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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세느강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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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1 14:40:5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아침부터 눈이 내리고 있다. 초겨울인데도 제법 눈송이가 굵다. 금년 겨울은 다른 겨울보다 함박눈이 많으려나 보다. 내가 살고 있는 군산은 다른 지역보다 눈이 많이 내린다. 하지만 바닷바람에 빌려서 함박눈은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오늘은 모처럼 함박눈이 가로수 위에 소복소복 내려앉아 눈꽃송이를 만드는 것이 참 보기 좋다. 이런 날이면 내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병이 있다. 이유도 없이 누군가의 전화가 기다려지기도 하고 오래 전에 잊혀져버린 친구가 새삼스럽게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한잔 술이 간절해지면서 갈증이 겹쳐 온다. 오늘같이 눈이 오는 날은 분위기 자체만으로 이미 술 맛은 돋우어져 있다.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 쓰르라미 울어대는 느티나무 아래의 평상에 앉아 마시는 하얀 거품이 박꽃처럼 부풀어 오르는 맥주 한잔이 감로주라면, 이렇게 함박눈이 내리는 날은 작은 창이 달려 있는 목로에 앉아 말귀가 통하는 친구와 함께 마시는 한 병의 소주 역시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맛이 아니겠는가?  생각만 해도 입 안에 군침이 고여 온다. 더는 참지 못하고 C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문사에서 은퇴한 선배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형의 목소리도 들떠 있다. 아마도 나와 동병상련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웬일로?” “눈이 오는데 너무 맨숭거려서.......”  “자네 병, 지금도 그대로일세.” 

“눈감아야 나을 병입니다.” “병이 났으면 치료를 해야지.” “어느 병원으로 갈까요?" 

“이런 날에는 세느강변이 최고였는데.........”  “지금도 남아 있을까?”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 친구를 찾아낸 기분으로 들떠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나와 C형이 세느강가에서 술에 취해 흐느적거린 것도 꽤나 오래된 기억이었다. 그때 나는 사업을 한답시고 여기저기 빚을 제법 많이 짊어지고 있을 때였다. 돈을 벌기 위해서 죽어라 뛰어다녔는데도 빚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태산같이 커지고 있었다. 잠도 안 자고 길어나는 것이 발톱이라면 그딴 것은 길어나는 이자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뿐이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한숨이 나오고, 이틀 밤을 자고 나면 맥이 풀리도록 빚은 늘어나기만 했다. 종착에는 장사를 해도 재미가 없고 꿈속에서도 돈에 깔려 죽는 악몽에 시달렸다. 마치 몸속에 암 덩어리가 커지듯 앉으나 서나 나를 짓누르고 있었는데 그때 기분으로는 빚만 갚을 수 있다면 몸을 한쪽 떼어내라고 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빚만 갚아 버리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공중으로 훨훨 날아다닐 것 같았다. 

 

