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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성 그리고 최고의 의술로 당신의 무릎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글 : 이화숙(자유기고가) / lila3006@hanmail.net
2012.05.01 12:21:4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사람을 평할 때 어떤 이는 그의 사람됨을, 어떤 이는 그의 선행을 그리고 어떤 이는 그의 실력으로 평을 한다.  기준과 관점은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을 얘기할 때 그 사람이 제일 잘하는 장점에 대한 평가에 긍정적이고 진심으로 경외감을 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산소망정형외과 한창환(49) 원장을 평가하려면 그의 무릎관절수술 실력과 연구 자세이다. 누가 뭐라 해도 한 원장은 그런 칭찬을 들을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12월 미국 ABC 방송, 조선일보등 국내외 언론이 크게 주목한 의료수술이 하나 있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한 미국인 여자를 가톨릭대 대전 성모병원에서  성체(成體) 줄기세포로 이식수술을 실시해 마비된 하반신에서 감각을 느끼게 하는데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골수나 탯줄의 혈액 속에 남아있는 미량의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이 방식은 수정란을 파괴하거나 복제방식이 아니란 점에서 각광을 받은 동시에 과학적 검증 절차 등으로 다소 논란이 있었으나 미국 일본등지에서 우리나라 의료기술수준이 한 단계 높음을 인정하는 그런 수술이 되었다.  바로 그 성공적 수술을 이끈 의사가 한창환 원장이었던 것이다.  2006~2007년 정형외과 관련 해외논문 국내 최다게재기록 보유자,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마르퀴즈 후즈 후 인명사전 등재, 가톨릭의대 졸업 의학박사, 성모병원정형외과 전공의, 강남성모 대전성모 병원교수, 미국피츠버그의대 관절염 교환교수, 대한 정형외과 학회 정회원, 미국정형외과학회 외국 회원 등 그의 약력에 붙은 많은 이력은 그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구하며 살아왔고 관련 분야를 이끄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다.  무릎관련 권위자임에 경외심을 가지고 찾은 한 원장은 그러나 자신은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낸 소년이었음을 강조하는 다정한 미소를 지닌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차남 그러나 언제나 공부가 좋았다.

한 원장의 기억 속에서 어린 시절은 몇 가지의 흑백 필름처럼 애수에 어린 또렷한 추억 같은 상처의 몇 장면이 있다.  1973년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던 옥산면 지곡리(지금의 은파유원지 근처)에 살면서 걸어서 1시간30분의 등교 길을 마다 않고 교대부속초등학교(현 교대부설초교) 에 다녔을 때의 기억이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새로 군산교대부속초등학교가 개교하자 그의 어머니는 형과 동생이 있는데도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만 다닌다는 그 학교에 한원장만 전학시켰다.  전에 다니던 신풍초교에서 60여명정원에 10여등을 하던 한 원장은 그러나 부속초등학교에서 시험을 보자 하위권으로 밀려나 ‘학습부진아’ 판정을 받고 말았다.  1시간30분 걸리는 등굣길에다 하교할 때는 친구들과 노느라 3시간이나 걸려 집에 도착하면 이미 어두워져 전깃불이 없던 가난한 집안의 소년 한창환은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 이유였다.

 

담임선생님은 그 ‘학습부진아’들에게 남아서 공부하라고 명령했고 그런 후 1주일 지나 산수시험을 실시했다.  그는 당당히 100점을 받았으나 친구들이 있는 가운데 담임선생님에게 불려나가 칭찬은커녕 뺨을 맞아야했다.  베끼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가난한 집 아들일수록 공부를 더 열심히 하여 그것이 자신의 실력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 그는 그 누구보다도 성실히 노력하는 학생이었고 누구나 인정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  특히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소년 한창환은 3가지 의미 있는 일을 겪는다.  어린동생의 죽음과, 집에 전깃불이 들어온 점, 그리고 자전거가 생긴 것이었다.  어린 동생의 죽음은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그의 꿈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밝은 전깃불아래서 자전거 덕으로 단축한 등하교길 시간을 그는 모두 공부하는데 할애했다.  이런 성실한 공부 덕에 그는 군산고등학교에서 대학을 진학할 무렵에는 전교1~2등을 놓치지 않았고 어린동생의 죽음 앞에 스스로 약속했던 의사가 되기 위해 가톨릭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집은 가난했지만 꿈이 있었고 그의 잠재력을 믿어준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는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가톨릭의대에 진학한 후에도 장학생이 되지 못하면 학교를 그만두어야하는 사정 때문에 1분의 시간도 함부로 쓰지 않고 공부한 덕에 한 원장은 의대 1등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공부를 해야만 했고 그 공부 속에서 그는 성실히 자신의 길을 차곡차곡  걸어 나갔던 것이다.  “몇 일전 초등학교 모교에서 학생기자단이 인터뷰를 왔더군요.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느냐는 질문에 4학년 때 ‘학습부진아’였던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였죠. 학교 성적 땜에 자기 꿈을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차라리 요즘은 장학제도 등이 많아서 가난 때문에 공부기회를 잃는 경우는 없기 때문 이지요”

