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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똥통에서 건져올린 내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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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1 10:25:3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똥통에서 건져 올린 내 주력

 

의사가 내게 술을 끊으라고 하는 순간 나는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죽을병이 아니라는 전제가 있기는 했지만 뒤뚱거리면서 산다 한들 나머지 인생을 술 없이 무슨 재미로 살라는 말인가?  사실 나는 50년을 술과 함께 살아왔다.  한 몸처럼 느껴지는 술을 갑자기 끊으라면 그것은 내 몸속의 장기 하나를 떼어 내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 아닌가?  당황해진 나는 참을 수 없는 갈증이 목을 덮쳐 왔다.  의사가 열심히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냉수를 청해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음을 아무리 진정하려 해도 가슴의 울렁거림은 좀체로 가라앉지 않는다.

“에이, 이 사람아! 평생 술을 한 방울도 먹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도 많은데 자네는 그렇게 많이 마시고도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가?”  낙담하고 허탈해 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의사인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눈가에 야릇한 웃음까지 흘리면서 핀잔을 했다.  그가 나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어제까지도 나와 함께 날 새는 줄 모르고 술을 마신 바로 그 친구가 아닌가? 

사실 의사의 말은 백 번 옳은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마신 술의 분량이 다른 사람들이 마신 술보다 엄청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내가 화가 일고 있는 것은 왜 하필이면 내가 술을 끊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엉뚱한 억하심정이었 고, 또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친했고 동고동락해 왔던 술과 왜 내가 벌써 이별을 해야 하는 것이냐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실로 그것은 두려움이었고 좌절이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가라는 의사의 손을 뿌리치고 병원을 나서고 말았다.  오가는 길가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내가 술을 끊어야 하는 안타까움에 처했는데도 누구 한 사람 관심 있게 나를 쳐다보는 사람조차 없다. 아쉬운 마음으로 가로수 길을 걸었다. 어느새 떨어져 아스팔트 위를 뒹굴고 있는 낙엽이 나를 더욱 쓸쓸하게 했다. 

새삼 술에 엄힌 지난 세월들이 그리워졌다. 만약 내게 술이 없었다면 숨 막히던 지난 세월들을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느 정든 사람과의 헤어짐이 이처럼 아쉬울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였다. 언젠가 나는 술좌석에서 나와 함께 평생을 술 속에서 살아온 풍월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친구 영태에게 장난삼아 말 했다.  “너와 함께 나도 한평생을 술 속에서 살았으니 그 많은 사건들을 이야기로 써 보면 어떨까?” 그러는 나를 한참 동안이나 아니꼽게 쳐다보던 녀석이 “짜샤, 네깐 놈이 퍼마시고 떠들어댄 건 풍류도 아니고 낭만도 아닌 시정잡배의 술주정에 불과한데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글까지 써대겠다고 야단이야?”하며 비웃어 댔다.

역시 풍월다운 말이었다. 그때는 풍월의 말을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요즘 생각해 보니 새삼 술 마시던 옛 추억이 더욱 새롭고 그때는 풍류와 낭만이 있어 행복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술과 함께 살아 온건 정치를 하겠다고 호걸처럼 마신 것도 아니고, 이태백처럼 풍류를 사랑하는 멋스러움도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마시니까 나도 마시고 친구 좋아 강남 간다고 따라다니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어정쩡한 술꾼이 되고만 것이다. 

나는 술이 취해서 혐오스럽게 큰소리로 껄껄거려 본 적도 없고 또 거만스럽게 여덟 팔 자 걸음으로 거드름을 피워본 적도 없다.  어느 때는 뒷골목에서 공복감을 달래기 위해 마셨고, 생각지도 못한 친구 기영이의 죽음이 아쉬워 술잔 두 개를 놓고 혼자서 밤새워 번갈아 통음하는 정도의 나의 애환과 함께한 별다른 의미도 없는 술들이었다.  간혹 행세깨나 하는 ‘높은 사람’들과 한 자리에 수백만 원씩 하는 요정에서 작금의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하면서 마셔본 적도 있지만 그건 애시당초 내 생리에 맞는 술버릇이 아니었다.  잘 삶아진 삼겹살에 새우젓 듬뿍 찍은 안주로 누가 뭐라 해도 난 역시 막소주 두어 병마시면 그 순간부터 부러울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는 것이 오래 전부터 내 몸에 배어 있는 술버릇일 뿐이었다.

좀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굳이 사실대로 실토하자면 내가 처음으로 술을 맛본 것은 순전히 배고픔 때문이었다. 그때 술은 내게 단순한 음식일 뿐이었다. 사실 나는 살아오면서 여러 번 술로 공복감을 달래기도 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머니에 밥 한 그릇 값만 있을 때 나는 그 돈으로 밥을 사먹지 않고 막걸리 한 되나 소주 한 병을 사서 마셨다. 그건 실로 일거양득이었다. 배고픔도 달래고 기분도 황홀해지는 게 그 이상 더 좋은 다른 처방이 있을 수 없었다. 

