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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비열한 동행(4)
글 : 박유경 /
2015.11.01 14:08:3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끓이자.” 
영감이 불쑥 농어를 내밀었다. 벌써 해가 중천으로 떠올라 이마를 따갑게 했다. 얼결에 받아 들었다 이제 네가 알아서 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생선을 순실이 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웃는지 마는지 이상한 표정으로 그냥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사위가 끓여.”
    순실이가 요리를 하지 못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언제 생선탕을 끓여 보았는가? 그렇다고 뿌리 치고 나올 분위기도 아니다. 거기다가 밀려오는 공복감까지 발길을 잡았다. 물 붙고 끓이면 생선탕이지 별것 있을까 싶어 부엌으로 들어갔다.
    썰렁하기만 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도시 알 수가 없다. 아무 곳이나 손이 닫는 데로 뒤져 보았다. 그래도 사람 사는 집이라고 도마도 있고 칼도 있었다.
    쌀도 찾아내었다. 순실이가 옆에서 썩은 양파도 건네주고 고추장 된장 단지도 들고 왔다. 밥도 하고 매운탕도 끓였다. 대충 됐다싶어 허리를 펴고 밖을 보았다. 벌써 점심나절 되었다.
    개다리소반에다가 밥솥하고 생선탕 냄비를 얹어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제처럼 또 코를 골고 있는 영감을 깨웠다. 순실이까지 밥상머리에 다가와 앉았다. 먼저 수저를 들어 국물 맛을 보았다.
    처음 끓여본 매운탕 맛이지만 먹을만 하다싶었다. 공복감에 정신없이 밥 수저를 들어 올리다가 문득 뒤 퉁 수가 간지러워 고개를 돌렸다. 그녀였다. 가짜 장모가 눈을 뜨고 멀건이 쳐다보고 있다.           
     “일어나세요.”
    등을 일으켜 세워 벽에 기대어놓고 수저를 들어 매운탕 국물을 한 수저를 떠서 입에 흘려 넣어주었다. 그녀가 목을 비틀면서 삼키려고 안가님을 쓰고 있었다.
     영감도 순실이도 모두 함께 맛있게 먹었다. 모처럼의 포만감에 행복한 얼굴이었다. 장모를 다시 뉘였다. 갑자기 그녀의 볼에서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아마도 감격의 눈물 일 것이다. 뭔가 말이 하고 싶어진 모야이다. 
     “귀를 가까이 대봐.”
     영감이 웅얼거렸다. 
     “고마워.”
     먼 땅속에서 들리는 개미소리 같았지만 분명 그렇게 들렸다. 내일이라도 밤중에 인사도 없이 도망치고 나면 더 큰 죄악이 되겠지만 지금은 이 불행한 가족에게 행복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겠냐고 마음을 다져먹었다.            
    영감은 매일 나가서 생선을 들고 오고 순실이는 구멍가계에서 소주와 라면을 가져오고 사위는 매운탕을 끓여서 밥을 짓고 내용을 모르면 손발이 맞는 행복한 하루 하루였다.
     누워 있는 장모님도 아주 만족한 얼굴이었다. 매일 매일 일으켜 맛 사지까지 해주는 사위에게 무한한 감동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그녀와는 귀를 가까이만 대면 작은 의사는 소통할 처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작은 행복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성호는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 며칠만 숨어 있으려했던 것이 또 한 달이 훌떡 지나고 만 것이다. 여기서 더 머뭇거리다가 추적하는 사채업자에게 잡히면 도리 없이 배를 갈라서 신장을 떼어 낼 수밖에 없다.  
    아침부터 찌푸렸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었다. 이르게 집을 나간 영감은 돌아오지 않았고 순실이는 언제나처럼 사립문 뒤에 서서 영감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다.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서 인지 구질구질한 날씨가 마음을 더 처량하게 만들어 주었다. 서글퍼진 마음으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가짜지만 자신을 사위로 믿고 있는데 인사쯤은 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서였다.  
      장모님이 또 일어나려고 용을 쓰고 있다. 달려가서 허리를 받쳐 주었다. 며칠 동안 가짜 사위노릇을 해주면서 정성스럽게 떠 넣어준 미음의 효과가 있었는지 기력이 조금 나아진 듯싶었다. 지금 떠나겠다고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우우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귀를 가까이 댔다.
    “미미... 밑.”
    “쌌어요?”
    아무래도 그쪽은 난감하다. 하지만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다. 이불을 들추었다. 그래도 지독한 냄새는 아니다. 그녀가 미미하게 몸을 흔들었다. 아니라는 표현 같았다. 시선을 쫓아 가보았다. 깔고 누워있는 요 밑을 보고 있었다. 손을 넣어 보았다. 뭔가 집혔다. 꺼내서 꽁꽁 묶은 비닐을 펼쳤다.
     “어?”
     생각지도 않은 은행 통장과 도장이다.
     “하나 둘 셋..... 억!”
    동그라미를 세어가던 성호의 눈이 휘 까닥 뒤집혔다. 그녀를 부축하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마음 놓고 갈수 있어. 사위.”
      사위라는 아주 작은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고 있었다.
      “쒜엑 쒜엑.”
      갑자기 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임종 전에 마지막용을 쓰는 가쁜 숨결 이었다. 장모가 죽어 간다 한들 가짜인데 무슨 문제인가? 이 돈이면 그 지긋지긋한 사채업자 놈들에게 도망 다닐 필요도 없고 배를 갈라 신장을 떼어 낼 일도 없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감도 순실이도 보이지를 않았다. 하기야 있다한들 사지가 멀쩡한 자신의 손에 들어온 통장을 아무것도 모르는 영감과 순실이에게 빼앗길 리가 있겠는가? 횡재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어진다.
      “쒜액 쒜액.”
      그녀의 숨결이 더욱 가빠지고 있었다. 지금껏 영감과 순실이를 맡길 사람을 기다리느라고 모진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것인가? 하지만 헛짚었다. 김성호는 아니었다. 
      “숨이 넘어가기 전에 가야한다.” 
      조금은 미안하다 싶었지만 김성호에게는 양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운명!”
      영감이 말이 떠올랐다. 이동네로 오게 된 것부터가 운명이었다.
      “모두 운명대로 사는 거지.” 
      통장과 도장을 들고 뛰어나왔다. 밖에는 굵어진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대문 뒤에 순실이가 서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알아듣지도 못하는 형식적인 인사 따위는  그만 두기로 했다. 
      쏟아지는 빗속으로 달렸다. 갑자기 등 뒤에서 가쁜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뒤를 돌아다보았다. 빗줄기 말고는 보이는 게 없다. 순간 빗방울 속으로 번개와 함께 푸른 섬광이 지나갔다.
      “사위!”
      장모였다.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이 어둠속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우르릉 쾅!”
      자신도 모르게 허우적대는 두 팔위로 번개 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아아!”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 날수도 없다. 두 다리가 꼬이면서 물이 고인 웅덩이위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파란 번개불속에서 작은 벌래 그림자 하나가 몸부림을 치면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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