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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상고 선수들이 주인공인데 엑스트라로 출연했죠!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3.03.01 15:16:0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1972년 11월 11일부터 일본 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간사이(關西) 지방에서 열리는 한일 고교야구 친선경기에 참가할 한국 선발팀은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등 군산상고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그해 7월 황금사자기 쟁탈 제26회 전국지구별초청 고교야구대회 우승팀 선수들을 주축으로 짜졌기 때문이었다.  군산상고 9명, 경북고, 중앙고에서 각 3명, 모두 15명으로 구성된 한국 선발팀 원정경기 5차전 종합전적은 4승 1패.  원광대 야구부 김준환 감독은 “당시 선수들은 강행군 속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고, 히로시마 상고 학부모회와 군산 출신 일본인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며 40년 전 추억을 떠올렸다.

   

“가는 곳마다 학부모와 재일교포들이 숙소를 제공해주는 등 열렬한 환영을 받았어요.  그때만 해도 일본에는 해방 전 군산에서 태어나 학교에 다녔거나 직장생활을 했던 일본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분들이 고향 후배처럼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었어요.  일제강점기 야구 명문으로 알려진 군산중학교(현 군산고) 출신들도 찾아와 회식도 시켜주고, 글러브, 야구공, 배트 등 야구 장비도 선물 받았습니다.”  김 감독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야구 인구가 많은 일본은 오사카 지방 300여 개 고등학교 중 250개 학교에 야구팀이 있었고, 운동장도 완벽에 가까운 시설을 갖추고 있어 부러웠다고 한다.  경기 때도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이 한국에 비해 높았고, 홈런상도 없었으며, 그래서 그런지 선수들은 단타 위주로 배트를 짧게 잡더라는 것.

 

‘역전의 명수’ 애칭 얻은 짜릿한 9회 말 역전승,영화로도 만들어져

군산상고의 극적인 황금사자기 우승 이야기는 고교야구 붐을 타고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제목은 <자! 지금부터야>(감독 정인엽). 1977년 7월 명보극장에서 개봉됐으나 중간에 극장 측이 짤막한 사과문과 함께 상영을 중단하고 외화를 상영해서 팬들의 반발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감독으로 출연한 하명중은 제23회 아세아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군산상고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을 여름 피서지보다 좋아했던 군산 팬들은 시내 일원과 월명공원, 군산상고 운동장에서 촬영한 야구영화 상영이 중단됐다는 소식에 “차별대우!”라며 분개했다.  일부 열광팬은 중단사태와 무관한 시내 극장주들을 원망했다.  ‘외국영화 안 보기 운동’을 펼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진유영, 하명중, 강주희, 이동진 주연의 <자! 지금부터야>는 ‘야구의 천재’ 소리를 듣는 국가대표 출신 최관수 감독이 군산상고 감독으로 부임해 역경을 이기고 황금사자기 대회에 출전, 결승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과정을 그렸다.  김준환 감독은 “군산상고 선수들이 이야기 주인공인데 연습하는 장면을 찍을 때 엑스트라로 출연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육군야구단 시절 선배 소개로 지금의 아내 만나 

1973년 군산상고를 졸업한 김준환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붙어 다녔던 김봉연과 함께 연세대학교에 진학하고자 했다.  그러나 희망 사항일 뿐.  군산상고 야구팀을 만든 이용일씨와 송경섭 부장의 강력한 권유로 상업은행에 입행한다.  김 감독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오해는 풀렸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며 여운을 남겼다.  1975년 육군에 입대한 김준환은 김봉연을 다시 만난다.  그는 호화 타선의 육군 야구단에서 맹활약하며 김봉연 선수와 함께 중심타자로 자리를 굳힌다.  제27회 백호기쟁탈 전국대회에서 13타수 6안타를 기록, ‘안타제조기’라는 별칭을 얻기도.  1978년 상업은행에 복직, 제30회 백호기 우승의 주역이 된다.  눈에 띄는 대목은 고교 때부터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까지 계속 소속팀 주장을 맡았다는 것.

 

고향이 전주인 김준환은 육군야구단 시절 휴가를 나올 때마다 군산 째보선창(금암동)에 들렀다.  군산상고 야구팀 포수로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껴주던 한상선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웃동네에 김일권 선수도 살고 있어 자주 놀러 다녔으며, 바다낚시도 그때 배웠다고.  지금의 아내 나연숙(羅蓮淑)씨도 한 선배에게 소개받았다고 한다.  “1976년 연말로 기억합니다.  ‘이성당’ 빵집에서 아내를 만났는데, 보이지 않는 매력에 끌리면서 첫눈에 반해버렸어요.(웃음)  다행히 서로 마음이 통해서 5년쯤 데이트하다가 1981년에 결혼했죠.  결혼을 앞두고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저 같아도 반대했을 거예요.  그때만 해도 프로야구 출범 전으로, 대부분 부모가 딸을 운동선수에게 시집보내는 것을 꺼렸거든요.”  

