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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미팅이라는 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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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4:10:1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술은 마실수록 주량도 늘고 또 취할수록 마음이 허황되게 부풀어 올라 허풍스러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술 먹은 개라고 했던가? 나도 젊어서부터 술을 많이 마시고 나면 간덩이가 부어올라 겁없는 짓을 많이 했다. 덕분에 엉뚱한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고 남에게 눈살을 찌뿌리게도 했다. 잘 구워진 삼겹살에 소주 몇 병을 곁들여 마시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것도 없이 두 주먹에 불끈불끈 힘이 잡히면서 무서운 것이 없어지고 만다. 마주 오는 젊은 사람과 이유없이 어깨를 부딪쳐 힘 자랑을 해보는 호기도 부려 보고, 괜한 사람 아니꼽게 째려보는 못난 짓도 해보았다. 어디 그뿐인가? 그러다가 시비가 붙으면 책임지지도 못할 황당한 소리로 공갈을 치고, 겨우 이름밖에 모르는 높은 사람을 ‘빽’ 이라고 불러대고 소리소리 지르는 허풍도 떨었다. 나뿐만 아니라 술꾼들이 흔히 하는 짓이다. 사람 따라 다소 의 차이는 있겠지만 술자리에서는 턱도 없는 허풍을 떨어대고, 쳐다볼 수도 없이 높은 친구들도 그냥 안주로 씹어대고 만다. 술이 깨고 나면 기억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추궁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라는 사람도 없어서 술꾼들의 허풍은 계속되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제법 큰 술집에서 대접이 소홀하다고 큰소리를 쳤더 니 “네 까짓게 뭔데 까부느냐.”고 비웃었다. 공갈을 친답시고 내가 앞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할 사람이라고 했더니 한술 더 뜬 술집 마담이 진짜 국회의원이 오셨다고 마이크에다 불어대서 경찰서장까지 불러낸 희극이 있었다. 황급히 쫓아나온 서장은 술 취한 우리를 보고 관명 사칭 어쩌고 했지만 멋쩍게 그냥 돌아가고 말았기 때문에 서로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맛을 들인 나는 그 후에도 걸핏하면 관명 사칭을 했는데 과부 두 명과 카바레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결국 파출소까지 끌려간 사건이었다. 친구 중에 성춘이라는 춤쟁이가 하나 있었다. 잡기에 별 재주가 없는 나는 춤에도 역시 소질이 없었다. 아무리 감각이 둔하다 해도 배우면 못할 것도 없었겠지만 춤 배울 시간 있으면 술이라도 한잔 더 먹으려고 기를 쓰고 살았기 때문에 못 배우고말았을 게다.친한 친구였지만 취미가 달라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어느날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다. 웬일인지 녀석은 이주 반갑게 나를 끌어안더니 다짜고짜 택시 안으로 끌어 넣었다. 마침 낮술에 얼큰해 있던 나는 영문도 몰랐지만 녀석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둔 것은 택시 속에 미리 앉아 있는 여인들 때문이었다. 술 취한 눈으로 봐서인지 삼십대 중반인 그녀들은 잘 빠진 몸매에 꽤나 미인들이었다. 

 

“어디로 가는 거냐?” “따라오면 안다.” 택시는 시내를 벗어나 종알같이 달렸다. 옆에 탄 두 여인이 나를 힐끗거렸지만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라 나는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려가서 택시가 멈춘 곳은 엉뚱하게도 관광지에 있는 카바레 앞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카바레 라는 곳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해서 망설였는데 억지다시피 녀석이 나를 끌고 들어갔다. 벽 하나 사이로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천정엔 빨간 조명이 별이 뜬 것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지만 실내는 밤처럼 어두웠다. 어둠에 눈을 익히느라 한참 동안을 멍하니 서 있었다. 둘씩 둘씩 짝이었다. 부둥켜안은 남녀들이 물결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성춘이가 내 등을 밀었다. 둘 중 한 여인이 마치 

갈증난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춤 못 추는데.” 나는 죄진 사람처럼 더듬거렸다. 

