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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용왕님이 데려간 것 같어!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3.08.01 09:53:3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가 일주일 남았는데 호랑이가 물어갈 만큼 덥다.  시계가 반대로 가는지, 지구가 거꾸로 도는지, 여름이 새로 시작된 것 같다.  오늘은 지난번 <이러다가 마당까지 ‘뻘바탕’ 될꺼여!>에서 못했던 얘기를 하려고 한다.

 

철부지시절 뛰놀던 군산시 중동 갯벌로 사진촬영을 하러 갔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옛날에는 사람이 강둑에 올라서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사라졌던 농게와 갈게, 그리고 게 구멍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  게들의 보금자리가 없어졌으니 게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  환경 분야에 전문 지식이 없으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염' 때문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붉은색 파란색 해초들도 살고 있어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영화 화면보다 더 멋있었는데…….

 

옛날에는 밤하늘에 떠있는 별만큼이나 게 구멍이 많았고, 자기 몸보다 더 큰 왕발이 달린 '농게'들이 무리지어 오가며 먹이를 찾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인기척이 들리면 서로 연락이라도 한 것처럼 각자 구멍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적이 나타났을 때 하나같이 구멍으로 들어가는 게들을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한여름 최고의 놀이터이자 피서지였던 갯벌에는 장죽에 누런 잠방이를 걸친 동네 노인들도 바람을 쐬러 나왔다. 자랑이라도 하듯 삼배 바지춤 사이로 배꼽을 드러낸 할아버지도 있었다.  노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 강둑을 거닐 거나, 참외밭을 지키는 원두막에 둘러앉아 시조를 읊었다.

 

갈대밭과 갯벌에 얽힌 추억

군산 서포가 고향이며 26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플로리다'에 살고 있다는 김명곤님은 고향생각이 나면 가끔 내 기사를 본다면서 '갈새'와 '갈게'들이 득실거렸던 서포 갈대밭에 얽힌 아련한 추억들을 댓글로 남겨주었다.  아래는 갖가지 '전설'과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서포 '갈대밭'에 대한 김명곤님의 아련한 추억담이다.

 

"논뙈기 밭뙈기조차 변변히 없는 사람들에게 갈대밭은 삶의 터전이기도 했습니다.  점석이 형 어머니가 날이면 날마다 갈꽃을 꺾어다 빗자루를 만들어 군산시장에 내다 팔며 생계를 꾸리다가 어느 날 술로 하세월을 보내던 남편을 원망하며 삶을 마감한 곳도 그 갈대밭이었습니다.  '금순이년'하고 누구하고 연애하다 '퇴깽이 할머니'에게 들킨 곳도 갈대밭이었고, 육이오 때 낙오된 인민군 소년이 숨어있다 총에 맞아 질질 끌려갔다던 곳도 그 갈대밭이었습니다.  일제 때는 새우젓 배가 그 갈대밭과 석산 (지금도 있는가 몰라)사이로 들어왔다고 합니다."(중략) 

 

전국 어디든 갈대밭은 비슷비슷한 사연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죽음과 관련된 김명곤님 얘기를 들으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고 가슴이 아픈데, 하루는 때까치 알을 찾으러 갈대밭을 헤매고 다니던 아이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와 말을 잇지 못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말을 꺼냈는데 갓난아이 시체를 보고 왔다는 것이었다.

 

날이 어둑어둑 해지면 혼자 측간을 못 갈 정도로 겁이 많았던 때여서 말만 들어도 무서웠다.  그러나 호기심이 발동해서 안 가볼 수가 없었다.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광경으로 후미진 갈대밭에 버려진 핏덩이는 열흘이 넘도록 우리를 괴롭혔다.  인간의 잔인성을 두고두고 확인하는 사건이었다.  어머니에게 얘기를 하니 누가 버렸는지 "불쌍헌 애기"라고 했지만, 나는 무섭기만 했다.  김명곤님은 나포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금강과 십자들녘 경계인 강둑을 오가며 경험했던 일들도 전해주었다.

 

"밀물에 쓸려 조카와 함께 죽을 뻔했던 적이 있지요.  조카 녀석이 물에 자꾸 쓸려 내려가 붙잡았는데 어찌나 위에서 눌러대는지.  둘이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 '아 이제 죽었구나' 그랬는데 뒤따라오던 동네 후배 덕분에 헐떡헐떡 헤엄쳐 나와 겨우 살아났지요.  다음날 '누구네 아들하고 손자하고 물에 빠져 죽을뻔 했다더라'는 소문을 들은 엄니한테 혼구멍 나도록 꾸중을 들었던 기억.  아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헐떡입니다."

 

너나 나나 배고픔에 허덕이던 시절에는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 갯벌에서 조개를 캐다 고귀한 생을 마감하는 일들이 흔하게 일어났다.  밀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후배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났었다는 얘기를 듣고 생각나는 추억이 있어 소개한다.  나보다 네댓 살 위이고 수영을 잘하기로 소문난 이웃동네 친구 때문에 동네 사람은 물론, 파출소 순경까지 출두했던 적이 있었다.

 

 


 

하루는 갯벌 경사진 곳에서 미끄럼을 신나게 타는데 친구 하나가 갑자기 사라졌다.  신발이랑 옷가지가 있는 걸 보면 빨가벗고 이웃 동네로 놀러 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걸 보면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게 분명하다고 했다. 아무리 수영을 잘 한다지만, 손발에 쥐가 나면 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녔고, 수영을 해서 가까운 삼각주에도 가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심신이 지친 아이들은 죽은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동네 어른들에게 알렸고, 결국 해안파출소 순경이 달려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녔다.  우리는 죄인이 된 것처럼 괜히 두려웠다.

 

난리가 났는데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부모는 나타나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끼리 전마선을 타고 금강 하류를 누비고 다녔다.  수영을 잘 하는 아저씨들은 잠수를 하면서 찾았는데 모두 헛수고였다.  어떤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며 "아무래도 용왕님이 데려간 것 같어!"라고 했다. 오후 5시쯤 됐을까, 구경하는 사람들 입에서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즈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강 건너(충청도)까지 갔는데 바위에 누워 태평세월로 노래를 부르고 있더란다.  경찰관은 "미친놈!" 하면서 돌아갔고, 긴장했던 우리는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김명곤님 말대로 갈대밭은 그 옛날 가난했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런데 세월과 함께 갈대밭도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으며 갯벌에서 자라는 동·식물들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해안 갯벌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든 작은 수문과 강둑이 쉽게 발견된다.  수문에서 수영 배우기는 갯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증과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아련한 추억을 지니게 되었는데, 김명곤님이나 나나 그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추억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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