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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새옹지마
글 : /
2012.07.01 11:53:3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내 친구들 중에는 유난히 술꾼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술이 음식이냐고 우리 술꾼들을 비웃으면서 보란 듯이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술꾼들은 대체로 음식을 타박하는 까다로운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애주가는 안주 따위는 계산에 넣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세상 살면서 술꾼들끼리만 모여서 살 수는 없는 일. 어쩌다가 술꾼들 자리에 식도락가가 끼면 이야기가 곤란해지고 만다. 술도 먹지 않는 사람이 안주 타박은 더 하기 때문이다.  진안에 살던 권명길 사장이 그랬다.

 

권 사장은 비료 대리점을 경영했는데 시골 사람치고는 꽤나 멋을 부리고 살았다. 서울까지 가서 쌀을 열 가마니나 주고 맞추어 신었다는 끝이 날카로운 칠피 구두는 언제 보아도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반들거렸고, 매일 세탁소에서 갈아입는다는 바지는 손을 벨 듯 항상 칼날처럼 줄이 서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 외에는 아무리 보아도 시골 사람치고는 괜찮은 멋쟁이였다. 내가 권 사장을 알게 된 것은 비료 때문이었는데 그때 나는 개미표 라는 유기질 비료공장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엉뚱하게 또 비료장사를 하게 된 것은 사기꾼의 꼬임에 빠지기도 했지만 장관직인 때문이었다. 나는 그 나이 먹도록 장관 직인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었다. 때문에 장관 직인의 직경이 몇 센티인지 또 각이 있는지 둥근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사기꾼이 엉터리 비료공장 허가증을 갖고 나를 찾아와 투자를 요구했는데 바보 같은 나는 허가증에 찍힌 장관의 직인을 보고 두말없이 투자를 했던 것이다. ‘감히 누가 일국의 장관 도장을 위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순진함 때문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청산유수같이 쏟아내는 사기꾼의 설명에 나는 완전히 현혹되고 말았다. 

 

땅속에 있는 이 로운 미생물을 금침으로 뽑아내어 번식을 시켜 주면 산성화된 땅이라도 알칼리로 변한다는데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렇게만 된다면 돈 버는 것뿐만이 아니라 얼마나 애국적인 기업인가? 나는 누가 알까 봐 쉬쉬하면서 집을 저당 잡혀 투자를 하고 말았다. 시제품이 나올 때쯤 제일 처음 판로로 찾아 나선 곳은 진안 이었다. 진안이 판매 목표가 된 것은 인삼밭 때문이었다. 삼년 만에 뽑아낸 인삼밭은 인삼이 땅의 영양 성분을 전부 빨아들이기 때문에 황폐해져서 연작을 할 수가 없었다. 한데 우리 개미표 유기질을 사용하면 연작 장해쯤은 말끔히 해소한다고 했으니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건 당연했다. 

 

그 사업의 첫 번째 거래처가 권 사장의 대리점이었다. 처음에는 몇 번을 찾아가도 권 사장은 냉랭한 얼굴로 대했다. 헛소리 좀 그만하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몇 번이나 술자리를 권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때 나는 또 머리를 굴렸다.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다른 방도가 있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던 차에 어느 날 느닷없이 그가 먼저 점심 제의를 하였다. 웬 떡인가 싶어 따라나섰는데 엉뚱하게도 보신탕집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까지 나는 개고기를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 우물 파기’ 라 싫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시치미를 떼고 따라 들어가 마주앉았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안주 쪽은 쳐다보지 않고 양파를 안주로 술만 마셨다. “보신탕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아니지요. 그냥 속이 거북해서요.” “그래요? 나도 소주 한잔 주시오.” “술도 하십니까?” “보신탕 할 때만 한잔씩 하지요.” “그래요” 권 사장은 개고기에 미쳐 있었다. 결국 내가 권 사장을 만나 는 길은 보신탕을 같이 먹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에라 모르겠다. 보신탕도 음식 아니냐?’