 

프로야구 개막 원년에 영예의 골든글러브 수상

해태 타이거즈(현 KIA)는 광주항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1982년 1월 30일 출범한다.  창단식에 참석한 선수는 16명, 여섯 개 구단 중 가장 적은 초미니 선수단이었다.  시즌을 앞두고 21명으로 느는데 김봉연, 김준환, 김성한, 김용남, 박전섭, 김일권, 김종윤, 김우근 등 8명은 군산상고가 배출한 스타플레이어들.  군산 팬들은 군산상고 출신 선수들의 맹활약에 화답하듯 해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광주와 대전 경기장을 찾아 열띤 응원을 펼쳤다.  특히 광주경기장 입장권은 연일 매진(賣盡)에 만원사례.  표를 구매하지 못하자 현금을 내고 들어가려는 입장객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검표원이 검표를 포기하는 바람에 수백 명이 공짜로 입장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한국 프로야구는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스, MBC 청룡,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삼미 슈퍼스타즈 등 총 6개 팀으로 1982년 3월 27일 첫 시즌을 시작한다. 프로원년 해태의 최종 성적은 전체 4위.  그러나 김봉연, 김준환이 나란히 홈런 부분 1, 2위를 차지하고, 김성한 타점 1위 10승 달성. 김일권 도루 1위로 이듬해(1983) 한국시리즈 우승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죽마고우인 김봉연과 홈런 경쟁을 펼쳤던 김준환의 1982년 시즌 통산 기록은 80경기 출전, 타수 306, 득점 50, 안타 92개, 2루타 13개, 3루타 3개, 홈런 19개, 타점 45, 도루 10개, 희생타 3개, 4구 19개, 삼진 23개, 병살타 4개, 실책 4개, 타율 0.301, 장타율 0.549, 출루율 0.347로 그해 골든글러브(외야수 부분)를 수상한다.

 

선수 시절 꽃미남으로 여성 팬에게 인기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지는 김준환 감독.  그러나 1989년 4월 (주)리스 피아르가 전국 5대 도시 성인남녀 1천4백 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인기도 6위(1위 선동렬)로 남성 팬에게 인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팬레터도 많이 받았을 터, 지금도 기억에 남는 팬이 있는지 궁금했다.  “여중·고생들이 예쁜 인형도 보내주었고, 팬레터도 많이 받았으며, 은퇴할 때까지 총각인 줄 알았다는 아주머니도 있었어요.(웃음)  특히, 슬럼프에 빠졌던 1986년 어느 날 전남대학교 체육학과 교수가 보내준 장문의 편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슬럼프의 원인, 슬럼프 극복하는 법 등을 깨알같이 적은 편지가 감동적이어서,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보약처럼 큰 힘이 돼주었죠.”

 

 


 

최악의 타율& MVP, 지옥과 천당 오갔던 1987년

‘공포의 KKK 타선’(김봉연-김준환-김성한)의 일원이었던 김준환에게 1987년은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해였다.  갑작스럽게 중병(혈소판 감소증)을 앓게 된 아내를 간호하면서 경기에 임하다 보니 정규리그데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고, 타율도 0.204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던 것.  그해 가을에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과 4차전에서 잇따라 역전 홈런을 쳐내 최우수 선수(MVP)로 뽑혔다.  김준환은 87 한국시리즈에서 12타수 6안타 4타점 5득점을 기록, 시리즈 최고 타율(0.500), 최다 타점(이만수와 공동), 최다 홈런(2개), 최다 득점, 최다 안타 등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또한, MVP 부상으로 승용차를 받았고, 홈런상과 행운상, 매 게임 7번째 안타를 때린 선수에게 주어지는 ‘게토레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등 공격 부분 상을 휩쓸었다.  1989년 프로야구 정규리그 마감과 함께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전북을 연고로 탄생한 쌍방울에 합류, 코치·감독을 거쳐 2003년부터 원광대 사령탑을 맡아오고 있는 김준환 감독.  그는 “군산상고 시절 말썽도 많이 부렸다”며 야구 인생에 큰 가르침을 주었던 고 최관수(1942~1998) 감독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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