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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끊겨진 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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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1 18:03:5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한두 번쯤의 실수담을 갖고 있다. 그것도 애교로 봐 줄 정도라면 이튿날 서로 웃고 말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고 보면 당연히 술 취해 기억 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을 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필림이 끊겨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대개 거짓으로 시치미를 떼었다. 

 

나는 좀 이상한 체질이다. 술이 어느 정도 뱃속에 차면 취해서 흐느적거리기 전에 다시 목을 타고 넘어오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젊어서 내기를 한다고 분별력 없이 마시다가 화장실 가서 억지로 토해내던 습관 때문에 생긴 버릇이지 싶다. 처음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억지로 토해 낼 때는 무척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그것도 자주 하다 보니 어느새 습관이 되어 뱃속에 적당량이 채워지면 고통 없이 저절로 토해졌다. 그때의 기분은 막혔던 소변을 보듯 오히려 시원하기까지 했다. 속이 쓰린 기분이 조금 언짢기는 하지만 되려 정신은 더욱 또렷이 맑아지고 그 뒤부터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그 버릇 때문에 위장병이 생겨났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다른 사람들 보다는 필림이 덜 끊기는 편이었다. 그런데 딱 한 번 진실로 필림이 끊긴 적이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을 해봐도 그날 밤 내가 진실로 필림이 끊긴 건지 아니면 무슨 약물에 중독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날 오후 학다리 역에서부터 이튿날 새벽 목포까지 열 시간 가량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1976년 단풍이 곱게 물든 십일월 달쯤이었다. 그 무렵 나는 장사를 핑계로 전국을 휘젓고 다닐 때였다. 다시 말하면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대전 그리고 잠자리는 목포였다. 그날 오전에는 무안의 작은 해변 마을에 있었는데 지금은 오래되어 마을의 이름조차 잊어먹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펼쳐진 바다가 너무나 아름다웠던 기억이 생생한 마을이었다. 푸른 물이 보이는 야산 중턱에는 황토의 고구마 밭이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고, 해풍에 밀려 반쯤 기울어진 소나무들이 마치 잘 그려진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날따라 바다에는 바람 한 점 없어 잉어 비늘처럼 작게 일어나는 금빛 파도가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동화나라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엉뚱하게도 아름다운 무안의 해변 마을에 꿈결처럼 서 있었던 것은 장사 때문이었다. 몇 년 전 내가 근무했던 주정공장에서 내게 절간 고구마 납품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엔 돈이 별리는 일이면 무엇이든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던 때였다. 썰어서 말런 고구마를 절간 고구마라고 했는데 썰은 고구마를 햇볕에 말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마을이 적임지로 그 곳은 절간 고구마를 상당량 생산하는 마을이었다. 절간 고구마 사용 철은 봄이었지만  생산량이 적어 미리미리 선수계약을 해야만 했다. 

 

내가 제주도도 아닌 이곳 무안을 구매처로 결정했던 것은 수년 전 주정공장에 근무할 때 이곳에 와서 절간을 구매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 이장님과는 구면이었는데 목포의 송화양조 현사장님의 소개로 알았었다. 몇 년 만이지만 이장님은 반색해 주었다. 내가 인사치레로 가져간 작은 선물을 내놓자 이장님은 너무 기뻐하면서 점심상을 내오라고 독촉했다. 

 

