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온라인 동호회에서 그는 이미 유명인이다
그는 일부 기성세대나 정비사들에겐 터부시돼오던 자동차튜닝을 젊은이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또 필요시엔 젊은 ‘튜닝족’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동안 안전을 이유로 튜닝을 강력하게 규제해오던 정부도 지난해부터 튜닝산업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만 봐도 요즘 자동차 트랜드는 누가 뭐래도 개성창출과 차의 성능과 안전을 높여주는 튜닝이라 할 수 있겠다.
‘미친 감동에 울 뻔했다’는 칭송에 가까운 후기의 주인공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쉐보레 군산 서비스센터 송경근 이사를 취재하게 된 배경을 잠깐 설명하자면 새 차 구매 계획이 때문에 여기저기 웹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본 쉐보레 동호회에 올라온 글 일명 ‘후기’에서 시작된다.
그 후기는 워낙 장문의 글인데 그 내용은 그동안 서비스센터나 카센터에서 튜닝 된 차 때문에 괄시 아닌 괄시를 받던 한 젊은 튜닝 족이 송경근이사의 친절한 서비스와 꼼꼼한 작업에 인간적인 감동을 받았단 이야기다. 스티브 잡스와 에디슨에 까지 비유하며 실패를 두려워 말고 남과 다른 창의성을 키워야 성공한다고 용기까지 덤으로 얻어왔다는데 그 훈훈한 후기의 주인공 송경근 이사를 만나러 구암동으로 출발한다.
용산공고 자동차학과에 입학하면서 시작된 송경근이사의 자동차 인생은 올해로 37년째란다.
용산공고 졸업 후 서울 성수동에 있는 정비공장에서 근무하다 1984년 대우자동차 정비사업소에 입사해서 군산 서비스센터를 오픈한 1996년까지 근무했다고 한다. 아래는 그와 함께 한 인터뷰를 옮겼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다니다 자기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뭐죠?
서울의 대우자동차 정비사업소에서 근무하다 파키스탄으로 파견을 가게 됐습니다. 대우자동차 시절 르망을 파키스탄으로 수출했는데 파키스탄에 쿠데타가 나서 정권이 갑자기 바뀐 거 에요. 그 여파로 수출했던 차들이 창고에 5년간 묶여버렸죠. 5년 후에 다행이 김우중 회장이 묶여있던 차들은 풀었는데 문제는 홍수로 창고에 있던 차들이 물에 잠겨버렸어요. 근데 거긴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었듯 비가 오면 몰아서 오잖아요. 잠긴 차들이 부식이 됐을 거 아닙니까? 그런 차를 고객에게 주면 대우의 이미지가 뭐가 되냐 그래서 급하게 저희가 투입 된 겁니다. 파키스탄에 가서보니 제가 현지인들의 급여의 200배를 받더군요.
급여의 차이에 행복하고 만족감을 느껴야 하는데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이랄까 뭐 그런 걸 느꼈어요. 또 아이러니하게 제 급여의 200분의 1을 받지만 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어요. 대우가 아무리 대기업이지만 정년까지 직원으로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한번 태어나 사는 것 나의 일을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역 서비스센터를 오픈할 수 있는 티오를 받는 조건으로 대우에서 퇴직을 하게 됐습니다. 그게 벌써 18년 전이네요.
이정도 규모의 공장을 오픈하려면 힘드시지 않았나요?
네, 처음 하는 사업이고 더구나 혼자하려니 이런 저런 난관이 있었죠. 그래서 지인 두 명과 1/3지분으로 공동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장일은 주로 제가 맡아서 하고 한분은 자금 관리 밑 정비 쪽 상담하시고 또 다른 한분은 대표를 맡고 대외적인 일을 하십니다. 벌써 19년째 되네요.
일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어떤 게 있나요?
얼마 전까지 군장대학 자동차학과에서 겸임교수도 했어요. 근데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어려워요. 학교일로 현장을 비우다 보니 이런 저런 문제도 발생하고 그래서 지금은 서비스센터 일만 ‘올인’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타사 차들은 받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바빠졌어요. 타사 차를 정비하고 있으면 쉐보레 고객님들 항의가 빗발쳐서 돌려보낸 타사 차도 많습니다.
