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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굽고, 사랑으로 전하는 이레 베이커리 안점상 대표
글 : 신인혜(자유기고가) / uh1986@naver.com
2011.12.01 14:30:5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군산시 소룡동에는 고소한 향기가 가득하다.  매일 새벽 일찍부터 정을 구워내는 제과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로 짜인 간판에 적힌 ‘Lee Lae Bakery’.  짙은 갈색 위 올망졸망 하얀 글씨들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게 안에는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생긴 빵들이 바구니 마다 가득 담겨있다. 갓 구워낸 빵에선 고소함을 넘어선 따뜻한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저는 제과점이 재래시장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과점과 재래시장에 어떤 연관점이 있는 걸까.  “재래시장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덤’입니다.  저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덤’을 챙겨드리곤 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만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습니다.  ‘덤’을 통해 서로 정을 쌓아가는 것이죠.”  제과점은 단순히 빵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정을 나누는 곳이라고 말하는 이레베이커리 안점상 대표를 만났다. 

 

 


 

 " ‘빵’의 ‘ㅃ’자도 몰랐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90년대 초, 안점상 대표는 OCI 협력업체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음식조리가 가능한 트럭을 한 대 구입했다.  해망동 어판장에서 김밥, 라면, 어묵 등 간단한 요깃거리를 팔았다.  새벽에 여는 어판장의 특성상 그의 일과는 새벽 3시에 시작됐다.  “일찍 일어나 장사를 한다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당시에는 어판장에 사람이 많았거든요.”  사람이 많은 만큼 매출도 좋았다.  그러나 노점상 단속이 시작됐다.  “단속이 나오면 장사를 접고 피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제 가게를 차리는 것이 좋겠다 싶었지요.”  가게를 알아보던 중 지인에게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제과점을 운영해보지 않겠냐는 것.  빵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곳이 소룡동 진흥아파트 앞에 있던 ‘에덴제과’였다.  “에덴제과를 인수했을 당시 빵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전문 제빵사를 두고 하나하나 배워야 했지요.”

 

7년간 에덴제과를 운영한 안점상 대표는 멀지 않은 곳에 가게를 새로 열었다.  이름도 바꾸었다.  ‘이레 베이커리.’  ‘이레’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단어로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다.  “에덴제과는 전에 운영하시던 분이 지었던 이름이었습니다.  가게를 새로 여는 만큼 ‘이레’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점상 대표에게는 특별한 철학이 있다.  “저는 저를 장사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업가, 경영인으로 생각하죠.”  제과점은 생각 외로 신경 쓸 일이 많다.  직원을 채용해야 하니 인사관리가 필요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만큼 꼼꼼하게 품질관리를 해야 한다.  좋은 매장을 유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관리도 중요하다.  “하나만 소홀해도 손님들께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신경 쓸 부분이 많은 만큼 어려움도 많지만 그만큼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이레베이커리의 모든 운영은 안점상 대표의 손을 거친다.  원자재 하나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좋은 원자재를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려고 노력합니다.  원자재 가격이 덜 들면 빵의 가격도 낮아지죠.  가격이 저렴하면 손님들께서 부담 없이 다양한 빵을 맛보실 수 있지 않을까요?” 

 

주로 팥빵, 크림빵, 야채빵 등이 잘 나가지만 ‘계절빵’도 인기가 많다.  요즘 같은 가을철엔 호박을 이용해 빵을 만든다.  “하우스 농사가 보편화 되면서 계절빵이 많이 줄었습니다.  대신 케이크에 제철 과일을 올려 계절감을 살리죠.”  안점상 사장은 과일과 채소에서 빵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신선도가 중요한 만큼 통조림 과일은 최대한 배제합니다.  손이 많이 가더라도 직접 과일을 손질해 사용합니다.”  신선한 재료는 빵의 품질로 이어졌다.  맛 좋은 빵을 만든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자연스레 거래처도 늘었다.

 

이레베이커리는 ‘수협’, ‘OCI’ 등 6개의 업체에 빵을 고정적으로 납품하고 있다.  OCI는 벌써 10년 째 함께 하고 있는 곳이다.  “저는 배달을 가면 기도를 합니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직원들이 사고 없이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요.”  안점상 대표에게 회사의 직원들은 가족과 같다.  “1년 중 300일을 마주합니다.  제 식구와 다름이 없지요.”  거래처의 직원들을 각별히 여기는 만큼 빵에도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많은 업체에서 이레베이커리의 빵을 선호하는 이유다.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정면승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레베이커리가 지금까지 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IMF 시절은 무척이나 힘든 시기였다.  프렌차이즈 제과점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 개인 제과점은 90여 곳에 달했다.  그러나 IMF 경제 위기로 많은 제과점들이 문을 닫았다.  어려운 고비를 넘고 안정을 찾았을 무렵 또 다시 위기가 닥쳤다.  이레베이커리 맞은편에 프랜차이즈 P 제과점이 생긴 것이다.

 

“처음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들어왔을 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장사를 했고 단골손님이 있는데 얼마나 어려우랴 생각했던 거죠.”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당시에는 저희 가게가 대로변이 아닌 골목에 있었습니다.  위치적 조건이나 서비스 면에서 부족할 수 있었죠.”  안점상 대표는 승부수를 띄웠다.  대로변으로 가게를 옮기고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동등하게 장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많았습니다.  개인 제과점이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경쟁해 좋을 것이 없다고 했지요.”  그러나 안점상 대표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새로 건물을 짓고 가게를 열었다.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 고객들의 시선에서 생각하고 연구했다.  매장도 하나의 서비스라는 안점상 대표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됐다.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매출이 좋습니다.  개인 제과점도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점상 대표는 프랜차이즈 제과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틈새시장 공략’을 꼽았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아침 7시 30분에 열고 저녁 11시에 닫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새벽 4시 30분에 오픈하고 저녁 12시에 문을 닫습니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 비해 3시간 30분 정도 영업시간이 더 길다.  그 시간 동안 빵을 구입하려는 손님들은 당연히 이레베이커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 영업 시스템의 틈새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많은 분들이 어떻게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마주보면서도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십니다.  비결이란 없습니다.  그저 좋은 빵을 만들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 뿐 이지요.”  

