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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몰래 심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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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11:46:1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술을 마실 때마다 특별한 이유를 붙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배가 고파서 먹는다는 단순한 논리를 떠나서 마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많은 것만은 분명하다. 기분이 좋다고 마시고, 울쩍하다고 마시고, 또 화가 나서 마시는 것이 술이라면 내가 1969년쯤에 마실 수밖에 없었던 술은 순전히 가슴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덩이 같은 울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였다.

 

그 무렵 나는 몹시 방황하고 있었다. 열 식구나 부양해야 하는 내 입장으로 적은 월급 봉급뿐인 직장생활에 적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달리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닌 내처지로서는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뛰쳐나갈 구멍이 없었기 때문에 대책 없는 분통만 온X통 가슴속을 뒤집어 놓고 있었다. 

 

나를 더 방황하게 한 것은 열애를 하던 여인과의 억지 이별 이었다. 제대한 후로 삼 년이나 죽자 살자 사랑하던 여인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내 곁을 떠나 버린 것이다. 이유는 그녀 집에서 나와의 결혼을 반대한 것이었는데, 그 반대는 어쩜당연 했는지도 모른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까지 팽개치고 나와서 매일 술이나 퍼마시는 놈팽이에게 딸을 줄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 무렵 내 모습은 자신이 돌아보아도 한심했으니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하릴없이 매일 술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실직에 실연까지 핑계가 생기고 보니 미친 듯 술을 탐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이 세상에 술 마시러 태어난 것처럼 대낮부터 마시기 시작한 술은 해가 지고 통금 시간이 가까워서도 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서 뭉기적거렸다. 물론 술을 마신다고 해서 터질 듯한 가슴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시면 마실수록 울화가 치밀어 올라 길가 아무 곳에서나 고함을 지르고, 통금이 넘은 거리에서 무법자처럼 흐느적거리다가 파출소에 끌려가 새우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허황해지고 알 수 없는 외로움은 가슴을 파고들어 바닷가며 월명산을 혼자서 배회하곤 했다.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소주병을 옆에 차고 공원에 올라가 병째 나발을 불고 텅 빈 가슴으로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바닷가 갈대 숲에 누워 몸부림치며 들어줄 사람 없는 하늘에 대고 소리소리 지르기도 했다. 

 

한데 이상한 것은 몇 날 며칠을 혼자서 몸부림치고 났더니 어느 날 문득 응어리가 빠져나간 듯 허허롭게 텅 빈 가슴이 되어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해지고 머리까지 상쾌해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 머리를 스쳐 가는 빛이 있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일종의 오기였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엇이든 해보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소주병을 장항 앞바다를 향해 길게 던져 버렸다. ‘당분간 금주를 하고 돈을 벌자.’ 

결심과 함께 시작한 것이 약장사였다. 그렇다고 약사 면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길가에서 북장구 치고 하는 장사도 아닌, 제약회사 대리점이었다. 거창하게 제약회사라는 간판이 붙었지만 사실은 월부약을 만드는 공장으로 보잘것없는 규모 였다. 

 

십전대보환이나 음양배사물탕 따위의 동의보감에 처방되어있는 한약을 환으로 만들었다. 말이 보약이지 그 비싼 인삼 녹용을 직접 넣을 리도 없고, 소화 잘  된다는 무말랭이나 삶아서 배탈나지 않는 밀가루와 반죽해서 환을 지어 말려 낸 토끼똥이 분명했다. 그딴 엉터리 약이었으니 내게까지 대리점 차지가 되었다. 그때 그 대리점으로 설립한 회사가 내 사업의 최초인 태평제약 전북 대리점이었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 엉터리 약이잘도 팔리는 것이었다. 잘 팔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익도 많이 남았는데 원가가 육심오원인 십전대보환을 육개월 월부로 육백오십 원에 팔았으니 계약금만 받아도 본전을 넘는 장사였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세상에 ‘보약을 월부로 준다니 우선 먹고 보자.’는 심리를 이용한 판매전략이 적중했던 것이다. 

