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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업의 새로운 이정표
글 : 오성렬(자유기고가) / poi3275@naver.com
2014.07.01 10:47:5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지난 30여년, 지역사회를 위해 아낌없는 베풂을 실천함으로서 기부의 대명사가 된 군산사회복지장학회 김기봉(金祺俸/60) 이사장. 그는 일찍이 관내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 사업에 큰 뜻을 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혼신을 다하는 열정으로 이제는 장학사업 뿐만 아니라 소외되고 그늘진 이웃 곳곳을 돌아보는 남다른 애향심을 보여줌으로써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만큼 유명인사의 반열에 서고 있는데 정작 그 자신은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을 마다 않는다.

 

군산사회복지장학회는 김 이사장이 1987년도 ‘소년소녀가장돕기’라는 자선 단체를 만든 것이 효시로서 어려움에 처한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비단 학생들뿐만 아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우리 사회에 너무도 많았고 하나하나의 사연이나 처지를 알게 될 때마다 늘 가슴 아픔을 느꼈던 그는 1994년도에 2억원의 기금으로 장학회를 창립, 소년소녀가장이나 결식아동은 물론 생활고에 처한 가정의 초, 중, 고 학생과 대학생의 학비 및 등록금 지원을 비롯하여 관내 약 100여개의 모든 학교, 양로원과 독거노인, 장애인과 장애인 단체, 고아원, 영아원, 교도소, 각종 사회단체, 환경미화원에 이르기까지 지원 영역을 확장했고 그에 따라 1996년도에 ‘군산사회복지장학회’(이하 장학회)로 명칭을 변경,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간 장학회의 사회복지 지원 내역은 김 이사장 본인이 자신의 공적 자랑 같다며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중앙일간지나 지역신문, 잡지 등 여러 매체와 지인들의 입소문 등을 통하여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어림잡아도 200억 원 이상은 되지 않나 하는 추정만 할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6년도에 초, 중, 고 학생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그가 창안하여 각 학교에 배부한 2,200여 대의 ‘영어음성인식학습기’는 개발 비용만도 80여억 원 이상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 기자재는 이후 학교뿐만 아니라 시청과 시의회, 도교육청과 시 교육지원청 등에도 기증되어 호응을 얻고 학생들의 영어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렇듯 엄청난 거금을 사회봉사를 위해 쾌척을 마다 않는 것이며 재원 충당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잠시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 그의 출생지는 옥구 하제마을. 가난에 찌든 농가의 2남2녀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변변히 학교 공부를 계속할 수도 없을 만큼 너무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그는 19세 때 해병대에 지원 입대하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서 현실도피나 마찬가지였다. 그 지긋지긋한 가난의 한(恨)은 그의 인생을 음지로 내몰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좌절할 수만은 없었다. 어영부영 살다가 자식에게 또 가난을 물려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정신이 번쩍 났고 어떻게든 이 현실에서 벗어나 성공하고 싶었다. 아니 성공해야만 했다. 무엇을 해서 성공하느냐 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였다. 그는 돈을 벌게 된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자신처럼 가난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꼭 장학 사업을 하고 싶었다.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그의 내면은 당찬 포부로 성숙해 갔고 한번 먹은 초심은 이후 흔들림이 없었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987년도 어느 날 우연한 일로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인생은 급선회하기 시작한다. 그는 대우의 건설업 등 관련 사업에 참여하게 되고 타고난 사업 수완으로 김 회장의 신임을 얻음으로써 승승장구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는 목표가 뚜렷했기에 웬만한 어려움이나 고생은 이겨내야만 했고 노력에 따른 대가가 늘면서 점차 인생의 안정기로 접어들게 된다. 그렇다 해서 큰 부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재정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그는 1987년도 들어 비로소 ‘소년소녀가장돕기’라는 자선 활동을 시작하여 평소 품었던 뜻을 펼치게 되는데 이것이 성장을 거듭하여 지금의 장학회로 발전 하게 된 것이다. 

