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운명(運命)
글 : 박유경 /
2015.07.01 15:26:1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운명(運命)

 

김성호. 마흔 세 살이다. 중키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대한민국의 흔하디흔한 보통 남성이다. 한참 일할 나이지만 그는 백수다. 오라는 곳도 없지만 지금은 나 여기 있소 하고 나설 처지도 아니다.

오전 열시까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배어나오는 비닐장판 바닥에 엎드려있다. 아랫배가 사르르 뒤 틀린다. 아침밥 대신으로 끓여먹은 라면이 뱃속에서 반란을 일으킨 모양이다.

 

에이, 씨팔.” 

 쏟아지려는 똥구멍을 조이면서 허리끈을 말아 쥐고 허겁지겁 방문을 열고 뛰어 나왔다. 변소를 가려면 세집이나 건너한다. 구질구질하게 비가 내리고 있다.

틀어오는 아랫배 때문에 우산을 챙겨 들 정신도 없다. 비가 쏟아지는 골목길로 달려 나갔다. 여기저기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건너뛰다가 미끄러져 웅덩이에 주저앉고 말았다

 

니기미.”

바지에 묻은 흙탕물보다 쏟아지려는 똥구멍이 더 급해서 벌떡 일어났다. 아직도 공중변소를 쓰는 이 산꼭대기 동네가 지겹기만 하다. 이곳 산꼭대기 판자촌은 오래전 한국 전쟁 때 북쪽에서 밀려온 피난민들이 무허가 집을 얼기설기 짓고 살던 곳이다. 전쟁이 끝이 난지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까지 이곳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

성호가 이동네로 들어 온 것은 이틀 전이다. 그러니까 월세도 아닌 닷새 숙박료로 이만 오천 원을 주고 임시 거쳐 로 삼은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도망 할 곳을 찾아 숨어 든 것이다

.

개새끼.”

이제 도망 다니는 것도 지겹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병두란 놈이 원망스럽다. 놈을 만나기전까지는 비록 현장 노동자였지만 제법 이름 있는 회사에서 매달 월급을 받으면서 남들처럼 카드를 긁어 대면서 제법 근사 하게 살았다.

분수도 모르고 잘난 놈들처럼 잘 살고 싶었던 욕심이 병이었다. 별것도 아닌 병두란놈도 출세를 했는데 저라고 안 될게 무엇인가 싶었다. 병두는 군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전우였다. 제대하고 몇 년 동안 소식도 없더니 어느 날 느닷없이 자가용을 몰고 나타나서 뽐을 내는 것이었다

 

꼬라지가 이게 뭐냐?”

첫마디부터가 약을 올렸다. 사실 군대에서 계급은 같았지만 직책으로는 자신의 수하나 다름없던 녀석이었다. 한데 신수부터가 허여멀건 했다. 거기다가 청와대 어쩌고 하면서 몇 천 만원을 아이들 껌 값 정도로 씹어대는 데는 기가 죽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의 말을 들어보면 출세는 실력이 아니라 빽 줄이었다. 녀석의 빽 줄만 잘 이용하면 현장 노동에서 벗어나 사무실 계장 한자리쯤 차고앉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기동력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월부로 중고 포니를 빼내서 끌고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청와대 민정 반 비서를 빽으로 만들어 해준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다니는 녀석이 고맙기만 해서 경비랍시고 아낌없이 건네주었다

처음 월급정도의 푼돈을 날릴 때까지만 해도 입이 찢어졌다. 밥을 먹어도 똥을 싸도 즐겁기만 했다. 경비가 모자라서 전세방 보증금을 빼내었다. 그 돈도 바닥이 나서 안달이 날 때쯤 청와대 민정 비서를 만나기로 약속이 잡혔다. 그날 밤 너무 기분이 좋아 한잔 하고 일어 나보니 병두 놈이 사라지고 없었다.

 

"웬일일까?”

생사를 같이한 전우가 절대 배신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부터 사기였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너무 분해서 만사제치고 놈을 잡아 복수를 하겠다고 전국을 찾아 헤매었다. 비용으로 사채까지 얻어 쫓아 다녔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종착에는 근무 태만으로 회사까지 쫓겨나고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얻어댄 사채를 갚을 길이 없어 사채업자에게 신체 보증각서를 썼다. 간을 떼어내겠다고 하는 것을 사정해서 신장 하나만 뽑기로 한 것만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막상 배를 가르기로 약속한 날자가 다가오고 보니 놈들에게 배를 가르라고 내놓을 수가 없었다. 도망질을 쳐서 숨어 든 곳이 이곳 신흥동 산동네인 것이다.    

이제 병두를 원망할 여유도 없어졌다. 저승사자로 변한 사체 업자를 피해 다니기도 힘든 처지가 된 것이다. 설마 이곳까지야 쫓아올까? 안심을 할 수도 없는 일이라 방구석에 숨어 있어야만 하지만 쏟아지려는 생리 현상만은 어쩔 수가 없다

  

씨팔.’

먹은 것도 없는데 볼일은 그대로다. 대충 쏟아내고 허리춤을 틀어지고 나오는데 또 공교롭게 영감을 만났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서있다. 바로 윗집에 살고 있는 영감이다. 피할 수가 없어 인사를 했다

 

영감님, 안녕하시우?”

영감은 무슨?”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머쓱해서 쳐다보는데 느닷없이 엉뚱한 소리를 뱉어내고 있다

  

친구하자.”

이게 무슨 소린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영감이다. 나이로 보더라도 친구란 언감생심이다. 더 웃기는 것은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휭 하니 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친구.”

웃기는 영감이다. 지나가던 개를 부를 때도 친구라고 한단다. 그렇다고 동네 사람들이 영감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성격이 괴팍한 것도 또 특별히 미운 짓을 하는 것도 없는데 영감을 가까이 하려고 하지를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웃집에 살고 있으니 만나기 싫어도 만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새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고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쪽마루에 앉아 빛을 쪼였다. 또 배가 고파온다. 라면이라도 몇 개 사와야 할 것 같아 두리번거리면서 구멍가게를 찾아 나섰다가 또 영감과 마주쳤다

     

허이, 친구.”

길을 비켜주려고 하자 느닷없이 손을 들어 또 아는 체를 한다. 할 말이 없어 쳐다보고 있는데 이번에도 대답도 듣지 않고 그냥 앞서 구멍가계로 휘적휘적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싱거운 영감을 따라 들어갔다. 가계 주인은 작은 탁자에 엎드려 졸고 있었다. 영감이 소주 한 병을 진열장에서 집어 들었다. 한데 이상하다. 당연히 주인을 깨워서 계산을 해야 하는데도 마치 약을 올리듯이 궁둥이를 크게 한번 흔들고 나가버리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기회다 싶어 라면 몇 개를 몰래 집어 들고 살그머니 나와 버릴까 하다가 알량한 양심이 그럴 수가 없어서 주춤 주춤 졸고 있는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박유경님 기사 더보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