물론 37년간 자동차 일을 하셔서 장인의 경지에 오르셨겠지만 송이사님의 전문분야가 있으신지요? 또 군산서비스센터 만의 자랑이 있다면요?
제가 자동차 관련해서 7개의 자격증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보증수리는 거기서 거기에요. 요즘은 차를 워낙 잘 만드니깐 고장 나는 부분도 굉장히 마이너한 부분이고 또 고치는 것도 뻔해요. 엔진 스켄 만으로 고장부위나 정비할 부분이 컴퓨터로 진단되는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사고차량 파손수리는 얘기가 다릅니다. 어떻게 고치느냐에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니까요. 파손차량 수리나 판금작업은 정말 자신 있습니다. 또 자랑 한 번 더 하자면 군산에서 오너가 현장에서 직접고치는 정비공장은 찾기 힘들어요. 하지만 저는 오너의 입장에서 직접 고칩니다. 같은 장소에서 17년간 일을 했고 37년째 이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긴 제 이름을 걸고 하는 작업장입니다. 어떻게 허투루 할 수 있겠습니까?
꼼꼼하게 해야죠. 어떨 땐 제가 새벽 4시에도 출근해요. 또 밤 11시에도 퇴근하고요. 아무리 월급을 준다곤 하지만 직원 분들한테 이렇게 시킬 수 있겠습니까? 상담하고 견적 뽑고 사고 난 현장에도 제가 직접가고 별일 다 합니다. 전 제 직업이 정말 좋고 참 직업을 잘 선택했구나 생각해요. 제가 서울에 있는 서울정비사업소에서 근무할 때 정비가가 약 350명 정도 됐는데 거기에서도 항상 매출이 1위였어요. 제가 잘났다고 말씀 드리는 게 아니라 그만큼 많은 차를 고쳤단 말이에요. 좋아하니깐 할 수 있는 거죠. 직업으로만 생각한다면 힘든 일인데 전 정말 차가 좋고 차를 고치는 게 좋아요.
차를 사랑하는 마음이 저한테까지 전달되네요. 일하시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세요? 그리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 하시나요?
저는 진짜 자동차일이 즐겁습니다. 재밌고요. 일하러 나오면 항상 즐거워요. 제가 보람으로 생각하는 건 제가 차를 고쳤을 때 고객들이 행복해 하실 때. 제 직업에 대한 보람을 느낍니다. 저를 찾아주시는 고객이 계시고 저는 행복합니다. 난 숨이 끊어 질 때 까지 일하겠다고 항상 집사람한테 얘기합니다.
요즘 수입차들 많이 타시잖아요. 저희 고객 중에 쉐보레 타시다 수입차 사신 분들도 차에 문제 있으면 저를 찾아 오시니까요. 얼마 전 벤츠 타시는 고객님이 경미한 사고로 뒷 범퍼를 받쳤는데 전주에서 220만원에 견적을 받아 오셨어요. 근데 제가 범퍼 교환하지 않고 판금 작업으로 8만원에 고쳐드렸어요. 저희도 몇 백 만원씩 받고 범퍼 교환하면 돈도 많이 벌고 일도 쉽고 저희한텐 무조건 좋죠. 근데 사람 사는 데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말씀드렸듯이 전 죽을 때 까지 제 이름을 걸고 이 일을 할 건데 무턱대고 부품 교환하세요라고 할 순 없잖아요? 펼 수 있는 건 펴고 고칠 수 있는 건 고쳐서 써야죠. 항상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당장 어렵다고 눈앞에 이익만 쫒을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군산시민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군산시민들께 항상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새로 생긴 정비공장 법인이 5년 후에도 남아 있는 게 다섯 개 중에 하나라는 말이 있어요. 남은 법인도 또 5년이 지나면 다섯 군데 중 하나 남는다고 해요. 근데 제가 18년째 할 수 있던 건 군산 시민들께서 저희 사업장을 찾아주셨으니까 가능한 거라 생각해요. 저희 사업장이 아직까지 영업을 할 수 있는 건 군산시민의 사랑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군산시민의 사랑에 보답하겠단 마음으로 양심껏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답은 뭐겠어요. 고객이 행복한 거라 생각해요. 이익창출이 최우선이 아니고 고객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산악인 송경근
만 원짜리 잡지 샀는데 이만 원짜리 별책부록이 들어있는 경우랄까? 본편보다 재밌는 번외 인터뷰 나가시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송경근이사와 커피를 한잔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암벽등반이란 이색 취미를 즐긴단 송이사의 얘기를 듣곤 필자의 귀가 솔깃해서 한마디 했다.
