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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문강습소'로 첫 발걸음 내디딘 군산 '화교소학교'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2.02.01 16:28:39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지금부터 71년 전(1941년), 당시 군산부 '전주통'(현 군산시 장미동) 17번지에 중화상회(中華商會) 간판이 내걸린 사무실이 있었다. 1927년 설립한 '중화상회'는 화교협회(華僑協會)의 옛 이름. 회장은 무역업을 하는 중국인 록암정(鹿岩亭)이었다.  

 

1939년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군산항은 쌀 반출과 물동량이 더욱 증가했고, 그에 따라 화교 인구도 늘어 1941년에는 1000명 가까이 되었으며 소학교에 입학할 7~8세 자녀가 50명에 달했다.  자녀들이 제때 교육을 받지 못하면 문맹자가 될 거라는 우려 속에 초등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록 회장은 소학교 설립 계획을 세우고 추진위원회를 조직했다. 그 중 일어에 능통한 우강의(于江義) 위원이 일제 교육관청 직원들을 설득하여 '중국어문강습소' 허가를 받아냈다.

 

 

▲ 1920년대 군산부 시가지. 중화상회가 있던 '전주통' 부근

 

 

지금의 영화동 중화기독교 군산교회 앞에는 면포, 비단, 해산물 등을 취급하는 무역회사 '유풍덕'(裕豊德), '금생동'(錦生東) 군산부 지점이 있었다. 유풍덕 경영자 주신구(周愼九)는 화교로 한때는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중국에서 활동했던 인물로 알려진다.  화교학교 설립 추진위는 본점을 서울에 두고 있는 유풍덕, 금생동 군산지점에서 각각 3500원씩 7000원을 기부받고, 군산부 중화상회에서 건물 일부를 임대받아 1941년 10월 10일(쌍십절)에 서울, 인천 다음으로 군산에 6년제 '중국 어문강습소'를 개소하였다.  화교 자녀 60여 명으로 문을 연 강습소에는 제주도, 목포, 순천, 광천, 홍성, 전주, 이리(익산) 등 외지에서 유학 온 학생 10명이 거주할 기숙사가 있었으며, 북경 청와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한 동을신(佟乙新)·화숙현(華淑賢) 부부교사가 아이들 교육을 담당했다.  교장은 록암정 회장이 겸임하였고 이사장은 평화동에서 중화음식점 태평각(太平閣)을 운영하던 임전갑(林殿甲)이 맡았다. 교장, 이사장 모두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록 회장은 바쁜 일과 중에도 직접 수업에 들어갔다. 그의 교육열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사진2) 1967년(21회) 졸업 기념사진. 

자료가 모두 불타버려 옛 교실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사진이라 한다. 

 

중국 어문강습소는 1942년 '군산 화교소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는다. 당시 학생 중에는 초등교육 취학연령을 넘긴 15세~20세 사이의 화교 청소년 다수가 하루에 6시간씩 수업을 받았으며, 남녀학생 성비율이 7대3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교육방식은 중화민국 교육제도를 따랐다. 매년 8월 20일에 새 학년 1학기를 시작하고, 12월엔 겨울방학, 다음해 2월 15일에 2학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7월 10일은 여름방학과 동시에 졸업식을 치렀다.

 

당시엔 화교 학생들도 지정 교과목(중국어, 산술, 자연, 음악, 미술, 체육 등) 외에 일본인 교사에게 일본어와 일본 무용을 배웠고, 복장도 남학생은 까까머리에 국민복 형태의 검은색 교복과 교모, 여학생은 검정 주름치마에 하얀 세일러복 차림이었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록 회장이 1942년 가을 지병 치료차 고향 중국으로 들어가자, 후임으로 영화동에서 중화음식점 평화원을 운영하던 우계청(于桂淸)이 회장과 교장을 겸임했다. 학교는 계속 번창하여 1945년 봄에는 학생 수가 120여 명에 달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군산에 화교들이 계속 유입되고 학생 수도 지속적으로 늘면서 1947년 새 학기를 앞둔 7월에는 전체학생이 180여 명을 웃돌고 교사도 4명이 된다. 때를 같이해서 1회 졸업생 6명을 배출하는데 모두 서울에 있는 화교중학교에 진학했다.  또한, 중화민국 대사관에서 '상회' 명칭을 '자치구'로 변경해달라는 공문이 중화상회 앞으로 내려온다. 이에 따라 군산 중화상회는 '군산 중화자치구'가 되고 화교소학교도 이사회를 조직하여 손경정(孫慶禎)이 이사장으로 선출되고 교사였던 동을신이 교장으로 승진한다.

 

 

 

▲ 학교 정문에서 바라본 군산 ‘화교소학교’. 

건물에는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와 함께 교훈 ‘예의염치’(禮義廉恥)가 새겨져있다. 

 

 

▲사진4) 명산동에 자리에 신축한 군산 ’화교소학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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