 

장학사업 외에 김 이사장이 못지않게 마음을 쓰는 분야는 경로(敬老) 분야라 할 수 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일찍 세상을 뜨신 자신의 부모님 생각이 났고 그래서 마치 부모님 대하듯 공경하는 마음이 앞서 장학 사업 시작과 동시에 경로 지원도 활발히 전개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양로원 등에서 기거하는 노인들에게 위문품 및 효도관광과 더불어 일정액의 용돈까지 드리는가 하면 때로는 연예인들을 초청, 위로 공연도 펼치는 등 지극한 효심으로 노인들 사이에서 칭송이 자자하기도 한데, 그에 따르면 당시 고령이었던 노인들이 세상을 뜨고 지금은 그 자녀가 경로잔치에 참석할 정도로 노인이 되어있어 대를 잇는 후원이 됨에 따라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감회어린 표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학생들에 대한 장학 사업은 군산 관내 초, 중, 고, 약 100여개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학비조차 낼 수 없는 학생에서부터 품행이 바르고 학업성적이 우수한 모범학생, 특기가 있으나 돈이 없어 자질을 키우지 못하는 학생, 대학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입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학생에서부터 난치병으로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마다 않고 후원을 했다. 또한 학교에 대한 후원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몇 사례만을 들면 해당 학교의 특성에 따라 제일고에는 축구부를 위한 인조잔디구장과 야간조명시설, 군고의 농구부시설, 군여고 강당의 대형스크린시설, 상고 야구부의 피칭머신 도입, 동고의 기숙사 시설 개량, 외고의 체육시설, 대야초교의 탁구부 지원 외에 각 학교의 난방보일러 설치 등이 그것으로서 게 중에는 수천만 원에서 억대를 상회하는 비용이 소요되는 것도 있어 그의 남다른 학교 사랑과 애향심이 읽히고 있다. 

 

 


 

또한 적어도 우리사회에서 가난으로 배를 곯는 청소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안타까움이 너무도 컸기에 그러한 경우는 모든 것에 우선하여 지원을 했다. 그런가하면 가정형편으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학교별로 파악하여 전액 지원하는 한편 관내 8개 고교의 상위 1~10등 이내의 성적 학생에게 수년에 걸쳐 각기 200만 원씩 지원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들이 타지로 전출할 경우 내 고장의 인재를 잃어 지역 경쟁력이 저하될 것을 크게 우려한 마음에서다. 실제로 고교평준화정책 이후 교육인구의 감소가 엿보여 시급한 대책이 대두됨에 따라 7~8개 고교 교장모임에 1년 이상 매월 천만 원씩 지원한데서도 고향을 사랑하는 그의 깊은 속내가 잘 드러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후원 대상자 선정은 각 학교장 또는 장학회 약 130여 회원들의 추천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때로는 그에게 직접 찾아와 청원을 하는 경우도 있어 그는 보유 재정이 부족하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후원을 멈추지 않았는데 지난 30여 년 동안 이렇게 지원을 받은 학생만도 수천 명에 이를 것이라 한다. 

 


 

그런가하면 지역 내 모든 장애인 시설과 고아원, 영아원 등의 후원과 소아암이나 백혈병 등 불치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는 일정액의 치료비를 지원하기도 하는가 하면 그 외 기관 단체, 학교의 시설 발전기금을 비롯하여 여타 사회단체의 육성 지원보조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순간의 실수로 교도소에 수감된 불우한 사람의 가정을 돕는 지원금 등 그의 후원은 가히 전방위적이라 할 만큼 대상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펼쳐졌다. 이토록 천문학적인 후원활동으로 정부 기관이나 사회단체로부터 많은 표창과 감사장을 위시하여 국가인권위원회의 명예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다수의 직함도 갖게 되고 사회활동이나 인간관계의 폭도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넓어짐에 따라 한때 주변으로부터 의혹의 인물이라는 눈총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는 주먹계의 보스라는 등 온갖 루머가 나돌기도 했으나 그에 따르면 수감생활 중 자신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출소 후 감사 인사차 찾아와 깍듯이 예를 표하는 것을 본 사람이 주먹계의 보스로 착각한데서 만들어진 속칭 유비통신일 뿐 너무도 어이없는 말이라며 허탈한 듯 웃고 만다.

