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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함박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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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1 18:28:43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한잔 술도 못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마시는 술처럼 분위기 없고 따분한 자리는 없다.  술 먹는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술대접한다고 사람 초대해 놓고 자신은 건강 때문이라면서 콜라나 홀짝거리고, 남이야 머리가 깨지든, 배에 펑크가 나든 많이 마시게 하는 것이 대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제아무리 술에 미친 사람이라 한들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전의 송 영감과의 자리만은 털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일부러 내가 찾아가 술자리를 만들기까지 했었다.  나보다 한 이십 년쯤이나 연상이었는데도 나만 만나면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술자리로 나를 끌었다. 그 렇다고 자신이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술을 사 주겠다는 후한 인심 이었을 뿐이었다.  언제나 술값도 영감이 지불했기 때문에 나는 번번이 공짜 술을 마셨다.  연령 차이도 있고 다소 미안한 마음도 들기는 했지만 우리는 서로 죽이 맞았기 때문에 거래상이라는 핑계를 대고 나는 대전으로 영감을 자주 찾아갔다.

 

영감과의 인연은 Ash 때문이었는데, Ash는 1974년쯤에 내가 설립한 삼기개발(三起開發)에서 취급하던 방수시멘트에 들어가는 재료였다.  삼기개발은 세 번째는 실패하지 말고 꼭 일어나자는 의미로 굳은 각오를 가지고 어렵사리 설립한 회사였는데 발전소 굴뚝에서 쏟아지는 탄재를 취급했다.  Fly Asy라는 원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날으는 재’ 라는 뜻으로 굴뚝에서 나오는 탄재를 말한다.  봉이 김선달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짓거리냐고 할지 모르지마는 엄연히 한국공업협회 규격에 맞춘 제품이었다.  KSL 5405의 공업규격 넘버까지 갖고 있는 Ash는 시멘트 제품에 따라 5%까지 혼합해서 사용 할 수 있도록 허가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침 시멘트 품귀현상과 맞물려서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섞지 않아도 탈 잡을 게 없는 그야말로 엿 장사 마음이었기 때문에 영업하기가 더욱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송 영감은 바로 그 삼기개발 대전 대리점 주인이었다.

 

교통의 중심지인 대전에는 후영기와 공장이 많이 있었는데 기와공장들이 Ash의 납품 처였다.  기와 공장에서는 색상과 유동성 때문에 Ash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표면이 매끄럽고 고급 제품이 되려면 꼭 Ash를 섞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의 초가지붕을 개량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있어 기와는 생산하기가 바쁘게 팔리고 있었다.  비록 술을 마시지 않는 송 영감이지만 소박한 영감의 성격 때문에 Ash장사는 생각보다 잘 되고 있었다.  제품 생산은 굴뚝 밑에서 탄재만 퍼 담으면 되는 것이어서 바쁠 것도 없었기 때문에 남는 시간은 거의 대전의 송 영감을 찾아갔다.  열 번을 찾아가도 송 영감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으레 술 좋아하는 본사 사장이 왔다고 나를 불고기 집으로 끌고 가 불고기 이 인분을 시켜 놓고 내 앞에는 소주병 그리고 자신의 앞에는 콜라병을 놓았다.

 

송 영감은 정말 이상한 체질이었다. 젊어서부터 단 한잔 술도 마셔 보지를 못했다고 했다.  가스명수 한 병만 마셔도 벌겋게 충혈이 되고 어지러워 일어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술 잘 먹는 사람은 몇 잔을 먹어야 취하는지를 모른다.  그저 많이 마시는 것이 좋은 줄 알고 내 잔이 비워지기 바쁘게 또 채워 버린다.  술이란 장모가 따라주어도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 난다고 했는데 투박하기까지 한 송 영감이 서둘러 따르는 술 맛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부담 없는 자리이고, 또 Ash도 팔아야 하는 실정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앉자마자 마시는 첫잔이야 갈증 때문에 벌컥 마신다 해도 거듭되는 잔마다 그러기는 쉽지 않았다. 한숨 돌리기 위해 창밖을 보고 있으면 영감은 화까지 벌컥 내면서 마시라고 호통을 쳐댔다. 그런 영감의 처사가 밉지만은 않았던 것은 술 좋아 하는 사람에게 한잔이라도 더 먹이려는 진실한 마음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시멘트 장사도 시들해질 무렵, 마침 첫눈으로 함박눈이 쏟아졌다.  마음이 들떠 있는 나는 또 무작정 대전행 기차를 탔다.  차창 가에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술 마시러 대전까지 가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싶기도 했지만 송 영감의 정겨운 얼굴이 떠오르면 위로가 되기도 했다.  “이 눈길에 웬일이신가?”, “영감님이 뵙고 싶어서요.”, “흐흐흐. 내가 아니고 술이 고파서지?”, “그럴까요?”, “아무튼 잘 왔네.  마침 나도 적적하던 판일세. 가세.” 영감은 언제나처럼 앞장을 섰다.

