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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기가 서린 활터 ‘진남정(鎭南亭)’
글 : 이진우 /
2021.12.01 15:52:3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민족정기가 서린 활터 진남정(鎭南亭)’

군산시 궁도협회장 윤백일 사백(射伯)

 

글 오성렬(主幹)

 

 


 

 

활쏘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고대 중국과 변방국들은 우리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했다. 동쪽의 큰 활을 쏘는 민족이라는 뜻으로, 이에서 활 궁()에 큰 대()로 이루어진 이()자를 붙인 이유를 알 만하다. 평안남도 고구려 고분 벽화의 수렵도에서도 활을 당기며 호랑이, , 사슴 등을 쫓는 기마인물이 그려져 있고, 고려 말 최무선이 개발하여 세종 때 사용된 로켓추진형 화살인 신기전이며 임진왜란 해전을 비롯하여 온갖 전장에서 전투장비로 사용되었던 활은 우리 민족과 떼래야 뗄 수 없는 국가적 주력 무기였다. 따라서 근대에 와서도 이 활은 민간에서도 민족혼이 담긴 전통 무예로써의 궁도(弓道)로 승화, 전승 노력을 기울이게 됨에 따라 전국적으로 궁도장이 설치 운영되는 가운데 올해 들어 궁도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군산 진남정(鎭南亭)

진포(鎭浦)의 남쪽에 자리한다는 이름의 진남정, 군산 최초의 활터 진남정은 지역 유림들과 유지들의 발의에 따라 일제 강점기이던 1921년도 경암동 경포천 주변에 건립되었다. 1924526일자 조선일보 기사 중 군산 남양정(南陽亭)주최로 은적사에서 궁술시합을 개최한다는 내용이 있고, 2003년도 오식도로 임시 이전하면서 진남정 현판을 내리던 중 두껍게 쌓인 현판 뒷면의 먼지를 털어 내자 진남정의 글씨체와 똑 같은 남양정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히 드러나 놀라움을 준바 있는데 이로 보아 원래의 이름이 남양정이었을 것이라는 설, 남양정과 진남정을 혼용하여 썼다는 설 등이 있으나 확인된 바 없고 일관되게 진남정으로 맥을 잇고 있다.

 

경포천에서 오식도로 급히 이전한 것은 하천 범람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으로서 진남정은 약3년 정도 오식도에서 머물다가 1928년도 군여고 뒤 월명산 경사지로 이전했다. 하지만 부지 자체가 사유지인데다가 인근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잦은 민원 발생으로 2006년도 들어 다시 이전을 추진하면서 월명산기슭 78년의 애환 어린 역사를 끝내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부지 선정에 있어 활터의 특성상 일정한 면적의 확보가 필수 요건이어서 애로를 겪던 중 지금의 개정면 발산리 최호 장군 유적지(전라북도 기념물 제32)동편에 부지를 마련, 철근콘크리트조 2층 건축물로 지붕 등에서 전통 목조건축물 형태를 갖추고 남북축으로 사()거리 150m이상이 조성됨으로써 면모를 일신하게 되는데 이는 군산시와 최호 장군 후손들의 협조가 수반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산시 궁도협회장으로서 2019. 1월 진남정의 제38대 사백(射伯)으로 선임된 윤백일 씨는 법무부 소속 공무원으로 취미로 즐기는 서예도 수준급이거니와 전통가락 등 우리 민족의 기예 계승 보존에도 남다른 열정을 가진 인물로 알려진다. 진남정이 월명산 기슭에 있을 때인 2002년도 처음으로 활을 잡은 뒤 그 매력에 빠져 누구보다 열심히 궁술을 단련했다는 윤 사백, 궁도인으로써 진남정과 애환을 같이 해온 산 증인이기도 한 그는 중국의 무예 중심이 창()이었고, 일본이 칼()이었다면 우리는 활()이 중심으로서 민족의 뛰어난 전통무예라는 자긍심을 갖게 하며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심신단련에 최적의 스포츠라고 힘주어 말한다.

