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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지 않은 원석, ‘만년 청춘’ 김민재 회장
글 : 김혜진 /
2019.02.01 14:06:2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다듬지 않은 원석, ‘만년 청춘’ 김민재 회장

-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

- 오늘도 그는 ‘길 잃은 어린 양’

- 봉사와 리더십, 그의 능력은 팔색조

김혜진(언론인)

 

 

 ‘만년 청춘’ 김민재는 다듬지 않은 원석 같다. 번지르르한 사회의 유혹에 대한 시선을 거두고 오롯이 자신의 길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봉사와 사회 참여로 바쁜 삶을 살지만 그 또한 숱한 시련과 방황의 길을 헤쳐 왔다. 먼 옛날 여호수아가 그러했듯, 김민재 대표도 ‘다듬지 않은 돌’처럼 묵묵히 본분을 다 하고 있다.

 


 

 

 젊었을 땐 농약사업을 하시던 아버지 덕에 부족함 없이 살았으나 불혹을 넘어 사업에 실패했을 때 그는 휘청했다. 길 위에서 길을 잃었다. 그의 아버지(김승주 장로)와 어머니(김경례 권사)는 기도로 아들의 재기를 기다렸다. 어두컴컴한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답답해할 때, 그는 기도원에 들어가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앙을 얻게 된다. 

 


 

 

 “IMF로 사업을 접고 방황하던 어느 날 동업하다 함께 어려워진 친구와 둘이 ‘친구들 만나 술이나 얻어먹자.’고 길을 떠났을 때였어요. 인생을 정리하자고 떠났던 여행길에 중간에 ‘도곡 기도원’이 눈에 띄어 ‘죽을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들어갔거든요.” 그곳에서 ‘별세 신앙’ 설교 말씀으로 유명한 故이중표 목사님을 만나 말씀으로 은혜 받고 처음으로 3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새롭게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뒤돌아보니 그 기도원을 그냥 지나쳤으면 아마 김민재의 인생은 없었을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던 셈이다. 

 


 

 

 

‘살아 있는 이들의 마지막 친절’

- 군산장례식장 7년째 운영 -

 

 사업만 해 온 그가 처음으로 간 직장은 장례식장이었다. 그곳에서 사업의 꿈을 가지고 근무하다 12년만에 장례식장을 인수하여 오늘날 7년째 운영하고 있다. 

 

 ‘살아 있는 이들의 마지막 친절’이라고 하는 군산장례식장을 인수할 때 그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소를 만들어 돕기로 했던 혼자만의 약속’을 실천하고 있다. 그가 단장으로 봉사하는 ‘서군산무료급식소’에서 매일 300여 명의 노인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한 끼 식사와 정성을 대접하는 일이다. 

 


 

 

 새터민 봉사, 노인 이미용·목욕 봉사, 반찬배달 봉사 등 그의 손길은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향해 있다. 성공과 실패는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낮은 데로 임하려고 하는 그의 마음이 닿았을까.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렵고 힘든 건 마찬가지이지만 자신보다 주변을 위하여 따뜻한 마음을 다하는 그를 보면서 ‘더불어 산다’는 의미를 되새긴다. ‘다듬지 않은 원석 김민재’라는 이름은 깎고 다듬지 않아도 사람들 속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봉사자의 길, 그리고 동문회장의 길

 

 소리 소문 없는 선행을 실천해 왔던 김민재, 호수처럼 잔잔하게 세상 사람들과 함께했던 그가 사학의 명문 군산제일고 총동창회장에 선임된 건 뜻밖의 소식이었다. “피하지 못할 숙명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드러나는 활동을 해야 하기에 부담도 많지만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동문 사회에서 무언가 뚜렷한 발자국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각오입니다.” 

 


 

 

 2만5,000여 제일고 동문사회에서 차세대 리더로 손꼽혔던 그였다. 그러나 마흔 넘어 10년 이상을 가만가만 살아왔기에 오늘의 동문회장 자리가 낯선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그는 봉사자의 삶을 넘어 지역사회 장년층의 리더로 활약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졌다. 때론 강한 추진력이 필요한 동문 회장의 역할이기에 걱정도 많다. 

 

 그는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으며, 한 걸음씩 쌓아가지 않으면 허황된 결과가 온다는 교훈을 지금도 새기고 있다.”며 “화려함은 눈을 현혹시키지만 그 그늘의 깊이는 헤어나오기 힘들 정도로 어둡다”고 했다.  “진실은 통하지만 그 시간을 오래 걸린다. 그게 힘들다.”는 그의 말처럼 성공과 좌절은 공존하며, 오늘의 총동문회장 자리는 험난한 과정을 넘어야 굳어진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겉치레 보단 내실 있는 일을 해내고 싶은 게 그의 포부다. 

