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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비열한 동행(1)
글 : 박유경 /
2015.08.01 10:45:29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어서 오시오.”
     선문답 같은 대화에 끼어 들어갈 수도 없어 어정쩡하게 서있는데 주인 여자가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시네.”
     멈칫 거리는 성호를 주인이 빤히 올려다보았다.  
     “저 윗집에 새들었습니다.”
     “맘보네 아랫집이구 먼.”
     “영감님 이름이 맘보씨 인가요?”
     “엉덩이를 까발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영감이야. 이름도 모르고 물건 값도 몰라. 궁둥이를 잘 흔들어서 그냥 맘보라고 부르지.”
     허우대부터가 멀쩡한 사람이 소주 한 병도 계산 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렇다고 맘보 어쩌고 하면서 모르는 체 외상을 주는 이유는 뭘까? 이 동네는 사람들은 이해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코가 석자인데 남에 동네 걱정까지 할 일 있냐 싶어 그냥 돌아 나오다가 또 영감을 만났다. 좀 전에 들고 나온 소주를 벌써 마시어  버렸는지 불콰한 얼굴로 골목길 언덕에 앉아있었다. 공터에서는 마을 어린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맘보.”
    영감을 향해 공을 길게 찬 녀석이 느닷없이 엉덩이를 까발리더니 흔들어 댔다. 분명 놀림이었다. 이제 큰일 났다싶어 영감을 쳐다보았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영감은 화를 내기는커녕 손을 번쩍 들고 함께 엉덩이를 흔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맘보춤이야 누군들 좋아하지 않으랴.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웃음이나온다. 웃음 때문이었을까? 경각심이 사라지면서 편한 마음으로 영감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래저래 이제 이산동네도 정이 들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어이, 친구.”
    얕은 담장위로 머리통하나가 불쑥 올라왔다. 영감이었다. 오늘은 제법 근엄한 얼굴이다. 가까이서 올려다보니 절반이나 높이 올라온 껑충한 키에 흰 피부로 반듯한 모습이 꽤나 잘생긴 얼굴이다.  
     “날세.”
     혼자 부르고 혼자 대답이다. 갑자기 또 뱃속에 천둥이 친다. 염병할 벌써 며칠 째 라면만 먹고 있으니 뱃속이 조용할 리가 없다. 영감이 부르든 말든 허리끈을 말아 쥐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웬일이슈?”
      급한 대로 쏟아 내고 나오다 보니 담밖에 그대로 서있다.  
      “일은 무슨?”
      영감이 히쭉 웃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그냥 가버리고 말았다. 싱거운 사람이다. 부를 때는 언제고 또 그냥 가는 것은 무슨 행우인가? 허망하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한데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영감이 또 나타났다. 이번에도 대문으로는 들어오지도 않고 멀건이 쳐다보고만 서 있다. 
    “들어 오시우.”
    반갑다. 사람만 만나면 가슴이 뜨끔거리는 처지에 외로움을 달래기에는  딱지가 덜 떨어진 것같이 모자란 영감이 안성맞춤 인줄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박카스 한 병을 집어서 주었다. 
    “혼자 사시는가?
    “그런 셈이죠.”
    “따라오게.”
    “어딜?”
    영감이 번쩍 오른손을 쳐들어 올렸다. 비닐 끈으로 아가미가 꿰인 생선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직도 꼬리를 흔드는 것이 살아있는 싱싱한 놈이다.
    “안주는 있는데 술이 없다네.”
    갑자기 입안에 침이 고여 왔다. 불감청 고소원이다. 그러고 보니 술맛을  언제 보았던지 감감하다. 얼큰한 매운탕이 떠오르면서 울대뼈에서 크게 침 넘어 가는 소리가 났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 아직은 만 원짜리 몇 장이 남아있다.  
     “어디로 가시게요?”
     영감은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서 휘적휘적 앞서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며칠째 숨어있는 답답함이 충동질을 하고 있다. 애라 모르겠다. 설마 여기까지 사채업자가 쫓아올까? 술 생각이 간절해지면서 행여 영감을 놓칠까 봐 정신없이 쫓아나갔다.
    오늘따라 영감의 행색이 더 요란하다. 구색도 맞지 않는 흰 저고리에 허리를 질끈 묶은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보통사람보다 머리통하나는 더 있는 큰 키에 옷고름이 풀린 앞가슴까지 벌겋게 내놓고 있는 모양이 희극이다.  
     사채업자에게 사주를 받은 건 아닐까?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갈증으로 변해버린 술 생각을 포기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차하면 튀자는 생각으로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영감이 갑자기 발을 멈추더니 따라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마을 끝에 있는 지붕이 내려앉을 것 같은 간판도 없는 집이다. 구멍가계였다. 벽 쪽으로 과자봉지며 라면 따위의 잡화가 어지럽게 놓여있고  통로사이에 목로가 놓여있는 촌티가 나는 분위기였다.  
    “주모.”
    “또 뭐요?”
    어느 시대라고 주모인가? 중년의 여인네가 짜증나게도 생겼다. 
    “이놈 실하지.”
    영감이 생선을 높이 들어올렸다.
    “실하면 쓸 곳 있우 ?”
    방문턱에 걸터앉은 여인네가 일어나지도 않고 비웃듯 말했다. 
     “흐흐흐, 빈총이지.”     
     “어떻게 하라고요?”
     “회 몇 점 떠주면 좋고 그도 귀찮으면 매운탕이나 끓이소.” 
     “엉덩이춤이요?”
     “앗다, 이사람! 조금만 참게. 집사람이 곧 일어날 걸세.”
     “순실이 어머니 인심 때문에 어쩔 수도 없고.”
     여인네는 눈에 띄게 귀찮아했다. 
     “걱정일랑 말게.”
     “빨리 털고 일어나서 이자 꺼 정 합 처서 내 놓으라고 하슈.”
     “여부가 있겠나?” 
     선문답 같은 대화에 끼어 들어갈 수도 없어 어정쩡하게 서있는데 주인 여자가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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