마침 시장기를 느끼고 있던 나는 몹시 반가웠지만 막상 점 심상을 대하고 보니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아무리 급히 차린 밥상이라고 해도 너무하다 싶은 게 무김치 한 사발에 달랑 밥그릇 두 개가 덩그러니 올라 있었다. 더구나 술 좋아하는 사람이야 제아무리 잘 차려진 처갓집 잔칫상이라도 술이 없으면 김빠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아직 멀 되었는가?” 마지못해 수저를 드는 나를 보고 이장님이 사람 좋게 웃더니 부엌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국 그릇 정도겠지 생각하고 시답지 않은 표정으로 부엌문 쪽을 바라보던 나는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이장 아주머니께서 양손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바가지를 하나씩 들고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서둘렀더니 잘 익었는지 모르겠네요.”내 눈이 번쩍 뜨였다. 누렇게 익은 동동주였다. “마누라가 제주도 사람이라 조껍데기 술을 담근 모양이오.”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술 바가지 하나를 받아들었다. 어서 목이나 축이시오.”목줄기를 움찔거리면서 침을 삼키는 내게 이장님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새삼 갈증이 오는 것이 어젯밤부터 한모금의 술도 하지 못한 판이었다. 입으로 가져가는 바가지 속에 내 얼굴이 덩실 떠올랐다. 꿀쩍-.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길게 숨을 멈추고 큰 입으로 마셨다. 참 좋은 향기였다. 언제나 술이 고플 때는 술의 향기가 더욱 유난스럽게 코를 자극했다. 단숨에 한 바가지를 비운 나는 이장님이 하는 대로 이파리가 매달린 채 통째로 담근 총각김치를 하나 쳐들고 밑에서부터 한입 성큼 베어 물었다. 술이며 안주며 맛이 그만이라는 소리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다시 떠다 주는 조껍데기 술 한 바가지에 총각김치 한 덩이 또 술 한 바가지 그날 나는 이장님의 술독 하나를 완전히 거덜냈다. “다시 담그면 그만이지요.” 설마 내가 한 독이나 마실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이장님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온몸으로 근사하게 퍼져오는 술기운 때문에 이장님에게 미안함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실로 그때까지 나는 멀쩡했다. 오히려 술술 말도 더 잘 나와 이장님에게 넉살좋게 떠들어서 이듬해 절간 고구마의 전량 수매 계약의 약속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 기분이 한껏 부풀은 나는 기세 좋게 일어나 이장님과 하직을 하고 기차를 타기 위해서 학다리 역으로 나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열린 차창으로 불어오는 들판의 바람이 너무 시원했다. 뿐만 아니라 조금씩 더 취해 올라오는 것이 노래라도 한 소절 부르고 싶게 기분이 좋았다. 먹을 때와 달리 자꾸 취기가 올라오는 것이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넘치면 넘어오는 내 평소의 버릇 때문에 나는 별로 불안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실수였다. 분명히 학다리 역에서 기차표를 사서 익산행 열차에 올랐는데 이튿날 새벽 내가 눈을 뜬 것은 엉뚱하게도 목포 오거리 가로수 다방 옆 전선주 아래였다. 전선주 발걸이에 바바리 코트를 얌전히 걸어놓고 신발까지 벗어 모아 놓은 채 전선주에 등을 대고 잠을 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나는 상행선 기차를 탔는데 왜 엉뚱하게 하행선 쪽의 목포에 와 있을까? 일어나 보려고 기를 썼지만 봄이 말을 듣지 않았다. 때맞춰 내린 첫눈이 어깨며 머리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 왔지만 오히려 머릿속은 더 개운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술이 취해 상행선을 탄다는 게 그만 마침 교차하는 하행선으로 올라탄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목포역에서 걸어나온 기억이 나지 않은 것은 웬일일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면 분명히 나는 방에 들어가 코트를 벗은 듯싶은데 내가 전선주 밑에 널부러져 있는 것도 알 수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사람 살려.”입이 굳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오-. 통금 해제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그날 경찰관의 도움으로 병원 신세까지 지고 간신히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때 얻은 동상으로 꽤나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그러다 보니 해변마을 이장님과의 절간 고구마 수매 계약도 이행하지 못했고, 미안한 마음에 다시 그 마을에 가보지도 못했다. 하룻밤 끊긴 필름의 대가는 너무 컸다. 그 후 여러 번 그날 밤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알 수가 없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그 긴 시간 동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또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기차에서 내리고 기억에 남았던 가로수 다방 쪽으로 걸어가고 하는 무의식의 행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인지 답을 낼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목포 오거리가 생각나면 꼭 한 번 그때의 미로를 되짚어 끊긴 필림의 비밀을 캐어내고 싶지만 마음뿐이어서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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