 

실제로 그의 사무실에 가보면 사방 벽을 꽉 채운 표창장과 감사장, 임명장, 감사패 등이 일일이 셀 수조차 어려울 정도다. 그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하여 한명숙 국무총리의 표창장인데 그의 가슴에서 빛나는 훈장도 모르긴 해도 그 때 받은 것인 듯하다. 그리고 교육관청이나 기관단체장을 비롯하여 각급 학교장으로부터 받은 감사패는 넓은 집무실인데도 더 이상 진열할 장소가 없어 보일 정도여서 학생과 학교, 지역사회에 쏟아 부은 그간의 헌신을 대변하는 듯했다. 

 

돈은 어떻게 버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는가가 당사자의 삶에 대한 철학이나 심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돈이 많다 해서 누구나 후원을 하는 것도 아니고 후원을 한다 해서 꼭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김 이사장의 경우 너무도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가진 사람이 어려운 이를 돌보아야 된다는 공동체 정신이 일찍부터 싹텄고 그것은 저울의 추처럼 올곧게 자신의 중심을 잡아 일생의 신념으로 간직하게 되거니와 이렇듯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이들은 다음의 또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풂으로써 우리 사회가 기부문화의 확산으로 더욱 밝아지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변화되지 않겠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이런 진정성이 드러나서일까, 언제부턴가 그는 여러 기관단체나 시설, 학교 등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 강연 중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오만은 금물,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누군가의 성공 뒤에는 그가 성공할 수 있도록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임에도 대개의 경우 그 자신만의 노력의 결과물로 여기는데서 세상이 피폐해지고 가당찮은 욕심이 넘쳐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무리 멋진 상품을 만들어낸다 해도 누군가 그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없다면 성공은커녕 쪽박을 면치 못할 일이다. 따라서 이 세상은 너, 나 할 것 없이 종횡으로 인과관계가 얽혀 있어 그 점을 직시하고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와 함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때 훨씬 바람직한 사회로 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의 이러한 가치관과 철학이 너무도 분명하고 확고했기에 초심을 꺾지 않고 후원사업과 사회봉사를 이어가는 것일 텐데 그토록 많은 재정을 다루면서도 언제 봐도 생각보다 검소하고 소탈한 면모를 보여줘 그의 선행에 대한 진정성이 더욱 공감을 얻고 있다. 

 

장학회는 지난 6월 16일 국제의료단체인 스포츠닥터스와 공동으로 군산CC회원제 골프장에서 스포츠 스타와 인기연예인을 초청하여 자선골프대회를 열었는데 개그맨 최홍림 사회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와 KLPGA 홍진주 프로골퍼를 비롯해서 송경철, 이경영, 주진모, 배동성, 이한위, 강래원, 김세아, 이영범, 김효진, 이하얀, 이선진 등 연예인 70여 명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또한 일반인 회원들을 위한 팬사인회와 기념촬영 시간도 가짐으로써 즐거운 시간이 되었는데 박찬호 선수는 부상으로 받은 드라이버를 즉석에서 희망자에게 팔아 후원금을 보태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장학회는 당일 저녁 궁전예식장에서 장학금 전달식을 갖고 초, 중, 고, 및 대학생 120명에게 이날의 수익금 5천만 원 전액을 지급했는데, 이러한 장학 사업 햇수만도 어느덧 28년째를 맞고 있다. 

 

김 이사장에게 복지사업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묻자 자신의 도움을 받은 이나 학생들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을 때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자신은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지만 당시의 지원이 있었기에 탈선하지 않고 학교에 잘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에서부터 자신도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이사장님의 뜻을 계승하여 꼭 누군가를 돕겠다는 포부를 전해올 때 가슴이 뭉클해진다고도 했다. 그는 이러한 편지들을 A4 용지 약 500여 페이지의 책자로 만들어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편지 들 중 일부를 소개해 본다. 