 

 

 

보호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관절경 수술 ‘최고와 최선에 자신감’

한원장의 병원 수술실은 세계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넓은 수술실은 환자 뿐 만 아니라 보호자도 같이 들어와 수술 장면을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실력을 갖춘 의사라 할지라도 수술 그 자체엔 긴장을 안 할 수 없다.  한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원장은 환자의 수술현장을 지켜볼 권리를 보호자에게 최대한 보장하고 싶다.  의료사고 등이 발생할 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의료계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해 보고자하는 의도이다.  또 한편으로의 그의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한 원장은 3대의 모니터를 작동한다. 한원장이 보며 수술하는 모니터, 환자가 자신의 수술을 볼 수 있는 모니터 그리고 보호자용 모니터가 작동한다.  관절경을 통해 수술하는 장면은 계속 클로즈업해야하는 카메라 특성상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의 고가의 장비를 갖추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고 특히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한 점의 실수도 용납되기 않는 현장이 된다.  그런 공개를 통한 한원장의 보호자 권리를 최대한 인정하고 실천하는 행위는 결론적으론 곧 환자와 보호자의 입소문을 타고 병원의 호감도를 결정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환자용과 보호자의 모니터를 갖추고 수술하는 병원이라는 입소문이 개원 1년밖에 안되는 빠르게 저희 병원을 시민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듯합니다.”  한원장은 대학시절부터 언젠가 개인병원을 개원한다고 하면 꼭 고향 군산에서 하고 싶었다.  노모가 홀로계시는 고향이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공부 하나에 매달려 꿈을 가꾸고 성장하였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서였다.  개원계획을 세우자마자 교육학을 전공한 그의 아내 이지숙씨는 간호조무사자격증을 땄다.  항상 그의 곁에서 응원하며 병원에서 가장 힘든 허드렛일을 도우며 그와 함께 길을 가고 있다.  “고향 분들이라 그런지 환자로 오시는 분들마다 꼭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 듯한 사람들처럼 느껴져요. 어머니 같고 형님 같고 누이 같은, 정겨운 분들의 무릎을 고치고 치료하는 일에 저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최고의 의술보다 최상의 결과를 추구 한다

인간의 수명 평균100세의 시대.  이제 무릎수술은 70세에 이르면 거의 95%의 사람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다.  한 번의 인공관절 무릎수술은 최근의 기술을 적용하면 20년 이상 사용을 지속할 수 있다.  부모가 준 무릎으로 70세까지 제2의 인공관절로  인간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인간은 걷고 운동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스키나 인라인스케이트 축구 등 스포츠를 즐기다 관절에 손상을 입는 젊은 층도 많습니다.  다친 후 가만히 있어도 아프거나 계단 오르고 내리기가 불편할 때 통증의 심해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등은 꼭 전문의사의 진료를 받아봐야 하며 심하면 수술하는 방법을 선택하면 됩니다.  최근에는 아주 조금만 절개하는 최소 수술법이 있어  수술 다음날부터 다리운동을 하며 휠체어를 타고 외출이 가능하고 2주가 지나 보행훈령을 실시하여 충분히 보행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퇴원할 수 있습니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나면 일상 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한 원장은 병원에서 주로 24시간 생활하려한다.  환자의 곁에서 가족처럼 돌보고 싶은 그의 진료습관이다. ‘최고의 의술보다는 최상의 결과를 추구 한다’는 한 창환 원장의 얘기는 자신이 최고의 의술을 가지고 있지만 그 보다 더 이상의 정성과 사랑으로 환자를 돌보겠다는 열정의 소리였다. 

 

한창환 원장이 권하는 수술 후 환자에게 좋은 클래식

1. 비발디 -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중 제1곡 ‘봄’

2. 하이든 - 현악4중주 제17번 F장조 ‘세레나데op.3-5

3. 베토벤 -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op.61

4. 멘델스존 -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한창환 원장이 권하는 무릎에 좋은 식습관 

1. 식사량 감소 (체중5Kg 줄이면 50% 이상개선효과)

2. 달걀, 마늘, 양파 섭취

3. 쌀, 밀, 호밀

4. 파인애플(통조림과 냉동된 파인애플 제외) 

 

소망정형외과의원

전북 군산시 수송동 827-15 3층 

 (063)465-7975

www.somangos.com

평일 오전9시~오후7시  / 토요일 오전9시~오후1시, 일&공휴일 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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