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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비열한 동행(6)
글 : 박유경 /
2016.01.01 09:58:2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보신탕 한 그릇 하시죠.”
  “뭘 잘못했나요?”
  “저에게도 모실 기회를 주셔야지요.”
  “내 더러워서.”
  전무는 투덜거리면서도 못 이기는 척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역시 정력제가 먹히는구나. 박 계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바로 옆에 허리를 굽히고 내시처럼 따라나섰다. 직원들이 비웃는 얼굴이다.
  “어디로 가냐?”
  “똥개 쓰는 집은 성미옥 뿐입니다.”
  “모두 수입품이라던데 어느 놈을 믿겠냐?”
  “제가 전무님을 위해서 특별히 부탁을 해 놓았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전무가 박 계장 따위의 수작 얕은 아부를 모를 리 없겠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보일 듯 말 듯 미소까지 띄우고 휘적휘적 걸어서 앞장을 섰다.
  홍만섭 전무의 별명은 몬도가네다. 육군상사로 제대를 한 전무는 모르는 게 없다. 무식 똑똑이라는 것이 그의 또 다른 별명이다. 자기보다 잘난 놈 있으면 나와 보라는 오만한 성격이기도 하다. 사장도 전무의 억지를 믿고 신임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회사 내에서 지금까지 전무와 논쟁이 붙어서 이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끝이 없었다. 아무 말이나 한번 꺼내면 누구도 중간에 중단을 시킬 수가 없다. 사석에서 소주까지 한 병쯤 곁들이면 더욱 가관이다. 주로 군대와 정력제 이야기다.
  백번도 더한 이야기라 주위 사람들은 줄거리까지 다 알고 있다. 오늘도 보신탕 앞에 두고 또 시작하는 줄거리가 환하다. 하지만 박 계장은 처음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여 주어야 아부가 된다. 이상한 것은 오히려 전무다. 치매에라도 걸린 것일까? 진지한 표정으로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하듯 시작을 하는 것이다. 본인조차 속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다. 딱 한번 누군가 전무의 이야기를 중단시킨 적이 있었다. 하도급 업자였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두 번 듣는 이야기라고 아는 채 했다가 일 년이나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건이다.
  벌써 소주 한 병이 바닥났다. 입가에 개침이 번지는 것이 이제 슬슬 정력제 이야기가 나올 참이다. 뱀이다. 전무는 뱀 박사로 통했다. 뱀의 종류부터 시작을 해서 성질까지 뱀에 대한 상식을 떠벌일 때는 뱀 장사보다 더 유식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흙질백장이라는 뱀 중의 으뜸이라는 뱀도 먹었다고 했다. 흙질백장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귀한 뱀이라고도 했다.
  “그 때 말이야, 나는 그게 무슨 뱀인지도 모르고 먹었단 말이야. 켈로 부대에 있을 때인데 대검 한 자루를 허리에 차고 삼팔선을 이웃집처럼 넘나들 때였어.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틀 동안이나 굶고 지쳤었지. 한데 말이야 힘이 없어 엎드려 있는 내 앞으로 놈이 슬슬 기어온 거야. 그리고 날 잡아 잡수 하는 식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거야. 그 때는 먹을 거라면 용가리라도 잡아먹겠더라 그 말이야. 앞뒤 생각 없이 놈의 목을 비틀어 껍질을 벗기고 구워서 먹어버렸어. 한데 말이야 이상하게도 졸음이 오는 거야. 그냥 숲에 떨어져 잠들었는데 3일 밤낮을 꼬박 깨어나지 못하고 그냥 자버린 거야. 나중에 그게 하늘이 내게 내려준 선물이라는 걸 알았지.”
  전무는 자신이 하늘에서 점지해서 태어난 인간이라고 허풍까지 떨어댄다. 아무려면 어떤가? 손해 본 것도 없고 또 아니라고 하고 나설 처지도 아니기에 그저 아부하듯 웃는 채 하면서 소주잔을 채워 올렸다. 따지기로 한다면 전무 말은 애초부터 사기다. 열 번이면 다 다르다. 소주잔을 비우는 숫자에 따라 켈로 부대가 첩보부대가 되었다가 취해버리면 급기야 혁명군으로 둔갑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엉뚱하게 광주진압군이 되었다고 해서 비웃음을 산적도 있었다.
  소주가 두 병째다. 이제 전무의 이야기가 절정에 달할 때다. 드디어 물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만은 사실인 것 같았다. 열 번을 들어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쉬워하는 표정이나 한숨까지도 똑 같다.
  “내가 말이야, 동해안 초소 장을 할 때였어.”
  “몇 년도였는데요?”
  이때쯤 전무의 기분을 맞춰주어야 한다.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주는 척 해야 한다.
  “그 때가 1970년도였지.”
  “부하도 많았겠네요.”
  “아냐, 1개 부대뿐이었어.”
  “계급이 하사였나요?”
  “임마, 나는 중사였어.”
  “중사 때면 오 마담과 지낼 때 아닌가요?”
  “네가 어떻게 오 마담을 아냐?”
  “저는 전무님 팬입니다.”
  “그럼 내가 이야기를 했었냐?”
  “아닙니다. 언젠가 비 오는 날 전무님이 오 마담을 그리워하시는 것을 보고 전무님의 순정을 부러워했습니다.”
  엉겁결에 내뱉고 보니 아무리 아부라지만 너무 했다 싶어진다. 이마에 땀이 배어 나오고 등까지 스멀거린다.
  “네가 순정을 알아? 그럼 내가 물개 이야기도 했냐?”
  “아, 아닙니다. 물개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그래?”
  “전무님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듣고 싶습니다.”
  박 계장은 짐짓 떼를 쓰는 것처럼 졸라댔다. 전무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고 가늘게 실눈을 뜨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는 참 좋았다.”
  “군대생활이 그렇게 재미있었나요?”
  “아니지, 정력 말이야.”
  “정력이요?”
  “그래 오 마담 그 년이 색골이었지만 나한테는 두 손 들었어.”
  “오 마담이 그렇게 좋았나요?”
  “그럼, 그 년을 당할 놈이 없어서 내기를 할 정도였거든.”
  “전무님이 이기셨나요?”
  “큰소리치던 그 계집이 새벽녘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에게 빌었지.”
  이때쯤 전무의 눈은 가늘게 떠지고 얼굴은 추억을 회상하듯 그리움에 젖는다.
  “뭘 잘못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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