 

“라 사장. 눈 오는 날인데 북극 술인 보드카 한잔할 텐가?”, “술도 안하시면서 별걸 다 아십니다.”, “이 사람아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 읊는다지 않나? 다 라 사장 덕분일세.”, “죄가 많습니다.”, “아냐. 내가 고마우이. 자네 아니었으면 술이 무언지도 모르고 죽었을 게 분명하이.”, “맛까지 아십니까?”, “마셔야만 맛을 아는가? 덕분에 이제는 나도 어지간한 풍류쯤은 알 수 있을 것 같으이.”, “다행입니다.”, “자 어서 한잔 받으라고.”, “고맙습니다.”

 

송 영감과의 자리는 언제나 훈훈해서 좋았다.  한잔 또 한잔.  창밖의 함박눈을 보니 가슴이 얼얼해지면서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재미가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고 있었다.  창 밖 에 함박눈이 자꾸 굵어지고 있었다. 눈길을 걷고 싶었다.

 

“그만하시지요.”, “왜 오늘은 술맛이 나지 않는가?”, “그럴 리가 있나요?”, “내가 숙소를 잡아 두었네.”  갑자기 일어나던 나는 두 다리가 휘청했다.  역시 북극 술인 보드카가 독했던 모양이었다.  영감이 어깨로 나를 부축했다.  숙소로 가는 동안 눈송이가 머리며 어깨 위로 소복소복 쌓였다.  “영감님들, 이층으로 올라가세요.” 여관 심부름하는 아이 눈에는 눈을 뒤집어쓴 나까지 송 영감 친구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재미 많이 보소.”

 

송 영감은 휘적휘적 눈길을 걸어갔다.  영감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 나는 쏟아지는 함박눈 속으로 다시 나왔다.  이런 밤 여관방에서 일찍 잠을 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디 가십니까?”  조금 전 나를 영감이라고 불렀던 심부름하는 아이였다.  “한잔 더 하련다” “같이 마시지요”, “누구랑?”, “좀 전의 친구 분이 화대를 주고 갔습니다.”, “화대?”, “다 아시면서 뭘 그러세요?”, “뭘 말이냐?”, “시치미 떼지 마세요. 할아버지 나이에 맞게 골라 오느라고 애썼는데요.”

 

고개를 돌리고 보니 현관 앞에 스카프로 머리를 감싼 여인이 서 있었다.  진한 화장품 내음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허허허. 영감이 별일 다 했군.”  나는 염치도 없고 쑥스럽기도 해서 속없이 웃었다.  “아무려면 어떠냐? 이 함박눈 속에 나 혼자보다는 여인과 함께 하는 게 훨씬 어울리겠지.”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한데 이상했다.  아무리 추위에 언 손이라고 해도 그녀의 손은 스웨터 주머니에 손을 넣은 것처럼 미적지근한 온기와 함께 꺼끌꺼끌할 정도로 거칠었다.  분명 여인네 손이 아니지 싶었다.  나는 뒤돌아 그녀의 스카프 속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아무리 화장을 진하게 한 얼굴이라 한들 그녀의 나이는 분명히 환갑쯤은 넘은 듯했다.  “당신 몇 살이요?”, “쉰다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의 표정은 아무래도 다섯 살 정도는 줄인 듯했다.  갑자기 술이 확 깨고 있었다.

 

“나는 영감이라고 해서 왔는데......” 그랬다.  들어갈 때부터 눈을 뒤집어쓰고 송 영감 어깨에 기대고 들어간 나를 송 영감 친구로 알고 일부러 끼리끼리 놀라고 늙은 여인네를 구해 온 듯싶었다. “할머니, 그냥 돌아가십시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애써 목소리를 굵게 해서 말했다.  “화대 값은 해야 하는데.”, “벌써 했습니다.” 나는 투박한 그녀의 손에 송 영감이 나를 위해 지불했을 늙은 꽃값보다 훨씬 많은 돈을 쥐어 주면서 등을 밀쳤다.  “고맙소.”, 멀어져 가는 그녀의 가날픈 어깨 위로 함박눈이 무겁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날 내가 밤이 새도록 대전 시내 포장마차를 기웃거린 건 순전히 함박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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