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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북쪽이 어느 쪽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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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1 10:40:29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초여름이 시작되면서 후두둑 후두둑 소나기가 간간이 빗방울을 뿌려대더니 어젯밤부터는 시야를 가릴 만큼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앞 골목은 금세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택시에서 내려 대문 앞까지 빠르게 뛰었는데도 구두며 바지가 흠뻑 젖어 버렸다. 급히 현관으로 올라가 비를 피했지만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까짓, 비가 좀 쏟아진다고 해서 골목 안에 물난리가 크게 날리도 없고 또 내가 살고 있는 양옥집이 무너질 리도 없는데 왜 마음이 불안할까? 젖은 옷을 벗는 것도 잊은 채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골목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좁은 골목으로 금세 물이 넘쳐오를 것 같은 불안함이 밀려 온다. 매번 장마철에 소나기를 만날 때마다 엉뚱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려 오는 것은 단지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닌 성싶다. 

 

  벌써 몇 년째 장마철만 되면 군대생활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내가 뜬금없이 장마철에 군대생활을 그리워 하는 것은 그때 본 근무지였던 강원도 화천에 있는 북한강 상류의 홍수 때문이다. 그건 실로 장관이었다.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면서 산등성이를 넘어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 골짜기엔 어느새 칙칙한 어둠이 내려앉고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한 소나기는 갑자기 폭포수로 바뀌면서 골짜기는 물난리가 나고 만다. 깊은 계곡은 강이 되어 버리고 뿌옇게 내려앉은 물안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어둠까지 몰고온다. 어디 그뿐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여기저기 폭포가 생겨나고 방금까지 보이던 산등성이 길들도 모두 물 속에 잠겨 버리고 만다. 

 

  그때가 아마 1962년이었을 게다. 들녘에 살았던 나는 산계곡의 물난리를 처음 보았기 때문에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북한강 상류였는데 금세 불어난 물 위로 인민군들이 농사지은 배추며 호박 따위가 떠내려오는가 싶더니 엉뚱하게 이번에는 집돼지 한 마리가 떠내려 왔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뗏목을 타고 건지려 했지만 불어난 물살 때문에 어림도 없었다. 그날 내가 북한강 상류에 있는 A-2 초소에서 엉뚱하게 물구경을 하게 된 것도 순전히 강진두 중사 때문이었다. 내 군대 생활은 지원 입대할 때부터 복무 기간 내내 좌절과 방황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강 중사와 함께 마신 술 덕분에 그럭저럭 견디어 냈는데 제대할 날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은 또 황량해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정규 휴가도 반납할 정도로 고향이며 집이 싫었다. 마음이 허황해지다 보니 이유 없이 지난날 친했던 친구며 사랑했던 사람들까지도 미워져 찾고 싶지 않았다. 형의 죽음으로 갑자기 장남이 되어 균형을 잃어버린 나는 입대도 지원해서 했고, 군대생활 또한 전방에서 어렵게 하다 보니 마음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휴가를 나가 봤자 농사를 도와 줄 땅 한 뙈기 없고, 그간 뿔뿔이 흩어지지나 않았을까 하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은 나는 가끔씩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 했다. 그러다 보니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고, 만취한 상태로 인적이 끊긴 최전방 숲 속을 미친 듯 헤매다가 방첩대에 끌려가 사상조사도 받았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욱 꽁꽁 얼어붙었다. 

 

  그때 A-2 초소장이 강 중사였다. 그가 병참본부에서 엉뚱하게 초소장으로 발령이 나게 된 것은 순전히 술 때문이었다. 발령 나기 전날 나와 강 중사는 성천옥에서 선나게 마시고 있었다. 그 즈음은 내가 보급품 횡령에 천재적인 재주를 발휘했기 때문에 성천옥 술값 정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창 신나게 술이 오르는 판이었다. 누가 노크도 없이 우리골방 문을 벌킥 열어 제쳤다. 처음 우리는 또 다른 우리 부대원들인 줄 알고 욕설부터 갈겼다. 

 

“언놈이가?" 문 앞에 두 명이 서 있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다이아몬드 두 개가 반짝거리는데 낯이 선 신참 소위들이었다. “뭐이네?" 러닝 셔츠 차림인 강 중사가 눈을 흡떴다. 

 

“너희들 이리 나와” 소위는 우리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고 우리 옆에 앉은 혜진이와 명희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소위들이 우리 방 작부들을 빼가려 한 것이다. 

 

“너희가 뭐이가?” “보면 모르냐?" 둘이는 거만스럽게 제 어깨의 다이아몬드를 가리켰다. 

“알것다” 그리고는 혜진이와 명희가 일어나기 전에 강 중사가 붕 떠올랐다. 딱! 어쿠! 

 

  그게 끝이었다. 소위 계급장이 붙은 작업모 두 개가 마당에 나뒹굴었다. 강 중사 박치기 한 방에 둘이는 널부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와 강 중사는 헌병대 백차에 실려 영창에 끌려갔다. 신참 소위들은 헌병대까지 쫓아와 길길이 날뛰었지만 날이 밝기 전에 우리는 영창에서 풀려났다. 큰소리를 쳐대던 강 중사의 ‘빽’ 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강 중사는 사단장님과 함께 6·25 참전 용사였다. 사단장은 강 중사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 때문에 상관을 폭행한 강 중사를 처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본부에 둘 수도 없어 A-2 초소장으로 잠시 나가 있으라고 한 것이다. 화천에서 풍산리 쪽으로 산을 몇 개 넘으면 북한강 상류가 나오는데 거기 어디쯤에 A2 초소가 있었다. 나는 병참부에 그냥 남아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씩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보급차를 따라 초소로 강 중사를 만나러 가곤 했다. 장마가 오기 전 북한강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유리알처럼 물이 맑아 바닥의 모래까지 환하게 보였고, 팔뚝만큼씩한 잉어가 유유히 헤엄치는 것도 손에 잡힐 듯 투명하게 비쳤다. 강둑 옆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숲은 원시림처럼 칡녕쿨이 엉키어 발을 딛기가 힘들었고 빼곡이 들어선 소나무며 참나무는 한이름이 념는 것도 즐비했다. 

