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한정식 전문점 ‘모산방’의 이성환 대표(59)는 요식업소의 사장이라기보다는 일견 학자 같은 풍모다. 틀에 박힌 식당 이름이 아닌 ‘모산방’이라는 상호를 지은 것에서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인물임이 느껴진다. 상호만 봐서는 수도자(修道者)나 한학자가 기거하는 어느 산자락 고즈넉한 집의 당호(堂號)를 떠올리게 하는데 뜻밖에도 식당이라니 뭔가 범상치 않은 내력을 지녔을 법도 하다. 마침 지인의 소개로 쥔장인 이성환 대표를 찾아갔던 날 그는 일상복에 중절모 차림의, 나이답지 않게 맑은 얼굴이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집에 대한 궁금증들이 하나둘 풀리게 되었다.
그는 어릴 적 외조부께서 은적사 주지스님이셨던 관계로 사찰에서 자라다시피 했다한다. 불가에서 태어나 부처님 도량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 이때의 보고 들은 것들이 알게 모르게 그의 삶의 정체성을 이루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당시 외가에서는 은적사 주변에 많은 토지를 소유할 정도로 넉넉한 집안이었던 관계로 사찰에 희사한 땅도 많았다는데 외조부께서 세상을 뜨신 뒤 사찰이 조계종 관할로 넘어가면서부터 그의 삶도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의 나이 43세 되던 무렵 그는 당시 은적사 주지스님의 권유로 다니던 한약재회사를 그만 두고 은적사 주변 사찰 소유 건물에 식당을 내었다. 상호는 그가 지어 ‘모산방(慕山房)’이라 했다. 뜻을 물으니 본래 산방은 세상사에 찌들어 지치고 힘든 이들이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찾아오는 사랑방 같은 곳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곳 역시 ‘찾아 온 길손들이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제는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깨달음과 바라던 답을 찾는 곳’이라는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며 허허 웃는다. 짚어보건대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서도 반드시 길은 있다는, 삶의 지혜와 이치의 모색에 대한 얘기인성 싶다.
‘모산방’의 개업 당시 식단은 평소 한약재는 물론 산야에서 나는 먹거리에 관한 식견도 있던 터여서 신선한 채식을 기본으로 했고 특히 청국장, 순두부와 동동주를 비롯해서 낙지볶음이 고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였다. 그러다보니 인근의 관공서나 학교, 회사원들로 단골도 나날이 늘어갔고 이집의 맛과 분위기에 반해 지역 유지들을 비롯해서 전주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성업을 누렸는데 고객의 95%가 여성들이었다는 것으로도 음식과는 별개로 그의 호감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읽히기도 한다. 이렇게 8년여가 되던 무렵 어느 날 은적사로부터 사용 건물 반환 요구가 있자 신창동(지금의 한일옥 자리)으로 업소를 이전하게 된다.
그러나 일제 때 지었던 그 건물은 너무 낡아 비가 새는 등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그가 구상했던 업소의 모습을 갖출 수가 없었다. 그는 시내곳곳 이전 터를 물색하고 다니다가 산북동 지금의 위치 터가 마음에 와 닿아 땅을 매입했다. 그리고 7년 전인 2008년도에 건물을 지어 이전을 단행했다. 지금의 업소는 넓은 부지에 목조 단층으로 지은 건물로서 중앙에 마당을 두고 ㅁ자 형태를 한 마치 옛날 여관과 같은 모습의 구조가 이채로운데 이는 이성환 대표가 직접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구상에 이르기까지는 40%정도의 공정이 더 남아 있어 아직도 계속 보완 중이라는 말도 들려준다.
지금의 ‘모산방’은 퓨전한정식 전문점으로 영업형태를 바꿨다. 운치 있게 꾸민 넓은 홀도 갖췄지만 복도를 따라 각기 크기가 다른 방도 여러 개로서 인원의 규모에 따라 적게는 10~20명, 많게는 50~8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방도 있다. 이곳의 음식들은 그가 정성껏 직접 조리하여 상에 올리는데 화학조미료 대신 거의 천연조미료를 쓸 만큼 맛은 물론 고객의 건강까지도 따진다. 퓨전한정식은 기존의 한정식과는 약간 다른 식단으로서 특히 젊은 세대의 입맛에 부응하는 개념이다.
