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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다시 빈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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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1 15:47:33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가난했기 때문에 화가 난 적은 있었지만 부끄럽다고 생각한적은 없다. 다만 그래도 가난이 가끔씩 찌증났을 때는 내 딴에는 죽어라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는데도 그 결과가 아무 성과도 없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 눈에까지 내 허둥대는 모습이 우습게 보인 경우다. 내 회사 생활이 그랬다. 믿을 것이라고는 오직 내 능력 하나밖에 없는 처지로 다른 직원보다 일찍 출근하는 건 기본이었고, 아무리 험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어 죽기 살기로 노력했는데도 인정을 받기는커녕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로부터 따가운 눈총만 받고 있었다. 보성에서 절간 고구마 수송을 열심히 끝내고 돌아왔을 때도 그랬다. 내가 경비를 과다하게 지출한것은 우쭐한 내 기분도 조금은 작용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그 어려운 화차를 배정해준 화물 주임에 대한 내 답례 때문이었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그 결과로 단시일에 수송도 끝냈고 회사의 증류탑도 멈추지 않고 돌아갔기 때문에 사실 그로 인해 생긴 회사의 이익에 비하면 내가 쓴 경비 따위는 조족지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도 내 공로는 완전히 무시당했고 초과 경비에 대해서는 몽땅 내 월급에서 공제하겠다고 가불을 달아 놓아 버린 것이다. 얼떨결에 한 달이 지나고 보니 월급 봉투는 현금 대신 가불 영수증만 들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잡고 큰 뜻을 품었던 내 회사 생활에 어느덧 나는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참한 마음까지 들면서 회사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회사에서는 다시 주정협회로 파견근무 발령을 내 주었다. 나는 서둘러 임지로 떠났다. 첫 근무지는 순천에 있는 B산업이었는데 이 답답한 도심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파견근무를 서둘렀다. 그때 내 직함은 근사하게도 주정협회의 생산관리 계장이었는데 실상 알고 보변 경비원에 불과했다. 서로 상대 공장에 파견해서 원료 부정이나 탈세 등을 지키자는 경쟁사들의 합의였지만 이를테면 서로가 서로를 묵인하고 보호하자는 묵계에 지나지 않았다. 즉 나처럼 생산이나 숫자에 맹추 같은 인원을 선발해서 자선들의 부정을 합리화하자는 공모 범죄나 다름없었다. 말하자면 나는 완전히 허깨비였는데 그 당시 그런 깊은 뜻을 알 리 없는 나는 제법 어깨를 펴고 전라선 기차를 타고 그날 밤 순천역에 내렸다. 공장에서 한 사람쯤은 마중 나와 주리라 믿었던 내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고 낯선 순천역 대합실은 썰렁하기만 했다. 그날 밤 나는 너무나 외로웠다. 호남 여관에 가방을 던져 놓고 순천 천변에 앉아서 강소주를 세 병이나 마셨다. 

  

다음날 아침, 여관 종업원에게 물어 B산업을 찾아갔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아무도 나를 반겨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를테면 자신들을 감시하러 나왔다고 경원하는 듯한 눈치였다. 몹시 자존심이 상한 나는 사무실로 찾아가 총무과장에게 항의를 했다. 

“나는 이대로 협회에 보고하겠습니다.”   “저희는 연락 받은 사실이 없어서····.” 

과장은 떨떠름한 대답을 했다. “좋다. 두고 보자.” 

나는 험악한 얼굴로 여관으로 돌아와 애꿎은 소주병만 비우고 있었다. 두 병쯤 비웠을 때 총무과장이 헐레벌떡 여관으로 쫓아왔다.  

“이제야 협회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법 허리까지 굽신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일찍 도착했던 모양이었다. 그의 말이 사실인 듯하여 조금 기분이 풀린 나는 그에게 소주잔을 내밀었다

“대낮부터 무슨 술이십니까?” 제법 친절했지만 나는 응어리가 풀리지 않아 곱지 않은 눈으로 흘겨보았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협회에서 보낸 우리 편 정탐꾼으로 알았습니다.” “우리 편?” 나는 처음 그의 말뜻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출발할 때는 누구도 내게 사전 지식을 말해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잘 협조하자고 공손하게 나오는데 총무과장에게 더 이상 낯을 붉힐 이유가 없었다. 

“술 좋아하시는 모양이지요.”  “조금합니다.”  “일어나시지요.” “회사로 갑니까?”

“아니지요 기왕 술을 드셨으니 오늘은 순천에 있는 술집이나 구경을 하시지요.” 