“이사님 인터뷰 한 번 더 해요.”
암벽등반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20대 초반부터 시작한 등반했으니 삼십년이 넘었네요. 서울에 살 때 북한산을 간 적이 있어요. 북한산에 있는 인수봉을 암벽등반 하는 광경이 너무 멋져보여서 그곳에서 입문하게 됐죠. 북한산의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세봉우리를 삼각산이라 하는데 그 중 인수봉은 동양에서 최대 규모에요. 너무 멋진 곳이죠. 요즘도 시간나면 장비 챙겨서 저녁에 서울의 인수봉에 갑니다. 암벽등반은 저한테 단순한 취미 그 이상의 의미에요. 제 집사람도 산에서 암벽 타다가 만났으니까요. 제가 시작할 당시엔 스포츠클라이밍이 우리나라엔 다소 생소한 분야였고 저도 상당히 몰두 했어요. 우리나라 스포츠클라이밍 발전에도 제가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월간 산’이나 ‘스포츠 서울’에도 산악인으로 여러 번 소개 됐어요.
언론 매체에 소개될 정도면 대단하시네요. 요즘도 계속 등반하시나요?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시간 날 때 마다 가려고 해요. 전과는 좀 다르게 요즘은 혼자서 많이 다니죠. 제가 지방에 있고 다들 일이 있어서요. 또 후배들하고 시간 맞추기도 어렵구요. 얼마 전 혼자 인수봉 등반하다 탈진이 됐는지 지쳐서 정상 30미터 남기고 고생한 기억이 나네요.
암벽을 혼자 등반을 하세요?
솔로등반이라고 혼자서 하는 등반이 있습니다. 인수봉에도 혼자 등반하는 코스가 몇 군데 있어요. ‘고독의 길’이나 인수A 이런 덴 혼자 등반할 만하죠. 산 정상이나 바위사이에 해먹 연결해서 매달려 자면 그만이죠.
바위에 매달려 잔다고요?
네. 산 정상 바위에 매달려 자는 기분 끝내줍니다.
이십대 땐 근력이 좋아서 하신 거겠지만 지금 오십대이신데 괜찮으세요?
암벽등반이 흔히들 팔 힘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암벽등반은 절대적으로 발힘입니다. 손은 몸을 지탱하는 역할이고 발, 다리 힘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물론 고난도 등반 시엔 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자연암장에선 발힘이 절대적입니다.
전라북도 근처에 추천할 만한 산이 있나요?
당연히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 근무할 때도 전북 쪽에 많이 왔는데 그 중 고창 선운산과 마이산을 추천 드립니다. 선운산은 유럽풍의 바위에요. 우리나라 바위는 화강암이 많은데 선운산은 특이하게도 구멍이 송송 뚫린 석회암이에요. 선운산엔 우리 후배들하고 많든 개척길 들이 많아요. 굉장히 고 난이도 산이에요. 선운산 코스는 거의 우리 산악회에서 개척했죠.
그래서 특히 선운산에 애착이 많아요. 그리도 마이산도 코스가 굉장히 다양해요. 둘 다 상당히 좋은 코스가 있는 산들입니다.
취미로서 암벽등반의 장점이라면 어떤게 있을까요?
산에 가면 우선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암벽을 하면 일반 등산과 다르게 시야가 확 트였잖아요. 정상에 오르면 모든 스트레스는 확 날아가죠. 점점 어려운 난이도의 산을 등반했을 때 성취감도 최고에요. 제가 생각하는 암벽등반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동료애를 느낄 수 있단 겁니다. 서로의 목숨을 걸고 하는 믿음이니까요. 제 손에 동료의 목숨이 달려있고 제 목숨도 동료에 손에 달려있고. 암벽등반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말 짜릿하고 치명적인 매력의 스포츠입니다.
재미있는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시는 사업 번창 하시고 안전한 등반 즐기시길 바랍니다.
매거진군산도 더욱 재밌고 알찬 잡지 만들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송경근 쉐보레 군산 서비스센터 이사
군산시 구암로 160 (구암동 180-6)
063-445-0900
010-3670-7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