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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봐서 몰랐었는디, 구경 제대로 혔네!"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2.10.01 14:09:1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이순신장군 명량대첩 전시관 앞에서 바라본 울돌목과 진도대교

 

문화예술의 고장 전남 진도(珍島)에 다녀왔다. 그 지역 향토문화와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시민 문화의식을 높이기 위해 군산문화원(원장 이복웅)이 3차로 나눠 마련한 '2012 시민과 함께 떠나는 문화기행'(1차 13일, 2차 14일, 3차 15일)에 합류했던 것.  참가비는 물론 점심도 무료로 제공되고, 여행자 보험까지 가입해주어 선배들과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대한노인회 군산지회(지회장 황긍택) 남녀회원 35명과 함께한 1차 문화기행 주요 탐방지는 명량대첩지, 진도대교, 운림산방과 쌍계사 상록수 수림, 신비의 바닷길, 목포 해양문화재연구소 전시관 등. 

 

 

진도 휴게소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회원들

 

태풍(산바)을 예고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3일(목) 오전 8시 40분 군산을 출발했다.  버스에 탑승한 탐방단은 칠순이 넘은 노인들이지만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처럼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이복웅 원장은 "그래도 소싯적에는 한가락씩 하던 분들"이라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이 원장은 "아무쪼록 우리 역사문화를 보다 많이 느끼시고 마음에 담아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란다“며 ”옛 KBS자리로 이전해서 새롭게 단장한 군산문화원은 시민의 것이니 궁금한 점이 있으면 부담 없이 자주 찾아주시라"고 말했다.  이어 황긍택 지회장은 "즐겁고 보람된 자리를 만들어주어 고맙다"며 “우리 노인들은 사랑하는 마음과 운동하는 버릇을 기르자”며 회원들 건강을 당부했다.

 

이 원장과 황 지회장의 인사가 끝나고 회원들이 옆자리 사람과 친해지기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처음 만난 사이라도 간식으로 나온 음료수와 쇠머리 찰떡을 나눠 먹으면서 고향동네 친구, 아니면 학교 선후배 중에 방귀깨나 뀌는 누구와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하면 금방 짝꿍이 되었다.  오전 10시 35분 목포 나들목을 통과, 영산강하구언에서 우회전해서 18번 국도를 따라 전라우수영 쪽으로 40분쯤 달리니까 진도의 관문이자 동맥인 진도대교의 위용이 윤곽을 드러냈다.  차도와 인도로 구분된 진도대교는 진도군과 해남군을 이어주는 한국 최초의 사장교(斜張橋)로 길이 484m, 폭 11.7m, 해면-상판 높이 20m, 높이 96m로 건설된 쌍둥이 다리로 알려진다.

 

세계 3대 해전사에 기록된 '명량대첩지'에서

11시 7분 울돌목으로 불리는 명량해협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가 음각된 충무공 어록비와 세계해전 사상 가장 독보적인 명량대첩 기념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순신 동상이 희뿌연 비안개 속으로 고뇌하듯 서 있다.  오롱조롱 물 위에 뜬 섬들은 말없이 엎드려 있다.  점점이 흩어진 섬들 사이로 오가는 고깃배들은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오르게 한다.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바닷바람에 이곳저곳에서 감탄사가 터진다.  기념촬영을 마친 탐방단은 해남군 문내면 학동과 진도군 녹진 사이의 좁은 해협을 가로지르는 진도대교와 평균 11.5노트(시속 24km)의 급물살이 흐르는 우수영 울돌목을 등지고 앉아 이 원장의 설명을 들었다.

 

 

명량대첩 기념관 입구에 세워진 비석과 울돌목 부근 섬들

 

 

"이곳은 울 '鳴'자에 들보 '梁'자로 한자로는 '명량', '명량진', 우리말은 '울돌목'으로 임진왜란(1592~1598) 때 이순신 장군이 세계 3대 해전사 중 하나로 꼽히는 명량대첩(1597)을 승리로 이끈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제가 왜 이곳(명량대첩지)을 방문지로 정했느냐면 군산과 연관이 깊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 울독목에서 남은 배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맞아 대승을 거두는데요, 이름 하여 '명량대첩'이라고 합니다. 당시 왜군의 손실은 병선 32척 완파, 92척 반파, 8000명이 전사합니다. 그때가 9월 16일인데 벽파진에 있던 왜선 200척이 또다시 몰려오니까 이순신 장군은 전략적으로 9월 21일 군산도(선유도)로 올라와 10월 3일까지 열이틀 동안 기거하면서 선조에게 명량대첩에 대한 장계도 쓰면서 전열을 정비하죠. 

 

 

기념촬영을 마치고 이복웅 원장 설명을 듣고 있다

 

1597년에는 정유재란(1597~1598)이 일어나는데요. 당시 칠전량(漆川梁) 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충청수사 최호(崔湖) 장군은 군산에서 태어나셨으며 매년 봄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에 있는 충의사(忠義祠)에서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어 임진왜란과 명량대첩은 군산과 연관이 깊습니다."  이 원장의 설명이 끝나고 일행은 전시관으로 이동해서 거북선과 판옥선 등의 병선과 무기류, 해전도 등 다양한 유물을 둘러보고 명량대첩 영상물을 감상했다. 전시관에서 만난 해설사는 이순신 장군 영정에 담긴 이야기, 조선 수군이 사용했던 무기, 이순신 장군의 통솔력 등을 실감 나게 설명해주었다. 

 

(좌측 사진) 문화해설사(오른쪽)가 조선군과 왜군의 병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측 사진) 기념관에 걸린 이순신 장군 영정, 진짜 얼굴은 하나도 없단다.

 

해설사가 "이순신 장군 영정은 실재 인물을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니고, 탄생지도 충남 아산이 아니라 서울이며, 조선 시대 경상도는 문(門) 역할, 호남은 창고 역할을 했다”며 “'약무호남 시무국가'는 장군의 어록이 아니고, 1592년 지인(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하였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회원은 “모르고 있던 일이었다”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자리를 옮겨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던 칼은 이곳에 진열된 칼보다 더 긴 197.5cm로 보물로 지정되어 충남 아산현충사에 있으며, 명량대첩에서 쇠사슬을 사용해서 적을 물리쳤다는 주장은 '난중일기'에 기록이 없어 설화로 받아들인다"고 말하자 "몇 차례 댕겨갔지만, 껍데기만 봐서 뭐가 있었는지도 몰랐는디, 오늘 구경 한번 제대로 혔네!" 소리가 들려왔다. 

 

 

우수영 바다로 진군하기 전 휘하 장군들과 회령포 (會寧浦) 결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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