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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부윤 관사, 청소년 교육현장으로 거듭나야!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2.12.01 13:57:53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찬바람이 목을 움츠리게 하던 엊그제였다.  구 ‘백화 양조’ 앞길을 지나다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석조물과 예사롭지 않은 건물 한 채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놀라움 그 자체.  일제강점기에는 군산 부윤(府尹) 관사로, 해방 후에는 시장(市長) 관사로 사용하던 건물에서 식당 영업을 하고 있어서였다.  ‘기생을 취하려면 평양 부윤, 권세를 잡으려면 한성 부윤, 돈방석에 앉으려면 군산 부윤’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군산 부윤은 관리들이 선망하는 자리였고, 위세도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군산은 전남 광주보다 먼저 부(府)가 되었고, 해방 후 광주와 같은 해(1949)에 시(市)로 승격될 정도로 당시로는 대도시였다. 

 

금융회사 지점장 인사·이동만으로도 군산이 얼마나 푼푼했던 도시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70년대 초까지도 중앙은행들은 군산과 전남 광주 지점장을 동급으로 취급하였고, 당사자들도 교환 근무 정도로 받아들였다.  광주지점장이 군산지점장으로 발령받으면 축하인사를 받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얘기가 되겠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고기 굽는 냄새와 반찬 냄새가 진동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하루빨리 복원해서 100년이 넘는 군산의 역사, 즉 일제강점기 부윤(府尹)과 해방 후 역대 시장(市長) 사진은 물론 군산시 관련 행정서류들을 전시하면 현장감 넘치는 근대역사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아한 조각이 눈길을 끄는 석등(石燈)의 제작 연대는?

군산 부윤 관사는 1930년대 건물로 대지면적 310평(1023㎡), 건축면적 60평(200.331㎡) 넓이의 지상 2층 주택으로 건축학적 자료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50~1960년대에 관사에서 살았던 사람의 전언에 의하면 여섯 평 남짓의 지하공간이 있는데 여름에는 김치 등을 보관하는 냉장고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지 궁금해서 확인해보니 연탄창고와 보일러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부윤 관사는 오랫동안 방치되어오다가 1996년 개보수를 거쳐 현재는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최근 벽체와 지붕 등이 교체되었으나 전체적인 구조는 초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마당의 석조물과 분수대, 연못 등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사 입구의 석조물과 정원의 석탑, 연못의 분수기, 마당의 수수발 등은 일본 양식으로 집을 건축하면서 꾸며놓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연못 옆에 세워진 석등은 정교하게 조각된 지대석과 우아한 연꽃봉오리 보주(寶珠) 등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일제 때 어느 일본인 부윤이 정원을 꾸미려고 유명 사찰에서 옮겨놓은 우리의 전통 석조유물로 보였다.  특히 전문 감정사의 평가는 문화제적 가치가 있음을 예시한다.  석등의 제작 연대를 600~700년으로 추정하면서 자신이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1층 방 5개, 2층 방 2개의 관사 건물은 방과 부엌이 복도로 이어졌으며, 목조 계단을 통해 2층 방들과 연결된다. 각 방에는 도코노마(床の間)와 오시이래(押し入れ) 등이 설치되었던 자리가 남아 있다. 특히 다다미를 깔아놓은 흔적은 일제강점기 건축물임을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정원과 아름드리 고목, 안채의 나무기둥, 목조계단, 고급 창틀 등 호화로운 구조는 일제수탈의 아픔이자 권위주의 산물이기도 하다.

 

 

 

기억의 저장고로, 청소년의 교육현장으로 거듭나야! 

군산 부윤 관사는 얘깃거리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인사 전보와 승진 발령을 앞두고 아무개 계장이 봉투를 들고 찾아갔다가 퇴짜 맞은 얘기부터 맨손으로 찾아가 어려운 처지를 솔직하게 설명하고 원하는 지역으로 발령받은 사례 등.  ㅇㅇ시장 사모님은 떡고물(돈) 챙기는 것을 좋아했고, △△시장 사모님은 무척 깐깐하다는 말도 들려왔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신임 시장이 부임하면 만찬장이 되기도 했다.  집들이하면서 시내 유명 중국음식점에서 해삼탕, 양장피 등 술과 고급요리를 불러 먹었기 때문.  그때 죽어나는 사람은 시청의 하급 직원들이었다.  무엇을 주문해올지 몰라 퇴근도 못하고 전화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얘기다.

 

60대 이상으로 군산시청에 근무했던 분들은 관사에 얽힌 에피소드를 적어도 하나씩은 간직하거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다.  100년이 넘는 군산시 행정의 뒷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부윤 관사는 더 망가지기 전에 복원해야 한다. 살아 있는 표상으로 기억의 저장고로 혹은 청소년의 교육현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얘기다.  군산시 중앙로 1가 국도극장 앞에서 ‘군산당 금방’을 경영하는 오미순(건물주) 씨는 “사람들이 식당 건물(부윤 관사)의 건축 연대와 내부 시설에 대해 귀찮을 정도로 묻는다”며 “군산의 관광 인프라와 침체된 원도심권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을 전제로 시청에서 요구를 해오면 임대료가 지금보다 낮아도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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