나는 못 이기는 체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는 나를 끌고 대뜸 순천에서는 꽤나 알아주는 송원이라는 요정으로 갔다. 그날 나는 또 몇 잔 술에 마음이 풀려 허허거리며 총무과장과 호형호제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이튿날부터는 매일 송원에서 술과 기생들 속에 빠져 내 임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해야 할 일을 지시받은 적도 없는 데다가 그들은 내게 한편이라며 술만 사 주고 있으니 조금 답답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아지겠지 하는 평소의 내 태연한 성격 탓에 더 술을 마시게 되었다. 제대하고 요정술을 별로 마셔 보지 못한 나는 기생집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녀들이 나를 향해 눈웃음으로 자꾸 술을 권했기 때문에 내 기분은 더욱 우쭐해졌다.  나는 그녀들에게 내가 사나이라는 걸 보인답시고 주는 대로 거절없이 모두 받아 마시다 보내 언제나 나 혼자 먼저 취했다. 한 잔이라도 더 마셔 보겠다고 인삼 뿌리를 통째로 먹기도 하고,배꼽에 곶감을 찢어 붙여 보기도 했지만 나는 언제나 자정이 되기 전에 끓아떨어져 숙소짧 끌려가서는 이튿날 아침까지 천지 분간을 하지 못하고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이튿날 눈을 뜨고 보면 한심한 것이 어느 날은 양발도 벗지 않은 채였고, 어느 날은 얼굴도 모르는 송원의 기생이 옆에서 벌거벗은 채 코를 골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뭔가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쓰린 속을 간신히 달래고 출근을 해보면 전날 나와 함께 송원에서 죽자고 마셔댔던 B산업 간부들은 얼굴색 하나 변함없이 정상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꿈꿈이속이 있다 싶어 눈치를 보던 나는 그날 밤 술자리에서 잔꾀를 좀 부려 보았다. 기생이 건네는 술잔이며 또 다른 술잔까지 술상 밑 재털이에 몰래 The으면서 취한 척 흐느적거렸다. 그때까지 누구도 내 행동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그들은 평소 나를 완전히 주정뱅이로 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정 무렵, 전날처럼 비틀거리며 숙소인 호남여관으로 가는 척하면서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내 예감은 적중했다. 그들은 집으로 가지 않고 떼 지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숨어서 미행했다. 어이없게도 그들은 공장 정문을 열어 대기시켜 놓았던 트럭을 끌고 나왔는데 주정 드럼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들은 감시원인 나를 매일 따돌리고 주정을 부정 반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정 한 드럼이면 소주가 세 드럼이니 어마어마한 탈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배신감에 소름이 끼쳐 왔다.  “이보시오, 이럴 수 있는 거요?”  “다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총무과장의 손이 내 바지  뒷주머니에 봉투 하나를 밀어 넣었다. “치우시오.” 나는 애써 화가 난 척했지만 허구한 날 그들과 함께 기생집에서 뇌물로 술을 얻어먹은 내가 무슨 염치로 끝까지 그들을 추궁할 수 있겠는가? 나는 여러번 그들이 넣어 주는 봉투를 뿌리치는 체했지만 그 뒤에도 부정 반출을 막을 힘이 없었다. 설령 내가 그들의 부정 반출을 막는다 해도 고발할 곳도 또 누가 내 말을 귀담이들을 사람도 없었다. 말하자면 나는 짜여진 각본의 그저 허깨비에 불과한 형식적인 감시인에 불과했다.  나는 심한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양심이 한쪽 모퉁이에서 악을 써대고 있었지만 어느새 내 뒷주머니에는 뇌물 봉투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내 영혼이 타락해 가고 있을 때 집에서 급전보가 왔다. 다급한 마음으로 쫓아와 보니 여동생 이 복막염으로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뇌물을 받은 돈으로 무사히 수술을 끝냈지만 나는 알 수 없는 분통으로 병원 복도에서 계속 술만 마셔댔다. 

 

 며칠 후 허탈한 마음으로 B산업으로 돌아갔지만 내게 뇌물봉투는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주정 생산철이 지났기 때문에 부정 반출도 없어졌다. 술 사 주는 사람도 없어 하릴없이 빈둥대다가 파견근무가 끝나 다시 본사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월급은 여전히 빈 봉투였다. 

“상무님, 가불 좀 해 주십시오.”  “회사 규정에 가불 없는지 몰라?”

“아무리 그래도 빈 봉투로 어떻게 먹고 삽니까?” “그거야 자네 사정이지.” 

“절반씩이라도 떼 주십시오.”  “어느 세월에 갚게.” 

“그만두겠습니다.”  “그야 자네 마음이지.” 

“에라 이 씨팔. 잘먹고 잘살아라.” 

나는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관두고 말았다. 몇 푼 안되는 퇴직금으로 보성의 가불을 제하고 나니 나는 또 완전 빈털터리였다. 

‘허허허.’  나는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알 수 없는 허망한 웃음을 웃으면서 매일 술로 시름을 달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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