이곳의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하나하나의 작품을 내놓는다는 신념으로 상에 올리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뛰어나거니와 맛 또한 일품이다. 상차림은 크게 4종류로서 4인 기준 1상에 각각 6만원, 8만원, 10만원, 12만 원대까지 있다. 따라서 혼사를 앞둔 상견례나 돌잔치를 비롯해서 7순, 8순 잔치 장소로 그만이어서 이용객이 늚에 따라 전화나 인터넷 예약도 받고 있으며 각종 모임 장소로써도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성환 대표는 ‘모산방’을 새봄부터 게스트하우스로도 운용할 생각이다. 집을 지을 때부터 구상한 것이기도 하지만 최근 주말이면 군산을 찾는 외지인의 발길이 부쩍 늘고 있거니와 작년엔 문화관광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이창동 영화감독이 지인과 함께 들렀다가 이집의 음식과 조용한 분위기에 반해 묵고 간적이 있다 하는데 이러한 사례도 본격적인 게스트하우스로 운용할 결심을 앞당긴 한 요인이다. 최근엔 가족이나 모임 등 단체 손님이 많아 이들이 편히 묵고 갈 수 있도록 그는 다각적인 문화 콘텐츠를 구상 중이다.
처음엔 투숙객 모두가 건물 중앙 마당에 둘러앉아 외부 인사를 초청해서 인문학이나 시대의 화두를 주제로 부담 없는 담론의 장을 마련해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여행객들 특성상 무관심으로 인하여 자칫 분위기가 무거워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이를 접고, 누구나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즉석 라이브콘서트를 여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지인들 중에는 통기타, 색소폰, 하모니카를 비롯해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 섭외는 어렵지 않겠다는 자신감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진 데에는 자신의 집을 찾는 사람들이 의미 없이 숙식만 하는 장소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군산에 대한 정체성을 엿볼 수 있게 하고 그에 따른 스토리텔링도 덤으로 얻어갈 수 있게 하자는 내고장사랑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군산만이 가지고 있는 인간미와 역사적, 문화적 숨결을 느끼게 해보자는 마음에선데 그러나 그에 대한 공부나 경험이 충분치 않기에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의 격의 없는 대화 속에서 찾던 길이 나타나고 유대감도 깊어짐을 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 절로 느껴질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집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반긴다. 많은 경험과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 이야기에 나름의 의미가 새겨져 있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게스트하우스를 본격적으로 오픈하면 그는 투숙객이 원할 경우 직접 이들을 데리고 관내 문화재와 관광자원을 일일이 안내 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도록 일목요연한 관광지도가 필수적이라서 최근엔 직접 발로 뛰는 현장 답사로 지도 제작에 골몰하는 한편 관광객을 수송할 25인승 버스 구매도 알아보는 중이다. 그는 극히 실비만을 받고 자신이 직접 운전하며 일제 잔재가 많은 원도심 근대경관지구를 중심으로 시내 곳곳을 손수 안내할 계획이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있다는데 이는 누가 시키거나 관에서도 할 수 없는 일을 일개 민간인이 자발적으로 앞장서는 대단한 고향사랑과 봉사정신의 발로라 아니할 수 없다 하겠다. 따라서 ‘모산방’을 찾는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는 물론 공연 관람에다가 문화재 스토리텔링까지 1석4조의 즐거움을 한꺼번에 맛보게 될 듯하다.
이성환 대표는 시를 배우는 서클에 들 만큼 문학적 소양이 넘치고 SNS에서도 활달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부인 오복희 씨와의 사이에 대학원에서 실용음악과 애니메이션을 전공 중인 아들 하나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 앞으로 ‘모산방’이 그의 구상대로 면모를 갖춰 가히 군산을 대표하는 맛과 멋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거듭남으로써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장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모산방
위치 /군산시 산북동 산북중학교 옆
전화 063)463-4411
이성환 대표 010-8886-5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