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터데이, 밤하늘의 트럼펫, 체리핑크맘보...♬ 그녀의 트럼펫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미로우면서도 리드미컬한 연주를 들으며 문득 그녀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주부로서 중년을 넘긴 나이에 트럼펫을 연주한다는 것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일로서 필자의 과문 탓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군산에서는 만나 본 적이 없어서다. 송현숙(宋賢淑/56), 그녀가 트럼펫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40여년 세월, 트럼펫이야말로 이제는 인생의 또 다른 반려자로 누구보다 행복 넘치는 동행을 하고 있다.
사실 그녀의 첫인상은 트럼페터(Trumpeter)라기 보다는 온화한 학자나 인자한 수녀님 같단 느낌이 더 짙다. 꾸밈없는 자태와 순박해 보이는 웃음, 희끗희끗함이 멋스럽게 섞인 커트머리가 주는 편안함과 친근감 때문일까. 그러나 트럼펫을 연주하는 순간만큼은 오랜 경륜에서 오는 여유로움과 함께 누구 못지않은 끼와 열정이 넘친다.
그녀가 나서 자란 곳은 경기도 파주. 중학생 시절 하모니카를 배우다가 여고 2학년 때 학교에 고적대가 창설되어 선생님의 권유로 트럼펫을 접하게 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된 셈인데 관악기로서는 다른 것에 비해 배우기 어렵고 힘든 악기임에도 진도가 빨라 선생님으로부터 칭찬도 많이 들었다 한다. 당시 고적대는 KBS주최 대회에 출전하여 2회에 걸쳐 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중앙대학교 콩쿨에서 대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MBC명랑운동회에 수차례 출연하기도 하고, 박스컵(Park’s Cup) 축구대회 때는 운동장에서 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하는 등 그 분야에서는 명문의 입지를 다짐으로써 남다르게 자부심도 컸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결혼과 동시 가정주부가 되면서 트럼펫과 오랜 결별기를 갖게 된다. 군산에 내려오게 된 것도 남편의 직장 따라서인데 어느덧 21년 세월이니 이제는 군산이 제2의 고향이 된 셈이다. 그녀는 십 수 년 전 장항에서 제법 규모가 큰 라이브레스토랑과 식당 등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사업은 괜찮았으나 나이 들면서 언제부턴가 가슴 한 구석에는 시나브로 알 수 없는 공허감 같은 것이 싹트고 있었다. 그것은 오래 잊고 지냈던 음악에 대한 미련인 성도 싶었다. 이제는 스트레스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생활로서의 일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마음을 여유롭게 가꾸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계기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으로 찾아왔던 지인과 음악 얘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과거 트럼페터였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지인이 너무도 반가워하며 자신의 동아리에 들어와 재능기부로 봉사활동을 같이 했으면 어떻겠느냐고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평소 막연한 바람이기는 했지만 악기와는 오랜 세월 손을 놓고 있었던 터여서 막상 갑작스럽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하던 사업을 과감히 접고 음악과 다시 연을 맺기에 이른다. 이후 ‘세노야세노야’ 및 ‘군사모’등의 봉사단체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사회봉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로 볼 때 트럼펫은 어쩌면 그녀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현재 약 3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레인보우관현악단’(이하 레인보우)에서 트럼페터로 활동하고 있는데 악단의 총무직도 맡을 만큼 주어진 역할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해내는 멋진 아줌마이기도 하다. 창설 15년째를 맞고 있는 레인보우는 ‘음악을 통한 사회봉사’를 표방하며 그간 ’찾아가는 음악회‘ ’푸른음악회‘ ’진포예술제‘ ’새만금예술제‘ ’현대중공업진수식‘을 비롯하여 수회의 TV방송 출연 및 각종 지역 행사 공연을 통하여 시민과 친숙해 왔고 최근에도 월 2회 이상 전국의 요양원을 찾아 힘들고 소외된 노인들에게 위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군산의 대표적 악단이다. 그녀에 의하면 다만 소요되는 경비가 거의 회원들 자부담이어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공연을 통하여 위로를 받고 즐거워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더없는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면서 자신들의 즐거움은 또 다시 관중에게 전파되어 공연장 분위기를 생기로 가득 차게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행복의 선순환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녀는 약 150명의 연주자가 참가한 전국 Trumpeter 경연대회에서 독주와 2중주를 선보여 남녀 통틀어 1위에 입상할 만큼 검증된 실력으로 앞으로도 시민과 악단이 함께 즐기는 음악봉사 활동을 통하여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을 들려주는데, 얼마 전에는 70년대 초를 시대 배경으로 최근 제작 중인 ‘강남블루스’란 영화(출연/김래원,김지수,이민호,정진영 등)의 연회장이 등장하는 장면에 당시의 악단 멤버로 출연 교섭이 들어와 그 장면 촬영을 하느라 무주에 다녀오기도 했단다.
이제는 누구의 아내나 엄마가로서가 아니라 음악적 재능기부 봉사활동가로서 자신의 인생을 구가하며 행복함을 느낀다는 송현숙 씨. 그러나 정작 자신을 가장 많이 챙겨주고 후원해주는 사람은 남편이라며 가족의 격려와 응원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기가 있는 게 아니겠느냐며 손에 트럼펫을 쥔 채 밝게 웃는다.
레인보우관현악단
군산시 동리2길 3(삼학동)
총무 송현숙 010-9223-3819