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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 '비열한 동행'
글 : 라대곤 /
2016.08.01 15:15:1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출퇴근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새벽이고 밤중이고 부르면 달려 나갔다. 주인 박 사장은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았다. 바로 옆집에 배달할 국수 한 다발까지 병구를 불러댔다. 다음날 배달해도 될 밀가루 한 포대도 곤하게 잠자는 사람을 한밤중에 깨워서 다녀오라고 하는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었다. 뿐만 아니다. 가내야마라고는 대우해줄 때 부르는 이름이고 보통은 쪽발이 새끼로 불러대면서 도시 인간 취급을 해주지 않았다. 한자리에서 밥을 먹지도 않으려고 했다. 해방 된지가 바로 엊그제고 보면 일본이 밉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이해가 되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박 사장이라는 사람은 학벌이고 경력이고 내 새울 것도 없는 주제에 정치를 한다고 쫓아다니는 것이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 무렵은 정치자금이라고 몇 푼주면 배급같이 나누어주던 지역정당 부위원장 자리였다. 그것도 수십 명이나 되는 부위원장이 무슨 벼슬이라고 거들먹거리고 다닐 때만해도 장사를 해먹으려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말투까지 바뀌었다. 조찬이 어떻고 중식이 어떻고 하면서 쫓아다니더니 자기가 무슨 거물이나 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리고  아예 시의원을 하겠다고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실력 있는 중앙당 간부와 선이 닿았다는 것이다. 

   지역정당의 노랑 옷만 입고 나오면 허수아비도 당선이 되는 것이 이 지역 정서이고 보면 공천만 받을 수 있다면 지방의원 한자리쯤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일진데 그 공천권을 갖고 있는 중앙위원의 줄을 잡았으니 허풍으로만 들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가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병구의 일만 늘어났다. 말 타면 견 마잡히고 싶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헌 포니의 운전기사 노릇까지 해주어야 했다. 무슨 거물이라고 커다란 등치로 좁은 포니 뒷자리에 허리를 걸치고 앉아 거들먹거리는 꼬락서니라니 파출소장자리라도 한자리 꿰찼으면 여러 사람 죽일 인간이었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절 보기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만 두자. 결심을 했지만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 시장을 떠 날수가 없었다. 병구는 무궁화의 수수께끼를 풀기 전에는 유곽시장을 떠 날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가슴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풀자면 해방이 되기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날 밤 수양어머니였던 일본 포주 애이꼬의 애인 가내야마 이찌로상이 커다란 상자를 낑낑대면서 끌고 나타났다. 병구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인사를 하겠다고 방으로 들어가자 머리를 맞대고 수군대던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빨리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엉 겹 결에 쫓겨나왔지만 어린 마음에도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을 했다. 빛이 흘러나오는 판자벽 공이 사이로 안을 훔쳐보았다. 가내야마 이찌로가 상자를 열고 있었다. 순간 병구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눈이 부셨다. 황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무궁화.”

    가내야마 이찌로가 애이꼬 귀에 대고 속살기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렸다. 그날 밤 병구는 눈부신 금빛이 어른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에 또 기웃거려 보았지만 가내야마 이찌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애이꼬가 병구를 불러서 말을 했다. 

   “너는 내 수양아들이다. 내가 잠시 이곳을 떠나지만 곧 돌아온다. 그래서 물건도 그대로 놓고 가는 것이니 네가 잘 지키고 있어라.”

   가벼운 가방하나를 달랑 들고 떠나는 애이꼬를 보면서 병구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곳에 놓고 간다는 물건이 그날 밤 보았던 금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금덩이를 찾아야 한다. 애이꼬가 떠나기가 무섭게 집안을 뒤져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무거운 금덩이를 멀리는 끌고 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분명히 가까운 곳 어디쯤에 숨겨 두었을  것이다.

    “무궁화.” 

    분명 금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 어떻든 무궁화는 금괴와 관련이 있는 암호 일 것이다. 암호만 풀 수 있다면 금덩이를 찾아 시장을 다사고도 남을 것이다. 이래저래 쉽게 시장을 떠 날수 없는 병구의 비밀을 알리가 없는 박 사장은 구박해도 갈 곳이 없는 병구로 인정 하고 완전히 무시하고 나섰다.

    억지로 눌러앉아 있는 병구지만 박사장이 공천을 받겠다고 서울을 촐랑대며 쫓아다니느라고 가계에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고 보면 더러워도 조금 더 견디어 보기로 한 것이다. 며칠 후에 나타난 박사장이 또 시비를 걸었다. 용돈을 챙기려고 하는 수작이었다.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잠시 시비를 하고나면 금고에서 돈을 뽑아들고 그 길로 달려 나가서 며칠씩 코빼기도 보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번에는 사모님 오경자 여사가 가계를 맡았다. 다행이었다. 가계 일을 아는 게 없으니 자연스럽게 병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은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만둘 마음을 접고 장부정리부터 거래처 수금까지 앞장서서 열심히 뛰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던 오경자 여사가 어느 날부터인가 병구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전화위복이 이런 것인가? 대부분의 가계 일을 맡겨주었다. 간사 한 것이 사람이다. 마음에 응어리도 조금씩 풀려가면서 일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는데 호사다마라고 이번에는 갑자기 오경자 여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버렸다.  다시 박 사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개 버릇 남 주지 못한다고 이번에는 밀가루 선수금까지 걷어다가 들고 나가고 있었다. 누워있는 오경자 여사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박 사장대신 병구에게 가계를 맡긴 것이다. 하지만 직책만 사장이 되었을 뿐 월급이나 대우는 달라진 게 없었다. 일판이 좀 묘하게 되었지만 박 사장도 이제 가계 돈을 축내려면 어쩔 수 없이 병구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다. 병구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것이다. 박 사장에게 고분고분 고개를 숙이고 용돈도 빼주었다. 잔돈 뺏어가는 재미로 박 사장도 조금씩 달라지는가 싶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렵게 돌아가던 자금이 확 풀려버린 것이다. 

   병구가 가계를 잘 운영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이중장부 덕분이었다. 공장에서 들여오는 밀가루 값을 외상으로 미루고 납품하는 양조장에는 단가를 낮추어 현금으로 받아 챙기는 수법으로 소위 말해서 비자금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쥐새끼가 제 꼬리 잘라먹는 줄도 모르고 한 푼씩 쥐어주는 용돈에 눈이 뒤집힌 박 사장은 불만이 없었다. 손바닥만 한 밀가루 가계가 얼마나 갈 것인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마구잡이로 끊어놓은 수표가 부도가 나버리고 말았다. 부도가 난 만복상회야 망해버렸지만 병구는 양손에 떡을 쥐게 된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박 사장과 형이야 아우야 하고 살던 사람들이다. 한데 그 사람들도 언제였느냐는 듯이 병구 옆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오경자 여사 까지 이 세상에 없고 보면 누구라 만복상회를 기억해 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병구 같은 놈을 잡아가지 않는 것을 보면 귀신도 낯 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라고 삐죽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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