 

광고 모집한 외판원에게 아침에 가방 가득 토끼똥을 넣어서 내보내고 나면 오후에는 가관이었다. 가방째 갖고 달아나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무실 앞 출입문에다 밀어 넣고 슬그머니 가 버린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대개는 몇 개씩 팔아서 카드와 계약금을 들고 들어왔다. 

 

더욱 웃기는 것은 카드에 기록된 병명이었다. 양약인지 한약인지조차도 구분 못하는 외판원들이었으니 엉터리일 건 뻔하다 해도 임질에도 대보환이요. 매독에도 음양배 사물탕이었다. 처음에는 한심하기도 하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는 돈이 벌리는 토끼똥 장사를 그만둘 수가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져 신나는 판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나쁜 짓 하는 나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보건 단속반이 덤벼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보건법에 무식한 내 잘못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한약이라고 했다지만 십전대보환을 넣은 병에는 분명히 건강식품이라고 표기했다. 하지만 내 항의는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때 단속반의 논리는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였다. 아예 장사를 하지 못하게 말리는 곳도 아니요, 그렇다고 그냥 놔두는 것도 아니면서 아침저녁으로 뒤지기만 했다. 그럴 때 통하는게 뒷거래였다. 

 

나는 단속반원들을 술집으로 모셨다. 때문에 내 금주 결심은 또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접대한다는 명목으로 터놓고 더 술을 마셨다. 참았던 술이기에 더욱 맛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먹거리던 단속반원들도 내 적극적인 술 공세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굳어져 있던 마음도 서서히 풀면서 우리는 또 호형호제하게 되었다. 

 

돈도 벌리고 술도 먹고 한창 신나는 세상이었다. 지금껏 암담하기만 하던 세상이 온통 분홍빛으로 아름답게 보이면서 마음도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 지금껏 짜증나게만 보이던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웃는 얼굴로 보이기 시작하더니 내 가슴속에도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술을 마시고 난 후의 기분도 월등히 좋았다. 언젠가 돈을 벌어 꼭 복수하고 말겠다고 이를 갈아대던 그녀까지도 마음속으로 용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때 내 형편을 감안하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고 오히려 이해까지 되면서 그녀에 대한 연정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술이 많이 취하는 날은 나도 모르게 다시 그녀 집 앞을 서성거리게 되었고 그녀를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행복을 빌어 주어야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새롭게 일기도 했다. 몇 번인가 그녀 집 앞을 서성거리던 어느 날 문득 내 머리 속에 그녀에게 장미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언젠가 그녀의 생일날 장미 몇 송이를 선물하지 못 한 내 잠재의식의 아쉬움이  떠올랐던 것이다. 

 

만날 수 없는 그녀에게 어떻게 장미를 보낼까? 궁리를 하던 나는 봄비가 부슬거리는 날 밤 기어코 담장을 넘고 말았다. 그녀의 집이 아닌 경찰서 담장이었다. 지난 봄 야간 통금에 걸려 취조를 받으면서 보았던 화단에 붉게 핀 장미나무를 기억해내고 나서였다. 그때 나는 엉뚱하게도 장미꽃 속에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내가 통금 위반을 한 것도 그녀 때문이라고 원망하기도 했었다. 

 

담장을 넘어간 그날 밤 나는 지난 봄에 붉게 피었던 그 장미나무를 뽑아들고 나와 다시 그녀의집 담장을 넘어가 우물가에 몰래 심었다. 장미 가지에 어느 곳으로 가든 행복하게 잘살라는 내 마음의 메모를 달아 놓았음은 물론이다. 

‘그 장미 때문이었을까?’ 그 후로 그녀는 내게로 다시 다가섰고 그녀를 잊지 못하던 나는 우연을 가장해서 다시 그녀와 재회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기도 했지만 부지런히 월명공원을 오르내리면서 아쉬었던 지난 시간들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국 훔친 장미가 내 사랑의 결실을 만들어 준 셈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내 처가에 봄이면 근사하게 피어나는 탐스러운 붉은 장미를 보면서 과연 술이 아니었으면 내가 엉뚱하게 장미도둑을 해서 그녀 마음을 돌이키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 혼자 소리없이 웃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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