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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아니의 발길 닿는대로> 70년 전 중앙초등학교 앨범은 어떤 모습일까 (2)
글 : 조종안 /
2017.05.01 17:34:2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종아니의 발길 닿는대로>

 


 

 

70년 전 중앙초등학교 앨범은 어떤 모습일까 (2)

 

위는 단기(檀紀) 4280(서기 1947) 군산 중앙초등학교 '졸업기념 사진첩'(아래 앨범) 표지와 아침조회 광경이다. 정부 수립 전이어서 교육체계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을 때인데 앨범을 제작하다니 놀랍다. 군산 중앙초등학교는 공립(公立)’으로, 필요할 때만 표기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국민학교 앞에 공립을 붙여서 불렀던 모양이다.

 

1945년 해방, 1948년 이승만정부 수립,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모든 교과서 및 공책에는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는 글귀가 담긴 '우리의 맹세'가 실렸다. 그런데 좌·우가 극과 극으로 대립하던 혼란기임에도 북한을 배격하는 글이나 구호가 없어 눈길을 끌었다.

 

'바똥 복스의 교감선생님과 안 선생님'... 정겨운 글귀들

 

앨범 사진을 설명하는 글귀 중에 '자랑거리 우리 모교', '스승들의 모습', '즐거운 원족', '골마루', '아담한 정원' 등은 무척 살갑게 느껴진다. 운동회 사진에서 '오늘만은 교장선생님도 1학년보다 늣다', '바똥 복스의 교감선생님과 안 선생님' 등은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한다.

 

'다름질 시키든 싸이렝'이라고 적힌 사진 설명이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맞춤법이야 현직 대통령도 '습니다''읍니다'로 쓰고, 시대에 따라 변하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해방 20년이 지나도록 일제잔재인 사이렌 소리로 수업시작과 끝을 알렸기 때문이다.

 

필자가 다닐 때도 수업 시작과 끝을 사이렌 소리가 알렸다. 학교 근처에 사는 주민 중에는 부엌에서 설거지하다 이웃집에 화재가 난 줄 알고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왔었다는 분도 있었다. 5년 넘게 다니면서 사이렌 소리가 귀에 익었는지,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던 19617월에 구암초등학교로 전학해서 말로만 듣던 종소리를 들으니까 느낌이 이상하고 산골학교에 온 것처럼 신기했다.

 


 

 

일제 강점기에 열린 가을운동회

 

일제 강점기에 왜놈들이 만든 공설운동장(일출운동장)에서 열린 운동회 모습이다. 여학생들이 공굴리기를 하고 있는데, 그 옛날 가난한 시절에도 운동회 날은 즐겁고, 삶은 밤에 붉은 감이 빠지지 않았으며, 이웃이 총동원하는 잔칫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도 운동회 시작 전에 교장선생님의 지겨운 훈시와 행진, 100m 달리기, 이어달리기, 탑 쌓기, 공굴리기 등을 했는데, 운동장에서 뛰놀던 학생들이 지금은 여든을 넘겼거나 코앞에 둔 할머니가 되었을 거로 생각하니까 가슴 한구석으로 허전함이 밀려온다.

 

지질이 형편없는 데다 세월이 지나서 그렇지, 사진을 언밸런스로 배치했으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센스를 보면 60-70년대에 제작한 앨범과 다를 게 없었다. 70년대에 들어와 피사체를 비뚤어지게 잡아서 찍는 게 유행하기도 했으니까.

 

멀리 보이는 건물과 굴뚝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가등정미소인데, 운동장은 필자가 뛰어놀던 놀이터였고, 정미소 창고 옆 골목에는 지금도 형님이 사는 고향집이 있어서 그런지 새롭게 다가온다. 정미소는 왜놈들이 호남의 쌀을 더 많이 수탈해가기 위해 1930년대 초에 지은 대형정미소이다.

 

그러나 지금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운동장 자리는 주택단지가 되었고, 정미소 자리에는 임시 공설시장이 입주해 있어 옛날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뒤쪽에 있던 석산도 오랜 채석작업으로 평지가 되었는데, 그래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도 만들어진 모양이다.

 

아담한(?) 정원

 

앨범에서는 '아담한 정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으스스한 정원으로 기억될 뿐이다. 오죽했으면 학생들 사이에 '해가 지고 비가 내리는 날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졌을까. 방과 후에는 셋이서도 가는 걸 꺼려할 정도로 음침했으니까.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정원에는 다람쥐와 칠면조 사육장이 있었고, 시멘트로 만든 돌다리, 석등, 인공 계곡도 있었는데 자연에서 느끼는 시원함이나 여유를 느끼기보다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인공으로 조성한 정원마저도 볼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작년에 들렀다가 유치원이 들어서면서 칠면조 사육장과 정원 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며 옛것을 너무 허술하게 생각하는 세태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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