내가 군에서 제대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직장이 다름 아닌 술 공장이었다. 덕분에 내가 더 술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공장의 규칙상 술을 병에 담아서 밖으로 갖고 나가지는 못하게 되어 있지만 공장 안에서는 얼마든지 마셔도 괜찮았다. 안주는 아침에 주머니에 넣고 가는 멸치 몇 마리면 충분했다.  그때 공짜 술이라고 허리끈을 풀어놓고 마셔댄 술이 모르면 몰라도 금강의 한 줄기쯤은 될게다. 

그 시작을 따져 보면 처음 술을 입에 댄 것은 어이없게도 일곱 살 때였다.  일곱 살이라면 초등학교 일학년이었는데 그때 나는 분명히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희뿌옇게 안개 낀 세상을 보았다.  앞산 등성이 위로 뭉게구름이 아름답게 탑을 쌓고 있던 첫 여름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오전 수업만 있었다.  그때 내가 살던 마을은 학교에서 십 리나 떨어진 시골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텃밭에 나가신 듯싶었다.  책보를 마루 위에 던지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솥뚜껑을 열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고 시렁 위의 대바구니도 빈 바구니였다.   두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더욱 배가 고파졌다. 허탈감으로 마루 위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이상한 향기에 벌떡 일어났다.  햇빛에 눈이 부셔서 열려 있던 방문 안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어두컴컴한 아랫목에 솜이불로 덮어 놓은 항아리가 보였다. 이불을 젖히고 뚜껑을 열어 보았다.  순간 미미하게 흘러나오던 상큼한 향기가 얼굴로 확 몰려왔는데 밥알이 동동 뜬 농주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옆에 있는 바가지를 들었다. 처음엔 이주 조금만 떠서 맛만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혀끝에 짜릿하게 향기가 감돌았다. 

‘에라 모르겠다.’ 향기에 취한 나는 바가지에 남은 농주를 마저 훌랑 마셔 버렸다.  찌르르-.  역시 술은 다른 음식과 달랐다.  창자를 타고 내려가는 강렬하고도 짜릿한 그 맛은 그때까지 내가 먹어 보았던 그런 음식들이 아니었다.  한 모금, 두 모금 나는 자꾸 마셨다.  뱃속이 뜨끈 거리면서 어느새 배고픔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술은 그저 어른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알았다.  몇 모금에 기분이 알딸딸해지자 겁이 없어져 이번에는 바가지 째 꿀꺽거리고 마셔댔다.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천장이 빙그르 돌았다. 이상하게도 희죽희죽 웃음이 나오더니 뜬금없이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다. ‘큰일 났다.’ 아버지에게 들키기 전에 어디론가 도망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손에 들고 있던 바가지를 방바닥에 팽개치고 잽싸게 마루로 나왔다. 하지만 빨리 띈다는 건 내 생각일 뿐 나도 모르게 뱅글 돌아 마루 밑 토방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참 이상했다.  마음은 하늘을 훨훨 날 것 같은데 몸은 정반대로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나는 허우적거리는 걸음으로 담벼락을 잡고 집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마을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보이는 건 희뿌연 안개뿐이었다. 안개 속을 헤맨다고 생각했는데 천천히 졸음이 몰려오면서 아무데나 눕고 싶었다. 그리고는 잠을 갔는데 얼마나 잤는지 잠에서 깨어나면서 몹시 추웠다.  에취-.  재채기와 함께 눈을 뜨고 보니 동네 우물가였는데 형이 내 머리 위에 물을 쏟아 붓고 있었다. 갑작스런 추위에 붐이 와들와들 떨렸다. 

“형, 왜 그래?”  나는 급한 마음에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임마, 가만있어.” 형의 웃음과 함께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순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는데 어디선지 몹시 구린내가 풍겨 왔다.  “으이, 무슨 냄새지?”  “흐흐흐, 엄마, 너 가지 밭 똥통에서 건져냈다.”  “똥통?” “임마, 너 술 취해서 가지 밭을 뒤져 놓은 거 몰라?”  여덟 살 터울이었던 형의 이야기를 듣자 나는 희뿌연 기억 속으로 어슴푸레 생각이 났다. 술을 마신 후 집에서 도망 쳐서 어머니가 있을 것 같은 텃밭 쪽으로 갔던 모양이었다.   형이 내 몸을 씻고 또 씻어 주었지만 냄새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튿날도 씻고 그 다음날도 또 씻었지만 냄새는 그 뒤 며칠이나 더 나를 괴롭혔다.   그날 내가 술이 취해서 가지 밭에 있는 똥통에 빠질 때까지 가지 나무 다섯 그루를 짓밟으면서 가지를 따려고 했던 것까지는 생각이 났는데 왜 가지를 따려고 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그때부터 마을 어른들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손가락질을 하면서 웃어댔다.  “똥통에 빠져서도 살아난 놈이니 커서 아주 큰 놈이 될 거다.”  나는 그딴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하도 창피해서 커서 어른이 되면 술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곤 했는데 지금도 술에 관한한 작심삼일인 것은 그때부터 생긴 버릇인지 싶다. 결과야 어떻든 나는 분명히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똥통에 빠진 술꾼이 분명하고 보면 똥통에서 건져 올린 내 주력이 50년인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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