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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중학교 야구부 일제강점기 발자취...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6.01.01 10:10:3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근현대 야구사를 집대성한 <한국야구사 연표>(2014)에 따르면 한국 야구는 국운이 쇠약해진 구한말(1904)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에 의해 이 땅에 싹을 띄웠다. 최초 전국대회는 조선체육회가 결성되는 1920년 11월(14일~16일) 배제고보 교정에서 열린다. 대회 명칭은 제1회 전조선 야구대회. 이는 오늘날의 전국체육대회 기점이 된다. 

위는 1928년 전북 이리체육회가 주최한 제1회 호남중등학교 야구대회(9월 15일~16일) 결승전 수상식 장면이다. 1910~1920년대 우리나라 야구는 선수들을 지도하고 육성할 만한 통일된 기관이 없는데다 룰(rule)도 엉성하였다. 경기도 친선경기나 대항전이 산발적으로 열리다가 충청·전라지역 중등학교가 참가하는 최초 지방대회여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제1회 호남중등학교 야구대회는 이리 철도운동장에서 열렸다. 참가팀은 목포상업, 강경상업, 전주고보, 이리농림, 군산중학교(아래 군산중) 등 다섯 개 팀. 이 대회에서 군산중은 2회전에서 전주고보를 2-0으로 완파하고 결승에 올라 목포상업을 4-2로 물리치고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우승 당시 군산중 야구팀은 주장 요시오(吉尾 2루수)를 비롯해 후지타(藤田一·중견수), 쓰지모토(辻本·1루수), 나카니시(中西·투수 겸 우익수), 마시코(益子·유격수), 김판술(金判述·좌익수), 마루이(丸井·3루수), 후지타(藤田茂·포수), 미나미무라(南村·우익수 겸 투수) 등 9명으로 김판술을 제외한 선수 모두가 일본인 학생이었다.

유일한 조선인 선수였던 김판술(1909~2009)은 군산심상고등소학교(군산초등학교 전신)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다. 그는 군산중 선수 시절 중심타자로 맹활약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인지 1929년 제작된 군산중 2회 졸업앨범은 김판술 선수의 멋진 수비 모습 사진을 요시오(주장) 선수 타격 연습 장면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김판술은 군산중을 2회로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우쯔노미야(宇都宮) 고등 농림농과에 다닐 때까지 4번 타자로 활약하다가 교토대(京都大) 농림화학과로 진학해서 선수생활을 그만둔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1957) 열린 행정부-입법부 친목야구시합 때 선수로 뛰었으며, 1960~1970년대에는 군산상고 경기 때마다 운동장에 나와 응원을 펼칠 정도로 야구를 사랑했다.

 

호남 중등학교야구대회 두 차례 석권

1929년 6월에 열린 제2회 대회(광주중, 군산중, 전주고보, 이리농림 참가)에도 출전한 군산중은 예선에서 광주중을 만나 4-9로 패한다. 익산군 체육협회가 주최한 제3회 대회(광주중, 대전중, 전주고보, 이리농림, 군산중 참가)에서도 군산중은 준결승에서 광주중에 6-7로 아깝게 진다. 당시 광주중은 2회, 3회 대회를 연패(連覇)한 강팀이었다.

군산중은 1930년 6월 이리 철도운동장에서 개최된 제4회 대회(강경상업, 고창고보, 광주중, 대전중, 전주고보, 이리농림, 군산중)와 그해 9월에 열린 제5회 대회(전주고보, 이리농림, 고창고보, 대전중, 목포상업)에도 참가했으나 예선에서 탈락한다.

호남 중등학교 야구대회는 이리 체육협회와 익산군 체육협회가 교대로 개최했는데, 제6회 대회(1931) 기록은 없다. 1931년은 일제가 군사를 일으켜 그해 9월 18일 남만주 철도를 고의로 폭파하고, 이를 계기로 '만주사변'을 일으킨 해였다. 그 후 일제는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1932년 3월 괴뢰 만주국을 세워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였다.