 

 


 

# 저는 지난 2월 12일 이사장님께서 도움을 주신 가정의 전북대 법대 2학년이 되는 장*정입니다. 그때 이후로 바라던 사법고시 패스의 꿈에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장님의 용기를 주시는 말씀이 제겐 너무도 큰 힘이 되었고 가정에 대한 원망도 삭이게 되었습니다. (중략) 저는 반드시  판사가 되어 이사장님처럼 어려운 이웃과 사회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저는 부속초등학교 5학년 김*영이에요. 그간 아저씨께서 매월 10만원 씩 보내주셔서 저희 집에 큰 도움이 됐는데 끊긴 뒤로 너무도 힘들어 염치 불구하고 다시 한 번 편지를 드리게 됐어요. 소아마비로 하체를 못 쓰시던 아버지는 백혈병까지 얻어 고생하시다가 얼마 전 돌아가시고 엄마, 오빠와 셋이 살아갈 일이 너무도 막막합니다. 제발 예전처럼 10만원 씩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 지난 2월 13일 본교 제 54회 졸업식에 참석하시어 물심양면의 협조와 평생 잊지 못할 귀한 말씀을 주시어 성황리에 졸업식을 마칠 수 있었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옥봉초등학교장 김재홍- 

 

# 우리학교 탁구부가 제24회 회장기 전국 초등학교 단체전 석권에 이어 전국소년체전 3위, 그리고 최근의 제44회 전국종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데에는 이사장님의 지대한 후원과 협조가 큰 힘이 되었기에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리며, 성원과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대야초등학교장 김호선-

 

# 마음 가득히 사랑을 담고 살아갈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퍼낼수록 고이는 사랑이라는 샘물은 더 많이 나눌수록 우리는 행복할 것입니다. 지난 여름방학에 사랑하는 애육원 아이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뜻 깊은 하루를 보냈습니다.(중략) 8월 후원금 감사드리며 더위에 건강하시고 가정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 군산시 여성자원봉사센터 회장- 

 

# 어려운 가운데서도 저희 삼성애육원을 위하여 베풀어주신 사랑과 온정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중략) 금년에도 후원자님의 따뜻한 손길과 성원에 힘입어 4명(남1,여3)이 좋은 성적으로 고교를 졸업하고, 박*영은 군산대 컴퓨터정보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이*영은 귀금속공예분야의 기능사자격을 취득, 서울 한빛패션에 일터를 잡았고 이*영은 (주)빙그레에, 김*희는 ㈜롯데에 각각 취업되어 현재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큰 관심과 후원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시기 바라며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삼성애육원 황덕호 드림- 

 

# 저는 귀 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은 군산 청학야학교 학생대표 박*미입니다. 제 나이 34살에 다시 학생이라는 신분을 갖고 보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제 자신 기특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친구들은 중학생이 될 때 저는 공장에 취직해 가정살림을 보태느라 힘겨운 삶과 싸워야 했습니다.(중략)결혼 후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나도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서 선뜻 결단을 못 내리고 있을 때 사회복지장학회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장학금을 받게 되어 마치 가뭄 끝의 단비처럼 너무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저도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죠. 

 

# 지난해 저희 학교에서는 운동부(복싱 ,태권도)선수 10명이 이사장님으로부터 각기 받은 20만 원씩의 장학금으로 동계강화합숙훈련을 하여 2006년도 울산에서 개최되는 제87회 전국체전 복싱선발전에서 11체급 중 5체급이 선발되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중략) 특히 올해 초, 3학년 김*철 군이 밴텀급에서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되는 영예를 안고 태릉선수촌에서 열심히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데 이 모두 이사장님이 베풀어주신 후원의 덕이라 생각되어 좋은 성적으로 기대에 보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중앙고등학교 복싱부 감독교사 김완수-

 

# 일전 저의 취임 때 귀한 뜻을 전해주심에 감사드리며 매월 지원하시는 장학금은 해당 학생에게 요긴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염치불구하고 또 다시 드리는 말씀은 지난 6월13일자 본교에 잔디구장 시설 지정을 받았습니다. 수년 전 지원해주신 야간조명시설의 혜택을 크게 누리고 있는 터에 한껏 고무된 상태로 공사 진행 중인데 (중략)그러나 기존의 주변시설, 부대시설 이전 등의 사업에 예산이 미미하여 부담이 작용하는 상황입니다. 망설임 끝에 간곡한 말씀드리오니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제일고등학교장 유인희- 

 

 


 

# 저희 목양원에 귀한 피아노를 선물해주신 사회복지장학회에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표현이 서툴기는 하지만 새 피아노를 보며 새 옷, 새 신발을 신은 것처럼 마냥 즐거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저희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중략) 앞으로 목양원에서 피아노 선율이 흐를 때마다 항상 후원자님을 기억하겠습니다. 후원자님의 가정과 뜻하시는 일 모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늘 기도하겠습니다. 

