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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잊혀진 여인 (5)
글 : 박유경 /
2015.06.01 10:54:0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다 나았냐?”
   오랫동안 잊혀진 여인이었다. 왈칵 그리움이 밀려오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둘러 K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천행으로 그녀를 만날 수가 있다면 비록 지금은 잊혀 졌지만 그 때 내가 들고 간 장미 다발은 분명 순녀 당신을 위해서 준비한 꽃이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하얀 뭉게구름 한 덩이가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박 마담 때문이라면 잊어버려라. 중 아니라도 망건이 독난다.”
   “내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네 말대로 먹어치웠으면 끝난 것 아니냐?”
   “이번은 다르다.”
   녀석의 진지한 표정이 꽤나 웃겼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심각한 모습이었다.
   “병원에 누워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얼?”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서.”
   “크 아, 하 하.”
   “이제야 순정이 무엇인지 이해할 것 같다.”
   어렵시오, 녀석의 눈에 눈물가지 보인 듯싶었다.
   “울고 있냐?”
   “대포 한잔 생각이 난다.”
   “술까지?”
   며칠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일까? 갈비뼈가 부러질 때 머리도 함께 깨져 돌아버린 모양이었다. 아니 과연 허풍다웠다. 비록 내기가 아니었더라도 어쩌면 당분간은 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냥 행복해지고 있었다.
   나로서는 ‘불감청고소원’이었다. 대동옥의 그녀는 변함없이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며칠 동안 보지 못했다. 한데 이상했다. 오늘은 그녀가 웃지를 않는다. 무슨 일일까? 마음이 설렁거렸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녀석이 갑자기 술잔을 건넸다.
   “너 술 먹고 있냐?”
   “나는 헛살았다. 진정 사랑이 이런 것인지 몰랐다.”
   느닷없이 녀석이 푸념을 시작했다.
   “부탁 좀 하자.”
   “뭘?”
   “보험금 대부 좀 받자.”
   “거절 할 이유가 없지.”
   치료비로 쓸 요량인 모양이다. 아무러면 어떠랴? 대동옥 주인이 돈을 쓰겠다는데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실적이 언ㅅ어 윗사람 눈치를 보고 있는 처지가 아니던가? 내가 서둘러서라도 하고 싶은 대출이었다.
   “부탁이다.”
   “마누라가 알면 안 된다.”
   박 마담과의 치정사건을 마누라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 때 카운터에 앉은 그녀가 우리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임 마, 목소리 낮춰.”
   순간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마누라라면?”
   “저 여자 말이다.”
   종업원이나 처제 즘으로 알고 있던 그녀가 녀석의 마누라?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 날 밤 나는 크게 몸살을 앓았다. 몸도 아팠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며칠 동안 대동옥 근처에 가지 않았다. 한데 그녀가 날 찾아 온 것이다.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어디 있어요?”
   “누가?”
   “있는 곳만이라도 알려주세요.”
   녀석이 행방불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를 데리고 ‘란’ 다방으로 달려갔다. 박 마담도 보이지 않았다. 둘이서 함께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쓸쓸히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나 애처러워 보였다. 한데 이상한 것은 내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울화 같은 것이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대동옥에 갔다. 그리고 육 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을 했던 것이다. 마침 설렁탕이 나와서 수저를 들었다. 설렁탕 값을 받지 않는 것이 다소 자존심에 걸렸지만 내 마음은 돈 몇 푼이 아니라 내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해도 그녀에게 내 심정만은 꼭 고백하고 싶었다. 어쩌면 떠나 가버린 정자 때문에 일어난 사단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 때 내 가 원하는 것이 그녀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전 날 밤에도 그녀 때문에 잠을 설쳤다. 조금 피곤했다. 하지만 정신은 더욱 맑아지고 있었다.
   기어코 내 마음을 털어놓아야겠다. 거절을 당해도 좋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떠나보낸 정자와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내 진실을 꼭 전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분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해질녘이 되면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원에 들러 꽃을 샀다.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어서 사랑을 고백할 것이라고 했더니 빨간 장미를 한 다발 싸주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남는 꽃을 탁자 위에 놓은 채 소주를 청했다. 아무래도 사랑의 고백을 하려면 술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아서였다.
   “비가 오시는데 웬 꽃이에요?”
   그날따라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려고요.”
   “그 여자는 좋겠다.”
   그녀가 쓸쓸히 웃었다. 순간 취해오는 내 머릿속으로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었다. 갑자기 정자의 가슴으로 장미 다발이 안겨 들어가는 환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장미 다발을 탁자 위에 놓은 채 조용히 일어나 대동옥을 나오고 말았다.

   오랫동안 잊혀진 여인이었다. 왈칵 그리움이 밀려오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둘러 K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천행으로 그녀를 만날 수가 있다면 비록 지금은 잊혀 졌지만 그 때 내가 들고 간 장미 다발은 분명 순녀 당신을 위해서 준비한 꽃이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하얀 뭉게구름 한 덩이가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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