익산군 체육협회 주최로 1932년 6월 이리 철도운동장에서 개최된 제7회 대회에서 군산중은 준결승에서 목포상업을 5-2로 누르고, 결승에서 이리농림을 4-1로 꺾어 두 번째 우승기를 거머쥔다. 제7회 대회는 군산중, 목포상업, 대전중, 전주고보, 이리농림 등이 참가해 이틀에 걸쳐 자웅을 거뤘다. 이후 기록은 옛날 신문에도 <한국야구사 연표>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군산중 야구부, 전북 최초로 전국대회 참가
     


군산중(5년제)은 일본인 자녀들 중등교육을 위해 1923년 5월 23일 개교한다. 야구부도 일찍이 창단된다. 군산중 야구팀은 1928년 여름 조선체육협회가 주최하는 제14회 전국중등우승야구 조선예선대회(제8회 전조선중등학교대회)에 출전한다. 따라서 군산중은 전북 최초로 전국규모 학생야구대회에 참가한 학교가 된다. 

이 대회는 전국에서 18개 팀(경성사범, 용산, 군산중, 휘문고보, 청주농업, 목포상업, 평양, 경성상업, 부산, 배재고보, 원산, 경성중, 인천남상, 부산1상, 대구상업, 대구, 대구고보, 진남포상공)이 참가하였다. 그해 7월 28일~8월 1일까지 경성운동장과 용산 만철구장에서 진행됐다. 군산중은 휘문중과 1차전에서 5회 기권패(콜드게임패) 당한다. 17회 대회와 19회 대회에도 참가했으나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한다. 

군산중은 1929년 7월 18일 경북 대구에서 열린 제9회 조선중등학교대회에도 참가한다. 그해 8월 13일 일본 갑자원(甲子園)에서 열리는 전일본 중등우승야구대회'를 앞두고 열린 예선대회였으나 첫 경기에서 탈락한다. 조선 예선대회는 참가팀(21개)을 서울과 대구로 나눠 각 우승팀이 8월 초 재경기를 갖고 승리한 팀이 갑자원 대회에 출전하는 방식이었다.

1933년 아사히(朝日) 신문이 주최하는 '전 일본중등우승 야구대회'에도 출전한다. 일본중등학교 야구대회는 그해 8월 12일~15일까지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렸다. 군산중은 대회 마지막 날 추전중(秋田中)과의 경기에서 2시간이 넘는 접전을 펼친 끝에 7-5로 승리하고 귀국한다.

군산중 야구부는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체된다. 그리고 이듬해 정윤기 교사 노력으로 부활한다. 그 후 각종 대회에 출전, 우승도 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둔다. 야구 평론가들에게 기량이 뛰어난 강팀으로 인정도 받는다. 1951년 학제개편으로 3년제 중·고로 분리되면서 야구부는 군산중에 존속된다. 2008베이징 올림픽 우승의 주역 이진영, 정대현과 김성한 전 KIA타이거즈 감독, 석수철 군산상고 감독 등이 이곳 출신이다.

조선인 학생들, 차별대우 속에서도 '민족 혼' 지켜
 


군산중은 1926년 6월 8일 본관건물 낙성식을 앞두고 사이토(齋藤) 총독 축사와 본관 건물 사진이 신문에 실릴 정도로 중앙의 관심이 높았다. 1회 졸업식 때 일본인 31명, 한국인 2명을 배출한 호남 명문으로 일본인들의 자랑거리였다.

조선인 입학이 매년 2~3명에 그치자 자녀교육에 뜻을 둔 군산의 유지들은 전교생의 1/3은 조선 학생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은 자주 회합을 갖고 군산을 방문한 사이토 총독에게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학급 증설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그러나 1930년 10학급으로 편성하면서도 조선인 자녀 입학 문제는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군산중 조선인 학생들은 일본인 교사들의 냉대와 감시, 차별대우 속에서도 우리의 '민족 혼'을 지켜나갔다. 1931년 6월 군산에 거주하는 조선인 학생들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적보존을 위한 모금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 그들은 추모 성금 3원 20전을 모아 <동아일보> 군산지국에 전달하는 것으로 충무공의 높은 호국정신을 기렸다.

조선인 학생들은 중일전쟁(1937)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와중에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였고 교육도 크게 피해를 입었다. 한국전쟁 때는 군산에서 많은 학생이 학도병(학도의용군)으로 전선에 투입되었고, 그중 군산중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사자(97명)를 낸 학교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도 군산중학교 충경원(정원)에는 학업의 꿈을 못다 이루고 군번도 계급도 없이 장렬하게 산화한 호국 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忠魂塔)이 세워져 있다.

사진제공: 군산 동국사
자료출처: <한국야구 100년 연표>(홍순일), <군산야구 100년사>(조종안 지음) 1920~1930년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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