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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아니의 발길 닿는대로>
글 : 조종안 / jay0810@hanmail.net
2016.02.01 14:23:2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종아니의 발길 닿는대로>

 

옛날 신문에서 만난 일제강점기 군산의 권번과 기생들 (1)

 

우리나라 기생(妓生)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과 애틋한 사랑을 나눴던 천관녀(千官女)가 대표적이다. 고려 공민왕에게는 연쌍비(燕雙飛), 조선을 건국한 태조에게는 칠점선(七點仙)이 있었다. 바람둥이 양녕대군에게는 얼굴이 가무잡잡한 어리(於里)가 있었고, 24대 왕 헌종에게는 반월(半月)이란 초승달 같은 기생이 있었다.

 

기생제도는 조선 시대에 가장 발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생은 직책에 따라 이름도 갖가지로 불리었다. 등급(1, 2, 3)도 있었다. 1패는 기예가 뛰어난 궁중 여악(女樂)으로 어전에서 가무를 하는 1급 기생. 2패는 관가나 재상집에 출입하는 급이 낮은 기생으로 은군자’(隱君子) 또는 은근짜라 하였다. 3패는 술좌석에서 품위 있는 가무는 못하고 잡가나 부르면서 내놓고 매음하는 창기(유녀)를 가리켰다.

 

TV 사극에 등장하는 의녀(醫女)와 침선비(針線婢) 또한 직제상 관기(官妓)였다. 의녀는 약방기생, 침선비는 상방기생, 가무(歌舞)에 종사하는 기녀는 일명 기생이라 하였다. 기생은 비록 팔천(八賤·노비, 기생, 백정, 광대,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에 속했지만, 상대하는 계층이 사신이나 양반 사대부였으므로 가무 이외에 시··화를 배워야 했다. 말씨와 교양도 갖춰야 했다.

 

조선 기생들은 광무 11(1907) 관기제도 폐지로 자유의 몸이 된다. 하지만 국가에 소속된 공인 예술가로서 '관기'라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은 1908915'기생 및 창기 단속 시행령' 제정 이후로 전해진다. 이는 궁중음악 계승자인 조선 관기들을 없애려는 일제의 치밀한 계략에 의한 것으로 그 후 경시청(일본 경찰)에서 기생들을 관리하였다.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지방 기생들이 상경 러시를 이룬다. 궁중요리사 안순환은 관기들을 데리고 고급요릿집(명월관)을 개업한다. 수라상을 차리던 상궁 나인들도 그를 따라간다. 서울에는 한성, 광교, 다동 등의 기생조합이 생긴다. 기생조합은 1914년 일제에 의해 권번(券番)으로 바뀐다. 권번은 검번(檢番), 권반(券班), 오키야(置屋) 등으로 불렸다.

 

옛날신문에서 만난 군산의 기생들

 

군산(群山)은 조선 시대 옥구현과 임피현을 합한 지역을 말한다. 조선 이전에는 만경강 넘어까지 담당했던 회미현(지금의 회현면 지역)도 존재했으나 태조 4(1395) 옥구에 병합된다. 이러한 행정구역 변천은 고려 시대까지 세 명의 현감이 군산 지역을 다스렸고, 더불어 고을 수령의 수청(守廳)을 들었던 관기(官妓)도 그만큼 많았음을 시사한다.

군산의 권번은 1915년경 처음 설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1930년대 이전에는 조합(組合), 치옥(置屋) 등의 명칭을 혼용하였다. 조선 시대 기생들은 국가기관에 소속되어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일제 탄압 속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예술관도 확립되고 직업관도 뚜렷해진다. 의식과 활동 면에서도 이전 기생들과 차이를 보였다.

 

일제강점기 군산에는 보성권번(普成券番), 군산권번(群山券番), 소화권번(昭和券番) 등 세 개 권번이 존재하였다. 보성권번은 개복정(군산극장 뒤편), 군산권번은 선양동 부근, 소화권번은 동영정(신영동 시장골목)에 있었다. 식민 통치수단의 하나로 설립된 권번은 주식회사의 효시가 되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교육과 공연이 기획될 수 있었다.

 

당시 기생들은 조합 운영과 처우개선 등에 자신들의 의지를 행동으로 나타냈다. 1930년대 초에는 권번을 주식회사로 바꾸는 등 조직적인 자치활동도 펼쳤다. 기생들의 다양한 사회활동은 그들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잦은 자선공연과 봉사활동, 토산품 장려 및 단연운동 등이 그것이다.

 

보성예기치옥 기생 10여 명은 19232월 어느 날 군산 세심관(洗心館)에서 토산품 장려 및 단연회(斷煙會)를 조직하고 새로 만드는 의복은 토산품 이외는 사용치 않기로 의견을 모은다. 만약 사용자가 있으면 그 물품을 몰수하여 공공사업에 보충하기로 정한다. 단연 역시 담배를 피우거나 휴대하고 있으면 벌금(임원 5, 회원 1)을 물리고 벌금이 모이면 유익한 곳에 쓰기로 결의한다.

 

19232, 군산교육후원회가 주최하는 연주회(6~8)가 군산부 강호정(군산시 죽성동)에 있는 군산좌(군산극장)에서 열렸다. 신파극도 선보였던 연주회는 운영비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북간도 대성중학교 돕기 자선공연이었다. 이에 보성 예기치옥과 군산 예기치옥 등 17개 단체가 후원하였고, 이들은 성금을 모아 전달하였다.

 

1926129, 30일 양일간 신·구극 공연이 군산좌에서 열렸다. 당시 신문은 조합원들을 위문하기 위한 이번 공연은 명성이 자자한 보성권번과 군산권번 예기들이 동정(同情) 출연하였으며 시작 전부터 군산에서 전례가 없는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보도하였다. 신문은 개인 다수와 정미소, 노동조합 등에서 기부금도 들어왔다고 덧붙인다. (계속)

참고문헌: 황미연, <전라북도 권번의 운영과 기생의 활동을 통한 식민지 근대성 연구>(전북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기생 이야기 일제시대의 대중스타>(신현규), 옛날신문(1920~1930년대), 장금도 명인 구술

 

사진1 잔칫집에서 기념촬영 하는 조선 기생들 1930년대 모습

사진2 1920년대 요정 풍경(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영상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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