-구세군군산목양원 생활가족 및 직원 일동- 

 

# 김 이사장님, 오늘 경로 위안 잔치에 좋은 음식과 공연 볼 수 있게 해 주고 용돈까지 주셔서 고맙기 한량없습니다. 나는 우리 군산에 이러한 봉사단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참 자랑스럽고 즐겁습니다. 봉사는 돈이 많다 해서 다 하는 것이 아니고 바탕에 사랑과 성의가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타 지방에 가더라도 자랑할 겁니다. -은파 현대 1*3-801 고*상-

 

# 반신반의 생각을 하면서 김기봉 이사장님께 하소연의 편지를 썼는데 저버리지 않고 몸소 저희를 찾아주시고 또 장학금까지 주셔서 무슨 말로 고맙단 말씀을 전할까요. 부모는 저희를 버렸지만 할머니께서 저희를 거둬주시는 모습에 하나님도 탄복하여 이사장님 같은 분을 저희에게 보내주신 것으로 알고 희망을 잃지 않고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박*애 올림-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도 기부문화나 복지사업의 저변이 조금씩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는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아직도 재산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는 뿌리 깊은 혈연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이겠으나 하지만 돈이 많으면 무조건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 오로지 돈과 재물만을 쫓는 물신숭배의 만연으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천민자본주의는 가족이나 인간관계를 갈수록 피폐하게 만들어 불신의 늪으로 내몰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알량한 재산 다툼으로 부모형제 간 다툼과 소송은 예사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극단적인 경우도 이제는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할 만큼 인성의 피폐를 보여주고 있는 심각한 현실은 우리 모두 준엄한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김 이사장의 경우만 보더라도 복지사업으로 기부한 그 많은 기백 억의 돈이면 얼마든지 가지고 싶은 것 다 갖고 호사를 누리며 살 수 있을 텐데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돈이 많다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일찍 깨달았던 것일까. 하긴 갑작스런 졸부나 거액의 복권 당첨으로 돈벼락을 맞다 시피한 사람들 거의 전부가 얼마 못가 파멸에 이른다는 것은 수많은 사례에서 증명되고 있거니와 이는 돈과 행복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따라서 진실 된 행복의 정의가 새롭게 모색되고 있는 근자의 현실은 우리사회가 물신(物神)에서 인본(人本)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할 것인데 그가 이미 30여 년 전 이 진리를 터득했다는 것에서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느끼게도 해준다. 

 

그는 누군가를 위해 가진 것을 나누어 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말한다. 또한 세상에 완벽한 내 것이란 없는 법이고 돈은 쓴 만큼만 내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아무리 큰돈을 가지고 있어도 쓰지 않는다면 가난뱅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쓰지 않고 고스란히 자식에게 물려준다 해도 내 손을 떠난 그 돈은 다음에 누가 임자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이런 사회봉사를 계속하게 된 데에는 세상은 모두가 더불어 살아야 할 공간이며 가진 자가 부족한 자를, 강자가 약자를 도와야 된다는, 아내와 자녀들의 적극적인 응원도 큰 힘이 되었는데 그래서 가족에게 늘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또 하나 그가 자신의 사회복지사업에 뿌듯함을 갖는 바탕에는 사업기반이 수도권인 관계로 타지에서 번 돈으로 내 고향의 발전을 위해 쓴다는 자부심도 크게 자리하고 있다. 

 

고향을 위한 일이라면 지금껏 그래왔듯 직업이나 분야, 신분, 나이, 종교를 떠나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김기봉 이사장. 조건 없는 후원으로 국내 기부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 그의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특히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이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어려움에 처한 약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자신의 뜻이 꺾이지 않고 후대에 계승, 전파되어 우리사회가 보다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미 경험적 진리로서 터득하고 있다. 행복의 크기는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나눈 만큼의 크기라는 것을...

(재)군산사회복지장학회

군산시 영화동 23-5 성문빌딩2F

TEL 063)445-80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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