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종아니의 발길 닿는대로> 겨울밤 친구는 역시 군고구마 밖에 없구나!|
글 : /
2017.01.01 14:08:0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종아니의 발길 닿는대로>

겨울밤 친구는 역시 군고구마 밖에 없구나!|  

 

“군고구마~ 사려! 야~ 끼~~모~~~”

 

그 옛날 깊어가는 겨울밤, 거리의 군고구마 장수들이 외치고 다니던 소리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꺼지기 시작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골목의 고요를 타고 안방까지 들려왔다. 따끈따끈한 군고구마가 눈앞에 그려지면서 침을 꼴깍 넘어가게 했던 그 소리. 신작로가 조용한 날은 이제나저제나 기다려지기도 했다.

 

경력이 쌓인 군고구마 장수는 목소리도 유창했다. ‘군고구마~’는 고음으로 느리게 빼다가 ‘사려’는 마님이 머슴에게 명령하듯 외치고는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야’는 짧게, ‘끼’는 약간 길게, ‘모’는 고무줄 늘이듯 더욱 길게 뺐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도 따뜻하게 녹여주었던 그 소리는 판소리의 한 대목처럼 흥겹고 정겹게 느껴졌다. 소리가 귀에서 멀어지면 서운할 정도로.

 

일제강점기 조성된 거리의 상가(商街)도, 이웃사촌 이름도, 생활 용어도, 어린이 교육 방식도 모두가 일본식이었던 50~60년대, 철부지였던 나는 ‘야끼모’를 ‘군고구마’의 멋진 다른 이름으로만 알았다. 군침만 삼키다가 열 살이 넘어서야 겨우 맛보았던 당고(짬짬이)와 모찌(찹쌀떡)도 마찬가지.

 

고구마는 섬 고구마가 더 맛있어
 
어렸을 때는 집에 고구마가 떨어지지 않았다. 고구마 캐는 시기가 되면 맛이나 보라며 선물로 들어오기도 했지만, 해마다 외가에서 가마니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외가는 1960년대 초중반 간척공사로 육지가 된 섬(부안군 계화도)이었다. 고구마는 외삼촌이 부리는 자그만 돛단배에 싣고 왔다. 째보선창에 배를 댔다고 연락이 오면 달려가 낑낑대며 고구마를 나르던 기억도 새롭다.

 

외가에서 가져오는 고구마는 모두 물고구마였다. 그 시절에는 전북 익산의 ‘황댕이고구마’(황등 고구마)를 최고로 쳤다. 어머니를 비롯한 동네 어른들은 “육지보다 섬 고구마가 더 달고 맛있다!”며 계화도 고구마를 선호했다. 황댕이고구마(밤고구마)는 퍼석퍼석하고, 계화도 고구마는 수분이 많아서 입이 심심할 때 그냥 깎아 먹어도 ‘배추꼬랑이’처럼 달고 시원하다는 게 이유였다. 
 
긴 겨울밤,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가 하나둘 모이면 어머니는 외갓집에서 가져온 물고구마와 김장김치를 쟁반에 가득 담아 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김치에 싸먹으며 털어놓는 제빙공장 기술자 고씨 아저씨의 익살은 방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통행금지 첫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8세기 중반 조엄이 대마도에서 처음 들여왔다는 고구마는 호박고구마와 밤고구마, 물고구마 등으로 나뉜다. 그중 맛과 식감이 뛰어난 호박고구마는 품종 교접으로 10~20년 전부터 국내 재배를 시작하였고, 밤고구마와 물고구마는 토종으로 분류된다. 토종도 햇고구마로 불리는 밤고구마는 여름에 나오기 시작하였고, 가을에 수확하는 품종은 물고구마였다.

  

추억여행 동반자가 돼준 군고구마


즐겁고 푸짐해야 할 2016년 성탄절과 송년은 그야말로 개뿔. 동짓날도 팥죽은커녕 긴긴밤을 혼자 지냈다. 크리스마스이브도 ‘나 홀로 신세’를 면치 못했다. 아내가 밤(나이트) 근무를 했기 때문이다. 재수가 옴 붙었는지 어제도 그제도 혼자였다. 올해는 조카와 형제들이 모여 소주잔을 부딪치는 송년회 계획도 없다.

 

밤이 되면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시골의 야경은 운치가 그만이다. 대문 앞에서 외롭게 졸고 있는 가로등 불빛이 한 몫 더한다. 금방이라도 야경꾼들의 딱딱이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분위기. 문득 이야기꽃 만발한 고향 집 안방 풍경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가 생각났다. 해서 호박고구마 몇 개를 씻어 직화구이 오븐에 올려놓았다.

 

가스불을 약하게 한다. 은근히 익혀야지 급하게 익히면 아까운 속살이 새카맣게 타버린 껍질에 달라붙고, 맛도 떨어지기 때문. 10분쯤 지나자 ‘찌이~찍 따닥’ 소리를 내며 익는 냄새가 코를 즐겁게 한다. 고구마가 골고루 익을 수 있도록 뚜껑을 열고 하나씩 뒤집어준다. 20분쯤 지나면 완전히 익는데, 젓가락으로 찔러보면서 자잘한 놈부터 차례로 꺼내놓는다.

 

군고구마는 동치미와 궁합이 맞는다고 하는데 없으니 어쩌랴. ‘꿩 대신 닭’이라고 김장김치를 곁들이니 그 또한 환상적이다. 맛도 맛이지만, 토속적인 정취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던 기분이 전환된다. 김치와 고구마는 서로에게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주고 억제해주는 상부상조하는 사이여서 먹는 사람도 좋게 느껴진다고 한다.

 

쪄먹기도 하고, 구워먹기도 하고, 깎아 먹기도 하는 겨울철 으뜸 간식 군고구마가 오늘은 추억여행의 동반자 역할까지 해줘 고맙기 그지없다. 저녁 지어먹은 아궁이 잿더미에 묻어놓고 깜빡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속상해했던 추억들이 시나브로 떠오르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순간 ‘겨울밤 친구는 역시 군고구마밖에 없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

 

기사 더보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