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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수필집_화류계 첫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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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1 10:34:0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술자리는 장소나 술꾼에 따라서 다르지만 내 경우 역시 분명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자리가 따로 있다. 좋은 친구와 함께 마시는 자리야 더 바랄 게 없지만 부담 없는 술자리 또한 싫어하지 않는다. 낮보다는 밤 시간을 좋아하고 분위기가 있는 자리면 더욱 좋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자리라 해도 격이 놓인 자리는 싫다. 술자리에 높고 낮음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무릎 꿇고 두 손으로 술잔을 받쳐 들며 공손을 떨어대는 술 맛은 좋을 리가 없다. 그저 끼리끼리 만나서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음담패설도 격의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나는 제일 좋았다. 술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밤새워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퍼마시면서 할 소리 안할 소리 쏟아내고 나면 이튿날부터는 내장을 뽑아 준 것처럼 정이 가고 허물이 없어지고 만다.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성깔을 부릴 사람도 술을 사 달라고 하면 껄껄댄다. 술 인심 또한 얼마나 후한가? 공짜도 아닌데 후래삼배니 어쩌니 하면서 한잔이라도 더 먹이려고 안달이다. 많은 술친구들 중엔 잊혀진 사람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내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은 강진두 중사다. 나보다 십년쯤 위였으니 친구라 하기에는 뭣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영원히 내 가슴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을 술벗이다. 지금도 살아 있다면 꼭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 건 내 바람일 뿐이지 싶다. 내가 훈련소를 거쳐 강원도 화천에 있는 사단본부로 보충이 되었을 때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두리번거리는 내 어깨를 감싸면서 반겨 준 군인이 강 중사였다. 그때 강 중사는 사단 병참부 2종계 선임하사였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한글 정도나 겨우 깨우친 말하자면 무식꾼이었다. 부대에서는 알아주는 골통이었는데 내가 전입되기 전날 강중사가 데리고 있던 보급계 사병이 제대 발령을 받아 후임 문제로 고심하고 있던 차에 나를 만나 반기는 것이라고 했다. 

 