“임마 춤도 못 추는 놈이 왜 따라왔어?” “언제 물어봤어. 새꺄?” 

 나는 분통이 터졌다. “하, 나 참 미치겠군.” 녀석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임마, 임무 교대하자” “어떻게.” “네가 추고 나는 마시자.” 

“그렇게라도 해보자.” 

녀석이 두 여인을 번갈아 춤을 추는 동안 나는 쉬는 여인들과 마시다 보니 쉴 틈이 없었다. 처음에는 조명의 불빛이 돌더니 어느새 천정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도는 눈으로 자세히 보니 사교춤이라는 것도 별것이 아니었다. 나는 마시던 술잔을 놓고 벌떡 일어나 여인의 팔을 끌었다. 

“못 춘다면서요.” 여자가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까짓거 블루스 아닙니까?” “맞기는 한데 .....”  

그녀가 더듬거리면서 일어났다. 나는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그녀를 끌고 사람들 물결 속으로 들어가서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때쯤은 부어오른 내 간덩이로 겁날 게 없었다. 그녀의 하체에 내 몸을 밀착시키면서 비벼댔다. 뜨뜻해 올라오는 그녀의 체온에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블루스에 미치는 이유를 알듯했다. “가자.” 이번에는 성춘이가 나를 붙들고 사정했다. “임마, 이제 열 오르는데 어델가?” “길이 멀다.” 

나는 미련이 남았지만 녀석이 억지로 끌어내서 할 수 없이 카바레를 나왔다.  스톱- 성춘이가 급히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군산까지 갑시다.” “통금에 걸릴 시간이라 못 갑니다.” 

“이봐 기사, 나 기관원인데 걱정 말고 달려.” 나는 반말로 빠르게 말했다. “정말입니까?” 

“이 친구 속아만 살았나? 척보면 몰라?” “알겠습니다. 택시비나 따불로 주십시오.” 

“알았으니 달리라구.” “네. 모시겠습니다.” 택시가 총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춤도 못 춘다고 비웃던 그녀들이 새삼 존경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스르르 졸음이 몰려왔다. 

끽. 얼마쯤 달렸을까? 택시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졸음에서 깨어났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기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이봐, 경찰관?” 나는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네. 말씀하십시오.” 

“나 기관원인데 지금 미팅 시간이 바빠.” 

“무슨 시간이요.” “미팅.” “허허허. 당신 그 소리 어디서 들었어?” 

“기관원이라니까?”  “당선 좀 내려야겠어.” 

‘어라 이상도 해라. 미팅 소리만 들어도 알아서 긴다고 했는데.’ 

“빨리 내리라니까.” 이번에는 경찰관이 반말을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더니 두 다리도 조금씩 떨려오고 있었다. 

“미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과부하고 하는 미팅이야?” 

“어렵쇼.” 판은 이미 글러버렸다. 어느 놈이 나보다 먼저 저 경찰관에게 써 먹었나보다. “당신 증명서 좀 내 봐.”  

“안 가져왔는데요.” “이 자식 간첩이구먼.” “아이고 아닙니다. 선량한 시민이리구요.” 얼굴이 하양게 질린 성춘이가 경찰관에게 매달렸다. 

“임마, 미팅이라는 암호는 간첩들이나 쓰는 거야.” “어? 그게 아니었는데.” 

 

언젠가 무소불위의 기관에 있는 문관 녀석과 저녁을 먹었는데 그 녀석 말이 검문 따위는 자기 기관에서 쓰는 암호인 미팅이라는 소리 한마디면 알아서 긴다고 떠들던 소리를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새벽 간신히 풀려 나오면서 지서장에게 훈계를 들었다. 

 

“관명 사칭에 공갈까지 하면 당연히 구속감이지만 나도 술먹는 사람이라 술 취한 허풍으로 알고 내 주는 것이니 앞으로는 술을 마시더라도 헛소리는 하지 마시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내게 엉터리 암호를 가르쳐 준 문관녀석에 욕을 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대책도 없이 술을 빙자해서 관명 사칭을 했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잘못 끝낸 미팅이라 속은 더욱 쓰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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