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라대곤 소설집 '퍼즐' 비열한 동행(3)
글 : 박유경 /
2015.10.01 09:56:3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한잔하세.” 

     “영감님?”
     “뭐가?”   
     술 먹을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뿌리칠 수도 없었다. 이런 때 진퇴양난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네 실랑이다.”
      아무리 술이 취했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다. 등에 스멀스멀 진땀이 베어 온다. 
      “사위 한잔 받게.”
      미친 영감을 따라 온 것이 잘못이었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가겠수.”
      술이고 뭐고 싫어지고 말았다. 털고 일어났다. 한데 이건 무슨 수작인가? 갑자기 영감이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그리고 큰대자로 뻗어 그대로 코를 골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가 막혀 술상을 들고 온 순실이를 쳐다보았다. 몸을 꼬고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눈까지 돌아간 뇌성마비 중증장애자였다. 옆에서는 반신불수로 누운 그녀의 어머니가 기를 쓰고 일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괴기까지 흐르는  방안의 분위기였다. 놀라서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오려다가 갑자기 발을 멈추었다.
     “이거다.”
     순간 머릿속으로 번개 같이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안성맞춤이다 싶었다. 사위면 어떻고 도둑놈이면 어떤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미안할 것조차 없는 것이다. 당장 월세도 걱정이고 하루 한 그릇 밥도 못 먹는 처지다.
     안성맞춤의 피신처다. 슬그머니 주저앉아 버렸다. 누워있는 여인과 얼굴이 마주쳤다. 씰룩이는 볼이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이이.”
    귀를 가까이 댔다. 일어나고 싶다는 뜻인 듯싶다. 등을 받쳐서 일으켜 주었다. 골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가짜 사위노릇이라도 하려면 어깨라도 주물어 주어야겠다.  
     “시원하세요?”
     애절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까짓것 사위면 어떻고 서방이면 어떤가? 이곳에 숨어 있는 동안이라도 잘해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져먹었다. 옮길 짐도 없다. 몸만 뉘이면 그만인 것이다.
   이상한 동거가 시작 되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눈을 뜨고 보니 뒷골방이다. 순실이가 윗목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머리를 묻고 잠들어있다. 어젯밤이 첫날밤인 셈이다. 알량한 양심으로 그냥 일어 설수가 없어서 윗도리를 벗어 그녀의 어깨 위에 얹어 주었다.
      이른 아침부터 영감이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생선을 구하러 나갈 모양이다. 수중에 돈 한 푼 챙길 줄 모르는 영감이 매일 어떻게 생선을 구해 오는지 궁금하다.
   “어디 가시려고요?   
   “어판장.”
   “생선이요?”
   “따라 올 텐가?”
   해망동 어판장은 근해 어선들이 물때를 맞추어 밀려드는 곳이다. 밤새 잡은 생선을 새벽녘에 공판한다. 대게는 중매인들이 북적대지만 소상인이나 식당 주인들이 살아있는 생선을 싼값으로 사려고 이른 아침부터 몰려들어 활기가 차는 곳이다.   
     가보고 싶었다. 도망 다니는 처지에 사람이 북적대는 곳은 피해야 하지만 한 달여나 갇혀있다 보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끝낸 영감이 그 껑충한 키로 흰 중의 바지를 펄럭이면서 집을 나서고 있었다. 따라 나섰다. 영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앞서가고 있었다.
     어판장은 이른 새벽인데도 분주했다. 갈고리로 집어 던지는 생선이며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던 상인 몇 몇이 영감을 보고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해주었다.
     영감은 대답대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것이 물건을 고르고 있는가  싶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나 돌아다니더니 엉뚱하게 길가에 좌판을 벌려놓은 젊은 여인네 앞으로 다가 가는 것이었다.  
     “잘 있었어?”
     “삼례 댁이 당첨되었다.”
     열자리에 늘어앉은 여인네 들이 낄낄 거렸다.     
     “오늘은 개시도 못했어.”
     당첨되었다는 젊은 여인네가 반기지 않는 찡그린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외상이야.”
     “어느 세월에 갚아?”
     “이제 다 나았어.”
     “나았다니 그건 반가운 소리네.”
     순실이 어머니 그러니까 가짜 장모님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젊은 여인네의 좌판 앞으로 다가간 영감이 펄떡거리는 농어 한 마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몸을 돌리어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을 했다. 헐렁한 중의 바지가 펄럭거리면서 속살까지 훤히 보였다.
     “어서 빨리 형님이 일어나야지.”
     한숨을 쉬는 좌판 여인네들에게 대충 얻어든 바로는 영감의 부인 그러니까 가짜 장모가 얼마 전까지 이곳에서 생선 장사를 함께 했는데 새벽에 장사하러 나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은 식물인간이 되어 몸져누워 있다는 것이다. 함께 장사하던 의리로 나을 때까지 돌아가면서 생선 한 마리씩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위 가세.”
    “어마. 순실이 실랑이야?”
    좌판 여인네 들이 반색을 하면서 일어났다.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도 저도 하는 대로 놓아두기로 했다.  
     “형님 원 풀었네.”
     “허우대는 멀쩡하네.”
     “며칠이나 견디겠나?”
     “이번에는 진짜다.”
     영감이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럼 좋지.”
     “내일 또 올께.” 
     영감은 생선 아가미에다가 비닐 끈을 꿰어 걸머지고 나서는 영감을 다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영감은 오늘따라 유난히 더 궁둥이를 흔들면서 신나게 걷고 있었다. ​

박유경님 기사 더보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