 


 

‘부지런하고 정직하자’

“ ‘가난이 스승’이라는 말이 있지요. 저에게는 그 말이 딱 맞습니다.”  안점상 대표의 유년시절은 가난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부모님과 많은 빚, 고등교육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몸이 편찮으셨어요.  그래서 외국에 나가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물일곱, 안점상 대표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  늘어가는 빚과 동생의 학비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렸다.  그런 모습이 부럽지는 않았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돈도 벌고, 동생도 가르치고, 부모님도 부양하고, 공짜로 외국구경도 하니 이건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사조쯤 되는 거라고요.”  외국에서 1년 일하면 집 한 채를 산다던 시절이었지만 안점상 대표에게는 달랐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님께서 통장을 주시더군요.  60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타향에서 고생한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남겨두었던 돈이었다.  그러나 안점상 대표는 그마저도 집에 남아있는 빚을 갚는데 썼다.  하지만 외국행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외국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의 소개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외국행은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오조쯤 되는 일입니다.”  안점상 대표의 목소리에 웃음이 묻어 나왔다.

 

늘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부지런하고 정직하자.’  안점상 대표의 아버지가 적어준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숙제를 받았다.  가훈을 적어오라는 것.  허름한 종이에 적힌 두 마디의 글은 안점상 대표의 삶이 되었다.  “그 때 당시에는 그저 좋은 말이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글이 어느 새 제 인생의 목표가 되어 있더군요.”  아버지의 가르침은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가족은 나의 힘’

“저희 아내는 충북 옥천 사람입니다.  저와는 9살 차이지요.”  전라도 총각과 충청도 처녀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  지역갈등도 지역갈등이지만 적지 않은 나이차도 문제였다.  처가의 반대는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제가 왜 안 되는지 여쭤봤습니다.  전라도 사람이고 나이가 많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말씀드렸지요.  그것은 제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고치겠다고요.”  안점상 대표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결국 처가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것이 참 많습니다.  저를 만나 고생을 참 많이 했지요.”  안점상 대표가 에덴제과를 운영하던 시절, 그의 아내는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출산예정일은 겨울이었는데 그들에게는 따뜻한 방 한 칸이 없었다.  추운 날씨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걱정에 두 사람은 마음을 졸였다.  결국 아는 지인에게 부탁해 가게 재료실로 사용하던 창고에 보일러를 설치했다.  채 2평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이었다.  “보일러 공사가 끝나던 날 그 방에 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너무 행복해서요.  막내를 마음 놓고 낳을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가게 운영이 힘든 순간에도 아내는 안점상 대표의 곁에서 말없이 힘을 보탰다.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이루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처음 하는 장사에 어찌 시행착오가 없었겠습니다.  그 많은 고생 속에서도 단 한번 하소연 하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 입니다.”  아내의 끊임없는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이레베이커리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점상 대표는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매일 가게에 있느라고 제대로 외식한번 시켜주지 못했습니다.  휴가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지요.”  에덴제과 시절 갓난아이였던 아이들은 벌써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었다.  “사춘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자라줬어요.  큰 탈 없이 자라준 것만으로 고마운데 이제는 저희를 이해하고 오히려 응원해주기까지 합니다.”  안점상 대표는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가족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밝게 웃었다.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이란 만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작고 하찮을 지라도 제가 감사히 여기면 행복해집니다.”  어려운 시간을 지나서일까.  안점상 대표는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삶을 꿈꾸고 있다. 

 

현재 안점상 대표는 ‘일맥원’, ‘행복한 집’ 등 6곳의 기관에 빵을 지원하고 있다.  행복한 집은 벌써 10년째다.  “저희 집은 매출 여부와 상관없이 늘 같은 양의 빵을 만듭니다.  다음날 새 빵이 나오면 남은 빵은 바로 포장해서 기관으로 보냅니다.”  식품보존제를 사용하지 않는 제과점의 빵은 구운 후 이틀이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식빵과 같이 굽기의 정도가 약한 빵은 3일 정도면 곰팡이가 생긴다.  “신선도가 떨어져 빵을 판매하지 못하는 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맛있을 때 드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가끔은 판매하고 남은 빵을 가져왔다며 타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다.  “빵을 가져다 드리면 무척 좋아하세요.  제가 만든 빵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어요.”  

 

이레베이커리의 나눔은 지역사회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일수록 이런 나눔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만 혼자 잘 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려운 때 일수록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점상 대표는 “나눔을 주제로 한 강의나 워크숍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기부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봉사를 하면 나 자신이 더 행복해 집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 혼자만이 아닌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세상은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부문화,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티끌모아 태산’을 만드는 겁니다.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적을지라도 모이면 큰 힘이 됩니다.” 

 

안점상 대표는 앞으로 “지금까지 이레베이커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며 “지역민들을 위한 기부와 봉사를 늘려가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마음으로 굽고 사랑으로 전하는 제과점 이레베이커리. 맛있는 빵은 기본, 고소한 정은 ‘덤’이다.  

 

이레베이커리 | 군산시 소룡동 1393-135 / (63)46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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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17:53:48) rec(204) nrec(195)
존나 맛 없던데
덤은 개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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