 

현재 전국에는 약 300여개소의 활터가 있으며 전북에만도 20개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보통 시, 군별로 1개소인데 반해 고창의 경우 4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유물이나 기록 자료가 제일 많은 곳은 군산이다. 1935년도 호남 7(강경/德游亭, 군산/鎭南亭, 황등/建德亭, 정읍/必也亭, 김제/紅心亭, 이리/觀德亭, 부안/審固亭)경기대회 및 19719(황등/建德亭, 군산/鎭南亭, 이리/裡和亭, 김제/紅心亭, 부안/審固亭, 정읍/必也亭, 태인/涵碧亭, 칠보/感雲亭, 신태인/映湖亭)친목경기대회에서의 우승기, 우승컵을 비롯하여 전국선수권대회 등 많은 대회에서의 개인전, 단체전 입상 자료들, 건물 내,외부에 설치된 진남정 관련 기록들, 윤 사백의 친필로 목판에 새긴 진남정 이전기’(鎭南亭 移轉記)등이 이를 말해준다.

 


 

 

활쏘기의 기원

 

본래 북방계 기마민족으로서 활을 이용하여 전쟁과 사냥에 능했던 우리 선조들은 삼국시대 들어 활쏘기 실력이 관료 선발의 기준이 될 정도였고 조선시대 무관을 뽑는 실기시험에서도 말 타기와 활쏘기가 중요한 과목으로서 국가적 차원에서도 활쏘기를 우대하고 장려했다. 역사적 명궁으로는 태조 이성계와 정조대왕, 충무공 이순신을 꼽기도 하는데 정조대왕의 경우 50발 중 49발을 명중시키고 1발은 일부러 과녁 밖에 쏘는 겸손을 보였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예부터 우리 활의 우월성은 중종 조에 정윤겸이 왜구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왜구의 화살을 맞은 우리 군사는 부상자 하나 나지 않은 반면, 왜구 쪽은 갑옷을 입은 자가 50명인데도 맞는 즉시 즉사했다는 기록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활쏘기의 원리

 

활은 탄성(彈性)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뀌면서 화살을 날려 보내는 원리로 탄성에너지가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사()거리의 차이가 있으며 활의 종류에 따라서도 사거리와 파괴력에 차이가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전승되어온 우리나라의 활은 양궁이나 일본 활에 비해 크기가 1m 이내인 단궁 형으로서 현대 들어 전통적 각궁(角弓)과 탄소 재질인 개량궁으로 나뉜다.

 

각궁의 경우 나무와 물소 뿔 및 쇠심줄, 대나무, 뽕나무, 신우대, 버드나무 껍질, 민어부레풀 등 천연재료만으로 만들고 꿩깃대를 끼운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장력이 뛰어나며 최대 사거리 300m, 유효 사거리는 145m 내외에 이르는데다가 파괴(살상)력도 양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함으로써 일찍이 이를 창안하여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하겠다. , 각궁은 우수한 성능만큼이나 난이도가 다소 높은데다가 숙련기간이 더 소요되고 가격도 개량궁의 2배 이상인 50~70만 원 선이어서 개량궁에 비해 수련자가 적으나 전국체전에서는 각궁 한 종목으로만 심사한다.

 

이에 비해 개량(카본)궁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규격품으로서 널리 대중화되고 있는 종목이다.

활은 제조업체마다 당기는 한계점을 표준화시켜서 출고하고 있는데 실질적 가용 파운드는 사용자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으며 일반적인 경우 15P(파운드)~18P는 초보자, 40P~48P는 여성, 성인의 경우 45P~60P가 적합하다. 개량궁은 가격대도 25만 원 내외로 각궁의 절반 수준인데다가 다루기가 쉬워 초보자에게 적합하고 전체 회원 중 70%정도가 애용하고 있다. 화살은 대체로 1개 가격이 각궁의 경우 3만 원, 개량궁 만원 내외다.