 

  사단장은 강 중사를 초소에 보내면서 당분간 술을 마시지 말라고 금주령을 내렸지만 술을 멀리할 강 중사가 아니었다. 술은 내가 보급품 속에 감추어 날랐다. 상관들 몰래 마시는 술은 이상하게는 더 맛이 있었다. 안주는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가물치며, 잉어며, 덫에 걸린 노루까지 술만 있으면 모든 건 우리 마음대로였다. 강 중사가 대장인데 숲 속에서 발가벗고 

춤을 추든, 고함을 지르든 누가 우리를 말릴 수 있겠는가? 제대가 가까워올 때쯤 나는 온갖 핑계를 대고 강 중사의 초소에서 기거하다시피 했다. 물론 강 중사가 보급관에게 특별 청원을 해 주었기 때문에 허락이 되기도 했지만 내 술버릇을 알고 있는 부대에서는 제대 말년에 사고라도 낼까 봐 눈감아 주고 있었다. 

 

  초여름 뭉게구름이 곱게 피어오르는 산등성이에 앉아서 그물로 떠올린 붕어매운탕을 안주로 하여 마시는 낮술도 맛이 있지만, 총총한 은하수 별빛을 함뿍 머리에 이고 골짜기 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소리를 벗삼아 마시는 술은 이 세상 그 어떤 시름도 떨쳐낼 수 있는 묘한 맛이 있었다. 그렇게 몇 날을 황홀한 술 속에 젖어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보니 갑자기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첫날 물이 범람하기 전에 강 중사와 나는 빗속에서 술을 마셔 보는 것도 풍류라며 강가에 앉아 술을 마셨다. 이튿날은 강둑까지 물이 넘쳐 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하루 사이에 북한강은 완전히 바다가 되어 버렸다. 떠내려가 버린 돼지를 아쉬워하는 내게 강 중사는 말했다. “임마, 술꾼이 무슨 안주 타령이네?” “그래도 아깝지 않습니까?” “치워라 쌔꺄? 너 제대 며칠 남았네?" “이제 다 되었습니다" “기럼 이거이 마지막 술이네?” “왜 마지막입니까?" “임마, 제대하면 그만 아니가”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누가 네 깐놈을 이 골짜기까지 보내 주간?” “본부로 나오셔야지요.” “그딴 소리 딴놈들도   다했어.”  “저는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이가? 네놈들 가고 나면 언제나 나 혼자 남 는 거 알간?”  “형님도 제대하시죠?” “그건 안되지. 고향 찾아가려면 북진할 때 앞장서야 하는 기야.”  강중사는 울고 있었다. “형님 갑시다.” 나는 순간적으로 발작처럼 벌떡 일어났다. “어델 가네?” “씨팔, 형님 고향으로 우리 먼저 갑시다.” “너 지금 뭐이라 했네.”  “넘어가자는 말이오.” “무시기?” “제대하면 갈 곳도 없는 놈이요.” “쌔끼 정말이제. 조우타 가자.” 눈알에 파랑게 불이 붙은 강 중사는 판초 아래에 카빈총을 메었다. 나도 덩달아 Ml소총을 집어 들었다. 강 중사가 앞장을 서 칡넝쿨이 엉킨 숲 속에서 북쪽으로 길을 더듬었다. 나도 따랐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며 형제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꾸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칠흑처럼 어둠뿐인 하늘에 누군가 애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 가지도 못하고 길을 잃었다.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하늘에 북두칠성이 보일 리가 없었다. “야, 북쪽이 어느 쪽이가?” 나는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형님, 돌아갑시다”  “쌔꺄, 방향을 알아야 돌아갈 게 아냐?” “찾아봐요.” “쌍, 이거 할 수 없구나야”  탕탕-  갑자기 강 중사가 카빈총을 꺼내들고 하늘을 향해 공포 두발을 쏘았다.  “어이 형님.”  나는 기겁하여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초소 아이들이래 총소리 듣고 찾아나설기야” “맞다” 그제야 나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러고 보니 북쪽으로 넘어간다는 건 내 진심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하하.  우리 둘이는 미끄러진 바위 밑에서 부둥켜안고 빗소리가 삼켜 버리는 웃음을 미친 듯 웃어댔다. 하지만 그 총 소리 때문에 제대를 며칠 앞두고 또 헌병대에 압송되고 말았다. 비극의 밤이었다.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지만 장마철이 되면 어김없이 북한강 홍수가 그립다. 억수처럼 쏟아 지는 장대비 소리를 들으면서 오늘 밤은 또 강원도 화천으로 달려가 강진두 중사와 북한강 둑에서 매운탕 안주로 술이나 마셔야 할까 보다. 하지만 마음일 뿐 강 중사와의 마지막 술자리에서의 약속처럼 나는 그 뒤 한 번도 북한강 상류로 옛 술벗을 찾아가 보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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