 

 제일 동문을 위해 그는 임기 동안 ‘동문회관 건립기금 조성’, ‘동문회 소식지 발행’을 해 나가기로 했다. 동문회관 건립 기금을 확실히 만들어 늦어도 다음 기 회장 임기에는 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기여할 생각이다. 또 소식지를 통해 동문 사회의 구심점을 만들어 소통과 협력을 다지기로 했다. 조용한 봉사자의 자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의 말처럼 제일고 동문 사회를 ‘군산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끌어올릴 때, ‘짱돌’ 김민재의 리더십은 군산 지역에 새롭게 써질 것이다.

 

 

 

아직도 그는 ‘길 잃은 어린 양’

 

 수더분한 얼굴에 사람 좋은 그의 별명을 따지자면 ‘감자’ 정도가 아닐까. ‘감자’라…흔히 쓰지 않지만 성격이 온순하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정이 가는 사람, 혹은 모든 음식에 어울리는 식재료처럼 주변을 돋보이게 만드는 캐릭터를 말한다.  

 그런 성격 탓인지 사람을 믿고 정수기 사업에 올인 했다가 크게 낭패를 맛보았다. 그는 그 시절을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재기하기 위해 대전의 학습지 회사에 들어가 발로 뛰었고 군산에 와서 기라성 같은 기존의 학습지 시장에서 6개월만에 500명의 회원을 만들며 탄탄대로를 걷기도 했지요. 그런데 IMF사태로 인해 결국 문을 닫았지요. 눈물겨운 세상 공부를 했습니다.”

 


 

 

 좋은 사람이었기에 기가 막힐 정도로 힘들었던 인생 공부였다. 그러나 그는 돌아왔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천생 순둥이인 그가 쉰 살 전에 군산을 대표하는 성광 교회 장로가 됐으리라고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다. 그만큼 ‘김민재 하면, 좋은 사람’이란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말이니 그는 인생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교회의 중심인 장로직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에 심적 부담감이 적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젊은 장로에겐 주어진 직함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왔다.  “종교인으로서의 삶이란 내 안에 교회를 만들어 가는 일이지요. 아직도 부족하지만 성도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젊은 장로’가 되려고 합니다.” 하루하루 시련의 연속이지만 새벽 예배에서부터 시련의 한 가운데를 잘 지나갈 수 있기를 간구하는 그는 아직 ‘길 잃은 어린 양’이다. 이처럼 그의 인생 또한 시련의 가시덤불이었으며, 앞으로 가야할 구만리 삶 또한 굽이굽이 역경 극복의 난관이 될 것이다. 

 

 

 

사회 참여와 봉사는 가족의 힘

 

 중앙로의 ‘중앙농약사’ 장남인 그는 군산초와 제일중, 제일고를 거쳐 원광대에서 공부했다. 청소년기엔 친구들과 치고 박고(?) 했고, 피 끓는 청춘 시절 어렵고 힘든 친구들과 어울리던 별종이었다.  신앙심이 깊고 성악을 전공한 아내 이효선 여사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지금도 시립합창단과 성가대를 오가면서 음악과 함께 인생을 열어가는 동반자. 그녀의 조용한 내조가 있기에 그는 어려운 시기에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

 


 

 

 “어려울 때 밤늦게 혹은 새벽에 들어가면 아내는 골방에서 홀로 기도하곤 했었지요. 지금은 다 컸지만 당시 어렸던 딸내미가 밖에서 방황하는 걸 무척 싫어했거든요. 시간이 지나자 나의 실패는 모두 내 탓이란 생각을 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세상일엔 굽이굽이 사연이 있으며,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절이 있다. 오늘의 김민재 또한 험한 산길과 거친 파도를 건너왔다. 아내와 아들과 딸이 조용히 기다리면서 기도와 믿음을 보내주었기에 그는 재기할 수 있었으며, 오늘날 군산 지역사회의 리더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는 사회 참여는 거절 못하는 천성 탓에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탈북민 봉사를 하는 단체 위원장으로 탈북민들이 가고 싶어 하는 제주도 탐방을 했고, 군산로타리클럽 회장 겸 연합회장으로 봉사해 왔다. 

 


 

 

 또, 월명 라이온스 이사, YMCA 이사, 히엘 합창단 단장, 아사헬 축구단 단장, 기독교 장로회 임원, 남신도회 총무 등을 비롯해서 성광교회 장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립예술단 사랑회 운영위원장, 군산경실련 이사, BBS이사, 법무부 조정위원, 자유총연맹 이사, 기아대책위원회 이사, 국제 기아봉사단 이사를 거쳤고 군산시민축구단 초대 구단주를 역임했다. 

 


 

 

 그는 온몸으로 가시밭길을 헤쳐 왔다. 그 속에서 신앙을 가졌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사랑을 받은 만큼 지역사회에 봉사로 화답한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살아 온 그의 인생을 보면서 봄을 앞두고 좋은 소식이 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군산장례식장

대표 김민재

(063)468-4119,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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