 


 

 

활을 잡은 뒤 골프장 발을 끊었습니다

 

진남정의 지도사범으로서 학자의 풍모가 엿보이는 강전범 씨는 경력 15년차로 탁월한 직관력과 세심한 지도력으로 회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는 입문 당시 골프 마니아였지만 활을 잡은 뒤 골프가 시시하게 느껴져 골프장 발을 끊었다는데 이에 공감하는 회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활쏘기의 매력이 짐작되기도 한다.

 

취재차 갔던 날 윤 사백과 강 사범은 필자에게도 체험을 권유하여 난생 처음 활을 잡아봤다.

사대(射臺)에 서 보니 145m 멀리 설치된 세 개의 과녁이 아스라하다. 활을 잡는 자세며 손가락 쥐는 법, 화살을 끼우는 법 등을 간단히 지도 받고 시위를 당겨봤는데 생각보다 팽팽하다. 팔 힘이 약한 사람은 당기기가 만만치 않을 법하다. 필자는 평소 운동으로 팔 힘을 유지해서인지 두세 번의 시도 끝에 시위가 당겨졌다. 물론 초보자인 만큼 파운드가 약한 활이었지만 팔에 가해지는 긴장감으로 약간의 흔들림이 제어되지 않는다. 이윽고 시위를 놓는 순간 화살은 눈 깜짝할 새 허공을 가로질러 145m과녁 앞에 떨어진다. 그야말로 활쏘기의 매력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누구라도 과녁에 화살을 명중시켰을 때의 성취감과 통쾌감은 그 어느 것과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크리라는 생각이다.

 

진남정 회원으로 입문한 초보자는 보통 15P 활부터 시작한다. 통상 입문한지 1~3년 사이 실력이 늘면서 재미에 빠지게 되는데 이 기간을 못 견디고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진남정의 현재 회원은 60여명 정도로서 40~50대가 대세인 가운데 여성이 25%, 70세 이상도 3명으로서 부부가 함께 하기도 한다. 특히 옥구초등학교 5학년생인 이기원 군은 활쏘기에 입문한 순간부터 재미에 빠져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하고 소질을 보임으로써 윤 사백과 강 사범으로부터 칭찬이 대단한 가운데 장래를 촉망받고 있다. 수련 경력과 실력으로 나뉘는 단위는 1단부터 9단까지로서 군산에는 62명과 여성 31명이 있으며 5단 이상 중에 부여하는 명궁 칭호자도 1명 있다.

 

 

문호 개방 및 학생들 체험교육장 추진

 

윤 사백은 진남정은 시민 모두의 것이라면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향후 학생들의 체험교육장으로 활용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민족의 전통무예로써 전국체전의 종목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의 심신단련에 더없이 좋은 운동이기 때문이다. 다만 평상시 시, 도 대회 유치의 어려움으로 상금 지급 등에 있어 자체 재정이 열악한데다가 시에서 관련 예산 확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진남정 사원(射員/(회원)) 가입에 있어 특별한 자격 제한은 없다. 기초를 익히고 3개월이 되면 궁사로서의 통과 의례인 집궁례(執弓禮)를 치르는데 이때부터 정식 사원 등록의 자격을 갖는다. 회비라 해봤자 남성2만원, 여성1만원이다. 다만 입회 당시 20만원(고령자 및 여성/50%)의 입회비를 납부해야 한다. 수련에 따르는 활 등 모든 장비와 지도는 무상으로 제공 받을 수 있으며 일정 기간 기초를 익히고 나면 따로 개인 장비를 구입하는 게 보통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취미거리도 많지만 활쏘기야말로 스트레스와 공해에 찌든 현대인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운동이 아닌가 한다. 우선 부지부터 시내에서 15분 내외 거리이면서 외곽의 공기 좋은 숲 안에 위치하고 있거니와 적은 비용으로 심신수련과 더불어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고 좋은 분들과 인맥을 넓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련 시간은 평일은 저녁, 토요일은 오후, 일요일은 종일 가능하다.

 

진남정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최호 장군 유적지 옆

T.063)452-8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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