의 고샅길, 강변의 자갈길, 호젓한 산길, 들길, 지름길, 자동차길, 바닷길, 기찻길,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정치‧경제‧문화‧종교)를 연결하여 ‘문명의 길’로 불리는 실크로드(비단 길)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 ‘길’이라는 말은 신라 향가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진평왕(?~632) 때 융천사가 지은「혜성가(慧星歌)」와 효소왕(?~702) 때 득오가 지은「모죽지랑가(慕竹旨郎歌)」에 ‘道’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다. 그 후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며 문명과 소통의 끈으로 발전한 길은 근대문명의 상징인 철도(鐵道)가 일제에 의해 놓이면서 철저히 파괴되고 변질된다. 철도는 수운을 몰락시켰으며 우리의 식량을 갈취하고, 수많은 동포를 전쟁터로 내모는 수단이 됐다.

 

조선 최초 철도는 경인선 

조선에서 기차를 처음 타본 사람은 강화도 조약(1876) 체결 직후 수신사로 일본에 건너간 예조참의 김기수(1832년~?)였다. 일행 76명과 약 2개월 동안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온 그는 시승기(試乗記)에 “화륜거(火輪車)는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처럼 날뛰었다. 좌우 차창으로 산천과 집, 사람이 보이기는 했으나 앞에서 번쩍 뒤에서 번쩍하여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라고 적었다. 김기수는 화륜거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한제국은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제물포를 잇는 경인선(33.24㎞) 개통으로 철도 시대의 막을 열었다. 당시 기차는 평균 시속 20㎞~22㎞, 최고 60㎞로 달렸다. 노량진~제물포를 하루 두 차례 왕복했으며 편도 1시간 30분 소요됐다.『독립신문』은 기차 모습을 “화륜거 구르는 소리가 우레 같아 천지가 진동하는 듯하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라고 소개했다.

 

철도의 영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전통 생활 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고, 국가 경영의 중심을 직선으로 뻗은 철도에 빼앗겼다. 기차에서 남녀 칠세 부동석이 깨지면서 외형적으로나마 남녀평등이 실현됐다. 전통적인 시간관념도 크게 흔들었다. 한가했던 촌락은 도시가 되고, 기존 도시는 몰락했다. 충청남도 도청 소재지가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긴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기 이전 이미 경부철도 건설에 필요한 철도 용지를 정부로부터 공급받았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 차관을 빌려 민간인 토지를 구매, 일본에 제공하였다. 경의선, 마산선 등은 일본이 철도 용지를 저렴한 가격에 강탈하다시피 수용하여 주민으로부터 원성을 샀다. 모두가 일제의 철저한 사전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철도 건설 노동자의 강제 동원과 살인적인 사역, 일본인 노동자들의 잔악한 횡포로 주민들은 일본인을 증오하고 철도 건설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철도는 조선인보다 일본인에게 필요한 문물이었다. 우리의 식량과 수많은 자원이 일본으로 반출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철도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일제 침략과 수탈의 도구일 뿐이었다.

 

경부선과 경의선이 부설되자 이 땅의 지식인들은 철도를 ‘근대의 표상’으로 대하였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은 1908년 창가「경부 철도가」까지 지어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소리에 /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나가서 /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으니 /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라고 노래한다.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소설 『무정(無情)』에 기차와 기차역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근대의 새벽을 알리는 기적 소리는 ‘식민지 어둠을 예고하는 불길한 소리’였다. 철도사업의 주체가 되지 못했을 때부터 불길함은 예고됐다. 철도가 확장 될수록 조선 백성의 삶은 궁핍해져 갔다.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침략하기 위해 이 땅에 가설했던 철도들. 그 철도들은 일제 식민 통치 36년 동안 경성(서울)이 아닌 조선 총독부로 향했던 것이다. 

 

 

일본과 일본인 농장주들 입맛에 맞게 그어진 철길

군산에 처음 정착한 일본인은 미곡상 ‘사도도 미지로(在勝豊次郎)’였다. 그는 구영리(영화동)에 작은 판잣집을 짓고 생활했다. 1899년 군산이 개항하자 일본인이 급증하여 1900년에는 가구 수가 131호 422명이 된다. 이는 공식 기록에 의한 수치이고, 도서(島嶼) 지역과 경포 지역(경장동 일대) 불법 이주자를 합하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1899년 12월 일제는 조계지역 행정을 맡아보는 거류지회를 설립하고, 1901년 3월에는 조선 침략 선발대인 군산 일본민회(1906년 통감부령에 의해 ‘군산 거류민단’으로 변경됨)를 조직한다. 일본인들은 거류지 조성과 경영비용을 토지 매각에서 조달했다. 조선 정부로부터 평당 30전에 불하받아 경매 부치면 평당 10원 20원, 많을 때는 80원까지 치솟았다. 

 

군산에는 소자본을 가지고 들어와 농지를 헐값에 사들이거나 약탈해서 부자가 된 일본인 농장주가 많았다. 당시 군산‧옥구지역 상전(上田)은 15원~20원, 하전(下田)은 10원 이하였다. 개항과 함께 시작된 일제의 농지 약탈은 러일전쟁(1904~1905) 중에도 계속됐다. 일본인 농장주들이 확보한 쌀의 출구는 군산항이었고, 도착지는 일본 오사카(大阪)였다. 빠른 운송 수단이 절실해진 그들은 철도 건설을 강력히 청원하였다. 

 

호남선 착공은 1896년 프랑스인 구루다가 조선 정부에 부설권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서울~목포 사이를 연결한다 해서 ‘경목 철도’라 칭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자력으로 부설할 것을 결의하고 1904년 5월 ‘호남 철도 주식회사’에 강경~군산, 공주~목포 철도 건설을 인허한다. 그러나 일제는 군사상 중요한 철도를 개인에게 허가함은 부당하다며 조선 정부에 압력을 넣어 허가를 취소하게 하고 부설권을 손에 쥔다.   

 

을사늑약(1905) 이후 호남선 부설이 본격화된다. 쌀의 고장 전북에서는 호남선 통과 지점을 놓고 여러 논의가 일었다. 전주를 통과시키려는 기성회가 발족하여 유치운동이 활발한 가운데 지역 유림은 반대했다. 풍수지리를 따져 명당의 기운과 지맥을 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군산에서는 철도 유치를 적극 추진하였다. 하지만 호남선이 군산을 통과하기에는 많은 난제가 뒤따랐다.  

 

전라북도에서는 호남선 노선을 놓고 대농장주들 간에 암투가 벌어진다. 이해관계가 크기 때문이었다. 동산 농장 소유주 이와자키(岩崎)는 김제에서 삼례 통과를, 군산의 대농장주 오오쿠라(大倉)는 지경(대야) 통과를 고집하였다. 결국, 양자가 주장하는 중간 지점인 솜리(益山)를 연결지점으로 결정하였고, 호남선은 1910년 1월 1일 착공되어 1914년 1월 22일 개통된다.

 

군산에서 출발하여 개정, 지경, 임피, 오산, 익산에 이르는 군산선(23.1㎞)도 군산‧옥구 지역 농지를 가장 많이 소유한 미야자키(宮崎) 농장을 비롯해 옥구군 개정면의 구마모토(熊本) 농장, 발산의 시마타니(島谷) 농장, 임피‧서수의 가와사키(山畸) 농장 등 대단위 일본인 농장 7개소를 꿰뚫고 1912년 3월 6일 완공된다. 결국, 전라북도 지역 철도 노선은 일본인 대농장주들 입맛에 맞게 그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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