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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비열한 동행(5)
글 : 박유경 /
2015.12.01 16:33:1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환각

  전무는 눈의 흰 창을 허옇게 내놓고 뒤룩거리는 것이 몹시 짜증난 얼굴이다.
  “몇 시냐? 그래서 언제 과장 하냐?”
  그럼 그렇지, 보는 척하던 신문을 던지면서 어김없는 시비다. 박 계장이 전무의 눈 밖에 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덕분에 과장 자리 하나 하사받지 못하고 만년 계장으로 앉아 있는 것이다. 아니 아예 그만두라는 뜻일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무에게 아부를 해야 한다. 그것도 보통 아부로는 통하지 않는다. 박 계장은 여러 날 궁리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거사 날을 오늘로 잡고 새벽부터 뛰쳐나온 것이다.
  전무 머릿속에는 좋은 말로 입력 된 것이 없다. 입만 열면 하수구에서 쏟아내는 시궁창 냄새 같은 소리뿐이다. 전무와 눈이 마주치자 얼결에 숨결까지 가빠진다. 어젯밤 천둥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살모사 같은 눈빛은 분명 전무의 것이었다. 오싹 소름이 끼쳐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언제 박 계장을 쳐다보았느냐는 듯이 고개를 획 돌리더니 이번에는 사무실 안에 다 들리게 큰소리로 험한 욕을 내뱉는다.
  “개새끼들.”
  뚜두둑 손가락 마디까지 꺾으면서 비장한 얼굴로 시작이다. 근래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무가 무작위로 씹어대는 사람들은 과거에 전무를 쫓아다니던 하청업자들이 주로다. 하지만 지금은 직원들도 포함되는 셈이다. 회사가 호황일 때 전무 앞에 줄을 서서 아부를 하던 직원들까지 거의 모두 등을 돌렸기 때문에 배신감으로 화가 나 있다는 것이다.
  박 계장이 다니는 주식회사 동일 건설은 허가가 통제되던 시절에도 시체 말로 끝 발이 하늘 높은 줄 모르던 호황의 회사였다. 건설 경기도 좋았지만 사장이 여당의 부위원장으로 시장이나 경찰서장도 문안을 드릴 때였으니 당연했다. 회사 승용차에까지 교통경찰들이 경례를 붙였다. 말하자면 허가권 하나로 먹고 살았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회사로 돈이 벌려 들어왔다.
  작은 도시에 종합건설이라고는 동일 건설 하나 뿐이었다. 때문에 관청공사는 당연한 것이었고 개인 공사라도 조금 크다 하면 동일 아니면 허가도 준공도 되는 일이 없었다.
  정치 빽으로 관공서에서까지 사주를 하고 보면 건축, 토목공사, 명실공이 독점이었다. 일이 그 쯤 되고 보면 더 큰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고 손도 안 대고 코 풀려고 했다. 애써서 일할 것도 없었다. 공사판에 이름만 걸어놓고 영세업자에게 하청을 주고 대금은 몇 달치 어음으로 끊어주어 버리면 꿩 먹고 알 먹게 되어 있었다. 힘없고 돈 없는 불쌍한 영세업자야 그렇게 해서라도 일을 하려고 아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은 어디서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지조차 알 필요도 없었다. 건축물에 몇 근의 철근이 들어가는지 시멘트 값이 얼만지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전무가 부실공사로 벌어다 주는 돈으로 힘 있고 빽 있는 친구들과 골프나 치고 오입질이나 하면 되는 일이었다. 덕분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 밑으로 지나가는 서민들만 등골이 서늘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홍 전무가 날리던 시절이었다. 전무는 사장의 조카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전무였다. 회사 일은 인사권까지 전권을 쥐고 흔들었다. 홍 전무가 벌어주는 눈먼 돈으로 정치까지 한답시고 집권당의 문턱까지 들락거리는 사장이고 보면 홍 전무야말로 실제 사주인 셈이었다. 덕분에 홍 전무 옆에는 항상 간신배가 득시글거렸다. 홍 전무에게 점수를 따려고 접대를 하려면 사전에 접수를 해야 할 정도로 만나기가 힘들었다. 술자리를 만들겠다고 일 년을 기다리다 지쳐서 그만 둔 사람도 있었다.
  박 계장이 지금 생각해 보면 지독히도 눈치가 없었다. 그냥 아부만 하면 되는 것을 모르고 산 것이다.
  입사 동기인 한준기는 부장 된지가 수 삼 년이다. 한 부장은 전무의 속마음을 꿰뚫었던 것이다. 정력제 한 가지로 부장까지 고속승진을 한 것이다. 전무가 사족을 쓰지 못하는 것은 딱 하나다. 아무리 혐오 식품이라 해도 정력에 좋다면 그만이었다.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 부장 말고 몇 사람이 되지 않았다. 홍 전무가 워낙 능글맞고 음흉했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은 박 계장은 이제야 겨우 그 사실을 안 것이다. 진즉에 알았다면 서무과장 자리 하나는 벌써 얻었을 것이다.
  전무는 지금도 그 화려한 때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어려워진 것은 엊그제 일이다. 허가제로 하늘의 별 따기였던 종합건설이 민주화로 신고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독점의 화려한 세월은 가버렸다. 아울러 홍 전무에게 아부를 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지고 만 것이다. 집권당까지 무너져 빽이 없어지고 보니 회사의 형편까지 말이 아니다. 그야말로 화무십일홍이 된 것이다.
  새삼 생각해 보면 후줄근해진 전무를 모른 채 해야 할 판이다. 지금껏 괄시를 받은 것도 억울한데 이제 와서 무엇을 얻어먹겠다고 아부를 하겠는가? 생각하면 오히려 고소하다. 한데 웬일인지 요즈음 들어 박 계장은 새삼스럽게 홍 전무에게 연민의 정이 가는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회사 형편이 다시 좋아지면 한직 과장자리라도 하나 만들어 줄지 모르는 일이다. 이때 아니면 언제 전무에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능력 없는 박 계장으로서는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무가 외로울 때 접근을 해서 신임을 얻어두자는 계산이 어느 세월에 먹힐지 모르지만 당장 사표를 낼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거기다가 전무가 좋아하는 것이 정력제라는 것도 알게 된 지금이다.
  박 계장은 전무를 위해서 정력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번 거사는 꼭 성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조금 비겁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애초부터 존경심을 빼버린 홍 전무다. 정력제 좋아하는 전무를 꼬드기는 방법은 이뿐이다. 죽고 사는 것은 전무의 사정이고 사실 속여먹는 재미 또한 쓸쓸한 것이다.
  “더러운 놈들.”
  이번에는 침이 박 계장의 얼굴에까지 튈 정도다. 아침부터 무언가 단단히 속이 상한 모양이다. 지금이야 말로 전무에게 접근할 기회의 순간인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려면 아직 삼십 분은 있어야 한다. 박 계장은 느리게 일어났다. 괜히 두 다리가 떨린다. 크게 숨을 고르고 전무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전무님, 가시죠.”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어딜?”
  전무는 눈의 흰 창을 허옇게 내놓고 뒤룩거리는 것이 몹시 짜증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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