“야, 우리 부대에 병참학교 특과 졸업한 놈은 네가 처음이다.’’  처음 나는 그가 무서워 부들부들 떨었다.  하늘같은 중사가 내 어깨까지 감싸면서 반색해 주는 것이 어쩐지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닌 성싶어서였다. 더 숨이 막힌 건 그놈의 병참학교 특과 어쩌고 하는 소리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병참학교를 졸업 하기는 했지만 낙제를 겨우 면하고 꼴찌로 졸업했기 때문에 후방에 떨어지지 못하고 전방까지 쫓겨 온 일종의 낙제생이었다. 때문에 병참학교 이력은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훈련소에서 전반기를 마치고 특과학교에 차출이 되었을 때 나는 군대생활이 술술 풀리는 줄 알고 뛸듯이 기뻣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것이 병참학교라는 걸 알고 나서 내가 두려움으로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병참교육이 숫자놀음이었기 때문 이었다. 나는 애초부터 주판이나 숫자에는 맹추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암산은커녕 주판알을 세어서 올려놓아도 답이 맞지 않았던 나로서는 수천 벌의 작업복 숫자나 군화 숫자를 맞추어낸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내게 병참학교의 6주간의 교육은 지옥일 수밖에 없었다. 몸부림을 쳐봤자 당연히 꼴찌였다. 주특기만 병참이었지 아무 쓸모가 없는 나를 알 리 없는 강 중사는 일꾼이 하나 왔다고 큰 기대를 걸고 있으니 들통이 나면 나는 죽었다 싶은 것이 아래턱까지 덜덜 떨려왔다. 하지만 밤송이를 까라면 까는 것이 군대인데 내 사정을 강 중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죽기살기로 덤벼들어 지겨운 숫자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한데 이상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죽도록 매달리다 보니 병참학교에서도 맞지 않던 숫자가 어느 순간부터 맞아가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조금 한숨을 돌릴 무렵 더 기분이 좋은 것은 강 중사의 신임이었다. 비록 숫자가 틀려도 내가 한 장부에는 무조건 사인을 해 버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쫄병인 내게 분에 넘치게 잘해 주었는데 그것은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신병 이면 당연히 불침번을 서야 하는데도 야밤에 술까지 사 주면서 면제시켜 주는 등 편애를 했기 때문에 부대 안 고참들의 나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강 중사가 무서워 숨어서 눈을 흘기던 고참들은 강 중사가 자리를 비울 때면 얼씨구나 하고 나를 학대했기 때문에 공짜 매도 많이 맞고, ‘왕따’도 당했다. 때문에 내 신병 생활은 처음의 순조로움과는 달리 완전히 가시밭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도 고참이 되면서는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드러내 놓고 강 중사와는 손발이 맞는 술벗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처음부터 강 중사가 내게 잘해 준 건 자신이 못하는 업무를 내게 맡기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보급품 횡령의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가 부정해서 만들어 온 돈으로 거의 매일 술을 얻어먹는 나는 발을 뺄 처지도 못 되었고 더구나 호랑이 같은 그의 뜻 을 거역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어느새 그가 주문하는 대로 보급품 숫자를 맞추어 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상의를 찢어 두 벌을 만들고 군화는 바닥하고 윗창을 뜯어 두 켤레로 만들어 장부를 조작한 것이다. 밖으로 빼내는 건 강 중사의 몫이었고 우리는 그 돈으로 부대 앞에 있는 성천옥에서 술을 마셨다. 성천옥은 부대 앞에 있는 술집이었는데 기생이라 할 수 있는 작부가 세 명이나 있었다. 작은 초가지붕에 빨간 페인트로 간판을 써 붙였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마치 간판에 집이 매달려 있는 듯한 허름한 형상의 술집이었다. 현관 역할을 하는 홀을 지나 안쪽으로는 작은 방이 하나 있 었는데 벽에 흙 냄새도 채 가시지 않은 새 방이었다. 말하자면 강 중사의 전용실인데 강 중사가 지어 주었다고도 했다. 그 골방에서 강 중사가 술을 마시고 있는 날은 방첩대이든 헌병대 이든 그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을 만큼 강 중사는 유명하기도 했다. 성천옥의 혜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몸이 작고 나이 먹은 여인이 강 중사의 애인이었다. 강 중사를 따라간 내 옆에도 명희라는 여인이 앉아 주었다. 키가 좀 크고 맹한 여인이었는데 나이는 오히려 나보다 몇 살쯤 위인 듯싶었다. 처음 성천옥에 갈땐 엉기엉기 따라가기는 했지만 하늘 같은 선임하사와 함께 기생집 골방에 무릎을 맞대고 앉다 보니 저승 문턱에 온 것처럼 덜덜 떨려 왔다. “임마 한잔 받아.” 한데 더욱 기절할 일은 강 중사가 첫 잔으로 내게 내민 건 그가 신고 다니던 군화였다. 놀라고 어이없어 그저 멍하니 쳐다보니 강 중사는 벌쭉벌쭉 웃으면서 어린아이에게 장난감 내밀듯 끈 풀린 군화에 술을 부어 내게 내밀었다. “임마,  마시라니까.” “네?” “군대는 밤송이 까라면 까는 거야” 이제는 심장까지 떨려왔다. 그럼 그렇지, 이 악질 친구가 나를 곱게 풀어 줄 리가 없었다. 잘해 주는 척하더니 이제 그 본성이 나오는 듯싶었다. 어금니까지 딱딱 부딪쳐 오면서 불안이 몰려왔다. “빨리 마셔.” “네,좋습니다” 순간적으로 오기가 발동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가 건네주는 군화를 받아들고 꿀꺽꿀꺽 마셔 버렸다. 비릿한 고린내쯤은 강 중사의 살기 돋친 눈빛 속에 가려 느낄 수도 없었다. “욱.” 너무나 단숨에 마셨기 때문에 잠시 울컥거렸지만 이내 평정을 찾았다. “짜식, 제법인데” 강 중사가 벽에 등을 기대면서 느물느물 웃고 있었다. “아이구 순진하고 이쁘게 생긴 총각이 술도 잘 마시네” 명희가 내 목을 껴안고 입술을 문질러왔다 . “크윽-.” 길게 게트림을 한 번 하고 나자 지금껏 가슴을 짓눌러 오던 두려움이 싹 가시면서 어색함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그녀들의 얼굴이며,허벅지의 흰 속살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술을 마시고 나니 세상에 두려울 게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 술을 마시면 겁이 없어지고 간이 부어 올라오는 병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씨팔. 중사님,한잔 더 해도 좋습니까?” “좋다. 마셔라. 오늘 이 방안에 있는 건 모두 네 것이다” “감사합니다” 낼름낼름 술잔을 비울수록 눈알이 더 맑아지고 명회에게서 풍기는 여자 냄새가 향기롭게 가슴을 설레게 했다. 처음 들어 올 때의 두려움 따위는 언제 있었냐는 듯이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강 중사가 신나게 노래를 부를 때 나는 명희가 하는 대로 젓가락장단을 쳤다. 처음 쳐 보는 젓가락장단이지만 참으로 신이 났다. “임마 내레 이북에서 피난 나와 가지고 설라무니 나 혼자인 기야.” 밤이 깊어질수록 강 중사의 푸념도 늘어만 갔다. “네놈의 새끼이야 국방의무 어쩌고 지랄이지만 나는 피난 길에 배가 고파서 굶어 죽지 않으려고 군대에 온 놈이야. 알간?” 

 

“맞습니다” “새꺄,뭐이가 맞네?” “나도 지원병이라구요” “흐흐흐 그러네. 네놈도 어지간히 불쌍하구만. 좋다. 우리 앞 으로도 잘해 보자꾸야.”  “네. 중사님” “새꺄,그 중사소리 좀, 빼라우” “그럼” “우리 친구하자 이기야” “형님으로 모시 겠습니다” “좋다 이기야. 너 뭐하니. 우리 동생 장기좀 보내 주라우야” 강 중사가 명희에게 눈을 부릅떴다. 나는 벌써부터 명희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있었다. 풍만한 그녀의 가슴을 더듬는 순간 전기를 맞은 듯한 충격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면서 온 폼에 열기가 활활 타올라 왔다. 명희의 얼굴이 자꾸 순녀의 얼굴로 보이기 시작할 때쯤 나는 눈앞이 흐려지면서 가물가물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무릎을 베고 모로둡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난 강 중사의 골방에 누워 있었다. 위쪽에는 어젯밤 마시던 술상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강 중사는 보이지 않았다.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명희의 허연 허벅지가 도적질하다 들킨 놈처럼 내 눈의 방향을 잃게 했다. 누가 창문 틈으로 훔쳐보는 것 같은 부끄러움에 군화 끈도 제대로 매지도 못한 채 성천옥 뒷담을 넘어 귀대했다. 내 화류계의 첫날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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