빚이 삼천 냥이면 무엇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좋은 옷을 입어도 기분이 찜찜했고, 비싼 음식을 먹어도 입에 맞을 리가 없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재벌 기업들은 그 많은 빚을 지고도 어떻게 흑자를 낼 수 있는지 하는 의문은 그때의 경험에서 생겨났다. 그런 처지였으니 고급 술집인들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고 기껏 찾아가는 곳이 순대집이나 통닭집이었는데 언제나 시작은 통닭집에서였다. 그것도 끝날 무렵에는 닭다리 두 개가 덩그러니 남았는데 아까워서 서로 미루다가 막판에는 자존심 때문에 서로 입맛을 다시면서도 그대로 둔 채 눈치를 보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속도 모르는 통닭집 아주머니는 우리가 닭다리를 싫어하는 줄 알고 대신 똥집으로 바꾸어 주었기 때문에 냉가슴을 앓기도 했지만 마음 한 켠 으로는 차라리 그게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나와 함께 닭다리를 집지 못했던 사람이 K신문사 논설위원이었던 C형이다. C형은 신문기자이지만 지방에 오래있다 보니 모두 아는 얼굴에 공갈을 칠 수도 없는 처지여서 나처럼 언제나 주머니가 가벼웠다. C형이야말로 술 좋아하는 호걸이었지만 제5공화국 일도일사 시절 때에도 그 숱한 유혹을 뿌리치고 빈 주머니로 세느강가에 앉아서 순대나 우적거리던 우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C형은 거의 매일 어김없이 오후 세 시쯤이면 이르게 술시로 착각하는지 나를 불러내곤 했다. 시작은 언제나 우리 둘이었지만 해질녘이면 우리 옆에는 십여 명의 돈 없는 술꾼들이 통닭 한 마리를 튀겨 놓은 탁자 옆으로 스스럼없이 모여들곤 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선뜻 닭다리를 잡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술꾼은 아니었다. 그 다음 2차로 기는 곳이 세느강변이었다. 구시장 하천가에 있는 춘천집 이었는데 삶은 돼지머리를 통째로 걸어놓고 순대를 파는 골목이었다. 값이 싼 것이 순대였지만 투박한 여주인의 큰 손은 더 후한 인심이어서 안주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어디 그뿐인가 비록 시장 하천이었지만 술 취한 기분에는 물소리가 제법 듣기 좋았다. 나와 C형이 이 골목을 세느강변이라 명명식을 하던 날은 유난히 달이 밝았다. 그날 나와 C형은 몹시 취해 있었다. 굳이 2차를 사겠다는 G사장을 따라 골목으로 왔는데 비가 온 뒤라 하천에 제법 물소리가 듣기 좋았다. 달빛 속에 보는 시궁창 물이 검게 보일 리도 없었다. 멀리 화력발전소 굴뚝도 보였다. “와! 에펠탑이다." C형이 말했다. “좋지요. 기분이라도 세느강에 온 걸로 합시다." “와. 세느강 그거 멋진 이름이다." 그날 밤 이후 우리는 거의 매일 세느강가에서 술에 취해 흐느적거렸다. 비가 오는 날은 세느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취하고, 달이 뜬 날은 강물 위에 쪼개지는 달빛 때문이었고, 눈이 오는 날은 하양게 눈이 덮인 강둑이 좋아서였다. 취한 눈으로 보는 시장 하천은 우리 마음속의 영원한 세느강이었다. 강가에서 취해 흐느적거릴 때는 빚이며 사업이며 모두를 잊을 수가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때 우리는 순대를 새우젓에 듬뿍 찍어 우적거리면서 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진짜로 비행기 타고 불란서에 가서 세느강 가에 앉아 꼬낙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 보자고 헛웃음을 치곤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우리 옆에 있던 술꾼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었다. 갑자기 이 세상을 하직한 사람이 생겨나는가 하면 간이 나쁘다고 술을 끊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어느새 그 지긋지긋한 암 덩이 같던 빚들을 갚고 나니 왠지 세느강이 시들해지고 차츰 발걸음이 멀어지더니 언제 내가 가난한 적이 있었냐는 듯 제법 흥청거리는 거리를 흐느적거리게 되었다. 그러다 오늘 C형 때문에 문득 ‘세느강’ 생각이 난 것이다. 그새 세느강변도 많이 변해 있었다. 춘천집 간판은 그대로였지만 물소리 흐르던 세느강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시멘트로 복개된 널따란 주차장이 삭막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에펠탑이라고 부르던 화력발전소 굴뚝마저 높은 담 벽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돌아설 수 없어 춘천집 목로에 앉았다. 

 

“아주머니, 순대 한 접시 주시오.” 

삭막하기는 C형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옛날처럼 새우젓에 순대 한 점을 덥석 찍어 씹어 본다. 뱉고 싶을 만큼 입 안이 텁텁하다. 한 병의 소주를 간신히 비운 우리는 순대 접시를 그대로 놓은 채 일어나 눈 오는 거리로 다시 나온다. 사라져 버린 세느강에 대한 아쉬움도 아쉬움이려니와 바뀌어 버린 춘천집의 투박했던 옛 주인의 얼굴이 새삼 그리워진다. 함박눈이 머리 위로 자꾸자꾸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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