 

이튿날부터는 내가 먼저 앞장서 보신탕집으로 갔다. 접근하기 어렵던 권 사장도 이번에는 두말없이 나를 따라나서 주었다. 덕분에 나도 보신탕에 이골이 나고 있었다. “라 사장,내가 보신탕 먹는 날 왜 소주를 한잔씩 하는지 말해 줄까?” “좋지요.” “역시 안주에는 술이 따라야 하거든.” 그건 술꾼들과는 반대되는 소리였다. 어쨌든 개고기 덕분에 권 사장과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얼마나 개고기를 좋아하는지 내게 설명해 주었다. 늦장가를 들었는데 신혼여행이라고 나온 것이 전주였다. 역 앞 어디쯤 여관에 들었는데 신부가 목욕하는 동안 무료해서 여관 밖으로 나왔다. 사실은 개고기 생각도 났던 참이었는데 너무나 기분 좋게 보신탕집 간판이 보인 것이다. 참새 방앗간이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딱 한 접시만 먹고 가자.” 급한 마음에 다 썰지도 않은 수육을 먼저 번개같이 입 안으로 한 점 집어넣었다. 깨소금처럼 고소한 맛이 몸살이 날 정도였다. 빨리 먹으려고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사실은 그때까지 소주를 마셔 본 적이 없었다. 한데 처음 먹는 소주 맛조차 개고기 안주 덕에 쓴맛이 없었다. 마음 놓고 소주 한잔, 수육 한 점 그렇게 소주 두 병을 비워 버렸다. 수육이 바닥이 나서 이젠 가봐야겠다고 일어나다가 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정신은 말짱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날 밤 그 탁자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엎드려 코를 골고 말았다. 이튿날 새벽 정신이 들어 여관으로 쫓아올라 갔지만 신부는 이미 가방을 싸들고 진안으로 가버린 후였다. 뒤쫓아 가 손이 발이 되게 빌고 겨우 용서를 받았지만 그날 이후 소주는 두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역시 좋은 술에는 안주지요.” 나도 권 사장 따라 개고기 맛에 흠뻑 젖어들 무렵 권 사장이 나를 초청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팔월 달에 나보고 천렵을 나가자는 것이었다. 

 

보신탕 좋아하면 그만이지 또 무슨 민물고기 매운탕이냐고 했는데 그건 내 오해였다. 역시 권 사장은 보신탕 귀신답게 개고기 천렵을 말한 것이었다. 시원한 냇가 맑은 물이 쏟아져 내리는 부귀면 자갈밭에 솥단지를 걸고 개 한 마리를 통째로 삶고 있었다. 그날 오후 우리 둘이는 하루 종일 술을 마셨다. 권 사장이야 찔끔찔끔 술을 마셨지만 나는 마시다 취하면 냇가의 찬물 속에서 텀벙대다가 다시 나와 개고기 안주로 또 마시고, 속이 빈 듯 하면 개 삶은 국물에 고춧가루 풀어서 또 마셨다. 어느새 짧은 산골의 해가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권 사장 이 쳐 놓은 천막 속에서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돌아왔다. 한데 이상한 것은 이튿날부터 엉뚱하게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면 미끌미끌 기름기가 묻어 나오는 건 그만두고라도 질질 끌리면서 힘이 없던 두 다리가 거뜬거뜬 가벼워진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아침이면 눈조차 뜨기 싫을 정도로 피곤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피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한창 기분이 좋아져 있었는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이 건강진단 이었다. 우연이었을까? 마침 친구 녀석 하나가 교육보험 지부장 교육을 받고 발령받아 왔는데, 보험을 들려면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지정병원에 가서 x-레이를 찍었다. x-레이를 판독한 의사가 슬픈 눈으로 나를 보면서 폐병이 삼기나 되었다고 했기 때문에 나와 친구는 기절할 뻔했다. 나는 너무나 억울해서 사진을 들고 평소에 알고 있던 다른 병원으로 가서 재 판독을 부탁했는데 그 곳에서는 또 엉뚱한 답을 주었다. “폐병이 분명합니다. 한데 말입니다.” “말씀하십시오.” 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말했다. “무슨 약을 먹었습니까.” “약이라니요? 걸린 지도 몰랐습니다.” “이상합니다.” “뭐가요?” “진행형이 아니라 나아지고 있거든요?” “그럴 리가?” “분명합니다.”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개고기 천렵을 하고 나서 몸이 가벼워진 증상이었다. “혹시 개고기가 도움이 됩니까?” “물론이지요. 폐병은 고단백이 필요합니다.” 나는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는 듯 시원해졌다. 

‘그러고 보니 결국 술이 내 병을 치료해 준 셈이 아닌가?’ 지금도 내 가슴속에는 동전만 한 폐병 흔적이 남아 있다. 세상만사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새옹지마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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