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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치성을 드리는 기독교
글 : 이진우 /
2021.02.01 10:48:13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하나님께 치성을 드리는 기독교

남 대 진

 

한해에 딱 두 번 양대 명절에나, 순 쌀로만 지은 쌀밥을 먹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흘에 어머니는 집 앞 농로 다리목에 가서 알 수 없는 어느 신에게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렸다.

깨끗하게 정리된 볏짚을 깔고 그 위에 순 쌀로 정성스럽게 찐 백설기 떡과 무로 끓인 나물국 그리고 정화수를 떠 놓고 두 손 모아 간절히 또 간절히 치성을 드렸다.

물론 간절한 어머니의 바람은 남편을 비롯한 자식들, 온 가족이 무병장수하고 자손은 복을 받아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그 시절에 모든 부모의 바람은 자식의 건강과 출세였을 것이다. 그 목적을 이루어 줄 대상은 오직 본인이 의지하는 어느 이름 모를 신이었다. 그러나 정작 어린 우리는 어서 치성드리는 일을 마치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백설기를 먹을 시간이 되기만을 치성드리는 어머니 마음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일 년여를 보내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독교의 속살이 훤히 드러나고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기독교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십계명 중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은 조상에게 절을 안 하고, 산소에 가서도 절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성경 출애굽기 205절에 나오는 내용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절하면서 제사 지내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우상 숭배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의 처지에서 이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상 숭배금지라는 계명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할 때 태양신을 섬기는 이집트의 문화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의 옛 신전 터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돌기둥 오벨리스크(obelisk)는 태양신(the Egyptian's sun-god Ra)을 섬기는 상징이다.

그런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곳에는 또 다른 신들이 있다. 가나안의 대표적인 신은 농토를 주관하는 바알과 그의 아내인 아스다롯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알을 숭배하게 될 것을 염려하셨다.

그래서 반복하여 가나안에서의 우상 숭배 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유치하게 자신만 섬겨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우상을 숭배하고 치성을 드리고 제물을 드려도, 그 섬기는 우상이 절대로 복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쓸데없는 헛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 형상 앞에 제물을 바치고 지극정성을 다하여 치성을 드린다.

그러니까 우상 숭배란, 많은 복을 받아서 무병장수하고, 자녀가 복 받고, 농사가 잘되어서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바람을 가지고 신을 섬기는 행위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주일마다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할 때, 밤마다 새벽마다 엎드려 간절히 기도할 때, 열심히 헌금을 할 때, 길거리에서 열심히 전도할 때, 심지어 기독교 신앙인으로 사는 이유가, 자기가 모시는 하나님이라는 신 앞에서 치성을 드리고, 잘 보이고 점수 따서 감동을 주는 대가로 복을 받겠다는 것은, 치성의 대상이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상 숭배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절을 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 중요하다. 조상의 제사상 앞에서 큰절하며 우리 후손들을 굽어살피시고 복을 주소서라는 바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조상신을 감동하게 하겠다는 것이라면 그런 절은 우상 숭배가 된다.

 

집합 예배를 못 하느니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라면, 최소한 이만큼의 헌금은 해야 복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라면, 최소한 하루에 몇 시간 이상은 기도해야 복을 받는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우상 숭배와 다르지 않다. 그저 복을 받기 위해서 치성을 드리는 것뿐이고 대상이 하나님이고 장소가 교회당일 뿐이다.

그런데 심지어 목사가 강단에서 그것만을 강조한다면, 설교라는 행위를 빌려서 하나님이라는 우상 앞에 치성을 드려야 복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치성으로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지 말고, 헌신과 나눔과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라.

이것이 바른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전락시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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